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쌍피-115화 (115/261)
  • 115화

    덕재가 한숨을 내쉬는데, 석주가 다시 물었다.

    “박기헌은 흔적도 없어?”

    “예. 아무래도 쉽게 찾을 수 있을 것 같지가 않습니다. 중호파 업장들은 일주일째 문을 안 열고 있고요, 남은 끄나풀들은 다 처리했습니다.”

    “…….”

    “박기헌이 여기저기 꿍쳐 둔 돈이나 패물은 말씀하신 대로 보육원이랑 학교랑 뭐 그런 곳에다 찾는 대로 보내고 있습니다.”

    “그래. 수고했다.”

    석주가 짧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 모습이 영 생기가 없었다. 항상 당당하고 단단하던 석주와는 너무나 안 어울리는 모습이었다. 덕재가 두루마기를 반대 손에 옮겨 쥐며 말했다.

    “인제 그만 나오시지요, 형님. 아들이 기다립니다. 다들 똥 퍼먹은 표정 해 갖고 일하는 내내 죽상인데, 분위기가 그지 같습니다.”

    눈에 보이는 듯한 상황에 석주가 피식 웃었다. 제가 식구들에게 참 나쁜 짓을 하고 있구나, 싶었다. 석주의 미소를 본 덕재가 다급하게 와다다 말을 쐈다.

    “경찰들도 형님 설득해가 빨리 좀 나가라고 지랄입니다. 돈 주던 중호파가 끝났으니 우리랑 어떻게 연을 잘 이어 볼라 카는 것 같더라고요.”

    “…….”

    “우리로서는 좋은 일 아닙니까? 앞으로 일이 편해질 겁니다. 형님이 신경 쓰실 일도 줄어들 거고요.”

    “…….”

    “진짜…… 나오실 생각 없는 겁니까?”

    덕재가 조곤조곤 물었다. 석주가 떫은 입맛을 다셨다. 그리고 낮은 목소리로 사과했다.

    “……미안하다, 덕재야.”

    “…….”

    덕재의 입이 한일자로 꾹 다물렸다. 그의 눈가에 침울함이 스몄다.

    그럼 우리는 어찌합니까. 형님 하나만 보고 여기까지 온 우리는 어찌합니까. 그 말이 혀끝에서 달랑거렸으나 차마 내뱉을 수가 없었다. 여태 석주가 얼마나 많은 일을 했는지, 얼마나 많이 희생하고, 얼마나 많은 피를 대신 흘렸는지 알기 때문이었다.

    당장 석주가 조직을 관두고 나가겠다고 해도, 시골로 내려가 밭이나 일구며 살겠다고 해도 잡을 수가 없었다.

    덕재가 이마를 긁으며 인상을 쓰는데. 석주가 의자를 앞으로 당겼다. 그리고 아까부터, 아니, 면회가 있다는 소식을 들은 아침부터 입천장을 간질이던 이름을 슬그머니 내놓았다.

    “……아진이는?”

    입 밖으로 뱉은 이름이 너무 오랜만이라 낯설었다. 그저 이름일 뿐인데 입술이 다 저릿저릿했다. 석주가 입술을 말아 물었다. 아진의 이름을 말하고 남은 잔상이 이대로 사라지는 게 아쉬워서.

    “아직입니다.”

    덕재가 느리게 고개를 내저었다.

    “…….”

    석주의 만면에 그림자가 졌다. 옆구리에 난 상처가 덧나 앓으면서, 피를 흘리고 식은땀을 흘리면서, 혹 아진이 눈을 뜬 게 아닐까. 그가 아파하던 고통을 제가 이어받은 게 아닐까. 그럼 좋을 텐데, 하고 기대했는데. 아닌 모양이었다.

    말도 안 되는 기대이거늘, 석주는 진심으로 실망했다. 제가 조금 덜 아팠나. 이왕이면 살점이 썩어 들어가고 문드러질 정도로 아팠으면 좋았을걸, 그럼 아진이 눈을 떴을 수도 있는데, 하는 생각도 했다.

    “어……제는 발작을 했는데. 그…… 흥분제, 그걸 끊어서 그렇답니다. 금단 현상이라고…….”

    “하아…….”

    “아 몸이 약해가 약을 한 번에 끊으면 크게 병 난다고 의사가 약을 억수로 쪼매 주사로 넣더라고요. 그러니까 금방 잠잠해졌습니다.”

    석주가 아랫입술을 꽉 짓씹었다. 그때. 덕재가 그나마 반가운 소식을 전해 왔다.

    “그래도 의사가 곧 눈 뜰 거라 카대요. 회복 상태가 괜찮다고.”

    “그래?”

    석주의 입가에 옅은 미소가 스몄다. 이대로 눈을 못 뜨면 어쩌나, 싶었는데. 그래도 잘 극복해 가고 있는 듯했다. 석주가 뻣뻣하게 굳어 있던 어깨를 한결 느슨히 풀어 내렸다.

    “예. 이게 그렇게 오래 누워 있을 상처가 아이랍니다. 아가 손에 힘이 없어가 손목을 깊게 못 그었다대요. 손목 그은 거로 뒤질라면 손목 반을 동강 내야 한답니다. 근데 아진이가 그은 건 그 정도는 아니라서…… 다행이지요.”

    “…….”

    “근데 몸이 약해선지, 뭐 때문인지 일어나는 게 영 더디다고 의사가 아주 난감해하더라고요. 그래도 곧 눈 뜰 거라 카이까, 뭐…….”

    “…….”

    “꽃님이 아지매가 내- 아진이 옆에 붙어 있습니다. 머리도 쓰다듬고, 몸도 닦아 주고, 그럽니다. 몸 상태로는 그 아지매가 먼저 갈 낀데 말입니다.”

    “말조심해라.”

    석주가 인상을 썼다. 덕재가 흠칫 몸을 떨며 입을 다물었다. 그러다 앉은 채로 꾸벅 허리를 숙이며 사과했다.

    “……죄송합니다, 형님.”

    “…….”

    “아무튼 곧 눈 뜰 거라던데, 직접 보셔야 안 되겠습니까.”

    덕재의 말에 석주가 두 손을 세게 깍지 꼈다. 마디마디가 불룩하게 도드라진 손이 하얗게 질렸다. 고개를 늘어트린 그가 바람에 흘러가듯 읊조렸다.

    “무서워.”

    “……예?”

    “아진이가 눈 뜨는 게 무서워.”

    날 보고 무슨 반응을 보일지 가늠하는 게 두렵고 쓰려. 그 아이가 일어나는 걸 보고 있을 자신이 없어. 날 보고 어떤 표정을 지을지, 어떤 눈으로 날 볼지 뻔히 보여서, 무서워.

    ‘사장님이 미워요.’

    ‘사장님은 거짓말쟁이야.’

    ‘당신이 죽어 버렸으면 좋겠어.’

    ‘끔찍하게 싫어. 저는 죽었다가 다시 태어나도 사장님을 미워할 거예요. 계속 미워할 거야.’

    분명 그 말을 하던 때와 같을 텐데. 그 원망을 듣고 내가 그 앞에서 죽어 버리지 않을 자신이 없어.

    첫마디를 무어라 꺼내야 할지도 모르겠어. 미안하다, 잘못했다, 사과하는 것도 너무 가볍고 파렴치해서. 그의 앞에 얼굴을 들이미는 것 자체가 죄악이 아닐까 싶어서.

    석주가 눈을 질끈 감았다. 저는 지금 벌을 받고 있지만, 그와 동시에 도피하는 중이고, 숨어 있는 중이었다. 아진에게서. 아진의 원망에게서. 아진의 눈물에게서 도망치는 중인 것이다.

    덕재가 눅눅하게 젖은 석주의 얼굴을 물끄러미 쳐다봤다. 그러다 눈썹을 설핏 어그러트렸다.

    “그래서 그냥 저렇게 두실 겁니까. 그럼 아진이 그 아는…….”

    “…….”

    “또 버려진 기분을 느끼지 않을까요.”

    그 말에 석주가 숨을 크게 들이마셨다. 심장이 옥죄었다. 속이 메슥거리고 목구멍이 바짝 말랐다. 입술을 달싹이던 석주가 커다란 손바닥으로 자신의 눈을 가렸다.

    “아…….”

    그렇네. 저는 또 아진을 버렸구나. 제 이기심에 그를 또 혼자 내버려 뒀구나. 어찌 됐든 간에 아진에게 난 상처는 제가 약을 발라 주고 돌봐 줘야 할 제 몫인데. 또 그것을 외면했구나.

    부끄러웠다. 아진에게 사죄할 게 는 듯해 가슴이 아팠다.

    석주가 눈알을 파낼 듯 얼굴을 긁는데. 돌연 덕재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철제 의자가 뒤로 밀리며 끼이익- 하고 요란한 소리를 냈다.

    석주가 붉어진 눈으로 그를 응시했다. 헌데 덕재의 표정이 이상했다. 두루마기를 이리저리 옮겨 쥐는 손이 부산스러웠다. 한참 머뭇거리던 그가 의자 옆으로 비켜섰다.

    “형님.”

    “…….”

    “실은…… 같이 온 사람이 있습니다.”

    “뭐?”

    석주가 고개를 삐뚜름히 뒤틀었다. 출입문으로 향한 덕재가 문고리를 잡아 돌렸다. 곧 문이 열리고, 화창한 바깥 빛이 쨍하게 스며 왔다. 강렬한 빛에 석주가 눈살을 찌푸렸다. 빛 사이에 누군가가 서 있었다. 덩치 좋은 사내였다.

    그가 뚜벅뚜벅 접견실 안으로 들어왔다. 그리고 꾸벅 허리를 숙이며 인사했다.

    “형님. 잘 계셨습니까?”

    “…….”

    “하도 안 온다 카셔서 직접 모시러 왔습니다.”

    샐쭉 웃는 얼굴이 얼마 만인지 헤아릴 수가 없었다. 민망하면 턱 아래를 긁어 대는 그 버릇도 여전했다. 살은 조금 내렸지만, 턱을 긁는 손가락 몇 개가 없었지만, 그래도 여전한 모습이었다.

    그의 얼굴을 확인한 석주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의 입가에 오랜만에 환한 미소가 스몄다.

    “……명진아.”

    * * *

    명진은 여전했다. 당장 감방에서 나오지 않으면 본인의 남은 손가락을 다 잘라 버리겠다는 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했다. ‘손가락을 죄 잘라 버리고 나면 형님이 제 밥 손수 떠멕여 주실 거지요? 아시다시피 저 씨름 선수만큼 푸지게 묵습니다?’ 하면서 웃는 얼굴에 석주는 하는 수 없이 바깥으로 나와야 했다.

    경찰서에서 나온 석주는 곧장 아진이 있는 병원부터 가려다, 구겨진 옷에, 수염이 올라온 턱에, 그를 보기엔 꼴이 영 막돼먹은 것 같아 집으로 왔다. 씻고, 깔끔하게 다려진 와이셔츠를 입고, 두루마기도 반질반질한 새것으로 꺼내 입었다.

    마지막으로는 항상 그랬듯, 담배를 챙겼다. 재킷 안주머니에 담배를 넣은 그가 서랍 위에 수북이 쌓인 라이터 중 하나를 집는데. 문득 평소엔 신경 쓰지 않던 사진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그 언젠가 진걸의 환영회가 있던 날. 모두 함께 찍은 사진이었다. 이 사진을 제가 이곳에 둔 기억은 없는데. 아진이 뒀을까. 그때 사진 찍는 게 처음이라며 신나 하긴 했지.

    희미하게 입꼬리를 올린 석주가 눈을 바쁘게 움직였다. 아진의 얼굴을 찾는 거였다. 근데, 아진이 있어야 할 자리에 그가 없었다. 왼쪽 구석. 꽃님의 옆자리엔 난데없이 진걸의 얼굴이 붙어 있었다. 석주가 자연히 원래 진걸이 있던 자리를 쳐다봤다.

    “아…….”

    그곳에 아진이 있었다. 제 옆자리에, 흐릿하나 웃고 있는 아진이. 진걸을 못마땅히 여긴 그가 얼굴을 오려다 자리를 바꾼 모양이었다.

    석주가 빛 번짐이 심해 어슴푸레한 아진의 얼굴을 검지로 슥슥 문질렀다. 진걸의 넙데데한 덩치에 조그마한 아진의 얼굴이 올라가 있는 게 퍽 우스웠다. 그래도 제법 잘 도려내서 언뜻 봐서는 크게 이상하지 않았다.

    “귀엽기는…….”

    한동안 사진을 보던 석주가 뒤를 돌았다. 사진을 봤더니 아진이 더욱 보고 싶어졌다. 얼른 병원에 가야겠다 생각하며 발걸음을 재촉하던 그가 돌연 우뚝 굳었다. 제가 무심코 했던 생각에서 이상한 걸 발견했기 때문이다.

    처음.

    사진 찍는 게 처음.

    사진이 인화되어 나왔던 날. 아진은 평생 사진은 처음 찍어 본다고 했다. 하지만 저는 아진이 과거에 찍었던 사진을 보았는데. 창녀들과 함께, 가슴팍에 번호를 달고 있던 그 사진을 봤는데.

    아진은 무고하다. 늘 그랬다. 근데 본인이 남창이었던 사실을 제게 숨겼을 리 없었다.

    “…….”

    잠깐 눈동자를 굴리던 석주가 성큼성큼 서재로 걸어갔다. 그리고 책상 서랍을 뒤지며 무언갈 찾기 시작했다. 멀지 않은 과거. 모든 사건이 아진을 가리키고 있을 그 무렵. 조직원 하나가 회사에서 찾았다며 건네준 그 사진을 찾는 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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