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2화
예전에는 사는 게 재미있었냐마는. 그래도 태어났으니 잘 살아 보자, 비루한 인생이라도 꾸역꾸역 살아가 보자, 아픈 게 싫으니 죽지도 말자, 교통사고로 죽는 게 얼마나 끔찍하고 아픈 건지 봤지 않나, 그 고통을 최대한 미루자, 싶었는데. 지금은 그런 미적지근한 욕구조차 생기지 않았다.
아진은 기함할 이야기를 하면서 몹시 심드렁했다. 봄바람이 간질이는 볼을 긁기도 했다.
“…….”
꽃님은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 비스듬히 뒤틀린 눈으로 아진을 바라볼 뿐이었다.
아진은 그럴 줄 알았다는 듯 피식 웃고는 다시 밖으로 고개를 돌렸다. 꽃님이 그 몰래 손을 꾹 말아쥐었다.
그리고 다음 날. 아진이 아침 느지막이 일어났더니 꽃님이 방을 닦고 있었다. 으레 부엌일을 할 때 입던 일 바지도 어디서 찾아 입은 채였다.
아진의 고집으로 이 집에 돌아온 이후, 꽃님이 무언가를 하는 건 처음이었다. 꽃님은 언제든 이 집에서 떠날 사람처럼, 떠나고 싶은 사람처럼 굴었기 때문에.
아진이 느릿하게 눈을 끔뻑이며 꽃님을 쳐다보는데. 꽃님이 그의 종아리를 툭툭 두드리며 잔소리를 했다.
“뭘 멀뚱히 보고 있어. 가서 세수하고 와. 똥 밭에 구른 개 같은 꼴로 있지 말고.”
“…….”
아진은 대답하지 않았다. 더할 나위 없이 일상적인 이 풍경이, 이 상황이 현실 같지가 않았다. 제가 아직 잠에서 깨지 못했나, 싶었다. 그러자 꽃님이 걸레를 뒤집어 접으며 빽 소리를 질렀다.
“아, 얼른!”
“……응.”
아진이 마지못해 무거운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 발을 질질 끌며 방 밖으로 나왔다. 꽃님이 그의 뒷모습을 보며 연신 한숨을 내쉬었다.
그날 이후, 꽃님은 매우 부지런하고 귀찮게 움직였다. 싫다는 아진을 데리고 마당을 나돌며 산책도 하고, 함께 먹을 밥상도 손수 지어 차렸다. 아진이 그냥 가만히 있어도 밥이 나오는데 왜 사서 고생하냐며 대들었다가 욕을 거나하게 처먹었다.
하루는 어떻게 들어왔는지 어린 진돗개가 마당을 나돌고 있었다. 아진은 꽃님과 어깨를 붙이고 쪼그려 앉아 종일 그 강아지를 구경했다. 비가 오면 비가 오는 걸 구경했고, 집 여기저기로 꽃 구경도 다녔다.
그 와중에도 석주는 매일같이 마루에 소쿠리를 내려놓고 갔다. 아진은 본 체도 하지 않았으나 꽃님은 이리저리 뒤적거리며 먹을 만한 것을 까먹었다. 아진이 신경질을 내며 먹지 말라고 했으나, 들은 척도 안 했다.
아진은 꽃님이 부단히 노력한다는 것을 어렵지 않게 알아차렸다. 제 입에서 나온 죽음을 어떻게든 지우기 위해서겠지. 제가 정말 그녀를 따라 죽을까 봐 걱정이 되는 모양이었다.
근데 희한하게도, 꽃님이 그러면 그럴수록 아진은 더욱 깊은 구렁텅이로 굴러 들어갔다.
살기 위해 노력해야 하는 삶. 살아갈 이유를 찾아야 하는 삶. 다리 하나가 망가진 신체도, 깨져 버린 영혼도 무엇 하나 완전한 게 없는 불완전한 삶. 앞으로도 영원히 불완전할 삶.
이런 삶 따위, 그만두고 싶지 않을 리 없었다.
“꼭 귀신에 씐 것 같아.”
아진이 고저 없는 음성으로 읊조렸다.
“귀신에 씐 거 맞다. 안 하던 생각이 들면, 못된 귀신이 너한테 달라붙은 거야.”
꽃님이 아진의 찬 무릎을 슥슥 쓰다듬으며 말했다.
“갑자기 게을러지는 것도, 갑자기 밥을 많이 먹게 되는 것도, 적게 먹게 되는 것도, 잠이 는 것도, 다 귀신 때문이다.”
“…….”
“너 때문인 건 하나도 없어. 그러니까 자책하지 말고, 지지도 마라. 그 미물들한테 지지 마, 아진아.”
“왜?”
“…….”
“꼭 이겨야 해? 귀신도 다 뭐가 서럽고, 뭐가 필요하니까 나한테 달라붙는 거겠지. 내 생기 좀 나눠 주면 어때서.”
아진이 허공에다 손을 휘저었다. 마치 귀신을 만지려는 것처럼.
“…….”
꽃님이 그런 아진의 옆얼굴을 가만히 응시했다. 그러다 그의 손목을 가볍게 쓰다듬었다. 때 탄 붕대가 만져졌다. 며칠 갈지 않은 붕대가 그새 낡았다. 꽃님이 속으로 한숨을 삼켰다.
“병원에서 받아 온 약은 왜 안 먹어.”
“이제 안 아파. 다 나았어.”
“붕대가 이 꼴인데 낫긴 뭐가 나아. 붕대라도 갈자. 연고도 바르고.”
“됐어.”
아진이 꽃님에게 잡힌 손을 빼냈다. 그리고 허리를 구부정하게 말며 긴 한숨을 흘렸다. 속 안에 든 것들을, 이를테면 영혼이나 잡념이나 뭐 그런 것들을 토해 내는 듯한 한숨이었다.
“그럼 나도 약 안 먹는다.”
꽃님이 단호하게 말했다. 그에 아진이 슬쩍 입꼬리를 올렸다.
“……아줌마한테도 귀신이 붙었나 보네.”
그리 말한 아진은 킥킥거리며 웃더니, 더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그래도 약은 먹어야지, 그래도 잠은 자야지, 하면서 늘 하던 잔소리를 한 음절도 하지 않고 입을 다물었다.
꽃님의 눈가가 손톱으로 긁은 것처럼 붉어졌다.
* * *
“형님. 한강 다리 밑에서 시체 하나가 나왔는데요, 오른쪽 팔이랑 귀가 없답니다.”
느긋하게 움직이던 석주의 만년필이 우뚝 멈췄다. 그가 눈만 들어 앞을 바라봤다. 책상 앞 의자에 비스듬히 앉아 있던 명진이 자세를 바로 하며 말을 이었다.
“원래 물속에서 떠돌던 게 뭍으로 떠밀려 온 것 같더라고예. 옷은 와이셔츠에다가 정장 바지를 입고 있었는데, 얼굴이 마 물에 팅팅 불어가 전혀 알아볼 수가 없답니다. 얼굴만 분 게 아니고 몸도 불어서 건지는데 살이 뭉개지고 떨어지고 그랬답니다.”
“그래서. 박기헌이래?”
“이게 신원 미상 시체 중에 옷을 갖춰 입고 있는 경우가 거의 없다고 하더라고예. 근데 이건 정장도 입고 있고, 한쪽 팔도 없고 그래서 경찰이 박기헌 가족한테 연락을 한 모양입니다.”
“…….”
“물론, 우리한테도 연락이 왔고요. 보러 오라고. 근데 우리가 뭐 본다고 알겠습니까. 물에 완전 팅팅 불어가 어제 끓인 수제비 같다던데.”
“…….”
“암튼, 오늘 아침에 박기헌 안사람이 경찰서에서 시체를 보고 나왔는데…….”
“나왔는데.”
“맞답니다. 박기헌.”
그 말에 석주가 숨을 크게 들이마셨다. 그가 만년필을 내려놓고, 의자에 등을 깊숙이 묻었다. 명진이 턱을 긁으며 설명을 이었다.
“우째 알아봤는진 모르겠는데, 안사람이라니 알겠지요. 뭐 발목 생긴 게 똑같다나, 턱에 세로로 주름진 게 똑같다나, 왼손에 결혼반지를 끼고 있다나…….”
“…….”
“그 아지매 잘 보고 오라고 아들 몇을 보냈는데. 막 뒤집어질 것처럼 울더랍니다. 그러다 진짜로 까무러치기도 했고요. 그리고 바로 집에 가나, 했더니 경찰서 가까운 카페 들어가가 커피 시켜 놓고 또 디지게 울더랍니다. 집에는 자식들이 있으니까 울기가 뭣 했겠지요. 아들 앉차 놓고 아빠 뒤졌다고 울 수도 없는 노릇이고.”
석주가 책상 위에 놓여 있던 담뱃갑을 들었다. 그러자 명진이 얼른 주머니에서 라이터를 꺼냈다. 석주가 됐다는 듯 손을 휘젓고는 자신이 직접 담배에 불을 붙였다. 그리고 후우- 연기를 길게 뿜어내며 물었다.
“장례는 어떻게 치른대? 태운대?”
“아니요. 바쁘게 태울라 캤으면 이 새끼 이거 지랑 비슷한 시체 만들어 놓고 튄 거 아닌가 싶었을 낀데. 아지매 말로는 박기헌 족보가 묻히는 산이 따로 있답니다. 거기 묻는다 카더라고예.”
“…….”
“장례식은 따로 안 한답니다. 영 좋지 못하게 죽은 데다가, 중호파가 와해하고 괜히 불똥 튈까 봐 문상 올 사람도 없다나…….”
“……그래.”
석주가 손바닥으로 크게 자신의 머리를 쓸어 넘겼다. 기헌이 죽었다는 건 분명 좋은 소식인데 어쩐지 기분이 영 께름칙했다.
그의 죽음이 충분히 비극적이지 않아서 그랬다. 팔 하나 없이 도망 다니다 물에 빠져 죽은 거야 통쾌하다만, 그의 죽음을 슬퍼하는 이가, 그의 장례를 치르고, 묻어 주고, 그리워할 이가 있다는 게 싫었다.
그건 석주의 소관이 아닌데도 불구하고, 그의 가족을 살려 두라 명한 게 자신임에도 불구하고 그랬다.
석주가 담배를 깊게 빨아당겼다. 담배가 순식간에 짧아졌다. 그가 잇새로 연기를 뿜어내는데.
따르릉- 따르릉-
전화벨 소리가 사장실을 뒤흔들었다. 석주가 수화기를 들어 귀로 가져갔다.
“예.”
-…….
“…….”
수화기 건너편은 대답이 없었다. 석주가 눈살을 구겼다. 이 비싼 전화로 누가 장난 전화를 걸 리도 없고. 또 어느 조직에서 개짓거리를 하나. 아니면 살아남은 기헌의 끄나풀이 협박이라도 하려는 건가. 그런 생각을 하는데. 건너편에서 예상치 못한 음성이 들려왔다.
-나…… 꽃님이요.
석주의 허리가 대번에 꼿꼿이 섰다.
“아진이한테 무슨 일 있습니까.”
-아니, 그건 아닌데. 곧 무슨 일 있을 것 같아서.
“무슨 말이에요, 그게.”
-우, 우리 아진이 좀…… 살려 주오. 뭘 해서라도, 애를 좀…… 살려 주오.
살려 주오. 그 말에 석주가 벌떡 자리에서 일어났다. 꽁지만 남은 담배가 재를 흩날리며 곤두박질쳤다.
* * *
아진은 집의 한가운데에 있는 중앙 정원에 앉아 있었다. 커다란 회화나무 아래로 드리우는 그늘과 연못을 정처 없이 빙글빙글 도는 잉어들이 있는 곳은 시간을 허비하기에 더할 나위 없었다.
아진은 비치된 의자에 옆으로 누워 느릿하게 눈을 끔뻑였다. 이쯤이면 꽃님이 달려와 제 등을 후려치며 점심 먹으라고 끌고 가야 하는데. 오늘은 조용하네. 밥을 깨작거리는 꼴이 보기 싫어 혼자 먹는 건가. 그렇게라도 꽃님이 밥을 먹으면 다행이지 뭐, 그런 생각이나 하고 있었다.
근데 저벅저벅 발소리가 들렸다. 꽃님의 발소리는 아니었다. 훨씬 보폭이 크고, 묵직하고 빨랐다. 마루의 끼익거리는 소음에 아진의 눈이 서늘하게 가라앉았다. 애써 들추지 않고 있던 기억이 다시 솟아나는 듯해서.
아진은 그 소리를 뻔히 들어 놓고도 옴짝달싹하지 않았다. 지금 이 시간은 자유로운 시간이다. 석주가 집에 없는 시간. 집에서 일하는 사람들 역시 나른히 풀어져서 아무것도 하지 않는 시간. 중정에 아진 혼자 덩그러니 떠 있는 시간.
그때, 발소리가 더욱 가까워진다 싶더니 그림자 하나가 아진의 얼굴 위로 드리웠다. 아진이 눈동자만 굴려 그림자의 주인을 바라봤다.
석주가 서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