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1화
장례식은 매우 길면서도 몹시 짧았다. 꽃님의 죽음을 되씹는 시간 시간이 너무 끔찍했는데. 정신 차리니까 끝나 있었다. 전문 장의사가 석주에게 다가와 육신을 어떻게 할 것인지 물었다. 석주가 아진을 바라봤다. 대답을 기다리는 거였다.
아진이 끈적하게 달라붙은 입술을 달싹였다.
“화장해 달래요. 아줌마가. 몸이 썩어 가는 건 더럽고 불쾌하다고.”
“그래요. 그럼 유골은 어떻게 하실 건가요? 뿌리거나, 묻거나.”
장의사가 다시 물었다. 아진이 눈썹을 올렸다. 그가 손을 꿈지럭거리며 석주의 눈치를 봤다.
“아, 그게…… 혹시…….”
“…….”
석주는 잠자코 아진의 말을 기다려 주었다. 이건 오롯이 아진이 결정할 문제이니까. 뿌리든 묻든 반박할 생각도 말릴 생각도 없었다. 뭐, 먹겠다거나 껴안고 살겠다거나 하는 건 문제가 조금 되겠지만 그런 것만 아니면 괜찮았다.
한동안 머뭇거리던 아진이 조심스레 입을 뗐다.
“바다…… 갈 수 있을까요? 어디든 괜찮아요. 그냥 바다이기만 하면 되는데…….”
예상치 못한 말에 석주의 표정이 슬쩍 구겨졌다. 난감함의 표현이었다. 그 낯을 본 아진이 숨을 짧게 들이마셨다. 안 된다고 하려나, 싶어서. 근데 석주의 난감은 거절로부터 비롯된 게 아니었다.
“바다면 차 타고 나가야 하는데. 제일 가까운 곳도 서너 시간은 걸릴 거야.”
석주가 다정한 목소리로 염려를 표했다. 그 말에 아진의 얼굴이 한층 밝아졌다.
“아, 괜찮아요. 괜찮을 거예요. 탈 수 있어요.”
“……그래.”
석주가 짧게 고개를 끄덕였다. 아진의 입가에 미소가 떠올랐다. 꽃님이 세상을 떠난 이후 처음 짓는 미소였다.
* * *
아침 일찍 출발했는데, 바다에 도착한 건 정오가 되어서였다.
아진이 어색하게 모래사장 위에 섰다. 모래가 두껍게 깔린 땅이 이상했다. 흙 마당과도, 산과도 달랐다. 밟는 족족 발이 푹푹 빠져서 이리 기우뚱, 저리 기우뚱, 했다. 그럴 때마다 한 걸음 떨어져서 따라오던 석주가 팔꿈치를 잡아 주었다.
이윽고 바다 앞에 선 아진이 넋 놓고 바다를 쳐다봤다.
생전 처음 오는 바다는 낯설다는 표현으로는 부족했다. 땅, 하늘, 풍경, 공기 모든 게 달랐다. 오죽하면 제가 꽃님과 함께 죽어서 천당으로 온 게 아닐까 싶을 정도였다.
새파란 바다. 어떻게 이렇게 많은 물이 존재할 수 있나 싶을 정도로 거대한 면적. 직선으로 쭉 뻗은 수평선. 비릿한 물 냄새. 고운 흙. 대문짝만하게 뜬 태양. 쏴아아- 쏴아아- 하며 몰아치는 파도. 뺨과 이마, 머리칼 사이사이로 비집고 들어오는 차가우면서도 눅눅한 바람.
꽃님의 유골함을 든 아진은 한참이나 바다를 쳐다보고 있었다.
석주의 방에 걸려 있던 파도 그림을 보며 바다를 아주 오래, 아주 많이 상상해 왔는데. 현실에 비하면 제 상상은 비루하고 조악했다.
바다라는 게 이런 거였구나. 파도라는 게 저런 모습이었구나. 이토록 방대하고 힘찼구나, 싶었다.
그렇게 얼마나 바닷바람을 맞으며 있었을까. 바보 같은 다리가 후들후들 떨리기 시작했다. 팔도 아팠다. 유골함이 꽤 무거웠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아진은 그것을 고집스레 들고 있었다. 무거운데, 가벼워서. 그저 통이라 생각하면 무거우나 꽃님이라 생각하면 한없이 가벼워졌다.
유골함을 고쳐 든 아진이 조각난 빛이 반짝이는 바다를 보며 말했다.
“날이 좋네요. 바람은 많이 부는데 따뜻하고. 하늘도 맑고.”
“그러게.”
“아줌마가 용궁까지 가는데 안 춥겠어요. 바람만 잘 타면 금방이겠어.”
“…….”
영 이상한 단어가 끼어 있었지만 석주는 의문을 제기하지 않았다. 아진 역시 그에게 ‘진짜 용궁이 있을까요? 심청전에 나오는 용궁 말이에요. 사장님은 바닷가에 오래 사셨으니까 아시지 않아요?’라고 묻지 않았다. 없다고 하면 슬플 것 같아서. 꾸역꾸역 참고 있는 눈물이 쏟아질 것 같아서. 잘 살다 간 꽃님을 주제넘게 불쌍히 여기게 될 것 같아서.
아진이 조심히 유골함을 내려놓았다. 그 후 신고 있던 구두를 벗었다. 오늘 아침 석주가 사다 준 구두였다. 제 발 크기와 딱 맞는 것인데, 딱딱하고 단단해서 불편했다.
아진은 구두를 곱게 정리해 두고, 양말도 벗은 후에 다시 유골함을 들었다. 그리고 성큼성큼 바다를 향해, 몰아치는 파도를 향해 다가가기 시작했다.
갑작스러운 아진의 행동에 석주가 얼른 그의 팔뚝을 잡아챘다.
“뭐 하는 거야.”
그가 낮은 목소리로 으르댔다. 검은 눈동자에 경계가 가득했다. 아진의 죽음에 대한 두려움도 넘실거리고 있었다. 아진이 흐리게 웃으며 그의 손을 떼어 냈다.
“가까이서 뿌려 주고 싶어서요.”
조금이라도 용궁에 가기 편하라고. 거기까지 직접 데려다줄 순 없지만, 배웅이라도 해 주고 싶어서.
“…….”
아진의 말에도 석주의 굳은 표정은 풀릴 줄 몰랐다. 그에 아진이 어깨를 가볍게 으쓱거렸다.
“걱정되시면 사장님도 들어오세요.”
그렇게 일갈한 아진이 파도 속으로 걸어 들어갔다. 석주가 얼른 그의 곁에 붙어 섰다. 다행히 아진은 파도가 종아리에서 넘실거리는 정도에서 멈춰 섰다.
“더 가면 깊을까요?”
라고 석주에게 묻기도 했다. 아무래도 바다에 들어오는 건 처음이라. 산 자의 몸으로 어디까지 갈 수 있는지 알 수가 없었다.
“조금 더 가도 깊진 않겠지만 파도가 셀 거야. 넘어지기라도 하면 큰일 나.”
석주가 나직이 만류했다. 아진이 고개를 끄덕이며 뒤꿈치로 흙바닥을 지르밟았다. 넘실거리는 파도가 종아리와 무릎을 부드럽게 휘감았다.
그렇게 세차 보이던 파도는 막상 들어오고 나니 별것 아니었다. 그래 봐야 뭍 근처에 서 있어서 파도의 잔상만을 느끼는 거였지만, 생각보다 따뜻하고, 가볍고, 간지러웠다.
석주의 그림 속에 있던 파도는 꼭 사나운 짐승 같았는데. 이렇게 포근한 거였구나. 다행이었다. 꽃님이 이 파도를 헤치고 가는 게 어렵지 않을 것 같아서.
아진이 유골함 뚜껑을 열었다. 그 뚜껑을 옆구리에 끼는데, 석주가 슬쩍 빼 갔다. 아진이 고맙다는 뜻으로 작게 웃어 주었다.
몇 번 심호흡한 아진이 유골함 속으로 손을 집어넣었다.
탁한 회색의 뼛가루는 보드랍지 않았다. 꽃님의 뼈라 생각하니 새삼 기분이 묘했다. 어젯밤부터 지금까지 종일 껴안고 있던 것인데도 그랬다.
아진이 골분을 한 움큼 쥐었다. 막무가내였다. 고인에 대한 예의고 의식이고 몰랐다. 그래도 괜찮다. 꽃님은 그런 거로 화를 낼 사람이 아니니까.
때마침 바람이 불었다. 아진이 골분을 쥔 주먹을 바깥에 꺼내 놓았다. 그러자 바람이 주먹을 스치며 알아서 꽃님을 데리고 갔다. 꼭 하얀 연기가 흩날리는 것 같았다.
아진이 천천히 손에서 힘을 풀었다. 이런 건 생전 해 본 적도, 본 적도 없는데. 그 모든 행동이 참으로 자연스러웠다.
“아줌마. 미안해.”
아진이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내가 다리가 이 모양이라 춤은 못 추네. 그래도 질질 짜지 말라는 건 열심히 지키고 있어. 그러니까 좋은 곳에 가.”
울지 않는 게 정말 정말 힘든데. 나 아줌마 죽고 한 번도 안 울었다. 아줌마가 아침에 눈을 안 떠서, 그때는 너무 무서워서 나도 모르게 울었는데. 그건 못 본 척해 주고, 아무튼 안 울었다. 장례식 때도, 지금도.
아진의 손이 텅 비었다. 그가 다시 유골함 안으로 손을 집어넣었다. 그리고 뻐득뻐득한 가루를 한 움큼 쥐었다가, 반 줌만 쥐었다. 무슨 소용이겠느냐마는. 그녀를 조금이라도 늦게 보내고 싶은 마음에서였다.
아진이 천천히 손가락에 힘을 풀었다.
“아줌마. 우리 다음 생에 만나. 꼭 만나.”
그러다 다시 손을 말아쥐었다. 입술 끝에 꾹 힘을 주고 무언갈 고민하던 그가 말을 고쳤다.
“아니, 그러면 아줌마가 너무 오래 기다려야 할지도 모르겠다. 내가 가려면 한참 있어야 하잖아.”
아진이 주먹 쥔 손가락을 꿈지럭꿈지럭 움직였다. 뼛가루가 사라지는 게 또렷이 느껴졌다.
“그래도 기다릴래? 조금만 기다려 볼래? 용궁이든 천당이든 거기가 나쁘지 않으면 좀 기다려 봐.”
아진이 또 반 줌을 쥐어 흩날렸다. 휘이잉, 부는 바람에 꽃님은 전보다 더 빠른 속도로 사라졌다. 그것이 섭섭했지만 꽃님이 가지 않겠다고 손가락에 들러붙어 있으면 그건 또 그대로 슬플 것 같았다.
“내가 서둘러 가진 못하더라도 늦게 가진 않을게.”
흐리게 웃은 그가 재차 유골함으로 손을 집어넣었다. 근데 잡히는 게 없었다. 유골함 바닥을 긁던 아진이 그것을 냅다 엎었다. 구름처럼 하얀 연기가 울컥 쏟아지더니 순식간에 사라졌다.
“……잘 가.”
아진이 허공에다 손을 흔들었다. 흔적도 없이 사라진 꽃님이 조금, 아주 조금 얄미웠다. 맨날 귀신이 어쩌고 혼이 어쩌고 하더니. 한번 나타나 보지. 이럴 때 아니면 언제 오려고. 아니면 꿈에 나오려나.
그렇게 시답잖은 생각을 하는데. 침묵하고 있던 석주가 조심스레 입을 뗐다.
“여기 계속 있으면 추워.”
“…….”
그 말에 아진이 그를 올려다봤다. 별다른 뜻 없이 본 것인데. 석주가 입고 있던 정장 재킷을 벗어 아진의 어깨에 걸쳐 주었다. 그 후 아진이 황망히 까뒤집어 들고 있던 꽃님의 유골함을 돌려 뚜껑도 닫아 주었다.
잠시 머뭇거리던 그가 아진의 손목을 거머쥐었다. 그리고 천천히 밖으로 끌고 나갔다. 아진은 순순히 나왔다. 모래사장을 딛자 물에 젖은 발에 온통 흙이 묻어났다. 꼭 콩고물을 묻힌 인절미 같았다.
아진이 신기하다는 듯 발가락을 들썩이는데. 석주가 먼 곳으로 눈짓했다. 그러자 차 근처에서 담배를 태우던 명진이 헐레벌떡 수건을 뭉치로 갖고 왔다.
석주는 일단 수건을 하나 깔고, 아진을 앉혔다. 그리고 손수 아진의 발을 털어 주었다. 간질간질한 감촉에 아진의 눈썹이 유순하게 휘어졌다.
발 한쪽이 멀끔해졌을 때쯤. 아진이 나직이 석주를 불렀다.
“사장님.”
“어?”
“우리 바로 가야 해요?”
“왜. 더 있고 싶어?”
“네. 바다는 처음이라서. 조금만 더…….”
“있다 가자, 그럼.”
석주는 고민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아진이 먼 파도를 바라봤다. 그새 저문 해가 불그스름하게 변하고 있었다. 새파랗던 파도도 은근한 보랏빛을 띠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