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쌍피-114화 (114/261)

114화

“뭐, 뭐요?”

예상 밖의 말에 경찰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조직원들은 기겁하며 꽥꽥 소리를 질러 댔다.

“형님! 무슨 말씀 하시는 겁니까!”

“형님, 안 됩니다!”

“절대 안 됩니다! 차라리 여기서 같이 죽겠습니다!”

덩치 좋은 사내들이 발을 구르니 땅이 다 울렸다. 피와 시체로 뒤덮인 바닥이 진동하는 게 괴이하기 짝이 없었다. 겁먹은 경찰들이 저들끼리 모여들었다.

아무리 세상이 달라졌대도, 똑똑한 머리가 출셋길을 만들어 준다지만, 결국 힘에 휘둘릴 수밖에 없는 세상이었다. 불법과 도박, 폭력과 사기, 기만과 쾌락이 쉬운 세상이었다. 그런 세상이라 석주가 먹고사는 것이고.

석주가 고개를 비스듬히 뒤틀며 경찰을 바라봤다.

“들었지? 내 식구들이 싸우다 죽겠다네.”

“…….”

“그러니 얼른 선택하시죠. 나만 잡아가든가, 아니면 여기서 나랑, 내 식구들이랑, 그쪽 식구들이랑 다 같이 죽든가.”

경찰의 눈이 데구루루 바쁘게 굴러갔다.

그리고 10분 후.

철컥. 석주의 손목에 수갑이 채워졌다.

세상이 무너지는 듯 소리를 지르는 조직원들과 달리, 석주는 자신의 손목을 옥죈 죄인의 표식을 보며 느슨한 미소를 띠었다.

* * *

“아니, 우리도 중호파보다는 그쪽이, 강 사장이 낫다니까. 시민들 패고 다니는 것도 아니고, 허구한 날 패싸움을 하는 것도 아니고, 사람 납치해다 빼돌리는 것도 아니고.”

일주일이 지났다. 그렇게 짧은 나날도, 긴 나날도 아니었다. 경찰에게 잡혀 온 석주는 조사고 뭐고 하기도 전에 과다 출혈로 쓰러졌고, 옆구리 상처에 난 염증이 크게 퍼져서 며칠 내내 심하게 앓았다. 그 이후로 본격적으로 조사를 받기 시작했는데, 석주는 도통 입을 열지 않았다.

오죽 침묵을 유지하는지, 경찰이 애걸복걸할 정도였다. 지금도 그랬다.

“…….”

형이 확정되지 않은 죄수들이 입는 황토색 죄수복을 입고, 손목에는 수갑을 찬 석주가 책상 어귀를 가만히 응시했다. 싸구려 죄수복을 입고 있는 주제에도 넓은 어깨와 도드라진 가슴 근육이 퍽 위협적이었다. 그의 손에는 쇠 수갑이 걸려 있는데도 경찰은 자신도 모르게 의자를 뒤로 뺐다가 당기길 반복해야 했다.

경찰이 연필을 손가락 사이로 휘휘 돌리며 말을 이어 갔다.

“이번 일은 내가 어떻게 잘 처리해 볼 테니까, 그냥 보석금이나 두둑이 내고 나가. 응? 우리도 강 사장 되-게 불편해. 대체 여기가 뭐가 좋다고 들어앉아 있는 거야. 남들은 못 나가서 난린데.”

“…….”

“강 사장네 식구들이 형님 돌려내라고 내도록 경찰서에 와서 죽치고 있다니까. 자기가 대신 들어가겠다, 경찰서에 불을 지르겠다, 하물며 엎어져서 울기까지 해. 시끄러워서 돌아 버리겠어.”

“…….”

“내 참, 우리는 박 사장 신고 전화 받고 출동했던 게 단데. 누가 보면 우리가 강 사장 때려잡은 줄 알겠어. 그러게 왜 직접 들어와서는. 그냥 말단 하나 대신 보냈어도 우리가 어련히 알아서 잘 처리해 줬을 텐데 말이야.”

경찰이 푹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나 석주는 여전히 대답이 없었다. 경찰이 석주 앞의 책상을 똑똑 두드렸다.

“이봐, 강 사장. 대답 좀 해.”

짜증과 애걸이 적당히 섞인 문장에 석주가 비로소 그를 쳐다봤다. 며칠 앓았던 거로 살이 조금 내린 그는 턱선이 날카롭게 도드라져 있었다. 이러나저러나, 잘생긴 건 변함없었다.

경찰이 속으로 쯧쯧 혀를 찼다. 제가 저 얼굴로 태어났으면 온 세계를 휩쓸며 여자를 후리고 다녔을 텐데. 고작 하는 게 깡패 짓이라니. 제가 다 안타까웠다.

마른 입술을 슬쩍 핥은 석주가 드디어 입을 뗐다.

“나는 범죄잔데. 깡패고, 양아친데. 경찰이면서 나랑 붙어먹겠다는 소리를 이렇게 대놓고 해도 되나?”

비난 섞인 어조에 경찰이 껄껄거리며 웃었다. 푸짐하게 부푼 그의 배가 출렁거렸다.

“아, 강 사장이 젊긴 젊네.”

이해 못 할 말에 석주가 눈을 가늘게 떴다. 서른셋이 적은 나이는 아닌데. 으레 결혼하는 나이에 결혼을 했으면 애가 다섯일 터였다.

석주의 낯을 빤히 보던 경찰이 들고 있던 연필을 탁 내려놓았다. 갑자기 석주가 편해진 건지 상체를 앞으로 들이밀기도 했다.

“강 사장. 여기는 서울이야. 우리나라에서는 일 짱이고, 세계에서도 제법 큰 도시란 말이야. 이런 도시에, 돈과 사람이 넘치는 이런 곳에, 깡패가 어디 한둘이겠어?”

“…….”

“아니지, 아니야. 우후죽순으로 생겨. 남자 새끼들이 다 헛바람만 들어서 세 명만 모이면 깡패 짓을 해 대.”

“…….”

“그 셋이 열이 되고, 스물이 되고, 쉰이 되고. 그럼 우리 경찰들이 돈 쓰고 피 흘려 가면서 좆 빠지게 소탕한단 말이야. 근데 그럼 내일 또 다른 깡패 놈들이 생겨나. 그놈들을 또 잡아 처넣으면, 또 생기고 그래.”

“…….”

“우리로서는 태회파처럼 좀 점잖고, 진정 사내답고, 세금 신고도 꼬박꼬박하면서 중국이랑 일본 놈들한테 약까지 멕이는, 그런 애국자들, 응? 그런 깡패들이 서울에 터를 딱- 잡고 다른 깡패들이 설치지 못하게 해 주면 차라리 감사하다고.”

“…….”

“그럼 우리는 강 사장이랑만 주고받으면 되는 거니까 말이야.”

경찰이 손짓으로 자신과 석주를 번갈아 가리켰다. 여태 서울을 스쳐 갔던 수많은 조직을 떠올리는 건지 어깨를 부르르 떨기도 했다. 경찰이 다시 연필을 쥐었다. 그리고 연필 뒤축으로 딱딱딱 책상을 두드리며 말을 이어 갔다.

“지금까지는 중호파 놈들이 그 일을 대신 해 줬는데, 애들이 질이 너무 낮았어. 여자들 괴롭히고, 길 가다 사람 쥐어패고, 애먼 채소 가게나 세탁소 뒤엎고. 그래 놓고 뻔뻔하게 우리한테 처리해 달라고 하고. 씨팔, 가끔은 사람까지 죽여 달라 했다니까.”

“…….”

“근데 덩치가 꽤 커져서 우리가 막 잡아넣을 수가 없었단 말이야. 박 사장이 윗분들이랑 연이 좀 있기도 했고.”

“…….”

“그런데!”

경찰이 주먹 아랫부분으로 책상을 쿵, 두드렸다. 그의 입가에 깊은 웃음이 떠올랐다. 진심으로 통쾌한 듯한 표정이었다.

“강 사장이 중호파를 박살 내 줬잖아. 이거 아주 애국이야. 훈장을 줘도 모자라.”

“…….”

“그러니까 이만 나가. 나가서 가끔 우리 일 좀 도와주고, 우리도 강 사장 일 도와주고. 그렇게 상부상조하면서 적당히 살자고. 응?”

경찰이 애원한다는 듯 두 손을 모아 흔들었다. 그의 눈동자에 기대가 스몄다. 이만하면 됐지? 이제 우리 화해하고, 친구 하고, 잘 지내자. 그럴 거지? 표정으로 그런 말을 하고 있었다.

석주가 수갑이 채워진 자신의 손을 깍지 꼈다가 풀었다. 그리고 경찰을 지그시 쳐다봤다. 입을 열 기세에 경찰이 고개를 앞으로 쭉 뻗었다. 건조하게 갈라진 석주의 입술이 천천히 떨어졌다.

“나는.”

“응, 그래.”

“나갈 생각이 없어.”

“…….”

입을 뻐끔 벌린 경찰이 헛숨을 머금었다.

“…….”

“…….”

공간 가득 정적이 들어찼다. 멍하니 있던 경찰이 앉은 채로 발을 굴렀다. 답답해 죽겠다는 듯, 주먹으로 자신의 가슴을 마구 내리치기도 했다.

“아, 진짜 강 사장! 이럴 거야!”

* * *

석주는 빠른 걸음으로 면회실로 들어섰다. 창살이 좁게 꽂힌 틀 너머, 익숙한 얼굴이 보였다. 덕재였다.

석주가 마련된 의자에 털썩 앉았다. 그의 입가에 옅은 미소가 떠올랐다. 반가움 조금, 끊고 살던 바깥세상의 정보를 알 수 있는 설렘 다수로 비롯된 미소였다.

식구들을 다 버리고 이곳에 들어와 놓고는. 염치도 없지. 그래도 석주 딴에는 지금 이 상황이 최선이었다.

두루마기를 곱게 반으로 접어 팔에 걸친 덕재가 의자를 바짝 당겨 앉았다.

“형님. 몸은 좀 어떠십니까?”

“괜찮아. 상처도 꿰맸고, 염증도 가라앉았어.”

“하……. 다행입니다.”

상 치르는 줄 알고 얼마나 식겁했는지. 덕재가 투박한 손으로 얼굴을 벅벅 문댔다. 안도의 한숨을 푹 내쉬기도 했다. 그런 그의 낯에 피곤이 가득했다.

명진이 하던 일을 도맡아 하는 것도 좆이 빠지는 줄 알았는데. 석재의 부재까지 감당하려니 미치기 직전이었다. 몸이 힘든 것도 힘든 거지만, 아버지처럼, 형처럼 여기던 두 사람이 없으니 마음고생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덕재가 연거푸 한숨을 내쉬는데, 석주는 그가 안심할 틈도 없이 입을 뗐다. 경찰과 함께 있을 때와는 사뭇 다른 작태였다.

“박기헌은. 찾았어?”

기헌이 사라졌다. 팔이 잘리고, 어깨에 도끼가 박힌 채로 사라졌다. 석주가 경찰에 잡혀가고, 남은 조직원들이 숨통을 끊기 위해 사장실로 뛰어 올라갔을 땐, 피와 뭉그러진 시가만 남아 있었다.

백방으로 찾아다녔으나 일주일 내내 감감무소식이다. 석주는 분통이 터져 죽을 것 같았다. 팔을 썰고 뭐고 할 것 없이 목부터 쳐 버릴걸. 바닥을 나뒹구는 그의 목을 봤어야 했는데. 그 후회를 하루에도 수백 번씩 했다.

“아직 못 찾았습니다. 이 새끼 이거 서울에 없는 것 같아요.”

“가족들은?”

“가족들은 이사해가 작은 집에서 다 같이 모여 살고 있습니다. 박기헌이 오가는 것 같지는 않아요.”

“그래. 계속 감시해.”

“예……. 아휴, 형님이 그 새끼 안사람이랑 아들 건드리지 말라 카셔서 걍 보내긴 했는데. 그래도 분합니다.”

덕재가 주먹을 꽉 움켜쥐었다. 석주는 기헌에게 그의 집에 폭탄을 보냈다고 했지만, 사실은 그게 아니었다. 물론 폭탄을 보냈고, 실로 기헌의 집을 터트리긴 했다.

허나 인명 피해는 없었다. 기헌의 아내와 자식들은 불타는 집을 보며 엉엉 울기만 하고, 상처 하나 없이 멀쩡했다.

석주가 더는 무고한 사람이 피를 흘리게 하고 싶지 않다고 했기 때문이다. 덕재는 그 명령에 찰나 불만이 일었으나 이내 수긍했다.

태회파는 항상 그랬다. 죄 없는 이나 무고한 이나 깡패가 아닌 이에게 해를 끼치지 않았다. 깡패 짓도 정도껏 해야 한다는 석주 아버지의 말씀 때문이었다.

얼마 전에 그 신념에 예외가 되는 이가 생겼지만. 덕재는 그게 오롯이 석주의 잘못이라 생각하지 않았다. 우리 모두의 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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