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0화
꽃님이 고개를 내저었다.
“모르지. 안 가 봤으니. 바다가 땅보다 넓다고 하지 않던? 있다 해도 어디 찾는 게 쉬울까.”
“음……. 사장님은 바다가 있는 부산에 살았으니까 용궁이 있는지 없는지 알지 않을까?”
“있으면 뭐. 가게?”
“못 갈 건 또 뭐야. 당장 내일도 갈 수 있어. 나 이제 차 탈 수 있잖아. 아줌마랑 같이 가면 되지.”
아진이 신난 얼굴로 종알종알 말했다. 병원에서 집으로 온 이후로 다시 차를 탄 적이 없긴 하지만 어쩐지 그런 확신이 들었다. 그 목적이 바다를 보러 가는 것이라면, 온종일도 탈 수 있을 것 같았다.
아진의 방정에 꽃님이 바다를 상상하듯, 눈을 느리게 감았다가 떴다.
“……바다.”
“응. 바다. 아줌마 바다 본 적 있어?”
“없지, 시부랄. 맨날 부엌에, 아궁이 앞에 처박혀 있었는데 내가 그걸 어찌 봐?”
꽃님이 몸을 뒤척이며 이죽거렸다. 아진이 베개를 끌어와 그녀의 머리 아래에 갖다 주었다. 꽃님이 그것을 당겨 베며 읊조렸다.
“바다……. 좋긴 하겠네. 진짜 용궁이 있든 없든, 좋긴 할 거야…….”
“아줌마는 착하게 살았으니까 용왕님이 심청이한테 해 준 것처럼 극진히 모시고 병도 낫게 해 주시지 않을까?”
“지랄. 내가 착하긴 뭐가 착하냐. 용왕이 보자마자 내쫓을 거다.”
“절름발이에 멍청한 사내새끼 키우고 입히고 했으면 착한 거지.”
콧잔등을 슬쩍 일그러트리고 있던 꽃님의 낯에서 표정이 사라졌다. 그녀가 아진을 지긋이 바라보며 타일렀다.
“아진아. 그건 내가 착한 게 아니라, 네가 타고난 덕이 그런 거다.”
“…….”
“너는 타고난 게 사랑받으면서 살 팔자야. 근데 하필 옆에 있던 게 나라 그저 그런 사랑만 받은 거고.”
“…….”
“용왕은 나 말고 네가 만나라. 나는 흥미 없다.”
있는지 없는지 모를 용왕을 운운하면서 지나치게 진지한 목소리였다. 꽃님은 주절주절 말해 놓고, 뒤늦게 이런 이야기가 우습다는 듯 입꼬리를 올렸다.
아진이 그녀의 손을 펼쳐 주름진 손바닥에 뺨을 묻었다. 굳은살이 잔뜩 박인 손바닥이 거칠었다. 거칠어서 좋았다. 평생 불과 물과 그릇과 사투해 온 손이었다. 제 이마를 쓰다듬어 주고, 머리를 넘겨 주고, 등을 문질러 주던 손이었다.
“그래. 내가 만나지, 뭐.”
아진이 지그시 눈을 감는데. 먼 허공을 응시한 꽃님이 엄지로 그의 뺨을 살살 쓰다듬으며 말했다.
“혹 진짜 만나거든, 다음 생에는 네 팔자대로 살게 해 달라고 해.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네 팔자대로만.”
“…….”
“좋은 집에서, 좋은 부모한테 사랑받으면서, 좋은 거 입고, 좋은 거 먹으면서. 그렇게 살게 해 달라고 해.”
“…….”
“너는 그래도 돼.”
그 말에 아진은 어쩐지 가슴이 울렁거렸다. 다음 생. 팔자. 무엇 하나 현실적인 게 없는데. 있는지 없는지도 확신할 수 없는 것인데. 그래, 마치 용궁 같은 것인데.
그것을 당연하다는 듯 말하는 꽃님이 참…… 좋았다. 그 허상 속에는 부모도 있고, 사랑도 있어서 좋았다. 그녀가 항상 이렇게 말해 주는 덕에. 너는 원래 사랑받을 팔자다. 조금 삐끗해서 이리 살고 있을 뿐이지. 그렇게 말해 주는 덕에 아진은 돈 한 푼 없이, 불편한 다리로도 모난 부분 없이 잘 살아왔다.
다 꽃님 덕이었다.
아진이 맑게 웃으며 꽃님과 가만히 눈을 맞췄다.
“아줌마.”
“왜.”
“나는 지금도 좋아. 아줌마랑 같이 살아와서 좋아. 충분히 좋아.”
“…….”
“사랑받을 팔자라는 게 맞나 봐. 이렇게 아줌마랑 있잖아. 나는 내 팔자대로 살고 있는 거야.”
“……아진아.”
“난 용왕을 만나면 다음 생에도 아줌마를 만날 수 있게 해 달라고 할 거야. 팔자대로 사는 거 하나도 안 중요해. 그냥 아줌마랑 같이 있었으면 좋겠어.”
아진이 배시시 입꼬리를 올렸다. 그 얼굴이 매우 천진하고 귀여웠다. 꽃님이 아진의 머리칼을 슥슥 쓰다듬었다. 결 좋은 머리칼이 투박한 손가락 사이사이로 흩어졌다.
아진은 기분 좋게 그 쓰다듬을 받고 있었다. 꽃님과 닿아 있는 게 좋았다. 서로 몸을 부대끼는 게 좋은 건 세상에 그녀와 ……석주뿐이었다. 지금은 꽃님뿐이고.
잠깐 나른히 눈을 감고 있던 아진이 눈꺼풀을 바짝 올리며 다시 물었다. 군청색 눈동자에 기대가 차르르 차오르고 있었다.
“어쨌든, 그래도 바다는 보고 싶지?”
“…….”
“보고 싶네. 응? 보고 싶어 하는 거 맞네. 우리 진짜 보러 갈까? 차 말고 기차, 어? 기차 같은 거 타고 부산까지 가 볼까? 요즘 사람들이, 그 뭐더라, 어, 여행. 여행 가는 것처럼 말이야. 여행은 소풍 같은 것보다 훨씬 근사하대.”
“……아서라. 귀찮다.”
꽃님이 아진의 머리칼에서 손을 뗐다. 그리고 “자련다.”라며 등을 돌렸다. 아진이 방정맞은 강아지처럼 침대 위로 뛰어 올라갔다. 그리고 꽃님의 옆구리를 파고들어 종알종알 귀찮게 굴었다.
“아이, 아줌마. 가자. 어? 가자-아-. 내일. 도시락 싸서.”
“조용히 해, 좀.”
“우리 오늘 같이 잘까? 나 아줌마 옆에서 잘까? 오늘 유독 그러고 싶네.”
“아우, 저리 꺼져. 개도 아니고 왜 이렇게 들러붙어. 불이나 꺼. 자게.”
꽃님이 연신 아진을 밀어 냈다. 발로 아진의 허벅지를 차기도 했다. 그에 아진이 주르륵 침대 아래로 미끄러졌다. 아진이 입술을 삐죽이며 몸을 일으켰다.
“치……. 알았어.”
아진이 전등을 껐다. [심청전]이라 적힌 책도 다시 책장에 꽂아 넣었다. 그리고 자신의 침대에 누워 꽃님 쪽을 돌아봤다. 어스름히 들어오는 달빛 아래로 꽃님이 보였다. 그녀는 조금 전까지만 해도 벽을 보고 누워 있더니, 어느샌가 아진을 보고 있었다.
아진이 나직이 밤 인사를 전했다.
“잘 자, 아줌마.”
“그래.”
“내일 봐.”
“그래.”
내일 꼭 봐.
그렇게 말한 아진이 눈을 감았다. 적당히 충만한 하루가 끝나는 순간이었다.
그리고 다음 날 아침. 꽃님은 눈을 뜨지 않았다.
* * *
석주의 집 마당에서 치러진 꽃님의 장례식은 한산하지 않았다. 사실 태회파의 조직원만 하더라도 수십이라 당연한 일이었지만, 그 밖에도 꽤 많은 이가 다녀갔다.
골드 호텔에서 일하던 종과 누나들, 석주의 집까지 함께 왔던 종들이 왔다. 다들 꽃님에게 밥 한 번씩은 얻어먹었던 이들이었다. 그들은 진심으로 슬퍼했고, 아쉬워했다.
급하게 구해서 품이 넉넉한 정장을 입고, 상주 완장을 찬 아진은 꽃님의 영정 사진 옆에 멀뚱멀뚱 앉아 있었다. 울지도 않았고 슬퍼하지도 않았다. 그 괴상한 모습에 오지랖 넓은 이들이 한두 마디씩 던졌다. 걱정과 핀잔이 뒤섞인 말들이었다.
“아이고, 요즘 세상에 누가 예순 전에 죽는다고. 아줌마가 너무 일찍 갔어.”
“그래도 좋은 곳에 갔을 거다. 좀 쌀쌀맞아도 좋은 사람이었으니까. 여기 그거 모르는 사람 없다.”
“아진이 너는 괜찮냐?”
“근데 왜 안 우냐? 안 슬퍼? 나는 꽃님이 아줌마가 아프다고 할 때부터 네 생각이 먼저 나더라. 네가 울다 까무러치는 거 아닌가 싶었는데.”
“그러게. 이럴 땐 울어도 돼. 이럴 때 아니면 언제 우냐.”
“그렇게 멀뚱히 앉아 있으니 꼭 남 같다. 어?”
“됐어, 됐어. 둘이 모자지간처럼 친했던 거 다 아는데. 넋이 나갔나 보지. 근데 밥은 어디서 먹어.”
“그러게. 배고픈데.”
“저긴가 보네. 이야, 무슨 반찬이 저렇게 호화스러워.”
“사장님이 신경 좀 쓴 모양이야.”
“술도 좋은 거네. 갑세, 갑세. 좀 마시고 가자구.”
아진은 멀어지는 그들을 보며 슬쩍 입꼬리를 올렸다.
왜 울지 않냐고. 단순한 이유였다. 꽃님이 그렇게 말했으니까. 언젠가 태회파의 조직원 몇이 죽어 장례식을 했던 적이 있었다. 아진이 슬퍼하는 사람이 하나도 없다고, 다들 웃고 있는 게 이상하다고 종알거렸더니 꽃님이 그랬다.
‘호상이라고 여기면 호상이 되는 거야.’
‘억울하게 죽었다고, 의미 없이 죽었다고, 아프게 죽었다고, 불쌍하다고 울면 진짜 그렇게 죽은 게 된다. 그럼 혼이 못 떠나. 억울하고 화나서.’
‘좋게 보내면 좋은 곳에 가는 거다.’
‘너도 내가 뒤지면 질질 짜지 말고 춤이나 춰. 좋은 곳에 가라고.’
아진은 그 말을 재차 곱씹으며 숨을 크게 들이마셨다. 그리고 스멀스멀 피어오르는 향 너머에 있는 꽃님의 영정 사진을 바라봤다.
병원에서 퇴원하던 길. 꽃님과 함께 사진관에 들렀었다. 사진을 찍어야 하지 않겠냐는 명진의 권유 때문이었다. 생각도 못 하고 있던 것인데. 그가 아니었으면 영정 사진이 없을 뻔했다.
사진 속의 꽃님은 썩 예쁘지 않았다. 이미 두 번의 수술 후 병원에서 시달릴 대로 시달리고 난 뒤라 얼굴에 고통과 고생의 흔적이 여실히 새겨져 있었다. 주름이 많았고, 웃음이 어색했다.
근데 그게 나쁘지 않았다. 그 자체가 꽃님이라서. 꽃님은 원래 그런 이였으니까.
아진이 멍하니 사진을 쳐다보고 있는데. 옆에 서 있던 이가 물잔을 내밀었다. 석주였다.
검은색 정장을 차려입은 그는 장례식 내내 아진의 옆에 있었다. 가끔 장례와 관련하여 처리할 일이 있거나 만나야 할 사람이 있을 때만 떨어질 뿐. 아침부터 밤까지, 그리고 다시 아침이 올 때까지 아진의 곁에 우직이 있어 주었다.
그러면서도 섣불리 위로의 말이나 걱정의 말을 던지지 않았다. 밥 먹어야지. 잠은 자야지. 쉬어야지. 따위의 말 같은 거 말이다. 묵묵히 있다가 이따금 이렇게 물을 내밀곤 했다.
그게 참…… 감사했다.
저 혼자였다면 장례에, 손님맞이에, 음식에 정신이 하나도 없어서 뭐 하나 제대로 하지 못했을 텐데. 그녀의 죽음을 곱씹을 수도 없었을 텐데. 석주가 다 처리해 준 덕에 오롯이 꽃님의 죽음에만 집중할 수 있었다. 그리고 쓰러지지 않을 수 있었다. 존재 자체가 버팀목이 되는 사람이라서.
석주가 제게 무슨 짓을 했든, 어떤 사람이든 간에 그는 그냥 그런 존재였다. 곁에 있어 주는 것만으로도 든든한 사람. 덩치도 그렇고, 성격도 그렇고, 우직함도 그렇고. 태회파 조직원들이 왜 석주를 믿고 의지하는지 어렵지 않게 알 수 있었다.
이런 순간에, 이런 상황에 그가 옆에 있어서 다행이라는 생각을 했다.
“고맙습니다.”
아진은 짧은 인사와 함께 그것을 받았다. 그래도 물은 먹어야지, 그래야 꽃님을 보내는 길 내내 그녀의 곁에 있어 주지, 싶은 마음에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