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9화
“아진아…….”
아진에게로 다가간 석주가 털썩 무릎을 꿇고 주저앉았다. 그리고 맥없이 늘어져 있는 그를 조심히 보듬어 안았다. 마른 몸이 파도에 휩쓸린 모래처럼 석주의 품으로 흘러들어 왔다.
매번 싫다, 싫다 밀어내더니. 오늘은 아무런 말도 하지 않는다. 뙤약볕에 지나치게 익어 버린 벼처럼 늘어진 팔은 움찔거림조차 없었다.
석주가 아진을 가만히 내려다보았다. 아진은 하얬다. 원래도 신기할 정도로 흰 피부를 가지고 있었지만, 지금처럼 하얀 건 처음 봤다. 이대로 두면 점점 더 희어지다가 종국엔 밤하늘에 박힌 별이 될 것 같았다.
“아진아…….”
처음 봤을 때부터 그랬다. 밤하늘이 사람이 된 게 아닌가, 싶었는데. 그 까맣고 밝은 신비로운 곳에서 살다, 인간 세상이 궁금해서 내려온 게 아닌가. 그러다 감사하게도 제 눈에 띄어 준 게 아닌가. 그리 생각했는데.
아진이 다시 별이 되려는 모양이었다. 그리고 그렇게 별이 되어 사라지면, 저는 결코 그에게 다시 닿을 수 없을 것이다. 손조차 댈 수 없겠지. 까마득한 먼 거리에 있는 그를 올려다보고 또 올려다보며 비겁하게 사죄를 읊조리는 게 최선일 터였다.
그때, 석주의 머리칼에 뭉쳐 있던 빗물이 뚝- 하고 아진의 눈가로 떨어졌다. 그것은 아진의 눈물처럼 그의 뺨을 타고 흐르려 했다. 석주가 얼른, 그러나 조심히 그것을 닦아 냈다.
“아진아…….”
석주는 아진을 안고 이유 없이 그를 불렀다. 할 줄 아는 게 없는 철부지 애가 된 듯했다. 아진이 이렇게 누워 있는데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다. 뇌가 바윗덩이 같았다. 무겁기만 하고 생각은 하지 못했다. 머리가 마냥 아진 쪽으로 고꾸라졌다.
석주의 시야가 흐려졌다. 사물이 어그러지고, 아진의 얼굴이 뿌옇게 번질 때였다. 누군가가 석주를 마구 흔들었다.
“형님!”
“…….”
“석주 형님! 열쇠 어디 있습니까!”
“…….”
“빨리 움직여야 합니다. 빨리 가야 살릴 수 있습니다.”
그 소리에 멍하니 있던 석주가 수면 위로 올라온 듯 헛숨을 크게 삼키며 정신을 차렸다.
“살릴 수…… 있다고?”
그가 조직원을 멍하니 올려다보며 물었다. ……아진이가 살아 있어? 그가 다시 아진을 쳐다보는데. 조직원이 쿵쿵 발을 구르며 소리쳤다.
“아, 형님! 빨랑요! 열쇠!”
그 말에 석주가 눈을 부릅떴다. 그리고 비에 젖어 무거운 두루마기를 헤치고, 주머니에서 열쇠를 찾아냈다. 여러 열쇠 사이에 유달리 하얀 것이 있었다. 최근에 찍은 족쇄 열쇠였다.
석주가 부들부들 떨리는 손으로 그것을 잡는데. 뒤에 서 있던 덕재가 열쇠를 채 갔다. 그리고 아진의 발목을 물고 있던 족쇄를 풀기 시작했다.
석주가 호흡을 끊어 먹었다. 눈을 질끈 감았다가 뜬 그가 아진의 코로 귀를 가져갔다. 따스한 숨결이 귓바퀴를 간질이는 게 느껴졌다. 미약하긴 하지만 분명 아진의 숨결이었다.
석주가 아진의 손목에 묶인 수건을 더욱 세게 싸매며 말했다.
“나가서 차 준비해. 바로 병원으로 간다. 병원에 미리 수술 준비하라고 전화 넣고, 피. 피도 필요하겠다.”
“예, 형님.”
조직원 몇이 우르르 바깥으로 뛰쳐나갔다. 석주가 곁에 서 있던 종에게 이불을 가져오라 명했다. 종이 농을 뒤져 두툼한 이불을 가져왔다. 석주는 그것에다 아진을 조심히 쌌다. 그는 추위를 많이 타니까. 오랜만에 바깥에 나가는 건데, 바깥 추위에 놀랄지도 몰랐다.
때마침 아진의 발목에서 달카닥, 하며 족쇄가 떨어져 나갔다. 석주가 어젯밤에 비해 한층 더 가벼워진 아진을 안아 들었다. 그리고 바쁘게 방을 나섰다. 그는 복도를 가로지르고 할 것 없이 마루를 통해 곧장 마당으로 뛰쳐나갔다.
마루에서 댓돌로, 댓돌에서 마당으로 내려올 때 품에 안긴 아진이 덜커덕거릴까, 그를 바짝 껴안았다. 행여 아진이 비를 맞으면 어쩌나 싶어 어깨로 그의 얼굴을 가리기도 했다.
조직원이 차 문을 열고 석주를 기다리고 있었다. 석주가 퍼뜩 차 안으로 뛰쳐 들어갔다. 차는 바로 출발했다. 창밖으로 비에 젖은 세상이 빠르게 스쳐 갔다. 서울 시내가 가까워질 때까지는 흙길이라 차가 휘청휘청 덜컹덜컹 난리였다. 비가 와서 땅이 무른 터라 그 덜컹거림이 곱절이었다.
아진을 꼭 껴안은 석주가 이불을 들치고 그의 얼굴을 살폈다. 차내가 어둑한데도 아진의 얼굴은 참으로 또렷이 보였다. 퉁퉁 부은 눈두덩이나, 짓무른 눈가나, 터진 입술이나, 멍이 가시지 않은 뺨과 생기를 잃은 머리칼 같은 게 빠짐없이 보였다.
하나하나 모두 석주가 저지른 죄였다.
석주가 아진의 뺨에 자신의 뺨을 갖다 댔다.
“아진아……. 미안하다…….”
값싼 사과가 빗소리로 가득 찬 차내에 고요히 울려 퍼졌다. 석주는 그 사과가 부질없음을 알았지만, 달리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미안하다. 미안해…….”
그가 아진의 이마에 꾹 입술을 눌렀다. 평소보다 차가운 아진의 체온이 뜨거운 입술을 통해 느껴졌다. 그 한기에 제 몸이 다 어는 것 같았다. 이전엔 그와 닿아 있으면 폭포가 쏟아지는 청량하고 시원한 숲길을 걷고 있는 듯한 기분이었는데. 지금은 뼈가 시릴 정도로 추웠다.
아진이 생기를 잃어 가고 있어서 그랬다.
석주가 아진의 머리를 조심히 쓸어 넘겼다. 그러다 꼴사납게, 주제도 모르고 눈물 한 방울을 떨어트리고야 말았다. 한 방울은 금세 가랑비가 되고, 소나기가 되더니 장대비가 됐다.
아진의 목덜미에 얼굴을 욱여넣은 석주가 속절없이 울음을 터트렸다. 뜨겁게 쏟아지는 눈물을 막지 않았다. 혹 이 비겁한 눈물로 아진이 조금이나마 따뜻해질까, 하는 기대 때문이었다.
그러나 아진은 계속해서 차가워지기만 했다. 차가 서울 시내에 접어들 때까지. 병원에 도착할 때까지. 병원 침대에 누워 수술실로 들어갈 때까지. 계속 차가워졌다.
굳게 닫힌 수술실 문을 보던 석주가 팔을 축 늘어트렸다. 그렇게 넋을 잃고 멍하니 서 있다가, 벽에 기대 주르륵 쓰러졌다. 비에 젖은 몸이 무거워 도무지 서 있을 수가 없었다.
그의 손에는 수술실에 들어가기 직전, 의사가 풀어낸 수건이 들려 있었다. 피가 콸콸 쏟아지는 아진의 손목을 감싸고 있던 그 수건이었다.
붉게 얼룩진 수건을 바라보던 석주가 그곳에 얼굴을 파묻었다. 아진의 냄새가 코를 찔렀다. 그 냄새에, 벌써부터 그리운 그의 냄새에 억누르던 울음을 다시 터트리고야 말았다. 피에 젖은 수건을 움켜쥔 그의 손이 파르르 떨렸다.
이건 비극이었다. 이순은 본인과 기헌이 창조한 극이라 했지만, 아니다. 제가 창조한 비극이었다.
처참한 비극이다.
제가 아진에게 떠넘긴 비극이며,
끝내 죄 없는 아진이 피를 쏟은 비극이며,
기어코 제가 아진을 잃은 참극이었다.
* * *
“집에 조기가 배달이 왔는데, 석주 형님이 보냈다 카더랍니다. 제일 크고 실한 놈을 집으면서 그걸 꼭 아진이한테 먹여야 한다고 당부했답니다. 조기가 묵직하니 실한 게 그런갑다, 해서 구워가 아진이 점심 밥상에 올렸다대요. 조기 배달한 놈은 찾고 있는데 뭐 어떻게 생겼는지, 누군지 기억도 잘 못 해가 찾는 게 쉽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
“형님, 형님. 이순이가…… 죽었습니다. 금 사장 집이 통째로 불탔답니다. 당연히 중호파 박 사장이 질렀구나, 했는데 경찰들 말로는 이순이 가가 회까닥 돌아서 지 손으로 지른 것 같다 캅니다.”
“비가 이렇게 내리는데, 집이 아주 바짝 탔다고 경찰들이 신기해하더라고요. 진짜 무서운 년 아닙니까?”
“아진이는 의사가 쪼매 더 지켜봐야 알 것 같다 캅니다. 피를 억수로 흘렸는데 몸이 너무…… 안 좋아가, 낫는 데 오래 걸릴 거라 카더라고요. 죄송합니다, 형님.”
와르르 쏟아지는 말들에 뇌가 다 지끈거렸다. 무엇 하나 반가운 소식이 없었다. 그러나 석주는 눈살 한 번 찌푸리지 않고 그것들을 듣고 있었다. 사실 반쯤 넋이 나가서 듣는 둥 마는 둥 했다.
석주는 아진의 병실에 있었다. ‘아진의 병실’이라니. 참 끔찍한 문구였다.
벌써 몇 번째 병실인지 모르겠다. 명진에, 꽃님에, 아진까지. 병원이 지겨웠다. 그들이 다치고 아플 동안 저는 항상 이렇게 멀쩡한 모습으로 있는 것도 지겨웠다.
몇 시간 전, 회사에서 실려 왔던 꽃님은 가볍게 재수술을 하고, 현재는 회복 중이라고 했다. 염증에 영양실조에 급하게 치료할 게 한둘이 아녀서 검사도 몇 개 못 했단다.
명진은 여전히 눈을 감고 있었으나, 그래도 며칠 전 인공호흡기를 뗐다. 회복세가 확 좋아졌단다. 그래서 마음을 조금 놓나, 싶었더니. 이번엔 아진이다.
다행히 아진은 죽지 않았다. 죽지만 않았다. 언제 눈을 뜰지 모른다고 했다. 아진을 본 의사는 깊게 갈라져서 쩍 벌어진 손목보다 그의 몸 상태에 더 경악했다. 이 작은 애가 뭔 짓을 했기에 이렇게 괴롭혔냐고 석주를 흘겨보았다.
‘아무것도. 아무 짓도.’
그렇게 말할 수가 없어서 그저 침묵만 유지하고 있었다. 그래도 고개를 빳빳이 들고 있을 만큼 염치가 없진 않아 목을 늘어트리긴 했다.
“…….”
석주가 눈을 감고 있는 아진을 가만히 쳐다봤다. 수술을 마치고 나온 아진은 고요했다. 숨결은 여전히 가냘팠고, 얼굴 역시 여전히 하얬는데, 전만큼 불안해 보이진 않았다. 아주 깊은 잠에 빠진 것처럼 평화로웠다.
어쩌면 본능적으로 아는 걸지도 몰랐다. 발목에 엉켜 있던 족쇄가 사라졌음을. 그 끔찍한 방에서 빠져나왔다는 것을. 그리고, 그를 짓누르고 있던 오해가 사라졌다는 것을. 무해하고 무고하던 그때로 돌아왔다는 것을.
석주가 웃자란 꽃잎처럼 느슨히 퍼져 있는 아진의 손바닥으로 손을 가져갔다. 그러나 손끝이 스칠 때쯤, 손을 다시 거두고야 말았다. 제가 닿는 걸 아진이 싫어할 것 같아서.
제가 그의 손을 잡든, 손가락을 빨든, 마취에서 깨지 못한 아진이 알겠느냐마는. 그래도 그가 싫어하는 건 하고 싶지 않았다. 늦었지만 지금부터라도 그러고 싶었다.
석주가 이불을 당겨 아진의 손을 가려 주었다. 그 후 연고가 발린 입가와 뺨도 확인하고, 붕대가 감긴 발목도 보고, 밴드가 붙은 종아리도 보며 치료받지 못한 상처가 있나 없나 세심하게 살펴보고 나서야 허리를 폈다.
그러고 있으니 조직원들이 또 무어라 말을 하려 입을 뗐다. 감추어 두었던, 모른 체하던 진실이 드러났으니 처리할 일이 아주 많았다. 석주가 검지를 세워 입술 위에 댔다.
“아진이 자는데 시끄럽겠다. 나가자.”
조직원들이 입을 딱 다물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석주가 그들 사이를 헤치며 병실 문으로 향했다. 조직원들이 그를 뒤따랐다.
문고리를 쥔 석주는 나가기 전에 뒤를 돌아보았다. 그렇게 멀지도, 가깝지도 않은 곳에 있는 아진이 보였다.
……혼자 있으면 추울 텐데. 추위를 많이 타는 아이인데.
또 걱정이 치밀었다. 아무리 겨울의 끝물이라지만 아진에겐 추운 날씨였다. 석주는 잠시 머뭇거리다가, 이내 제게는 아진의 추위를 달래 줄 권리가 없음을 깨달았다.
그가 짙은 한숨과 함께 병실을 나왔다. 그 순간, 타닥탁. 뛰어오는 발소리가 들린다 싶더니 푹-. 차갑고 날카로운 무언가가 석주의 배를 꿰뚫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