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쌍피-110화 (110/261)

110화

석주가 우뚝 굳었다. 왼쪽 골반 위가 삽시간에 뜨거워졌다. 피부를 가르고, 근육을 찢고, 내장 사이로 깊이 박힌 흉기가 몹시 선연히 느껴졌다.

“이 악귀 같은 놈!”

“…….”

“네가 결국…… 네가 기어코, 네가…… 네가, 아진이를 잡아먹었구나.”

흉기의 주인은 볼이 홀쭉하게 팬 꽃님이었다. 새 병원복을 입은 그녀는 손목에 링거 없이 줄만 단 채였다. 제대로 서지 못해 분노 어린 말을 읊조리면서도 좌우로 휘청거렸고, 맨발은 춤추듯 바닥 여기저기를 짚어 댔다.

“…….”

석주가 파랗게 질려서 부들부들 떨리는 그녀를 보다, 고개를 아래로 내렸다. 굵직한 유리 조각이 보였다. 대충 가늠하기로서니, 거울이나 창문 같은 걸 깬 게 아닌가 싶었다.

피가 후두둑 아래로 쏟아졌다. 대부분은 석주의 피였고, 드문드문 꽃님의 피도 섞여 있었다. 유리를 어찌나 세게 움켜쥐고 있는지, 손바닥이 죄 째진 상태였다.

석주가 다시 꽃님을 쳐다봤다. 숨긴다고 숨겼는데, 아진의 소식을 들은 모양이었다. 어쩌면 그 신비로운 능력으로 진실을 알았을지도 모르고.

그가 마른침을 삼켰다. 배에 깊숙이 찔린 유리를 통해 그녀의 떨림과 분노가 고스란히 스며 왔다.

석주의 커다란 덩치 탓에 상황을 모르고 있다, 뒤늦게 알아챈 조직원들이 험상궂게 꽃님을 떼어 냈다. 그녀가 밀려나고, 석주의 배에 꽂힌 유리 조각만 남았다.

“뭐야, 아줌마! 미쳤어?”

“이 아지매가 돌았나! 뒤지고 싶어?”

“지금 누구한테 칼빵을 놓은 거야!”

조직원 하나가 꽃님을 후려칠 듯 손을 올렸다. “하지 마.” 석주가 그의 목덜미를 뒤로 당겼다. 조직원들은 씩씩거리면서도 명령에 복종했다.

“으…….”

꽃님은 홀로 서지 못하고 벽에 털썩 기댔다. 그마저도 얼마 버티지 못하고 아래로 스르륵 쓰러졌다. 그녀가 아이처럼 손발을 축 늘어트렸다. 그러고는 석주를 노려보며 악을 지르기 시작했다.

“아진이가 뭘 잘못했어! 어? 아진이가 뭘 했어! 이 등신 같은 놈! 천벌 받을 놈! 육시랄 놈!”

“…….”

“그 집에 들이는 게 아니었는데……. 진작 내보냈어야 했는데, 거기 그렇게 혼자 두는 게 아니었는데, 내가, 내가…… 아프면 안 됐는데. 아진이 곁에 있었어야 했는데. 내가 조금 더 일찍 알았어야 했는데. 좋다고 웃는 걸 보고만 있었으면 안 됐는데…….”

꽃님이 주먹으로 자신의 가슴을 콱콱 후려쳤다. 수술한 지 몇 시간이나 됐다고 또 상처를 헤집으려는 모양새였다. 석주가 그녀의 앞에 한쪽 무릎을 굽히고 앉았다. 그 후 꽃님의 손목을 억세게 움켜쥐었다.

“놔, 이 개새끼야! 놔!”

꽃님이 손을 뒤틀었다. 허나 석주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 꽃님은 발작하듯 상체를 좌우로 퍼덕거리기 시작했다. 하지만 석주는 고집스레 그녀의 손목을 쥐고 있었다. 그러다 그녀를 자신 쪽으로 확 끌고 왔다. 그리고 특유의 낮은 음성으로 말했다.

“아줌마는 아무 잘못도 안 했어.”

“…….”

“다 내 잘못이지.”

꽃님이 눈을 부릅떴다. 그 서슬 퍼런 눈동자가 그래, 네 잘못이지. 다 네 잘못이지. 그렇게 되받아치는 것 같았다. 석주는 그 비난을 피하지 않은 채 그녀를 추슬렀다.

“아진이 안 죽었습니다. 안 죽을 거예요. 내가 반드시 살릴 겁니다.”

“…….”

“그러니 아줌마도 살아요. 당신 없으면, 아진이는 이 세상에 혼자잖아.”

“…….”

“아진이가 제일 두려워하는 게 그거잖아. 혼자인 거. 그러니까 아줌마가 아진이 옆에 있어 줘야 하지 않겠습니까.”

“…….”

“자책은 어쩔 수 없지만, 자해는 안 됩니다. 아줌마를 위해서가 아니라, 아진이를 위해서.”

그 말에 꽃님의 움직임이 우뚝 멎었다. 석주는 잠시간 그녀를 보다, 천천히 손목을 놔주었다. 꽃님이 손목을 힘없이 아래로 툭 떨어트렸다. 다시 본인의 가슴을 헤집지는 않을 것 같았다.

석주가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그렇게 큰 움직임도 아니었는데, 옆구리에 꽂힌 유리가 꿈틀거리며 석주에게 더 큰 상처를 내고자 발악했다.

석주가 코로 크게 숨을 들이마시며 그것을 잡았다. 회칼이나, 식칼이나, 그도 아니면 못 박힌 각목 따위에는 수없이 찔려 봤는데. 유리에 찔리는 건 또 처음이다. 거칠게 모난 파편이 피부를 우두둑우두둑 잡아 째는 게 자못 새로웠다.

“…….”

석주는 신음 한 자락 흘리지 않고 유리를 뽑아냈다. 쩍, 하는 소리와 함께 유리에 붙어 있던 피부가 벌어졌다. 그리고 병원 특유의 하얗고 말간 바닥 위로 피가 차르르 쏟아져 내렸다.

챙그랑!

석주가 유리를 꽃님의 발치로 던졌다. 유리를 흠뻑 적신 석주의 뜨거운 피가 덜렁 드러난 꽃님의 발등에 튀었다. 꽃님이 그것을 멀거니 쳐다봤다.

“날 죽이고 싶은 마음은 이해합니다만, 아직은 안 됩니다. 내가 처리할 일이 있어서.”

“…….”

“다 처리하고 나면, 당신과 아진이가 온전히 평화로워질 수 있을 때가 오면, 그때 다시 찔러요. 기껍게 난도질당해 줄 테니까.”

“…….”

“지금은 안 돼.”

내가 저질러 놓은 비극을 쓸고 닦아야 할 의무가 있어.

석주가 옆구리를 꽉 눌렀다. 피가 울컥울컥 쏟아져 나왔다. 분노와 원망이 된통 실린 공격이라 그런가. 어째 피가 더 많이 나는 것 같다.

“형님. 피가 많이 납니다. 치료부터 하시죠.”

“의사 불러오겠습니다.”

“됐어.”

석주는 조직원들의 걱정을 가볍게 무시했다. 미련하게 상처를 손으로 막은 그가 복도를 걷기 시작했다. 그의 손가락을 타고 흐른 피가 뚝뚝 보기 싫은 길을 만들었다. 주머니에 아진의 피가 묻은 수건이 있었으나, 감히 그것으로 지혈할 생각은 하지 않았다. 그냥 흐르는 대로 두었다.

덕재를 비롯한 조직원들이 걱정 어린 얼굴로 그를 뒤따랐다. 석주가 덕재를 향해 말했다.

“꽃님이 아줌마 병실 데려다주고, 손 치료하게 해. 명진이랑 아진이 병실마다 애들 10명씩 두고.”

“예.”

“그리고 총.”

“예?”

“총 준비해.”

내가 기어코 박기헌 그자의 목을 썰어야겠다.

아귀다툼 [각자 자기의 욕심을 채우고자 서로 헐뜯고 기를 쓰며 다투는 일]*

[중호 물산 회사]

늦은 밤. 검은 차 수십 대가 어둑한 골목에 멈춰 섰다. 도로 맞은편, 중호 물산이라는 간판이 걸린 건물이 보였다. 중호파의 회사였다.

중호파는 아주 많은 회사와 업체를 관리하고 있다. 마약을 만드나, 이름은 철강 회사인 공장도 있고, 카바레도 있고, 술집에 풍속점에 도박장에 셀 수 없이 많다.

개중 대표를 뽑으라면, 기헌이 상주하고 있는 이 중호 물산이었다. 중호파와 관련한 모든 돈이 모이고, 다시 나가고, 모이는 곳이었다. 힘도 그랬고, 사람도 그랬다. 다 이 물산 회사를 중심으로 모였다가 퍼졌다.

석주는 크고 작은 업장들을 모두 건너뛰고 곧장 이곳으로 왔다. 구질구질하고 귀찮게 겉돌며 서로를 간 보는 시간은 끝났다. 기헌이 그렇게 원하던 게 석주가 먼저 ‘방문’하는 거였고, 석주는 지금. 그 바람을 들어주러 친히 왔다.

“뭐야?”

검은 두루마기를 펄럭이는 수십 명의 장정에 문 앞을 지키던 남자가 뒷걸음질을 쳤다. 그러다 한 박자 늦게 주머니에서 총인지 칼인지 모를 것을 꺼내려는데.

푸걱.

석주가 손잡이에 붕대가 두툼하게 감긴 회칼로 남자의 목젖을 가로로 콱 찔렀다. 그리고 그대로 왼쪽으로 쭉 밀었다. 과격한 힘에 남자의 목이 반쯤 잘려 나갔다. 털썩 쓰러진 그는 피를 폭포처럼 쏟으며 꿈틀꿈틀 경련하다 눈을 뜬 채로 죽었다.

덕재가 그의 주머니를 뒤졌다. 총이 나왔다.

“총입니다, 형님.”

“……그래.”

중호파는 총을 잘 쓰지 않는다. 그런데 문지기가 총을 가지고 있었다는 건, 누군가가 올 걸 대비하고 있었다는 뜻이었다. 즉, 기헌이 석주가 올 걸 알고 있다는 것이다.

석주가 뺨에 튄 피를 손등으로 대충 닦아 냈다. 그리고 영업 종료 팻말이 걸린 양쪽 문을 손수 열었다.

묵직한 문이 끼이익 소리를 내며 열렸다. 문 위에 달린 종이 간드러지게 딸랑거렸다.

환한 금빛이 쏟아졌다. 영업이 끝났다더니, 천장에 주렁주렁 달린 형광등이 빛을 환하게 발산하고 있었다. 사람도 많았다. 모두 남자들이었고, 책상과 소파에 앉아 있거나, 벽에 기대 있었다. 손에는 보란 듯이 칼과 총을 들고 있었다. 히죽히죽 웃는 게 방문객을 기다린 모양이었다.

모두 입을 다물고 있어 고요했으나, 바쁘게 움직이는 눈알은 소란스럽기 그지없었다.

한 손에 총을, 한 손엔 회칼을 든 석주가 뚜벅뚜벅 안으로 들어갔다. 파도 무늬가 은근히 새겨진 검은색 두루마기가 묵직하게 휘날렸다.

석주는 찬찬히 안을 둘러보았다. 기헌을 찾는 거였다.

그를 찾는 건 어렵지 않았다. 2층 복도 난간에 기대 있었기 때문이다. 두툼한 시가를 문 그가 체통 없이 두 팔을 마구 흔들어 댔다.

“이야, 드디어 강 사장이 날 먼저 찾아와 주는 날이 왔네요. 응?”

시가를 물고 있어 발음이 샜는데, 그 꼴이 묘하게 기헌과 잘 어울렸다. 멍청해 보여서. 석주가 입꼬리를 당기며 차게 웃었다.

“예. 오래 기다리게 해서 죄송합니다. 제가 무지해서, 깨우칠 게 많더라고요. 그래서 좀 늦었습니다.”

“아냐, 아냐. 괜찮아요. 이렇게 왔으면 됐지요, 뭐. 안 그래도 오늘쯤 오겠구나, 싶었어. 내가 거-나하게 환영해 주려고 식구들을 잔뜩 불러 놨어요.”

기헌이 팔을 크게 휘둘러 회사 안을 소개했다. 석주가 그 손짓을 따라 그의 식구들을 하나하나 살폈다.

익숙한 얼굴이 몇몇 있었다. 중호파 내부에서 직책이 꽤 높은 이들과, 힘이 좋기로 유명한 이들, 또는 머리가 좋기로 알아주는 이들 등등이었다.

석주가 만족스레 미소 지었다. 이렇게 한곳에 모여서 반겨 주니 참으로 반갑고 고마웠다. 남은 쥐새끼를 잡아 죽이기 위해 발품을 팔 필요가 없지 않나.

이곳에 있는 이는 한 명도 살아 나가지 못할 것이다. 중호파의 주축이 모두 죽으면 조직 역시 자연스레 와해하겠지.

석주가 총과 칼을 꾹 힘주어 움켜쥐었다.

오늘 밤. 이 짧으면서도 긴 밤에, 해가 뜨기 전에, 모든 걸 끝낼 것이다.

그렇게 모든 장애물을 제거하고, 모나게 튀어나온 못을 빼내고, 구정물을 닦고, 악취를 솎아 낸 후. 경건한 마음으로 아진이 내리는 벌을 받을 생각이었다.

참고 문헌

*아귀다툼, 표준국어대사전, 국립국어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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