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쌍피-123화 (123/261)

123화

햇살이 강한 오후는 봄이 왔다는 게 제법 티가 났다. 병원 정원에 선 석주가 담배 연기를 내뿜었다. 그가 공기 중으로 날아가는 연기를 응시하며 한 시간 전, 아진에게 들었던 말을 상기했다.

‘사장님은 들어오지 마세요.’

‘사장님 보기 싫어요.’

‘저리 가세요.’

그렇게 원색적인 거부와 미움을 받는 게 쉬운 일이 아닌데. 더군다나 아진처럼 여리고 착한 아이한테 미움을 받는 건 더욱 어려운 일인데. 제가 그 어려운 걸 해낸다.

그 덕에 석주는 병원에 발도 붙이지 못하고 정원에서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대신 명진이 들어가 아진을 살피고, 의사와 만난 후 있었던 일을 석주에게 전해 주기로 했다.

얼마나 기다렸을까. 정문이 시끄럽다 싶더니 곧 명진과 조직원들이 우르르 나타났다. 석주가 비치된 재떨이에 담배를 비벼 끄곤 바쁜 걸음으로 명진에게 다가갔다.

“아진이는?”

“아이고, 형님. 내 밖에서 기다리셨습니까? 이래 추운데. 뭐, 형님이 추위를 타시느냐마는…….”

“아진이는. 괜찮아?”

명진의 걱정을 가볍게 무시한 석주가 다시 물었다. 명진이 피식 웃음을 흘리곤 그가 원하는 답을 해 주었다.

“꽃님이 아지매랑 죽 한 사발 뚝딱 비우고 놉니다.”

“그래?”

“네. 싸 온 불고기도 줬습니다. 형님이 준비했다 카면 안 물 것 같아가…… 병원에 부탁해서 반찬으로 올려 보냈습니다.”

“잘했다. 잘했어.”

“달달한 주전부리는 제가 직접 챙겨 줬는데, 잘 먹겠다고 받더라고요. 그리고 저한테 몸은 괜찮냐, 손가락은 어떻냐, 이래저래 묻는데 저를 미워하진 않는가 봅니다.”

“아진이가 널 미워할 일이 뭐 있어. 다 내가 한 짓인데.”

석주가 명진의 어깨를 두드렸다.

“…….”

명진은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 그저 씁쓸한 미소를 띠기만 했다. 제가 사경을 헤매는 사이 상상치도 못한 일들이 있었다. 그걸 덕재를 비롯한 조직원들에게 전해 듣는데 가슴이 답답했다.

제가 크게 다친 탓에 석주가 제대로 이성을 잃었구나, 싶어 서글프기도 하고. 함께 있는 모습이 퍽 보기 좋던 두 사람인데, 따로 놀던 신발 한 짝이 모여서 온전한 한 쌍을 이룬 듯해 보는 것만으로도 흐뭇하던 둘인데. 그 관계가 완전히 어그러진 것 같아 아쉽기도 했다.

물론 가장 큰 감정은 괴로움과 죄송함이었다. 중요한 시기에 석주의 곁에 있어 주지 못한 게, 아랫사람으로서 도리를 다하지 못한 게 죄책감이 들었다.

어두워지는 명진의 낯에 석주가 재차 그의 어깨를 두들겨 주었다. 두 사람은 나란히 서서 정원을 걷기 시작했다. 그들의 뒤로 조직원들이 따라붙었다.

“의사는 뭐라던?”

자박거리는 발소리를 듣던 석주가 물었다. 명진이 얼른 답을 내놓았다.

“아가 몸은 약해도 아직 젊어서 상처가 금방금방 아문답니다. 밥 잘 묵고, 잘 자면 며칠 내로 퇴원할 수 있을 거라 카대요.”

“다행이네.”

“다 아물 때까지는 일하지 말고, 물도 조심하랍니다. 덧나면 골치 아프다고.”

“응.”

“근데 흉터는…… 남을 거랍니다.”

“……그래. 어쩔 수 없겠지.”

석주가 마른침을 삼켰다. 아진의 손목에 평생 엉겨 붙어 있을 상흔을 상상하니 입 안이 떫었다. 그가 코로 길게 한숨을 내쉬는데. 뒤에서 타닥탁 발소리가 들렸다. 덕재였다. 두 사람의 앞에 선 그가 꾸벅 허리를 숙였다.

“형님. 보고 드립니다.”

“찾았어?”

석주가 눈썹을 올리며 물었다. 기헌과 관련한 질문이었다. 그의 행방이 아직 묘연한지라. 한시 빨리 그를 처리해야 두 발을 뻗고 잘 수 있을 것 같았다.

“아니요. 여전히 흔적이 없습니다. 소문으로는 가족들은 꽤나 아꼈다던데. 어째 나타나질 않습니다. 멀리 도망간 거 아닌가 싶기도 하고, 꼴이 꼴이니까 어디 산기슭이나 골목 구석에서 뒤진 거 아닌가 싶기도 합니다.”

“…….”

“그리고 경찰 쪽에서 한번 뵙자 캅니다. 큰일은 아닌 것 같고예, 안면이나 트려는가 봅니다.”

석주가 후, 하고 앞머리를 불어 올렸다. 그가 턱을 긁고 있는 명진의 어깨에 팔을 얹으며 말했다.

“명진이 네가 가라. 가서 잘 대접해 줘. 혹시 박기헌 행방을 아는지, 근래에 서울이나 서울 주변에서 팔 잘린 시체가 발견되지는 않았는지 잘 구슬려서 물어봐.”

“저 혼자요? 형님은 같이 안 가시고요?”

“응. 나는 여기서 아진이 지켜야지.”

그 말에 명진이 하! 하고 짧게 웃음을 끊어 냈다. 팔짱을 낀 그가 두 개만 남은 손가락을 까딱거렸다.

“병실도 못 들어가시면서, 지키기는 무슨.”

“비아냥이냐?”

“비아냥이라기보다는 사실이죠, 형님. 엄연한 사실.”

“병실에 안 들어가. 밖에 있을 거야. 복도나, 정원이나 뭐…… 그런 데.”

“허이고. 제가 죽었다 살아나니까 형님 궁상떠는 것도 다 봅니다. 뒤졌으면 억울할 뻔했네요.”

걸걸하게 이죽거리는 명진의 말에 석주가 쓰게 웃으며 동조했다.

“그래. 억울할 뻔했네.”

그러니 쭉 살아 있어라. 내가 앞으로도 못 볼 꼴을 많이 보일 것 같으니까. 너라도 그걸 보며 신랄하게 비웃어라.

* * *

“아프진 않어?”

“아이, 이제 괜찮다니까. 대체 몇 번을 묻는 거야.”

침대에 앉아 벽에 등을 기댄 아진이 사탕을 우물거리며 대답했다. 그런데도 꽃님의 만면에 스민 걱정은 사라질 줄 몰랐다. 아진의 발등에 연고를 바르는 손길이 조심스럽기 그지없었다.

꽃님이 연고 통에서 연고를 또 한가득 퍼서 철퍼덕, 발등 위로 얹었다. 차갑고 끈적한 느낌에 아진이 턱을 안으로 말며 으- 하고 신음했다.

“아줌마. 연고 많이 바른다고 빨리 낫는 게 아니야.”

“그걸 네가 어떻게 알어? 멍청한 게…….”

그 말에 아진이 손바닥보다 작은 연고 통을 흔들었다.

“그럼 연고를 이렇게 조막만 한 통에 넣어 팔겠어? 쌀가마니처럼 포대로 팔지! 아예 부어 놓고 거기서 자면 하루 만에 다 낫겠네.”

“시끄러워. 사탕이나 처먹어.”

“처먹고 있거든.”

아진이 보란 듯이 입 안에 든 사탕을 굴렸다. 사탕이 치아에 부딪히며 달그락거리는 소리가 났다. 심술 맞은 아이 같은 모습에 꽃님이 푸근한 웃음을 흘렸다. 그러나 그 웃음도 잠시였다. 그녀가 검게, 또는 보랏빛으로, 또는 파랗게 물든 발등을 보며 울적한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아이고……. 얼마나 아팠을까. 아이고…….”

“…….”

“평생 도둑질 한 번 안 한 애가 무슨 죄가 있다고 발목에 그런 흉한 걸 채워…….”

“금방 나을 거야. 다 나으면 잊을 거야.”

아진이 다짐하듯 말했다. 평생 맞고, 다치고, 구르면서 살아와 알게 된 게 있는데. 상처는 금방 낫는다. 아파 죽을 것 같더라도 그 순간만 버티면, 상처가 다 아물면 그래도 참을 만한 상처였다, 버틸 만한 상처였다, 라고 생각할 수 있었다.

그렇게 여기는 게 살기 편했다. 지나간 고통을 부득부득 잡고 있어 봐야 우는 건 아진의 몫이고, 괴로워하는 것도 아진의 몫이다.

아진을 다치게 하고 아프게 했던 이들은 아마 아진의 존재조차 기억하지 못할 것이다. 항상 그래 왔다.

이번에도 그렇겠지.

비장한 아진의 낯에 꽃님이 그의 발에 붕대를 감아 주며 말했다.

“그래, 잊어라. 하나도 남김없이 다 잊어라. 퇴원하고 나면 강 사장이 있는 곳으로는 고개도 돌리지 말고 살아.”

그 말에 아진의 어깨가 움찔 떨렸다. 부러 떠올리지 않으려고 묻어 두고 있던 이름인데. 꽃님이 말해 버린 덕에 번뜩 생각이 나 버렸다.

아진이 병실 문을 흘끔거렸다. 문 너머, 석주가 있었다. 그는 복도에 비치된 의자에 앉아 종일 시간을 죽였다. 조직원들이 수시로 왔다 갔다 하며 이것저것을 보고하면 간간이 명령만 하고, 다른 행동은 하지 않았다.

가끔 의사가 드나들거나, 저녁 식사가 오거나, 꽃님이 검사를 받을 게 있어 병원을 나돌면 노려보는 것도 아니고 우는 것도 아닌 희한한 표정으로 감시 아닌 감시를 해 댔다.

“…….”

아진이 옅은 한숨을 내쉬는데. 꽃님이 고개를 쭉 앞으로 내밀며 눈을 부릅떴다.

“왜? 신경 쓰여? 영 좆같아? 썩 꺼지라고 할까?”

“내가 아침에 벌써 꺼지라고 했는걸. 근데 안 꺼지더라.”

“미친놈. 그때 목을 쑤셔 줬어야 했는데.”

꽃님이 주먹을 말아쥐며 으르댔다. 그에 아진이 눈을 빠르게 깜빡였다. 낯선 문장이었다. 아진이 전혀 모르는 문장. 귀에 거슬리는 단어.

“……쑤셔?”

“…….”

꽃님이 헛숨을 삼켰다. 그러더니 입을 딱 다물었다. 이상한 낌새를 알아챈 아진이 무릎걸음으로 침대 끄트머리까지 기어 왔다. 그러고는 꽃님을 빤히 보며 물었다.

“아줌마 사장님한테 무슨 짓 했어? 쑤시다니, 뭘 쑤셔?”

“…….”

꽃님은 대답하지 않았다. 옆으로 시선을 슬그머니 돌리는 게 명확한 회피였다. 그녀답지 않은 행동이었다. 경찰이나 대통령이 눈앞에 있어도 할 말은 할 사람이라.

“아, 말해 봐. 얼른. 뭐 했는데. 응?”

아진은 애가 탔다. 그녀가 뭘 쑤셨는지 알고 싶었다. 그녀의 입에서 나올 말이 기대도 되고, 겁도 났다. 어젯밤 한바탕 울음으로 퉁퉁 부은 아진의 눈이 부릅뜨였다. 뚱뚱한 눈꺼풀이 힘겹게 위로 올라가는 그 모습을 보던 꽃님이 푹 한숨을 내쉬었다.

그녀가 어쩔 수 없다는 듯 입을 뗐다.

“너 막 손목 긋고 병원에 실려 왔을 때.”

“응.”

“강 사장은 그걸 나한테서 숨기려고 한 것 같은데. 내가 우연히 깡패 놈들이 하는 말을 들어 버렸어. 그걸 듣고 나니까 눈에 뵈는 게 없더라고. 눈앞이 시뻘게졌었어. 강 사장 이 잡놈이 기어코 널 죽이는구나, 싶었지.”

“…….”

“그래서 링거병, 그거 깨다가 들고 강 사장 찾아갔어. 그리고 네 병실에서 나오던 걸 그냥 콱 쑤셔 버렸어.”

“어, 어디를?”

“배때기를.”

아진의 턱이 아래로 뚝 떨어졌다. 유리로 석주의 배를 쑤셨다고. 깡패 짓으로 저 자리까지 올라간 사람의 배를 쑤셨다고. 꽃님이 대단함과 동시에 무서웠다.

“피가 아주 콸콸 쏟아지더라.”

“……근데 사장님 아직 살아 있잖아?”

“그러니까. 독한 새끼야, 아주. 내가 분명 손바닥만큼 깊게 쑤셨었는데. 그걸 아파하지도 않고 손으로 잡아 빼더라고.”

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