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쌍피-116화 (116/261)
  • 116화

    석주는 어렵지 않게 사진을 찾아냈다.

    사진은 매우 흐렸다. 조직원이 줬을 때부터 접혀 있던 거라 많이 구겨져 있었고, 그 때문에 사진 속 인물들 위로 주름이 진 상태였다. 인물들 얼굴도 희뿌옜다. 마치 우유에 적신 것처럼.

    처음엔 오래전에 찍은 거라 그런 줄 알았는데. 곰곰이 생각해 보면 십수 년 전에 찍은 것도 아니고. 아진의 얼굴을 보아 기껏해야 2, 3년 전의 사진인데. 그때 찍은 사진 질이 이렇게 떨어질 리가 없었다.

    석주가 눈매에 힘을 주고 사진을 뚫어지라 쳐다봤다. 그러다 아진의 얼굴 주위로 희미하게 선이 있는 걸 발견했다. 목과 가슴이 이어지는 그림자 안에도 선이 있었다. 아진의 얼굴을 어디서 떼다 붙인 듯한 모양새였다.

    근데 손으로 만졌을 때 요철이 없었다. 온전한 한 장의 사진이었다. 이게 어떻게 가능하지…….

    “…….”

    석주는 한참이나 사진을 보고 있었다. 그러다 돌연 아, 하고 짧게 탄식했다.

    사진을 조작하고, 그 조작한 사진을 다시 사진으로 찍어 인화한 것이다. 그래서 이렇게 빛바랜 듯 흐리고 희멀건 것이다.

    석주가 실소했다. 그리고 재차 사진을 들여다봤다. 옆으로 고개를 돌리고 있는 아진의 얼굴이 망막에 박혀 왔다. 분명 아진이다. 죽었다가 깨어나도 잊을 수 없는 그의 얼굴이 맞다.

    그렇담 이 얼굴은 어디서 떼 온 것인가. 원본 사진이 무엇이냔 말이다. 조작하려면 아진의 사진이 필요했을 것이다. 하지만 아진은 사진을 찍은 적이 없댔는데.

    석주가 사진 모서리로 자신의 미간을 콕콕콕 찔렀다. 그러다 번뜩, 잊고 있던 과거의 작은 파편을 떠올려 냈다.

    ‘우리 둘이서만 하나 찍자.’

    ‘왜요?’

    ‘네 사진이 갖고 싶으니까.’

    단체 사진을 찍었던 날. 설거지하러 가는 아진을 붙잡고 그와 단둘이 사진을 찍었었다.

    ‘두루마기가 땅에 닿아요.’

    ‘괜찮아. 다리 안 나오게 찍으면 돼.’

    ‘아니, 그게 아니고요. 흙이 묻잖아요. 이런 건 빨래하면 금세 천이 상한다고요. 비싼 건데…….’

    ‘안 비싸.’

    사진을 찍기 위해 옷매무시를 가다듬었다. 서로를 보며 이러쿵저러쿵 하찮은 실랑이를 하던 찰나. 번쩍, 난데없이 환한 빛이 터졌었지. 당황한 기색의 사진사가 손을 휘저으며 주절거리던 게 떠올랐다.

    ‘아이고, 죄송합니다. 잘못 눌러서……. 거참, 필름 아까워서 어쩌나……. 다시 찍을게요. 잠시만요.’

    그때구나. 그 순간에 찍힌 게 이렇게 사용된 거구나. 결국 이것도 저로부터 시작된 거짓이었구나.

    그럼 사진사도 한패인가. 아니면 이순이 한 짓인가.

    있는 대로 인상을 쓴 석주가 사건을 반추하는데. 이번엔 먼 시간 속에서 진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뒷집에서 약이 없어지고 그를 의심하던 때. 마당에 꿇어앉은 진걸이 억울하다는 듯 말했었지.

    ‘저는 뒷집이 어떻게 생겼는지, 거기서 뭘 하는지, 누가 있는지도 모릅니다.’

    ‘안 알려 주셨으니까요.’

    ‘제가 태회파에 들어와서 한 일이라곤 식구들 이름 외우기, 회사로 국밥 나르기, 회사 2층에 고장 난 전등 갈기, 구둣방에 형님들 구두 맡기기, 그리고 오늘. 사진점에 가서 사진 찾아오기가 답니다.’

    사진점에서 사진을 찾아왔다고. 그 말을 본인이 직접 했었다. 그때 그 잘못 찍힌 사진을 빼돌렸구나. 그것을 조작해 회사에 놔두었구나.

    석주가 한 손으로 크게 마른세수를 했다. 이번엔 이순과 나누었던 대화가 떠올랐다.

    ‘그 짓을 다 그쪽이 했다면, 그럼 최진걸이 한 짓은 뭐지?’

    ‘진걸이요? 진걸이는 그냥…… 하찮고 부질없는, 그런 작은 일들밖에 안 했어요. 걔는 처음부터 당신 눈속임용으로 들인 거라서.’

    석주가 건조한 웃음을 흘렸다. 그래. 정말 하찮고 부질없는 작은 일을 했구나. 이토록 하찮은 일을 했구나.

    그리고 저는 그 하찮은 일에 참으로 신랄하게 놀아났구나.

    석주가 의자에 털썩 주저앉았다. 사진을 콰드득 구겨 쥐었다. 그러다 아진의 얼굴이 구겨졌을까 싶어 얼른 다시 폈다. 손바닥으로 다리듯 문지르기도 했다.

    “하아…….”

    저는 아진이 남창이든 말든 상관없었다. 제가 분노한 건, 그가 제게 거짓말을 했다는 그 사실 때문이었다. 근데 그조차도 그를 오해하고 미워하기 위해 만들어진 가짜였다니.

    석주가 괴롭게 얼굴을 찌푸렸다. 제가 그에게 쏟아부었던 죄들이 우후죽순처럼 동시다발적으로 올라왔다. 역겨운 제 목소리에 고막이 찢어지는 것 같았다. 두통이 일었고, 눈알이 녹는 것처럼 뜨거웠다.

    ‘네가 잘하는 일이 하나 있긴 한데.’

    ‘…….’

    ‘뭐든 하겠다며. 내가 네 몸을 사 주마. 그러니까 벗어.’

    아무 죄도 저지르지 않았다는 아진을 부득부득 제 방까지 끌어와 몸을 팔게 했다.

    ‘닳고 닳은 남창처럼 앙앙거리면 1,000원씩 쳐 주마. 근데 같잖게 아파요, 싫어요, 하면 네 몸값은 100원이 되는 거야.’

    푼돈으로 그를 휘두르며 기만하고 협박했다.

    ‘몸 팔기 싫으면 팔을 내놓든가.’

    ‘저는-’

    ‘더 나불거릴 거면 혀도 뽑아 주마.’

    진실을 토로하고, 억울함을 표하는 그의 입을 잔인하게 틀어막았다.

    ‘좋다고 해.’

    ‘…….’

    ‘남창처럼, 좋다고 해. 좆이 좋다고 허리를 흔들어.’

    아프다고 엉엉 우는 그를 부득부득 움켜쥐고 제가 오해하고 있는 그 모습 그대로 연기하게 만들었다.

    ‘다른 놈들한테도 몸 팔게?’

    ‘…….’

    ‘그놈들은 많이 쳐 줘 봐야 30원일 텐데. 괜찮겠어? 남창한테 창녀보다 값을 더 쳐 줄 순 없잖아.’

    마음에도 없는 소리를 하며, 다른 사람을 들먹이며, 그를 더 깊은 구렁텅이에 빠트리겠다고 협박하며 그를 겁에 질리게 했고,

    ‘사장님……. 싫어요……. 흐으, 먹기, 먹기 싫어요…….’

    ‘먹어, 아진아. 윽윽거리면서 우는 거 듣기 싫으니까.’

    ‘…….’

    ‘네가 그럴 때마다 남창이 아니라 짐승이랑 떡 치는 기분이란 말이야. 손님 기분도 생각해 줘야지. 응?’

    하기 싫다고, 너무 아프다고 울부짖는 그의 머리채를 움켜쥐고 약을 먹게 했다. 하나같이 그가 몸을 팔았다고, 남창이었다고 오해하고 쏟아 낸 말들이었다.

    석주가 고개를 숙이며 짧게 신음했다.

    “아…….”

    저는 그 짧은 몇 달 새 대체 얼마나 많은 죄를 지은 건가. 손가락과 발가락을 모두 꼽아도 모자라고 모자랐다.

    시시각각 몸뚱이를 불려 가는 제 죄에 숨이 막혔다. 그 악취에 질식할 것만 같다.

    석주가 입술을 잘근거렸다. 괴로웠다.

    석주는 그렇게 한동안 본인의 죄에 짓눌려 몸을 움츠리고 있었다. 그러다 이를 악물고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는 바닥에 말뚝이 박혀 있고, 구석엔 주인을 잘못 찾았던 족쇄가 널브러져 있고, 그림 한 점 없이 벽이 텅 빈 방을 등지고 나왔다.

    당장이라도 혀를 깨물고 죽고 싶다만. 지옥 불에서 헤엄치며 속죄하고 싶다만. 그러면 안 됐다.

    아진이 허락해 주는 그 순간에야 죽음을 맞이할 것이다. 내 죄를 모두 치우고 닦은 후에야 죽을 것이다.

    내가 널 버린 게 아니라, 내가 널 떠난 게 아니라.

    네가 날 버릴 때. 가차 없이 꺼지라 말할 때. 그때 비로소 죽음을 맞이할 것이다.

    * * *

    병실 앞에 선 석주가 숨을 크게 들이마셨다가 내뱉길 반복했다. 문만 열면 아진을 볼 수 있는데, 얼른 들어가 그를 보고 싶으면서도 걱정이 됐다. 그가 저를 보고 까무러치기라도 할까 봐. 그러다 영영 깨어나지 않을까 봐.

    석주가 한참 머뭇거리고 있으니 명진이 그의 곁으로 다가왔다.

    “형님.”

    “…….”

    “괜찮을 겁니다. 아진이 가가 은근히 독한 아다 아입니까. 별일 없을 겁니다.”

    “…….”

    그 말에 석주가 삐뚜름히 입매를 뒤틀었다. 그 독한 애가 저 때문에 손목을 그었는데. 정말 별일 없을까.

    석주가 코로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 후, 조심히 문을 열었다.

    병실 특유의 강렬한 소독약 냄새가 파도처럼 밀려왔다. 그 사이사이에 아진의 체취가 은근히 스며 있었다. 석주가 폐부 가득 그 냄새를 들이마시며 병실 안으로 들어섰다.

    병실 안에는 아진과 꽃님이 있었다. 침대맡에 앉은 꽃님이 아진을 등으로 가리고 있어 그의 얼굴은 보이지 않았다.

    뚜벅뚜벅. 석주의 정갈한 구두 소리가 병실을 가로질렀다. 그가 막 침대 앞에 서기 직전이었다.

    “나가.”

    꽃님이 탁한 목소리로 말했다. 석주의 걸음이 우뚝 굳었다. 그에 꽃님이 고개를 반쯤 돌려 곁눈질로 석주를 흘겨봤다. 보기 싫게 마른 그녀의 입술이 작게 달싹였다.

    “뒤를 안 돌아봐도 당신인 걸 알겠어. 당신이 뒤집어쓴 아진이 피비린내가 너무 심해서.”

    “…….”

    “뭘 멀거니 섰어. 나가라니까.”

    “…….”

    “우리 아진이 꿈자리 사나울라. 냉큼 꺼져.”

    꽃님의 음성은 크지 않았다. 소리를 지른 것도 아니고, 걸걸한 비속어를 쓴 것도 아닌데. 나직하고 고요한 음성은 그래서 더 힘이 셌다.

    말을 마친 꽃님이 다시 고개를 돌렸다. 석주가 그녀의 뒤통수를 물끄러미 응시했다. 그러자 뒤에 서 있던 조직원이 부루퉁하게 말을 쐈다.

    “이봐요, 아줌마. 말을 영 섭섭하게 하시네. 병원비고 약값이고 다 누가 내는데.”

    그에 석주가 휙 뒤를 돌아보며 조직원들에게 일갈했다.

    “나가.”

    “형님!”

    “쉬……. 아진이 깰라. 나가. 괜찮으니까 나가 있어.”

    그가 검지를 세워 입술에 가져 댔다가 손을 휘저었다. 조직원들은 입술을 쭈뼛거리면서도 별다른 말 없이 퇴장했다. 병실이 한결 차분해졌다.

    석주가 꽃님의 옆에 서서 물었다.

    “몸이 아직 덜 나았다고 들었는데. 좀 쉬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꽃님은 대답하지 않았다. 그저 고집스레 아진만 쳐다보고 있었다. 이불을 여며 주고, 붕대가 두껍게 감긴 손목을 쓰다듬고, 앞머리를 살살 쓸어 주는 손길에 애정이 가득했다.

    “약도 안 먹고, 검사도 안 받으려 한다면서요. 회복하지 않으면 아진이가 아줌마를 간호해야 할 상황이 올 텐데. 매일 울면서 전전긍긍할 텐데. 그걸 바라는 겁니까?”

    “…….”

    꽃님은 이번에도 대답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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