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쌍피-111화 (111/261)
  • 111화

    석주가 총 방아쇠를 검지로 쓰다듬는데, 기헌이 큰 목소리로 물어 왔다. 멀리 있는지라 목소리가 탁하게 들렸다.

    “근데 강 사장은 왜 식구들이 그것뿐이야? 반도 안 온 거 같네?”

    기헌이 킥킥거리며 웃었다. 아무리 많이 쳐 줘도 중호파 인원의 반이 채 안 될 것 같은 인원에 웃음이 절로 나왔다. 태회파가 싸움을 그렇게 잘한다더라, 하는 소문은 귀가 닳도록 들었지만 그렇다고 반 정도 되는 세력에 주저앉을 만큼 중호파는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기헌이 이른 승리를 가늠하며 입꼬리를 당기는데. 석주가 칼 손잡이 뒤축으로 자신의 이마를 긁으며 말했다.

    “아, 몇은 박 사장님 댁으로 갔습니다.”

    그 말에 기헌의 낯에서 표정이 씻겨 내려갔다. 난간을 쥔 그의 손에 힘이 꾹 들어갔다.

    “집? 음……. 강 사장. 양아치처럼 굴지 마.”

    “천성이 양아친데, 이제 와 양아치처럼 못 굴 건 또 뭡니까.”

    석주가 어깨를 으쓱거렸다. 그 말에 기헌이 주먹으로 난간을 쿵 내리쳤다. 그리고 검지로 석주의 머리를 겨누며 말을 쐈다.

    “몇 명을 보냈대도 내 집을 뚫을 순 없을 걸세. 내 가족을 건드릴 수도 없을 거야.”

    “글쎄요. 사람보다 폭탄을 더 많이 보냈는데. 어떻게든 되지 않겠습니까?”

    “…….”

    “선물로 주신 칼에 대한 답례로 섭섭지 않게, 넉넉히 보냈으니 기대하셔도 좋을 겁니다.”

    “이런…… 씨발…….”

    기헌이 까드득 이를 갈았다. 그가 주변에 서 있던 조직원들에게 무어라 무어라 명령했다. 아마 얼른 집에 전화해 봐라, 집으로 가 봐라, 뭐 그런 말이 아닌가 싶었다. 조직원 몇이 바쁘게 어딘가로 사라졌다.

    적나라하게 드러난 기헌의 불안에 석주가 빙긋 웃었다.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박 사장님이 제 집을 휘저어 놓은 만큼만 태울 테니 너무 걱정하진 마십시오.”

    “…….”

    “조금 더 탈 수도 있고, 누군가가 예상치 못하게 죽을 수도 있지만, 그건 제 의도가 아니라 사고니까 너무 괘념치 마시고.”

    “너 이 새끼…….”

    기헌이 악어가죽이 번들거리는 구두로 쾅쾅 바닥을 찼다. 가든 식당의 폭발로 얼굴 반에 화상을 입어도 타격 없다는 듯 히죽거리더니, 가족을 건든다는 말은 아무리 그라도 그냥 넘길 수가 없는 모양이었다.

    기헌이 곁에 선 조직원들에게 무어라 속닥거렸다. 그러자 조직원들이 총을 추켜들었다. 1층에 있던 이들도 눈치껏 무기를 들었다. 총구 수십 개가 석주를 향해 겨누어졌다.

    그러나 석주를 비롯한 태회파는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다. 인원도, 위치적 우위도 중호파가 선점하고 있는데. 이대로 총이 난사되면 태회파가 몰살당할 게 뻔한데도 말이다.

    담담한 표정의 석주가 머리를 슬쩍 옆으로 돌리며 입술을 달싹였다.

    “덕재야.”

    “예.”

    “다 봤냐.”

    “예, 형님.”

    “그래.”

    석주가 만족스럽다는 듯 웃었다. 그의 턱이 두 번, 위에서 아래로 까딱였다. 그 순간. 태회파 조직원 몇몇이 두루마기 속에 품고 있던 것들을 앞을 향해 힘껏 던졌다.

    “폭탄이다!”

    라는 말과 함께. 둥그렇고 길쭉한 모양의 폭탄은 흡사 부탄가스 같았다. 2층이고 1층이고 분별없이 던져지는 그것에 중호파 조직원들이 본인도 모르게 한 발 뒤로 물러섰다.

    “포, 폭탄이다!”

    “폭탄이다! 엎드려!”

    “으아아!”

    중호파 조직원들은 아비규환이 됐다. 책상 아래로, 테이블 아래로, 소파 뒤로, 기둥 뒤로 숨어들었다. 누군가는 몸을 욱여넣을 곳이 없어 바닥에 냅다 엎드리기도 했다.

    그런 그들 사이로 동그란 철제 폭탄이 데구루루 굴러갔다. 조직원들이 폭발에 대비하며 겁에 질린 헛숨을 크게 삼키는 그때.

    푸쉬쉭-

    폭탄에서 희뿌연 연기가 새어 나오기 시작했다.

    “……어?”

    “뭐야?”

    중호파 조직원들이 당황스러운 낯으로 폭탄을 쳐다봤다. 그리고 뒤늦게 그것이 폭탄이 아니라 연막탄임을 깨달았다.

    조직원들이 웅성거렸다. 그러다 누구는 기헌을 보기 위해 고개를 위로 들었고, 또 누구는 본인들을 놀린 태회파를 응징하기 위해 전방을 응시하는데. 그땐 이미 수십 개의 연막탄에서 쏟아져 나온 연기가 시야를 희뿌옇게 죽인 후였다.

    그 연기가 어찌나 맵고 짙은지. 옆에 있던 동료의 얼굴도 보이지 않았다. 본인이 겨눈 총 끝이 누구에게로 향해 있는지도 알 수 없었다. 마치 안개로 가득한 세상에 갇힌 듯한 기분이었다.

    “이것들 어디 있어!”

    “옆 사람 확인해!”

    “창문 열어, 창문!”

    “차, 창문 열었습니다, 형님!”

    “기헌이 형님, 괜찮습니까?”

    중호파 조직원들이 안개 속으로 손을 휘저으며 본인의, 또 동료의, 또 태회파의 행방을 찾으려 했다. 그리고 그 무렵. 어디선가 펄럭거리며 깃발이 흔들리는 듯한 소리가 나더니.

    타다다다다다-

    투두두두두두두-

    괴상한 소리가 났다. 분명 총소리 같은데, 그 소리가 너무 크고 빨랐다.

    기관총이었다. 전쟁에나 쓰이는, 그 기관총 말이다.

    중호파 조직원들은 깊은 밤, 천둥소리를 들은 아이처럼 어깨를 움츠렸다.

    성인 남성의 검지만 한 총알이 비처럼 쏟아졌다. 그것은 두툼한 소파를 꿰뚫었고, 책상을 박살 냈고, 하물며 돌로 만들어진 기둥도 으스러트렸다. 물렁한 사람의 육신으로는 막아낼 수 없는 총알이었다.

    “큭…….”

    “어억-.”

    “컥, 커걱…….”

    하얀 안개를 꿰뚫고 직선으로 달려오는 총알에 중호파 조직원들은 추풍낙엽처럼 쓰러졌다. 빗발치는 총알은 스치기만 해도 신체에 주먹만 한 구멍이 났다. 머리를 맞으면 머리가 터졌고, 가슴에 맞으면 오장육부가 녹아내렸다.

    죽은 몸뚱이가, 잘린 사지가, 그리고 피가, 내장이 바닥으로 철퍼덕철퍼덕 물기 어린 소리를 내며 떨어졌다. 당황한 중호파 조직원들은 조악한 권총 따위로 안개 너머를 난사하다, 같은 편을 죽이기도 했다.

    투두두두두두-

    총소리는 계속해서 이어졌다. 그 뒤로 쩔그렁쩔그렁하며 동전 수백 개가 떨어지는 소리도 들려왔다.

    시간이 조금 지나자 연막탄의 연기가 창문을 통해 빠져나갔다. 이제 중호파 조직원들은 본인이 서 있는 바닥이나, 곁에 있는 동료의 얼굴을 볼 수 있었다.

    근데 그다지 기쁘지 않았다.

    동료가 어떤 꼴로 죽어 있는지 훤히 보였기 때문이다. 얼굴이 벌집이 되거나, 몸이 벌집이 되어 맥없이 축 늘어져 있는 게 그렇게 끔찍할 수가 없었다.

    그 꼴에 놀라 헛숨을 삼키면, 뒤에 있던 동료가 머리가 터지며 쓰러졌다. 피가 희멀건 연기를 뚫고 하늘로 솟구쳤다가, 비처럼 쏴아아- 하고 떨어졌다.

    “히익…….”

    중호파 조직원 하나가 바닥에 엎드리고는 몸을 옹송그렸다. 손에 누가 떨어트렸는지 모를 칼과 권총이 채였다. 지금 이 순간, 하등 쓸모없는 무기였다.

    가히 지옥에 떨어진 기분이었다. 진심으로 두려웠다. 건장한 남자로 태어나 항상 무언갈 제압하고, 제지하고, 억누르고, 지배해 왔었는데. 중호파라는 거대 조직에 들어와 숱한 싸움을 했지만, 패배한 적이 없었는데. 피와 시체를 밟고 선 승리자는 항상 자신들이었는데.

    이런 상황은 처음이었다. 어이가 없었다. 제대로 싸워 보지도 못하고 지다니. 이토록 압도적인 차이라니. 죽음과 패배에 대한 공포가 전신에 스몄다. 뻣뻣하게 굳은 사지와, 눈가까지 인 소름에 몸이 삐걱거리며 더디게 움직였다.

    그때.

    두두두두-

    두려움에 떠는 조직원에게 총알이 날아왔다. 그 총알은 옆구리부터 시작해 일직선으로 목까지 열댓 개가 주르륵 박혔다.

    털썩. 조직원이 쓰러졌다. 허어억, 하는 마지막 숨과 함께 피가 역류했다. 그와 비슷한 꼴로 수십이 죽어 나갔다.

    지옥 같은 시간이 얼마나 지났을까. 연막탄의 연기가 사그라들 때쯤. 기관총의 총소리가 멈추었다. 덕재가 기관총 손잡이를 놓았다. 성인 남성보다 몇 배는 무거운 기관총을 받치고 있던 조직원 둘 역시 그것을 내려놓았다.

    태회파가 가져온 기관총은 총 두 대였다. 두루마기 뒤로 숨겨 들어왔고, 석주가 물은 ‘다 봤냐’의 뜻은 시야가 가려지기 전, 중호파 이들의 위치를 모두 확인했냐는 물음이었다.

    “…….”

    칼을 손가락으로 옮겨 쥔 석주가 담배를 꺼내 물었다. 덕재가 얼른 불을 붙였다. 석주가 연기를 깊이 들이마시며 구둣발에 밟히는 탄피를 툭 찼다.

    기관총은 약 공장을 지키기 위해 큰돈을 주고 산 거였다. 한국에선 도무지 구할 수 없어 약을 보내는 미국 거래처에다 긴히 부탁했다. 새로 지은 공장은 아예 접근조차 못 하게 하겠다는 마음으로 산 거였고, 이렇게 쓸 생각은 없었다.

    뭐랄까. 이런 무기를 쓰면 너무 재미가 없지 않나. 깡패들의 싸움은 이런 게 아닌데. 칼로 쑤시고, 적의 피가 제 얼굴에 튀고, 그악스럽게 죽어 가는 표정을 보며 승리를 체감해야 하는데. 모름지기 그게 진정한 싸움인데. 지금 이 광경은 싸움이 아니라 학살에 가까웠다.

    그러나 어쩌겠나. 기헌이 이런 일을 자꾸 자초하는 것을.

    석주가 쯧 혀를 차며 담배 연기를 내뿜었다. 그리고 기헌의 행방을 찾아 느릿하게 눈동자를 굴리는데.

    탕!

    총알 하나가 석주의 귓바퀴를 스쳐 갔다. 총알이 핑- 하며 공기를 베는 소리가 또렷하게 들려왔다.

    태회파 모두의 시선이 총소리의 시발지를 향해 모였다. 걸레짝이 되어 뒤집힌 소파 옆. 오른쪽 가슴에 총구멍이 난 남자 하나가 부들부들 떨리는 손으로 총을 들고 있었다.

    “…….”

    석주가 헛웃음을 흘렸다. 그렇게 발악하지 않아도 곧 죽을 터인데. 누구 하나 살려 보낼 생각이 없거늘. 그래도 그새 어디로 숨어든 기헌에 비하면 용감한 이였다.

    석주가 총을 들었다. 그의 검지가 가볍게 방아쇠를 당겼다.

    탕! 소리와 함께 남자의 미간에 작으나 깊은 구멍이 생겨났다. 덜커덕. 그가 들고 있던 총이 바닥에 떨어졌다.

    그 총소리를 시작으로 태회파 조직원들이 으아아아, 소리를 내며 앞으로 달려갔다. 운 좋게 살아남은 이들의 숨통을 끊을 차례였다. 그들이 입은 두루마기가 묵직하게 펄럭거렸다.

    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