142화
멋진 광경이었다. 아진이 태어나 본 그 어떠한 풍경보다도 멋지고 아름다웠다. 그것을 물끄러미 보고 있자 잡념들이 파도를 타고 밀려오기 시작했다.
꽃님과 왔었으면 좋았을 텐데. 맛있는 도시락도 싸 왔을 텐데. 꽃님과 왔었다면, 그랬다면…….
부질없는 상상을 하던 정신이 곧 멍해졌다. 꼭 꽃님의 죽음에 취한 것 같았다. 그때. 아진의 발을 닦고, 양말에 구두까지 신긴 석주가 시선을 맞추며 물어 왔다.
“옆에 있어도 돼?”
아진이 탁하게 흩어진 눈동자로 그를 쳐다봤다. 그러다 느리게 고개를 끄덕였다. 석주가 아진의 옆에 털썩 앉았다. 두 사람의 팔뚝이 언뜻 스쳤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꽃님의 죽음 뒤에 숨어 있던 온갖 현실들이 아진을 향해 달려들었다.
이제 돌아가야겠지. 일상이라고 칭할 것 없는 일상으로. 차를 타고. 석주의 집으로. 돌아가야겠지.
무슨 정신으로 차를 타고 여기까지 왔는지 생각이 안 났다. 이제 또 몇 시간 차를 타고 돌아가야 하는데. 어떻게 버틴담. 아니, 애당초 돌아가는 게 맞나. 이제 제가 그곳에 머물러야 할 이유는 사라졌는데.
“…….”
됐다. 꽃님이 죽었는데 이런 생각이나 하고 있다니. 어떻게든 되겠지. 어떻게든. 살기만 하면 되지.
아진이 손등으로 눈두덩을 벅벅 문대며 상념을 털어 냈다. 그리고 다시 바다를 쳐다봤다. 까마득한 바다에 답답하던 가슴이 뻥- 뚫리는 듯했다.
아진은 그 뻥 뚫린 가슴이 해소인 줄 알았다. 슬픔. 우울함. 막막함. 그런 것이 사라진 줄 알았는데. 집으로 돌아가기 위해 차에 올라타고서야 가슴에 구멍이 생겼다는 걸 알았다.
갑자기 명치가 너무 아팠다. 미어진다는 게 무슨 감정을 말하는 건지 몰랐는데, 비로소 깨달을 수 있었다. 그것을 인지하고 나자 억누르던 눈물이 줄줄 쏟아지기 시작했다.
“흐으…….”
아진은 서울로 돌아오는 내내 울었다. 빈 유골함을 껴안고, 차 엔진 소리보다도 큰 소리로 울었다. 아주 엉엉, 티끌만큼 남은 기력을 모두 불 싸지르며 울었다.
“허어어엉, 큽, 허어어엉……. 아줌마……. 끅, 흐어어엉…….”
차 안은 아진의 울음소리로 터져 나갈 것 같으면서도 고요했다. 운전석에 앉은 명진도, 옆자리에 앉은 석주도 아무런 말을 하지 않아서 그랬다.
그들 딴에는 배려였으나, 아진은 어쩐지 그것이 더 슬펐다.
‘왜 울어, 등신아. 네가 뭘 잘못했다고 울어.’
제 등을 후려갈기던 손과,
‘울지 마라, 울지 마. 울어 봐야 떨어지는 거 하나 없다. 어? 아진아. 울지 마.’
제 뺨을 쓰다듬어 주던 체온과,
‘왜 우냐……. 아이고, 눈깔 봐라, 눈깔 봐. 시뻘건 게 곧 터지겠다. 그만 울어. 이리 와. 콩나물국에 밥 말아 줄 테니까. 그거나 먹어.’
저를 달래 주던 목소리가 떠올랐다. 자꾸, 자꾸 떠올랐다.
꽃님의 모든 것이 지나치게 생생했다. 근데 이상하게도, 그래서 그녀가 죽었다는 게 더욱 실감이 났다. 다시는, 절대로, 무슨 일이 있어도 그녀의 체온을 느낄 수 없고, 그녀의 목소리를 들을 수 없다는 게 사무치게 슬펐다.
“흐으, 아줌마아…….”
아진이 아무리 껴안고 있어도 차갑기만 한 유골함을 더욱 세게 안았다.
반쪽짜리 불면증
아진은 바닥에 앉아 꽃님의 침대에 기대어 있었다. 꽃님은 죽기 전, 잠을 몹시 많이 잤는데. 이상하게 베개와 이불에선 그녀의 냄새가 나지 않았다. 그게 어찌나 서럽고 섭섭하던지. 꼭 꽃님이 저를 버린 듯한 기분까지 들었다.
그게 아님을 알지만. 그 누구의 잘못도 아님을 알지만. 철없이 섭섭함이 치밀었다.
가슴도 아팠다. 꼭 가뭄에 찌든 논 같았다. 불모지 같기도 하고, 잘못 말린 메주 같기도 했다. 아무튼 바짝바짝 타들어 가고, 으스러지고, 깨지고 있었다. 꽃님의 못된 심장병이 제게 옮아 온 게 아닌가, 싶었다.
뭐. 그것도 나쁘지 않지.
볕 좋은 봄날. 아진은 창호지 문도 열지 않고, 방문도 꼭 닫아 놓고, 꽃님의 침대에 기대어 하릴없이 시간을 낭비하고 있었다.
이전에 하던 일이라곤 꽃님의 약을 챙겨 주고, 함께 밥을 먹고, 그녀의 잠자리를 봐 주고, 책을 읽어 주던 게 다여서. 무엇 하나 꽃님과 함께하지 않은 일과가 없어서 그녀가 사라지고 나니 할 게 없었다.
바다에 꽃님을 뿌리고 온 지 사흘이 지났는데, 여전히 할 일을 찾지 못했다. 아진은 밤낮 가릴 거 없이 넋을 놓고 있다, 울다, 쓰러져 자다가, 흐느끼다, 다시 넋을 놓길 반복했다.
“…….”
아진이 그새 또 불그스름해진 코끝을 훌쩍이는데. 똑똑. 누군가가 방문을 두드렸다. 아진은 대답하지도 뒤를 돌아보지도 않았다. 밥상을 갖고 온 사람이거나, 밥을 먹으라고 채근하러 온 사람이거나, 그도 아니면 저를 쫓아내라는 석주의 명을 받고 온 사람이거나. 개중 하나겠지 싶었다.
근데.
“아진아.”
절 부르는 목소리가 지나치게 다정했다. 아진이 흠칫 어깨를 떨었다. 아랫입술을 꾹 물었다가 놓은 그가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석주가 문지방 앞에 서 있는 게 보였다.
와이셔츠만 입은 석주의 모습이 뿌옇게 번졌다가 또렷해지길 반복했다. 제 눈에 눈물이 차올라서 그런 건지, 아니면 기력이 없어 그런 건지 분간할 수 없었다.
매가리 없는 아진에 석주의 낯이 대번에 심각해졌다.
“밥을 안 먹는다고 들어서. 걱정돼서 왔어.”
“…….”
아진은 연신 침묵했다. 별말 않는 그에 석주가 슬쩍 문지방을 넘었다. 평소였다면 들어가도 되냐, 묻고 그가 허락할 때까지 기다렸겠지만 지금은 그럴 상황이 아니었다.
아진은 이번에도 말이 없었다. 석주가 뒤를 향해 눈짓했다. 그의 뒤에 서 있던 종이 종종걸음으로 밥상을 방 가운데에 내려놓고는 나갔다. 문을 닫는 것도 잊지 않았다.
석주는 잠시 방을 둘러보다, 창호지 문을 넓게 열어 방 안에 가득 찬 슬픔을 내보냈다. 마당에 핀 꽃 내음이 물씬 밀려왔다. 아진이 자신도 모르게 그것을 크게 들이마셨다.
석주가 둥그런 밥상 앞에 양반다리를 하고 앉았다. 그리고 자신의 옆자리를 툭툭 두드렸다.
“아진아. 이리 와.”
“…….”
“얼른.”
“…….”
아진은 고집스레 입을 다물고 있었다. 가고 싶지 않다는, 먹고 싶지 않다는 뜻이었다. 석주가 코로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내가 계속 이 방에 있었으면 좋겠어? 뭐, 나는 그게 좋긴 한데.”
석주는 참 다정하게도 협박을 해 댔다. 아진의 미간에 옅은 주름이 졌다. 잠시 고민하던 그가 마지못해 밥상 앞으로 다가왔다.
음식 냄새가 코를 찔렀다. 그 냄새가 반갑지 않았다. 하얀 김이 폴폴 나는 죽을 보니 벌써부터 속이 더부룩했다. 묽게 끓인 된장국이며 잘게 조각낸 김치, 소고기 장조림, 오징어젓갈 등이 맛깔스럽게 담겨 있었지만 무엇 하나 아진의 흥미를 끌지 못했다.
연거푸 한숨을 내쉬는 아진의 앞으로 석주가 숟가락을 내밀었다.
“생각 없어도 먹어야지.”
“…….”
“잔소리 같겠지만 그래도 밥은 먹어야 해. 조금만 먹어. 많이는 안 바라. 딱 다섯 숟갈만. 밥이 싫으면 고기라도 먹어.”
석주는 마치 아이를 달래는 듯 말했다.
“다섯 숟갈. 먹을 때까지 안 갈 거야, 나.”
그러다 되려 아이처럼 떼를 쓰기도 했다. 아진이 작게 코웃음을 쳤다. 그 웃음은 오래가지 못했다. 석주는 정말 제가 다섯 숟갈을 먹을 때까지 자리를 뜨지 않을 이라서. 사흘이고 나흘이고 제 곁을 지키고 있을 터였다.
아진이 숟가락을 받았다. 그리고 괜히 죽을 몇 번 휘저었다. 김이 더욱 자욱하게 올라왔다. 속이 메슥거렸지만, 꾹 참고 한 숟갈을 먹었다. 아무래도 굶어 죽으면 꽃님에게 된통 혼쭐이 날 것 같아서.
“잘하네. 착해.”
석주의 입가에 만족의 미소가 떠올랐다. 고작 밥을 먹는 것일 뿐인데 칭찬도 아끼지 않았다. 아진이 다시 죽을 펐다. 그러자 석주가 장조림을 그의 숟가락 위에 얹어 주었다.
“…….”
아진은 군말 없이 그것을 입으로 가져갔다. 근데 그 순간.
투둑.
묵직하고 둔탁한 액체가 밥상 위로 떨어졌다. 아진은 자신이 죽을 흘린 줄 알았다. 딱 그런 느낌의 액체였다. 소리가 난 쪽으로 무심코 눈을 돌리는데. 액체가 제 앞이 아니라 석주의 앞에 떨어져 있었다.
그것은 매우 붉고 또 붉었다.
아진이 다급하게 시선을 올렸다. 석주가 자신의 코를 틀어막고 있는 게 보였다. 붉은 액체의 정체는 다름 아닌 석주가 흘린 코피였다. 그 역시 당황한 눈치였다.
“아, 미안…….”
석주가 사과했다. 아진이 그를 집요하게 쳐다봤다. 며칠 내내 밥도 안 먹고 내리 운 건 저인데 코피는 석주가 흘리는 게 이상했다.
석주의 코피는 쉽게 멈추지 않았다. 손바닥이 젖어 손등으로 문질렀는데도 가라앉지 않았다. 그의 새하얀 셔츠 소매가 피로 물들었다.
멍하니 굳어 있던 아진이 뒤늦게 정신을 차렸다. 밥숟가락을 떨어트리듯 내려놓은 그가 방구석에 쌓여 있는 수건을 집어 석주에게 내밀었다. 석주가 그것을 받아 코를 가렸다. 그러고는 급하게 몸을 일으켰다.
“마저 먹어. 이따 다시 올게.”
어색하게 웃은 석주가 바삐 방을 나섰다. 아진이 사라지는 그를 눈으로 좇았다. 방문이 닫히고, 복도가 소란스러워졌다. 조직원들이 오두방정을 떨며 석주를 걱정하는 듯했다.
“…….”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던 아진은 다시 숟가락을 들었다. 그것밖에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그리고 석주는 아진이 약속한 다섯 숟가락을 모두 먹을 때까지 나타나지 않았다. 혹시나 싶어 꾸역꾸역 다섯 숟가락을 더 먹었는데. 그래도 석주는 오지 않았다.
그날 밤. 아진은 조금 겁이 났다.
석주가 꽃님처럼 죽을병에 걸린 게 아닌가 싶어서.
그러다 그 역시 제 곁을 떠나는 게 아닌가 싶어서.
제가 오롯이 혼자가 되는 게 아닌가 싶어서.
무서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