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쌍피-108화 (108/261)

108화

오늘 점심에는 조기구이 두 마리가 통째로 나왔다. 뭉근히 끓인 죽에 짭조름한 조기구이, 그리고 미역국을 비롯한 반찬들도 곁들여진 채였다.

호화로운 밥상이었으나 아진은 젓가락으로 조기구이를 쿡쿡 쑤시며 먹는 둥 마는 둥 했다. 입맛이 없었다. 입맛이 없어진 지 수일이나 됐는데, 그 사실이 아직도 낯설었다. 평생 먹는 것에 목숨을 걸며 살아온지라.

“하아…….”

땅이 꺼지라 한숨을 내쉰 아진이 벽을 바라봤다. 어젯밤, 석주가 파도 그림을 떼어 버린 덕에 벽이 텅 비어 있었다. 그림이 걸려 있던 자국만 희미하게 남아 있었는데, 그게 참…… 서럽고 사무쳤다.

이제 이 방에서 무얼 하며 지내야 하나. 제가 뭘 할 수 있나. 이러다간 꼼짝없이 저 희멀건 벽에 묻히고 묻혀서 잡아먹히고야 말겠구나, 싶어졌다.

그게 어찌나 두려운지. 아진은 울음을 멈출 수가 없었다. 그래서 아침에 석주가 출근하는 걸 보면서도 울었고, 점심시간이 올 때까지도 울었다. 그렇게 눈물을 쏟아 냈더니 눈꺼풀이 지나치게 무거웠다.

아진은 돌덩이 같은 눈꺼풀을 꾸역꾸역 밀어 올리며 밥을 먹으려 노력했다. 그러나 도통 입맛이 없었다. 아진이 짜증스레 조기를 젓가락으로 쿡 찔렀을 때였다.

끼긱.

괴상한 소리가 났다. 마치 철과 철이 맞물리는 듯한 소리였다. 아진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조기를 가만히 응시했다. 조기가 바다에 있을 때 쇳덩이라도 잡아먹은 걸까.

놀 거리를 찾은 아진의 눈매가 반짝였다. 그가 젓가락으로 조기의 배를 갈라 내 옆으로 펼쳤다. 그러자 조기가 잡아먹은 쇳덩이가 그 정체를 드러냈다.

“…….”

단도였다. 아진의 손바닥보다 작은 크기였고, 얇은 데다가 조기 살이 듬성듬성 묻어 있었는데, 그 칼날은 예사롭지 않았다.

아진이 무언가에 홀린 듯한 표정으로 단도를 집었다. 조기 때문인지 손잡이가 뜨끈뜨끈했다. 아진은 손에 묻어난 기름을 연거푸 옷자락에 문질러 닦으며 칼을 살폈다.

이게 왜 여기 있지. 이것도 석주가 보낸 건가. 아니, 그럴 리 없다. 이걸로 제가 무슨 짓을 할 줄 알고. 행여 제가 수작을 부릴까, 소파부터 테이블까지 죄 치워 버린 사람이 아니던가. 그런 이가 칼을 조기 속에 숨겨서 비밀스레 줬을 리가 없었다. 이게 제 목에 걸리길 바라면서 넣은 거라면, 못이나 바늘 따위를 선택했어야 했고.

“조기야. 진짜 네가 먹은 거니?”

칼을 든 아진이 눈알이 반쯤 뭉그러진 조기에게 물었다. 그러나 조기는 대답이 없었다.

잠깐 입술을 씰룩거리던 아진은 다른 생각 할 것 없이 곧장 자신의 발목에 엉킨 족쇄로 칼을 가져갔다. 그리고 잘 벼려진 칼날로 두툼한 쇠를 갉아 대기 시작했다.

허나 말 그대로 갉는 수준이었다. 족쇄에는 보기 싫은 흠이 생겼지만, 끊길 기미가 없었다. 아진이 1년 내내 쉬지 않고 긁는다면 또 모를까. 칼로는 족쇄를 끊을 수 없을 것 같았다.

아진은 그나마 만만해 보이는 사슬로 칼을 옮겼다. 그러나 어떤 쇠든 간에, 단도에 끊길 만큼 나약하지 않았다. 꼭 석주 같은 쇳덩이들이었다.

“아씨…….”

아진이 이를 으득 갈며 다시금 족쇄를 갉아 댔다. 그러다 손을 삐끗해서 칼끝으로 종아리를 긁었다. 연약한 살이 순식간에 갈라지고 피가 스멀스멀 올라왔다.

하지만 아진은 신음 한 자락 흘리지 않았다. 그따위 것에 고통스러워하기엔, 이 좁은 지옥이 너무 가혹했다.

아진은 한참 동안 족쇄와 사슬을 긁어 대다, 이마에 땀이 맺힐 때쯤에야, 팔뚝과 팔꿈치가 저릿저릿할 때쯤에야 칼을 내려놓았다.

밥을 갖다 주는 이는 딱 한 시간 뒤에 밥상을 치우러 온다. 그가 칼을 발견하면 빼앗길 게 분명했다.

아진이 칼을 엉덩이 아래로 집어넣었다. 그리고 죽을 마구 입으로 욱여넣기 시작했다.

아진은 칼을 지키는 데 성공했다. 그러나 안심은 일렀다. 매시간 저를 감시하러 오는 이의 눈도 피해야 했다.

언젠가부터 창호지 문에 구멍을 뚫어 안을 살피는 이가 있었다. 본인은 몰래 본다고 하는 것 같은데, 커다란 덩치에, 마당 흙을 밟는 발소리에, 햇빛을 등진 그림자에, 모르려야 모를 수가 없었다.

제가 헛짓을 할까 봐 석주가 심어 둔 이인 게 분명했다. 그에게 칼을 보여선 안 됐다.

아진은 책장에서 책을 뽑아 왔다. 그 언젠가 한창 글 연습을 하던 때. 석주가 사다 놓은 전래동화집이었다. 아진은 그것을 펼쳐 책 사이에 칼을 끼워 두었다. 그리고 종이를 넘겼다가 다시 들치며 칼을 보고 또 봤다.

이걸 어떻게 써야 하나. 방문을 뚫어 볼까. 아니면 창호지 문을 째 볼까. 아, 그래도 도망치는 건 불가능하겠구나. 석주가 이 족쇄를 풀어 주지 않는 이상, 또는 발목을 자르지 않는 이상, 사방이 벽 없이 훤히 뚫려 있대도 저는 도망칠 수가 없었다.

“…….”

아진이 칼을 손가락으로 쓰다듬었다. 그렇게 한참 있다가, 돌연 좋은 생각이 떠올랐다.

이 작은 칼로 이 좁은 지옥을 벗어날 수 있는 방법. 석주의 도움 없이, 방해 없이 제 의지만으로 이곳을 벗어날 수 있는 방법이 하나 있었다.

비로소 답을 찾은 아진이 어스름히 미소 지었다.

그쯤, 창밖이 소란스러워졌다.

비가 내리는 모양이었다.

* * *

검은 차가 집 마당에 미끄러지듯 정차했다. 바퀴가 거칠게 서며 마당을 흠뻑 적신 빗물이 마구 튀어 올랐다. 차는 장대비를 뚫고 힘겹게 여기까지 올라온 티를 내듯, 바퀴에 진흙이 온통 엉겨 붙어 있었다.

벌컥, 차 문이 다급하게 열리고 석주가 뛰어내렸다. 그의 등장에 집 안에 있던 조직원 하나가 쏜살같이 달려 나왔다. 뭐가 그렇게 급한지 비가 이렇게 내리는데 우산도 쓰지 않고, 발은 신발 없이 양말만 신은 채였다.

석주는 그의 행색에서 아주 큰 공포를 느꼈다. 무언가 일이 터졌다는 걸 단박에 알 수 있었기 때문이다. 조직원은 마당을 가로지르며 “형님! 형님!” 하고 애타게 석주를 불렀다.

이내 석주의 앞에 도착한 그가 버릇없이 원망의 소리를 내놓았다.

“형님! 왜 전화를 안 받으십니까! 제가 진짜 수십 통은 했는데!”

“아진이는.”

“그게……. 아진이가…….”

“아진이가 뭐.”

“아진이가, 다쳤, 다쳤는데, 아니, 이게 다쳤다고 말할 수가…….”

“그게 무슨 말이야.”

“그게, 형님, 아, 이게 대체, 아니…….”

조직원이 횡설수설하며 손을 휘저었다. 그런 그의 셔츠 소매가 붉게 물들어 있었다.

피였다.

그걸 발견한 석주는 머리 위로 떨어지는 비에 체온이 씻겨 내려가는 걸 느꼈다. 정수리를 때리는 비가 창살 같았다. 석주가 조직원의 손목을 턱 잡아챘다.

“이거 누구 핀데.”

“형님…….”

“씨발, 누구 피냐고.”

“죄송합니다, 형님…….”

조직원이 입술을 겹쳐 물며 사과했다. 석주가 헛숨을 크게 삼켰다. 심장이 쿵쾅쿵쾅 거칠게 뛰었다. 목구멍에서 시큼한 맛이 역류했다.

아니다. 아닐 거야. 아닐 거야.

석주가 집으로 달려갔다. 신발을 벗을 새도 없이 현관을 통과해서 복도를 가로질렀다. 복도 끝에 제 방이 보였다. 평소와 달리 문이 활짝 열려 있었고, 집에서 일하는 이들 몇몇이 문 주위를 서성거리며 수군거리고 있었다.

석주가 어금니를 꽉 씹은 채 복도를 걸었다. 근데 이상하게 복도가 엿가락처럼 자꾸 길게 늘어났다. 계속 걷고 있는데, 제 방문이, 아진이 있는 제 방이 멀어졌다. 도무지 아진에게 닿을 수 없을 것 같았다.

“형님. 제가 뭔 짓을 해도 족쇄를 풀 수가 없어가……. 열쇠가 형님한테 있어서……. 죄송합니다, 형님. 참말로 죄송합니다. 제가 더 자주 들여다봤어야 했는데…….”

뒤따라오는 조직원의 목소리가 아득히 멀리서 들려왔다. 마치 과거에서 들려오는 소리 같았다.

석주는 대답 없이 계속 걸었다.

끼이익-하며 복도가 기울었다. 뒤틀리고, 꼬였다. 천장이 바닥이 됐다가, 바닥이 천장이 됐다. 벽에 걸린 그림이, 창문이 괴상하게 비틀어졌다. 속이 메슥거리며 멀미가 났다.

그래도 석주는 포기하지 않았다. 삐걱거리는 다리를 재촉해 뛰고 또 뛰었다. 마루 위를 달리는 제 구두 소리에 귓구멍이 먹먹했다. 그 먹먹함 너머로, 꽃님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왜 사장님한테 아진이 혼이 이렇게 묻어나?’

‘우리, 우리 아진이가 뭘 했다고! 그 여린 애가 뭘 했다고! 뭘 할 수 있다고 아진이 혼을 덕지덕지 묻히고 있을 만큼 개짓거리를 해 댄 거야!’

제게 아진의 혼이 묻어난다고 했다. 대체 얼마나 아진을 괴롭혔으면 그의 혼을 온몸에 묻히고 있냐고 했다. 그저 저의 못된 짓을 꿰뚫어 보고 하는 말이라 생각했는데.

그게 진짜 아진의 혼이었으면 어쩌나. 제가 그의 혼을 다 빼앗아서, 저 방 안에 있는 아진이 정말 혼 없이 누워 있으면 어쩌냔 말이다.

그럼 누구에게 사죄해야 하나. 누구에게.

사과받을 이가 사라지면 저는 어떻게 해야…….

석주는 숨이 차오르다 못해 터질 것 같을 시점에서야 방에 다다를 수 있었다. 그리고 문지방을 밟고, 등신같이 멈칫거렸다.

두려웠다. 무서웠고, 괴로웠다. 차마 아진을 눈에 담을 수가 없었다.

그러나 피할 자격이 없었다. 석주는 본인이 저지른 죄를 올곧게 마주해야 할 의무가 있었다.

석주가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가장 먼저 보인 건 차가운 바닥 위로 곱게 포개져 있는 다리였다. 하얗고 마른 다리가 참 예뻤는데, 상처가 많았다. 무릎은 보라색이었고, 종아리에는 긴 상처가 나 있었으며, 발목에는 묵직한 족쇄가 엉켜 있었다. 발등은 족쇄의 무게에 짓눌려 살이 헤지고 무른 상태였으며, 차갑고 무거운 사슬이 발가락 위로 내려와 있었다.

그 위로는 마른 몸이 보였는데, 다행인지 불행인지 품이 큰 두루마기를 걸치고 있어 그의 상태가 얼마나 처참한지, 석주가 저지른 죄가 얼마나 끔찍한지 낱낱이 드러나지 않았다.

곧 팔이 보였다. 축 늘어진 팔은 두루마기가 말려 위로 올라가있었는데, 손목에 희멀건 수건이 칭칭 감긴 채였다. 그 두툼한 수건 너머로 붉은 피가 잔뜩 스며 있었다.

그 곁에 작은 단도도 보였다. 날카롭게 선 칼날에 아진의 것으로 보이는 피가 흥건했다.

아진이 어디를 어떻게 다쳤는지 어렵지 않게 유추할 수 있는 모습이었다.

석주가 입을 뻐끔 벌렸다. 아진은 그렇게 염원하던 파도에 잠겼다. 그 파도가 푸르지 않고 붉었으나, 아진은 충분히 행복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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