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6화
“…….”
“그래도 첫 수술은 괜찮게 끝났다고 했는데. 중호파가…… 아줌마를 데리고 가서. 회복할 시기를 놓쳤대.”
아진이 허망하게 어깨를 늘어트렸다. 처음부터 그랬다고. 쓰러져서 병원에 실려 왔던 그때부터 곧 죽을 몸 상태였다고. 근데 저는 하나도 몰랐다고. 저만 몰랐다고. 석주는 알고 있었다고.
그래 놓고…… 그래 놓고 저를 집에 가둬 놨다고. 제게 꽃님을 운운하며 닥치고 살라 협박했다고. 그렇게 끔찍하고 잔인하게 저를 억압했다고.
그리고 끝내 상황이 이리됐다고. 꽃님의 삶이 얼마 남지 않았다고. 제가 그녀와 함께할 수 있는 나날이 며칠 안 된다고. 그녀를 살릴 기회를 인지조차 못 한 채 다 날려 보냈다고. 그 귀중한 시간을 당신에게 짓밟혀 운다고 다 흘려 버렸다고.
아진의 눈알이 새빨갛게 물들었다. 몸이 부들부들 떨렸다. 귓가에 이명이 울려 퍼졌다. 눈앞에 있는 석주가 짐승처럼, 악귀처럼 느껴졌다.
꽃님이 어떤 마음으로 유리 조각을 들고 석주를 찾아갔는지 알 것도 같았다. 석주가 밉다는 생각은 수도 없이 해 왔어도 죽이고 싶다는 갈망을 느낀 적은 없었는데. 지금 제 손에 총이 들려 있었다면 그대로 석주를 쏴 버렸을지도 몰랐다.
석주가 분노와 원망으로 점철된 아진의 앞에 섰다. 그리고 부질없는 사과를 거듭했다.
“미안하다, 아진아. 내 탓이야.”
“…….”
“미안해. 병에 대해 알리지 않은 것도, 아줌마를 지키지 못한 것도, 결국 이렇게 된 것도.”
석주가 다시 아진에게 한 발 다가갔다. 그러자 아진이 한 발 뒤로 물러났다. 석주가 우뚝 멈춰 섰다. 아진이 물기가 일렁이는 눈으로 석주를 노려봤다.
“아줌마 안 죽을 거예요.”
“……그래. 안 죽을 거야.”
“수술할 거예요.”
“그래.”
“살릴 거예요. 내가.”
반드시 살릴 거야.
이렇게 허망하게 혼자가 되지 않을 거야.
* * *
“안 한다.”
예상대로, 꽃님은 수술 이야기를 듣자마자 고개를 가로저었다. 꽃님의 침대 옆에 앉아 있던 아진이 눈을 꾹 감았다. 이미 가늠하고 있던 바이나 심장이 바닥 저 끝까지 쿵- 하고 떨어지는 걸 잡진 못했다.
“하아……. 왜 안 해.”
“비싸.”
“돈은 사장님이 내준다잖아.”
“그래도 싫다. 저 양반한테 빚지고 싶지 않아.”
“왜 빚지는 거야. 어, 어어, 그래. 보상. 보상해 준다고 생각해. 받아도 마땅한 돈이야.”
“나더러 네 피눈물 팔아서 받은 돈으로 수술을 하라고? 말이 되는 소리를 해라!”
눈을 사납게 치켜뜬 꽃님이 아진을 꾸짖었다. 아진이 입술을 겹쳐 물었다. 답답해서 까무러칠 것만 같았다.
“수술하면 기분이 얼마나 더러운지 아냐. 아픈 것도 뒤지게 아파. 근데 그렇게 해도, 죽을지 살지 모른다잖아. 수술 한 번으로 씻은 듯이 나으면 내 바로 하마. 근데 의사가 뭐라더냐. 수술하다가 뒤질 수도 있다잖아.”
“…….”
“아진이 너는 내가 그렇게 죽었으면 좋겠냐? 그렇게 날 죽이고 싶어? 그래도 안 된다. 내 죽을 자리는 내가 정해.”
“왜…… 말을 그렇게 해.”
아진이 울적한 목소리로 대꾸했다. 자꾸 뒤진다느니, 죽는다느니 말하는 꽃님이 말도 못 하게 미웠다. 그만 좀 하라며 소리라도 지르고 싶었는데, 꽉 막힌 목구멍을 뚫어 봐야 울음만 샐 것 같았다.
꽃님은 축 처진 아진이 가엽지도 않은지 호되게 말을 쐈다.
“그런 거 아니면 아서라. 아진이 너 퇴원할 때 같이 나가자. 이제 병원이라면 신물이 난다.”
“퇴원? 퇴원해서 어디 갈 건데.”
“그야…….”
꽃님이 무심코 무언가를 말하려다 입술을 다물었다. 마른침을 한 번 삼킨 그녀가 다시 입을 뗐다.
“어디든. 어디든 가면 되지. 서울 바닥에 널린 게 집인데.”
“그 널린 집 중에 아무 데나 가서 살아?”
“그래.”
“아줌마랑 나랑 둘이?”
“그래.”
아진이 눈을 느리게 감았다가 떴다. 새로운 집에서 꽃님과 둘이 오순도순 살아가는 것. 언뜻 보면 희망찬 말이지만, 행복할 것 같지만, 불행이 먼저 상상됐다.
아픈 꽃님과 절름발이인 저. 하루하루 병약해지고 고통스러워하는 꽃님과 그녀의 죽음을 멀거니 지켜보는 저. 그렇게 그녀의 죽음을 보고 보다 보면, 저 역시 죽음에 물들 것이다. 그러다 어느 날, 비루한 집에서 발견된 시체 두 구로 신문의 한쪽 구석을 채우겠지.
아진이 고개를 돌렸다. 곁에 서 있는 석주가 보였다. 이상하게 고개가 그쪽으로 돌아갔다. 꼭 그에게 답을 바라는 것처럼. 그걸 알았을까. 석주가 기다렸다는 듯 입을 열었다.
“내 집으로 와도 돼. 방 하나를 비워 주마. 거기서 아줌마랑 둘이 살아. 끼니 걱정도, 약값 걱정도 안 해도 된다. 다 내가 알아서 해 줄 테니까-”
그 말에 맥없이 누워 있던 꽃님이 벌떡 상체를 일으켰다. 눈을 부릅뜬 그녀가 바락바락 고함을 내질렀다.
“미쳤어! 거기가 어디라고 다시 들어가! 절대 안 돼. 내가 길바닥에서 죽더라도 그건 안 된다!”
그녀가 아진의 손을 움켜쥐었다. “아니지? 안 갈 거지? 응?” 하고 되묻는 목소리에 걱정과 분노가 엉망으로 뒤섞여 있었다. 아진이 한숨을 내쉬듯 꽃님을 불렀다.
“아줌마.”
“안 돼. 응? 아진아, 안 돼.”
“내 말 들어 봐. 나 다리 병신이라서, 아줌마 삼시 세끼 잘 챙겨 줄 자신이 없어. 아궁이에 불 때고, 장작 해 오고, 장 봐 오고, 그럴 수가 없단 말이야.”
“…….”
“그렇다고 아줌마가 냉골 방에 피죽만 먹으면서 사는 걸 보고 싶지도 않아.”
“내가 하면 되지. 그거 다 내가 하면 된다. 내가 이렇게 사지가 멀쩡한데-”
“아줌마가 일하는 것도 싫어. 그러다 쓰러지면? 또 아프면? 내가 이 다리로 아줌마 업고 뛸까? 병원까지? 아니면 어차피 죽을 거니까, 아파하든 말든 옆에서 멍하니 구경이나 하고 있을까?”
“…….”
“병원 오가며 약 타는 것도 하루 종일 걸릴 거야. 나는 차도 못 타고, 빨리 달리지도 못하니까. 한쪽 다리 질질 끌면서 다녀와야 하는데 그동안 아줌마는 누가 돌봐?”
“안 돌봐도 돼. 나 괜찮다니까. 그러니 그냥 우리 둘이 살자. 나는, 나는…… 네가 그 집에 있는 게 싫어.”
“그럼 아프지 말지!”
아진이 빽 소리를 질렀다. 날카로운 고함에 병실이 가로로 쭉 갈라졌다. 꽃님이 눈을 동그랗게 뜨고 아진을 바라봤다. 아진이 그 눈을 보며 비명처럼 소리쳤다. 드문드문 섞인 그의 씨근덕거리는 숨결이 델 듯 뜨거웠다.
“아프지 말았어야지! 머리가 하얗게 셀 때까지 건강했어야지!”
“……아진아.”
“하필 아파도 심장이 아파서! 아줌마 때문이잖아!”
내가 왜 이런 선택을 하게 만들어. 내가 왜 다시 거기에 기어들어 가게 만들어! 왜 날 이렇게 비참하게 만들어! 왜 나를 괴롭혀! 왜 또 나를 울게 만들어! 왜 또 날 혼자 둬!
아진은 눈물을 후두둑 떨어트리며 악을 질렀다. 차오르는 울분에 그의 몸이 가만히 있지 못하고 부들부들 떨렸다. 서러운 눈물이 속눈썹에 주렁주렁 달렸다. 한참 소리를 지르던 아진은 불현듯 딱딱하게 굳었다. 파리하게 질린 꽃님의 얼굴이 망막에 쿡 박혀 왔기 때문이다.
아진이 꽃님의 다리 위로 주르륵 쓰러지듯 엎어졌다. 그리고 꽃님의 허리를 꽉 껴안고 그릇된 쪽으로 쏟아 냈던 원망을 반성했다.
“아, 아아……. 아니야, 아니야. 흐으, 거짓말이야. 아줌마, 내가 미안해. 아니야…….”
“…….”
“아줌마 아무것도 잘못한 거 없어. 큽, 다 내 잘못이야. 다 내가 그랬어……. 내가…….”
아진은 꽃님을 부여잡고 엉엉 울었다. 벽 사이에 끼어 옴짝달싹할 수 없는 기분이었다. 아니, 산 채로 못질 된 관에 갇힌 기분이었다. 세상이 어두웠고, 숨이 막혔다.
현실이 버거웠다. 다 내팽개치고 도망가고 싶었다. 하늘 위로든, 땅 아래든, 물속으로든 숨어들어서 이 끔찍한 상황을 잊고 싶었다.
“미안해……. 무서워서 그랬어. 너무 무서워서……. 흐윽, 죽지 마, 아줌마…….”
아진이 꽃님의 품으로 더 깊이 파고들었다. 그녀를 어찌나 세게 쥐고 있었는지. 다 아물지 못한 손목이 투둑, 소리를 내더니 피를 쏟아 냈다.
근데 하나도 아프지 않았다.
아무도 자지 않는 밤
의사는 며칠 더 입원하길 권유했다. 아진의 손목이 다시 터져 피가 난 것도 그렇고, 심신이 영 불안정한 것도 그렇고, 꽃님의 병환도 그렇고. 염려되는 게 한둘이 아닌지라.
그러나 아진은 단호하게 고개를 내저었다. 얼마나 남았을지 모를 꽃님의 여생인데. 그녀와 함께할 날이 길지 않은데. 그 아까운 시간을 삭막한 병실에서 보낼 수 없었다.
그 덕에 아진과 꽃님은 서둘러 퇴원하게 됐다. 아진은 퇴원을 준비하며 진지하게 고민했다. 그녀의 남은 날을 최대한 행복하고 안온하게 보낼 수 있는 방법이 뭔지.
좋은 것만 먹고, 좋은 것만 보고, 최대한 아프지 않게 보내고 싶은데. 그러려면 제 슬픔과 괴로움은 잠시 뒤로 미뤄 두어야 했다. 제 아픔은 그녀가 떠난 후에 돌봐 주어도 늦지 않으니까.
그리 생각했더니 모든 게 명확해졌다. 흐리멍덩하던 정신이 올바르게 서는 순간이었다.
아진은 꽃님의 손을 꽉 쥔 채, 병원 앞에 서 있던 석주의 차에 올라탔다. 서울 귀퉁이에 있는 석주의 집으로 가려면 반드시 차를 타야 했다. 병실에서 나와 차로 향하는 그 순간은 공포가 산더미 같았는데. 차 안에서 오줌이라도 싸면 어쩌나 싶었는데. 막상 타고 보니 적당히 버틸 만했다.
조수석에 타고 있던 석주가 뒷좌석에 앉은 저를 수시로 뒤돌아보며 걱정했지만 별다른 일은 없었다.
오랜만에 마주하는 석주의 집은 그대로였다. 널찍한 마당도, 멋들어지게 뻗은 기와지붕도, 두툼하고 길쭉한 기둥도, 고운 색을 가지고 있는 창호지 문도.
그러나 아진은 집요하게 바닥만 내려다봤다. 집을 봐 봐야 좋지 않은 기억이 떠오를 게 뻔해서.
명진이 앞장서서 두 사람을 방으로 안내했다. 그나마 이 집에서 가장 편한, 아니, 아진을 미워하는 데 동참하지 않은 유일한 인물이었기 때문이다.
조직원들은 부탁하지 않았음에도 짐을 들어 주었다. 옷 몇 개와 병원에서 받아 온 약만 가득해서 무겁지도 않은데, 번쩍번쩍 들고는 명진을 뒤따랐다.
아진은 절뚝절뚝 마당을 걷다, 무심코 뒤를 돌아보았다. 담배를 문 석주가 멀찌감치서 저를 보고 있었다. 아진은 그 시선을 피하지 않고 응시하다,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곁에 서 있는 꽃님의 손을 조금 더 힘주어 잡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