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6화
저녁 시간, 석주의 집에는 사람이 많다. 석주를 비롯한 조직원들이 퇴근하고, 저녁밥을 먹을 시간이기 때문이다. 종들도 바삐 움직였고, 집 안에 활기가 띠었다.
아진은 오랜만에 그 북적이는 시간에 방에서 나왔다. 복도는 고요했다. 조직원들이 모두 저녁을 먹으러 다실로 간 모양이었다. 더군다나 오늘은 이름 모를 조직원의 생일이기도 하니, 일찍이 모였을 터였다. 진수성찬에 비싼 술을 곁들이겠지.
아진은 절뚝절뚝 느린 걸음으로 다실로 향했다. 제 방은 집 오른쪽에 있고, 석주의 방, 명진의 방, 다실 등은 왼쪽에 있어 올 일이 없었는데. 오랜만에 밟는 왼쪽 마루는 그 느낌조차 남달랐다. 기분 탓인 걸 알지만 삐걱거리는 소리까지 다르게 느껴졌다.
다실 근처에 도착한 아진이 벽에 손을 짚고 숨을 골랐다.
“하아, 하아…….”
집이 아무리 크기로서니, 집 안을 가로질렀다고 숨이 찼다. 다리가 멀쩡했다면 이러지 않았을 텐데. 아진은 제 꼴을 남에게 보이고 싶지 않아서, 석주에게는 유달리 더 보이고 싶지 않아서 밭은 호흡을 급하게 갈무리했다.
그러고 있으니 다실 안의 왁자지껄한 소음이 가감 없이 들려왔다.
“그래가. 석주 형님이 명지이 형님 손가락을 일단 갖고 있으라 카시더라고요. 예, 하고 받긴 받았는데, 씨발 이걸 우짜냐. 싶더라고요.”
“그래서, 그래서? 버렸냐? 내 손가락?”
“어언지요. 버리기는요. 근디…… 아이, 형님요. 이게 손가락 하나였으면 잘 보관해야지, 싶었을 낀데 세 개라 가지고…….”
“그래, 세 개는 좀 그렇긴 하다? 어? 살 썩는 냄새도 억수로 날 거고?”
“아우, 말도 못 하지요. 처음엔 형님 생각하면서 찔찔 짜고 그랬는데. 어느 날은 명지이 형님이 꿈에 나오셔가 ‘내 손가락 돌리도……. 내 손가락…….’ 이 캐뿌는데 진짜 너무 무섭더라고예.”
“얼씨구. 내가 니를 잡아묵냐?”
“아 꿈에서요, 꿈에서. 그래가 석주 형님한테 가가 ‘형님. 명지이 형님 손가락이 아직 제 방에 있는데요.’ 그랬지 않습니까.”
“그랬더니? 석주 형님, 형님 뭐라 카셨습니까?”
괴상한 대화 주제였다. 잘렸던 명진의 손가락의 행방을 쫓고 있는 듯했다. 명진이 석주에게 물었다. 모두가 조용해졌다. 이내 석주의 낮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놀랐지. 그걸 아직도 갖고 있냐고.”
그들의 대화를 가만히 듣고 있던 아진이 문 너머로 고개를 슬쩍 내밀었다. 줄줄이 붙어 있는 널찍한 상에는 음식은 물론, 소주부터 위스키까지 각양각색의 술병이 올라가 있었다. 석주가 상석에 앉아 있었고 명진과 덕재를 비롯해 익숙한 얼굴들이 줄줄이 앉은 채였다.
텅 빈 술병이 다실 문틈에 일자로 놓여 있고, 다들 얼굴이 불긋불긋한 게 술자리가 시작된 지 제법 된 것 같았다.
“와- 놀랐다고요? 형님. 섭섭합니다!”
명진이 빽 소리를 질렀다.
“미안. 사실 손가락 존재 자체를 잊고 있었다.”
“하! 그래서요. 지금 내 손가락 어디 있는데요?”
“나무 밑에 묻으랬어. 저기 뒷집 가는 길에 있는 나무.”
“……뭐 그래도 버린 건 아이니까 다행이네요.”
명진이 쯧, 하고 혀를 찼다. 그에 악몽을 꾸었다던 조직원이 빽 소리를 질렀다.
“다행이긴요! 그거 묻는 것도 제가 했는데, 그다음부터는 그 나무에 명지이 형님 손가락이 주렁주렁 열리는 꿈을 꾼다니까요!”
그 고함에 모두가 웃음을 터트렸다. 명진은 뒤로 발라당 넘어가며 웃었고, 다른 이들도 상이나 바닥을 두드리며 웃었다. 술잔을 든 석주도 미소를 띠었다.
아진이 그런 석주를 빤히 쳐다봤다.
웃고 있는 석주의 모습이 영 이상했다. 아니, 웃고 있는 그를 보는 제 마음이 이상했다.
왜 웃지. 어떻게 웃을 수 있지. 제 앞에선 다 죽어 가던 얼굴이더니. 제 말 한마디에 일희일비하더니. 제가 없어서 사는 게 하나도 즐겁지 않은 척하더니. 그래 놓고 저렇게 웃어.
얄미웠다. 섭섭하기도 하고, 실망하기도 했다. 주책맞게 코끝도 시큰거렸다.
웃고 있는 잘생긴 얼굴이 참 활기찼다. 걱정일랑 하등 없는 사람 같았다. 잠을 못 자는 얼굴도 아니었다. 며칠 전, 제 방문 앞에 새벽 늦게까지 앉아 있던 사람 같지 않았다. 제가 그립다며 씁쓸한 미소를 짓던 그가 아니었다.
다 거짓말이었을까. 제 앞에서 불쌍한 척했던 건, 그저 알량한 속죄 방법이었던 걸까.
아진이 눈을 꾹 감았다가 뜨며 고개를 늘어트렸다.
아니. 사실 거짓말을 하는 건 저다.
석주는 그렇게 해맑게 웃지 않았다. 은은한 미소만 띤 채 술잔을 들고 있을 뿐. 뭘 맛있게 먹지도 않았고, 신나게 이야기를 하지도 않았다. 조직원들의 야단에 적당히 맞춰 주는 수준이었다. 왁자지껄한 조직원들과 석주의 분위기는 분명 달랐다.
근데 왜 이렇게 기분이 더럽지.
저는 꽃님의 죽음에 물들어 우울하고 서글픈데. 석주는 여전히 저렇게 멋지고 반짝반짝하구나, 그를 추앙하는 많은 이들과 함께 일상을 살아가고 있구나, 싶어 못된 심술이 비죽 고개를 쳐들었다.
이건 저의 못난 열등감일까. 아니면 피해자로서 응당 그럴 수밖에 없는 분노인가.
아랫입술을 지그시 깨문 아진이 뒤를 도는데.
“어…….”
조직원 하나가 아진을 발견했다. 탄성 같은 그의 음성에 하나둘 고개를 돌렸다. 석주 역시 그에 포함되어 있었다.
“……아진이?”
아진의 존재를 인지한 석주가 일말의 망설임 없이 벌떡 일어났다. 잔을 던지듯 놓은 그가 성큼성큼 다실을 가로질렀다. 다리가 어찌나 긴지. 순식간에 아진의 앞에 당도했다.
“아진아. 왜? 무슨 일 있어?”
석주가 버릇처럼 고개를 옆으로 슬쩍 기울였다. 키 차이가 큰 아진과 눈을 맞추는 거였다.
아진이 깨물고 있던 입술을 말아 물었다. 할 말이 있어서 오긴 했는데. 이상하게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석주와 조직원들에게서 뿜어지는 생동감이 낯설었다. 저를 쳐다보는 수십 개의 눈알이 제 몸에 들러붙는 듯한 환촉이 일었다.
다 모여 있는 걸 알고 온 것인데. 괜히 그의 방에 들어가거나, 소쿠리를 든 그가 새벽에 찾아오길 기다리는 것보다야 일찍 말하는 게 좋을 것 같아서 부러 지금 온 것인데.
이 집에서 살며 한두 번 본 광경도 아닌데. 이전에는 저들 사이를 헤집으며 반찬을 날랐고, 술병을 치웠는데. 하물며 상석인 석주의 옆자리에 떡하니 앉아 밥을 먹은 적도 있는데.
지금은 왜 이리도…….
아진이 자신의 팔꿈치를 감싸 쥐며 어깨를 움츠리는데. 석주가 그의 손목을 조심히 쥐어 왔다.
“이리 와. 조용한 곳으로 가자.”
“…….”
아진은 군말 없이 그를 따라나섰다. 그런 두 사람의 뒤로 많은 이들의 시선이 따라왔다. 그러나 다실 문을 돌아 나오면서 완전히 차단되었다. 아진이 저도 모르게 참고 있던 숨을 몰아 내쉬었다.
석주는 아진을 복도 끝으로 데리고 왔다. 석주의 방과 대청마루의 접점에 있는 곳이었다.
그 언젠가 걸레질을 하는 아진의 뒤로 석주가 다가왔던. 아진을 남창으로 오해하고 함부로 대한 석주가 쭈뼛쭈뼛 따라다니며 눈치를 보던.
‘네가 다리 병신인 것처럼. 나는 잠 병신이야.’
‘…….’
‘우리 병신끼리 돕고 살까?’
두 사람의 비밀스러우면서도 환상적인 밤이 시작되었던 그 복도였다.
아진이 과거를 떠올리며 눈썹을 긁적이는데. 석주가 허리를 구부정하게 숙이며 물어 왔다.
“왜 그래. 어디 아파?”
“아니……요.”
“배고파서 나온 거야?”
“아니에요.”
“그럼 꽃님이 아줌마가 아파?”
“아니, 그것도 아닌데…….”
“…….”
연신 흘러나오는 아진의 부정에 석주가 입을 꾹 다물었다. 눈을 두어 번 깜빡이던 석주가 눈썹을 긁는 아진의 손을 잡아 아래로 내렸다. 그리고 크고 뜨거운 손으로 아진의 손등을 슥슥 쓰다듬었다.
“아진아. 무슨 일 있어?”
“…….”
“말해 줘. 걱정돼. 무슨 일 때문에 여기까지 온 건지.”
긴장한 석주가 아랫입술을 슬쩍 핥았다. 입이 바짝바짝 마른다. 전장에 선 병사처럼 심장이 쿵쾅쿵쾅 뛰었다. 한 번도 휘청거린 적 없는 무릎이 흐물흐물해졌다. 아진이 더 시간을 끌었다간 볼품없이 쓰러질지도 몰랐다.
석주는 무서웠다.
아진의 저 예쁜 입술이 무슨 말을 할지 도무지 가늠이 안 됐다. 너무 갑작스러운 방문이라서. 이 시간에 절대 방에서 나오지 않는 그임을 알아서. 저는 물론 조직원들과도 마주치고 싶지 않아 하는 그인데. 어째서 제 발로 여기까지 왔나. 분명 좋은 일일 리 없었다.
집에서 나가겠다고 하려는 걸까.
저를 떠나려는 걸까.
그런 거겠지.
그럼 무슨 말로 그를 잡아야 하나.
협박과 폭력 말고는 할 수 있는 게 없는데.
더는 그런 것으로 아진을 움켜쥐고 싶지 않았다.
그럼 대체 어떻게 해야 하나.
제가 무얼 할 수 있나.
머리가 터지기 직전이었다. 오죽하면 아진이 저를 떠나겠다 말하기 전에 바닥에다 머리를 처박고 죽고 싶은 심정이었다.
그때였다. 아진의 입술이 느릿하게 떨어졌다. 석주는 숨까지 멈추고 그가 할 말을 기다렸다.
“롤……케이크…….”
“……뭐?”
“롤케이크 하나만 사다 주세요…….”
아진이 석주에게 잡힌 손을 꿈지럭꿈지럭 움직이며 중얼거렸다.
오늘 아침. 꽃님이 쉰 목소리로 그를 불렀었다.
‘아진아.’
‘응?’
‘롤케이크가 먹고 싶다. 예전에 너랑 새벽에 나눠 먹었던 거 있잖냐. 그게 먹고 싶네. 그게 자꾸 생각이 나.’
‘…….’
‘다시 먹을 일 없으려나? 하긴, 그런 고급 빵은 비싸니까…….’
‘왜 못 먹어. 또 사 먹으면 되지. 내가 사장님한테 말해 볼게.’
‘아서라. 그 사람한테 아쉬운 소리 하지 마.’
‘큰 부탁도 아닌데, 뭐. 사장님이 사 줄 거야.’
‘…….’
꽃님은 더는 아진을 만류하지 않았다. 대답 대신 군침을 꼴깍 삼키는 게 정말 먹고 싶은 모양이었다. 근 며칠 무슨 반찬이 나와도 밥을 깨작거리더니. 뭘 먹고 싶어 하는 게 반가워서 아진은 그 롤케이크를 반드시 구해다 주고 싶었다.
“롤케이크?”
상상도 못 했던 단어의 등장에 석주가 눈썹을 올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