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쌍피-113화 (113/261)
  • 113화

    입을 앙다문 기헌이 멀쩡한 반대쪽 팔로 자신의 시가를 잡아챘다. 잘려 나간 게 오른손이라, 시가를 입에 물고 불을 붙이는 모양새가 몹시 어색했다. 그래도 꾸역꾸역 불을 붙인 그가 잇새로 연기를 내뿜었다. 그러더니 겁도 없이, 그 입에 올려선 안 될 이름을 언급했다.

    “이름이 아진이던가.”

    석주가 우뚝 굳었다. 그가 차게 식은 눈으로 기헌을 응시했다. 그의 도끼가 금방이라도 기헌의 정수리를 내리칠 기세로 흔들렸다. 그러든 말든, 기헌은 실쭉거리며 말을 이어 갔다.

    “내가 그 절름발이 애를 죽였을 것 같나?”

    “닥쳐.”

    “아니면 죽으라고 협박이라도 했을 것 같나?”

    “…….”

    “아니야. 나는 칼만 건넸어.”

    기헌이 절레절레 고개를 내저었다. 석주가 위협적으로 그의 앞에 다가갔다. 기헌이 그를 빤히 올려다보며 말했다.

    “난 그 애 몸에 손끝 하나 안 댔어. 말도 걸지 않았지. 그 애는 칼을 준 게 누구인지도 모를걸.”

    “…….”

    “내가 기대한 건 그 애가 그 칼로 강 사장을 찌르는 거였는데. 진실을 안 강 사장은 칼을 피하지 않을 테니까. 내 손에 피 한 방울 안 묻히고 강 사장을 깔끔하게 처리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어.”

    “…….”

    “근데 내 참, 손목을 그을 줄이야.”

    “…….”

    “절름발이 놈 인생이 참 불쌍하지 않나? 복수보다 자살을 선택할 정도로 괴로웠다는 거 아닌가.”

    요즘 세상이 얼마나 살기 좋은 세상인데 죽으려 들어, 그래. 기헌이 화상을 입어 우그러진 자신의 뺨을 벅벅 긁으며 탄식했다.

    석주가 볼 안쪽 살을 꽉 깨물었다. 당장이라도 기헌의 멱을 따고 싶었는데. 저 간사한 입에 도끼날을 쑤셔 넣고 싶었는데. 이상하게 몸이 움직이지 않았다.

    그 덕에 기헌의 이죽거림은 끝날 줄 몰랐다.

    “근데 또 제대로 죽지도 못했다며? 강 사장이 살려서?”

    “…….”

    “지금 병원에 있다고 들었는데. 일어나면 뭐가 달라질까? 칼만 보면 냅다 자기 손목을 그으려고, 자기 목을 따려고 들지 않겠어?”

    “…….”

    “어디 그뿐일까. 차만 보면 달려들고, 높은 곳에 가면 뛰어내리려 하고, 물 보면 얼굴부터 처박겠지.”

    “…….”

    “강 사장 앞으로가 참, 힘들어지겠네.”

    “…….”

    “사람 죽이는 건 쉽지만, 사람 살리는 건 어렵지 않나.”

    기헌이 끌끌거리며 웃었다. 도끼를 쥔 석주의 손에 힘이 들어갔을 때였다. 돌연 바깥이 소란스러워졌다. 낯선 남성들의 고함이 들려왔다. 이따금 총소리도 들렸다. 덕재를 비롯한 조직원 몇이 바깥으로 뛰쳐나갔다.

    그에 기헌의 입가에 비릿한 미소가 걸렸다. 수십 분 전. 그가 어딘가로 걸었던 전화의 답이 이제야 도착한 모양이었다.

    석주가 그런 기헌을 내려다보며 낮게 으르댔다.

    “아진이가…… 누구 때문에 손목을 그었는데.”

    “누구 때문이기는! 강 사장 때문이지. 강 사장이 오해하고, 강 사장이 괴롭혔고, 때렸고, 짓밟았지 않나.”

    “…….”

    “내가 칼을 주지 않았어도 언젠가는 일어났을 일이야.”

    기헌이 어깨를 으쓱였다. 그 몸짓이 한없이 가벼웠다. 아진이 손목을 긋게 된 그 모든 일에 본인의 잘못은 손톱만큼도 없다고 생각하는 듯했다.

    “…….”

    이를 악문 석주의 관자놀이가 움푹 꺼졌다가 도드라지길 반복했다. 원래도 그를 쉽게 죽일 생각은 없었는데. 더 그러고 싶지 않아졌다. 극한의 고통을 주고 싶었다.

    지금 이 상황에, 무고한 이는 아진 하나뿐이다. 저와 기헌. 욕심 많고 아둔한 둘 때문에 아진이 그 고통과 피를 다 뒤집어썼다.

    아파했고, 괴로워했고, 울었고, 버티고 버티다 못해 본인의 손목을 그은 아이다.

    자동차가 무섭다는 이유로 바깥에 나가지도 못할 만큼 겁이 많고, 죽는 걸 두려워하는 아이인데. 기헌이, 그리고 제가 그를 죽음으로 떠밀었다. 차라리 죽음이 편하겠다고 생각하게 만들었다. 내몰리고 내몰리다 죽음으로 도망치게 만들었다.

    담배를 내던진 석주가 도끼를 기헌의 정수리에 갖다 댔다. 피에 젖어 끈적한 도끼날이 기헌의 머리칼 사이로 파묻혔다. 기헌이 포승줄에 묶이기라도 한 것처럼 단단하게 굳었다.

    “가, 강 사장. 아이, 왜 이러나. 내 팔까지 잘랐으면 됐지. 우, 우리 다시 잘해 봄세. 내가 잘해 주겠네. 우리 업장도 주고, 어, 서울도 주지. 살려만 주게. 내가 서울을 떠나겠네.”

    주절주절 이어지는 말이 역겹기 그지없었다. 석주가 파랗게 질린 그를 보며, 죽음을 두려워하는 그 나약함을 내려다보며 입술을 달싹였다.

    “그래. 나는 무고하지 않아. 나는 죄인이야.”

    “강 사장, 강 사장!”

    “다 나 때문에 일어난 일인 거, 맞아. 인정해.”

    “씨팔, 뭐라는 거야! 강 사장!”

    “그렇다고 네가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말할 순 없지.”

    네가 그러면 안 되지. 이 모든 일의 시발지인 네가. 나의 눈을 가리고, 아진에게 칼을 쥐여 준 네가 그럼 안 되지.

    “죽어. 지옥으로 가.”

    나도 곧 따라갈 테니까.

    으득, 이를 짓씹은 석주가 도끼를 쳐들었을 때였다.

    “형님! 경찰이 왔습니다! 박기헌 저 새끼가 경찰에 신고를 한 모양입니다.”

    “…….”

    석주는 대답하지 않았다. 기헌의 머리를 노리는 그의 눈이 희번들하게 번뜩였다. 그에 덕재가 뒤에서 그를 와락 안았다. 그리고 뒤로 질질 끌어당기기 시작했다. 그 때문에 하늘로 쳐들렸던 도끼가 기헌의 머리를 쪼개지 못하고 퍼걱, 그의 어깨에 박혔다.

    “커헉!”

    기헌이 신음했다. 그의 눈깔이 휙 뒤로 뒤집혔다. 도끼를 빼 보려 몸을 꿈틀거리던 그가 스르륵 옆으로 기울어졌다. 허나 죽은 건 아니었다. 아직 죽지 않았다. 이걸로는 모자랐다.

    “형님! 경찰이 왔다니까요! 나가야 합니다.”

    “놔.”

    “우리 애들을 마구잡이로 잡아가고 있습니다. 얼른 피해야 합니다. 아니면 꼼짝없이 감방 갑니다.”

    “놔라, 덕재야.”

    석주가 덕재를 밀어냈다. 그 순간, 피 때문에 손이 미끄러진다 싶더니 도끼가 손아귀에서 쭉- 빠져나갔다. 석주의 이마 위로 불룩 핏줄이 솟았다. 그가 다시 팔을 뻗어 기헌의 어깨에 박힌 도끼를 쥐려 할 때였다. 다른 조직원 셋이 석주를 끌어내는 데 합세했다.

    “형님! 나가셔야 합니다.”

    “놓으라고!”

    놔, 씨발! 석주가 조직원들을 마구 밀어냈다. 성미대로 되지 않아 식구들에게 주먹을 날리거나 발길질을 하기도 했다. 조직원들은 무쇠 같은 석주의 주먹에 얻어맞아 나뒹굴면서도 튕기듯 일어나 다시 그를 끌어냈다.

    석주는 책상을 짚었다가, 나중엔 소파를 잡아당겼다가, 또 그다음엔 사장실 문틀을 잡고 버텼으나 아무리 그라도 덩치 좋은 사내 넷이 사력을 다해 끌어당기는 힘을 이길 순 없었다.

    결국 석주는 복도까지 질질 끌려 나왔다. 의자에 축 늘어져 있는 기헌이 자꾸 멀어졌다. 그게 어찌나 화가 나는지. 어찌나 억울한지. 눈알에 핏줄이 다 터졌다.

    그는 시뻘겋게 변한 눈으로 주위를 두리번거리다, 1층 광경을 눈에 담게 됐다.

    태회파 조직원들이 떼거리로 몰려온 경찰들과 대치하고 있었다. 차마 경찰에게 총질을 할 순 없고, 그렇다고 칼을 쑤실 수도 없고, 대치만 하는 상태였다. 경찰들은 그런 식구들에게 총을 겨눈 상태였고. 몇몇은 수갑까지 차고 있었다.

    “…….”

    석주의 입이 한일자로 꾹 다물렸다. 돌연 조금 전, 기헌이 했던 말이 뇌리를 스쳤다.

    ‘그 아이 지금 병원에 있다고 들었는데. 일어나면 뭐가 달라질까? 칼만 보면 냅다 자기 손목을 그으려고, 자기 목을 따려고 들지 않겠어?’

    ‘어디 그뿐일까. 차만 보면 달려들고, 높은 곳에 가면 뛰어내리려 하고, 물 보면 얼굴부터 처박겠지.’

    ‘사람 죽이는 건 쉽지만, 사람 살리는 건 어렵지 않나.’

    어쩌면 진짜 그럴지도 모른다. 아진은 죽음으로 도망치려 했고, 제가 그를 살림으로써 그것에 실패했다. 그 계기로 죽음에 대한 갈망이 더욱 심해질지도 몰랐다.

    그럼 어쩌나. 제가 최선을 다해 막고 또 막겠지만, 어느 한 번, 실수로, 피치 못하게 막지 못하면? 제가 그를 놓쳐 버리면? 잠깐 눈을 감았다가 뜬 그 찰나 사이에 아진이 죽어 버리면? 그럼 어쩌나?

    그렇다면, 죽을 시도를 할 필요가 없게 만들면 되지 않나. 아진이 고통스러워하는 요소를 없애 준다면? 그가 행복했던 그때로 되돌려 놓진 못하더라도, 그가 싫어하는 것들을 다 치워 줄 순 있지 않을까?

    치워야 할 게 많겠지만 일단 제가 사라지면, 아진은 조금이나마 편히 살 수 있을 것이다. 덜 고통스럽고, 덜 괴로워하겠지.

    그러다 보면 조금씩 살고 싶어질지도 몰랐다. 더 이상 손목을 긋지 않을지도 몰랐다. 꽃님과 둘이 오순도순 앉아 롤케이크 따위나 먹으며 행복하게 살 수 있을지도 몰랐다.

    석주가 사지에 힘을 뺐다. 멎은 움직임에 그를 안고 있던 조직원들이 우뚝 굳었다. 석주가 낮고 잔잔한 음성으로 덕재를 불렀다.

    “덕재야.”

    “형님.”

    “놔 봐라.”

    “……예?”

    “괜찮으니까, 놔.”

    이성이 돌아온 듯한 석주에 조직원들이 저들끼리 눈짓을 했다. 그러다 천천히 손을 거두었다. 석주가 구겨진 두루마기를 탁탁 털었다. 그리고 어깨를 넓게 펼친 채, 뚜벅뚜벅 계단을 내려가기 시작했다.

    “형님!”

    덕재가 고함쳤다.

    “가만히 있어.”

    뒤로 손짓하며 그를 제지한 석주는 계단을 모두 내려갔다. 그러고는 식구들을 넓은 등으로 가리고 섰다. 나이가 지긋해 보이는 경찰이 석주의 얼굴을 총으로 겨누며 물었다.

    “누구요?”

    “강석주입니다.”

    “어…….”

    경찰의 총구가 휘청거렸다. 석주가 누구인지 아는 모양이었다. 석주가 그를 향해 성큼성큼 다가갔다. 기골이 장대한 덩치에 경찰들은 총을 들고 있으면서도 꼴깍꼴깍 마른침을 삼켜 댔다. 간혹 몇몇은 뒷걸음질을 치기도 했다.

    이내 석주가 경찰의 코앞에 섰다. 그 후 커다란 손으로 경찰이 들고 있던 총을 그의 손과 함께 통째로 움켜쥐었다. 두려울 정도로 거센 아귀힘이 경찰의 손을 꽉 압박했다.

    “윽…….”

    “날 잡아가고, 내 식구들은 놓아주시지요.”

    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