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쌍피-112화 (112/261)
  • 112화

    태회파는 다 죽어 가는 이든, 숨어 있는 이든 죄 끌어내 가차 없이 목숨을 앗아 갔다. 뒤통수에 총알을 박거나, 목에다 칼을 쑤셔 주었다. 여기저기서 둔탁한 비명이 터졌다.

    석주는 그 비명을 배경음 삼아, 기다란 다리로 느릿하게 계단을 올라갔다. 덕재를 비롯한 몇몇이 그를 뒤따랐다.

    2층엔 개인 사무실 몇 개가 있었다. 정보에 따르면 기헌을 비롯한 중호파 내부의 권력자들이 쓴다고 했다. 석주는 그 복도를 성큼성큼 걸었다. 그를 뒤따른 조직원들이 방을 하나하나 점검했다. 또 누군가는 뒷문이나 비상구 등, 기헌이 빠져나갈 수 있는 길을 찾으러 가기도 했다.

    이따금 방에 숨어 있던 이들이 고함을 지르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 뒤로는 따발총 소리가 줄을 이었다. 석주는 그들에게 찰나의 시선도 낭비하지 않았다. 오로지 앞만 보고 걸었다. 복도의 끝, 그 전방에 기헌의 공간이, 즉 사장실이 있었기 때문이다.

    마침내 석주가 그 문 앞에 다다랐다. 그가 총을 주머니에 집어넣었다. 기헌을 쉽게 죽일 생각은 없었다. 쉽게 죽게 할 생각도 없었고. 총은 너무 가벼운 벌이다.

    석주는 문고리를 쥐기 전, 본인의 옆구리를 슥 쓰다듬었다. 꽃님이 찌른 그 옆구리였다. 붉은 피가 배어 나왔다. 오는 길에 대충 붕대로 싸매 두었는데, 그새 다 젖은 모양이었다.

    엄지로 피 묻은 손가락을 가볍게 훑은 그가 문고리를 돌렸다. 기름이 잘 먹인 문은 소리 없이 열렸다. 그와 동시에 안에서 총알이 마구 튀어나왔다. 탕! 탕! 탕!

    “이 씨발 새끼들! 뒤져! 뒤져!”

    석주가 몸을 옆으로 돌리며 문 뒤로 숨었다. 그리고 문틈으로 슬쩍 안을 확인했다. 총을 쏜 이는 기헌이 아니라 다른 이였다. 기헌의 오른팔. 그 언젠가 석주의 집에 중호파가 왔던 때, 기헌의 옆에 앉아 있던. 공부 좀 하라며 뒤통수를 후려 맞았던 그였다.

    덕재가 따발총을 겨드랑이 사이에 꽉 꼈다. 석주와 짧게 눈을 맞춘 그가 문틈으로 총구를 슥 들이밀었다. 그리고 방아쇠를 길게 당겼다.

    타다다당!

    길게 연사로 뽑힌 총알이 남자의 배와 가슴을 꿰뚫었다. 그 타격감에 남자가 뒤로 벌러덩 넘어갔다.

    얼른 사장실 안으로 뛰어간 덕재가 남자의 손에 들린 총을 발로 찼다. 그 후 타당! 남자의 머리통을 날렸다. 바닥에 피가 거칠게 튀었다. 총구로 방 안을 훑으며 경계하던 덕재가 나직이 석주를 불렀다.

    “들어오십시오, 형님.”

    그 말에 석주가 사장실 안으로 들어섰다.

    기헌은 찾고 말고 할 것도 없었다. 책상 앞에 떡하니 앉아 있었으니까. 그의 앞에 놓인 [사장 박기헌]이라는 명패가 살짝 삐뚜름했다. 그는 손에 수화기를 들고 있었는데, 막 통화를 마치고 내려놓는 참인 것 같았다.

    가족의 안부를 묻기 위해 전화했을까. 아니면 본인의 목숨을 살릴 수 있는 누군가에게 전화했을까. 그도 아니면 또 다른 꿍꿍이일까.

    석주가 무미건조한 눈동자로 기헌을 응시했다. 그 시선에 기헌이 어색하게 입꼬리를 올리며 웃었다.

    “어, 가, 강 사장. 왔어요?”

    화상으로 우그러진 기헌의 뺨에는 피가 튀어 있었다. 본인의 피 같지는 않고, 기관총에 죽어 나간 다른 조직원의 피가 아닐까 싶었다. 다친 곳이 없는 걸 보아 그 조직원을 인간 방패막이로 썼을지도 몰랐다.

    석주가 뚜벅뚜벅 사무실을 가로질러 그의 앞에 섰다. 주춤거림일랑 없는 그에 기헌이 상체를 뒤로 물리며 말했다.

    “강 사장, 나랑 대화 좀-”

    허나 기헌은 말을 마치지 못했다. 담배를 뱉어 낸 석주가 팔을 길게 뻗어 그의 뒤통수를 감싸 그대로 책상에 내리찍었기 때문이다. 쾅! 소리를 뒤이어 기헌이 “컥…….” 하며 신음했다.

    “대화는 할 만큼 한 것 같은데.”

    “강, 강 사장.”

    “나불거리는 걸 왜 그렇게 좋아해. 사장으로 불리다 보이까 니가 원래 뭐였는지 잊었는갑지?”

    격양된 석주가 기헌의 머리칼을 억세게 틀어쥐었다. 그리고 문장을 마칠 때마다 기헌의 머리를 책상에 쿵 찧었다가 쳐들길 반복했다.

    “깡패면.”

    쾅!

    “큭…….”

    “깡패답게.”

    쾅!

    “어억!”

    “싸워야지. 어?”

    쾅!

    “컥…….”

    기헌의 이마가 순식간에 시뻘겋게 물들었다. 콧잔등을 잘못 박아서 코피가 터지기도 했다. 그런데도 분이 안 풀리는지, 석주는 쾅쾅쾅! 기헌의 머리를 연거푸 책상에 때려 박았다. 코가 납작하게 짓눌리고, 광대는 함몰되고, 눈썹뼈는 으스러졌다. 번지르르한 책상이 온통 피로 낭자했다.

    석주가 기헌의 머리를 던지듯 놓았다. 기헌이 책상 위로 철퍼덕 쓰러졌다. 간헐적으로 꿈틀거리며 신음하는 게 그대로 정신을 놓을 기세였다.

    안 되지.

    석주가 재킷 안주머니에서 주사를 하나 꺼냈다. 얇은 주사 안에는 투명한 액체가 찰랑이고 있었다. 주사기 뚜껑을 입으로 뽑은 석주가 기헌의 머리를 아래로 내리눌렀다. 그리고 핏줄이 올라온 그의 목에다가 주삿바늘을 쿡 쑤셔 넣었다. 곧 차가운 액체가 기헌의 몸 안으로 흘러 들어갔다.

    주사기를 뽑은 석주가 그것을 바닥에 내던졌다. 그 후 손바닥으로 흐트러진 머리칼을 크게 쓸어 넘겼다. 격렬히 움직인 것도 아닌데 흥분한 탓에 땀이 묻어났다. 심장이 벌떡거리며 몸이 뜨거워졌다. 치미는 열에 그러잖아도 엉망이던 심기에 가시가 섰다.

    몇 초 지나지 않아, 기헌이 눈을 부릅떴다. 흰자위는 붉게 충혈됐고, 동공은 잔뜩 커진 게 약발이 톡톡히 든 모양이었다.

    석주가 기헌에게 주사한 건 마약의 일종이었다. 판매용은 아니고, 조직 내에서 쓰는 건데, 흔히 누군가를 고문할 때, 쥐어팰 때, 괴롭힐 때, 복수할 때 사용했다. 어떤 고통을 가하든, 정신을 잃지 않도록 하는 용이었다.

    얼굴이 납작해진 기헌이 멍청한 낯으로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지금 이 상황이 꿈인지 현실인지 판가름하는 게 힘든 듯했다.

    그러든 말든 석주는 기다란 다리로 간이 의자를 밟고 책상 위로 성큼성큼 올라갔다. 그 후, 한쪽 무릎을 굽히고 쪼그려 앉아 기헌의 팔 하나를 낚아채 책상에 찰싹 붙였다. 그것을 본 덕재가 뒤에 선 조직원들에게 눈짓했다. 조직원이 분주하게 무언갈 준비했다.

    그동안 석주는 기헌의 책상 위에 가지런히 놓여 있던 시가 중 하나를 집어 입에 물었다.

    시가는 두툼한 게 무는 맛이 별로라 즐기진 않았는데, 눈에 보여서 한번 물어봤다. 책상 끄트머리에 아무렇게나 널브러져 있는 라이터를 끌어온 석주가 시가 끝에 불을 붙였다. 불을 담배처럼 한 번만 붙이면 되는 게 아니라, 골고루 붙여 줘야 해서 번거로웠다.

    석주가 시가를 깊이 빨아당겼다가 놨다. 입 안에 들어차는 연기 맛이 영 낯설었다.

    그쯤, 덕재가 뒤에서 두툼한 손도끼를 내밀었다. 그 후 기헌의 손목을 꽉 잡아 책상에 내리눌렀다. 다른 조직원은 기헌이 몸을 움직이지 못하도록, 그가 앉아 있던 의자째로 책상에 밀어붙였다.

    시가를 입 한쪽으로 옮긴 석주가 손도끼를 좌우로 바꿔 쥐었다. 그 모습을 본 기헌이 뒤늦게 정신을 차렸다. 그가 몸을 퍼드득 떨었다.

    “뭐, 뭐야! 뭐 하는 거야!”

    “우리는 도둑질하면 팔을 잘라.”

    “……뭐?”

    “이름이 뭐더라. 아, 창두. 창두가 말해 줘서 알고 있으려나.”

    “그게 무슨…….”

    “아무튼 박 사장 니가 우리 약이랑, 거래처랑 훔쳐 갔으니 대가를 치라야 안 되겠나.”

    석주가 도끼 위로 탁하게 비치는 자신의 모습을 보며 쯧, 혀를 찼다. 그리고 그것을 위로 쳐들었다. 기헌이 힉- 하고 겁을 집어먹으며 바락바락 고함을 내질렀다. 피떡이 된 얼굴이 해괴하게 구겨졌다가 펴지길 반복했다.

    “밖에 누구 없어? 어! 누구 없냐고!”

    “없어. 다 뒤지고.”

    석주가 씨익 보기 좋게 웃었다. 그러고는 퍼걱! 기헌의 팔을 도끼로 내리찍었다.

    석주가 붉게 물든 손도끼를 책상에 내려놓았다. 책상 모서리를 타고 피가 질질 쏟아져 내렸다. 피가 흐르고 흐르는 그 길 끝에는 형체를 알아보기 힘든 신체 일부들이 나뒹굴고 있었다. 손가락도 있었고, 팔목도 있었고, 팔꿈치와 팔뚝도 있었으며, 귀와 어디 붙어 있었는지 모를 살점도 있었다. 모두 석주가 기헌의 몸에서 떼어 낸 것들이었다.

    한 번에 팔뚝을 자르면 재미없으니, 그 고통이 너무 단순하니, 손가락부터 팔뚝까지 조금씩 조금씩 차근차근 잘라 간 것이다.

    석주가 반쯤 남은 시가를 기헌의 피 위로 떨어트렸다. 그리고 뺨에 튄 피를 손등으로 대충 닦아 냈다. 그러자 덕재가 쑥 손수건을 내밀었다. 석주가 피식 웃으며 그것을 받아 얼굴을 문댔다.

    얼굴을 말끔하게 만든 석주가 기헌을 쳐다봤다. 팔 하나가 완전히 사라지다시피 한 그는 의자에 축 늘어져 있었다. 팔꿈치를 자를 때만 해도 발광을 하더니, 팔뚝을 자르고 귀를 자를 때쯤엔 모든 걸 포기한 사람처럼 넋 놓고 꿈틀거리기만 했다.

    그의 고통을 위해 부러 공들여 팔을 자르던 석주에게는 퍽 힘 빠지는 행동이었다.

    손에 묻은 피까지 닦은 석주가 재킷에서 담배를 꺼내 물었다. 불을 붙이고, 크게 연기를 빨아당기자 익숙한 맛이 입천장을 간질였다.

    석주가 연거푸 연기를 빨며 자신의 옆구리를 꾹 눌렀다가 뗐다. 피가 흠뻑 배어 나왔다. 기껏 닦은 피가 도루묵이 되는 순간이었다. 기헌의 팔을 자르느라 조금 흥분했더니 상처가 벌어진 듯했다.

    석주가 쯧, 혀를 찼다. 그게 다였다. 아프다고 방정을 떨지도 않았고, 치료하겠다고 방을 박차고 나가지도 않았다. 덕재가 걱정 어린 눈으로 보는 게 느껴졌지만 모른 체했다.

    그가 잠시 내려놓았던 손도끼를 다시 들었다. 다음번에는 다리를 썰고, 그다음엔 산 채로 몸을 반으로 동강 내 줄 생각이었다.

    그가 피와 살점이 묻은 도끼를 털어 내는데.

    “강 사장. 나도 담배 하나 주게.”

    피를 잔뜩 뒤집어쓴 기헌이 읊조리듯 말했다. 그 말에 석주는 곧장 조소를 내놓았다.

    “지랄.”

    그 짧은 대답에 태회파의 조직원들이 동시에 짧은 웃음을 터트렸다. 기헌의 낯에서 표정이 씻겨 내려갔다. 죽어 가는 와중에도 자존심은 상하는 모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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