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쌍피-106화 (106/261)

106화

진걸이 금 사장의 양아들이었다고? 그런 관계였다고? 진걸이? 왜 몰랐지? 그렇게 그의 행적을 조사했는데, 어째서 몰랐지.

진걸이 이순과 내통한다는 건 모를 만도 했다. 애당초 두 사람을 같은 선상에 두지 못했으니까. 그렇게 따지면 진걸과 금 사장의 관계도 모를 만했다. 석주는 오로지 진걸과 기헌의 관계만 집중했으니까.

석주의 불찰이었다.

석주가 볼 안쪽 살을 꽉 깨물었다가 놨다. 그러든 말든, 이순은 창밖을 응시하며 주절주절 이야기를 이어 갔다.

“진짜 호적에 들인 양아들은 아닌데, 금 사장님이 아들처럼 예뻐하고 돈도 주고 일도 주고 그랬어요. 흐응, 우리 금 사장님이 잔정도 많고, 착하고 그랬거든요.”

“…….”

“진걸이는 가족이라고는 동생 진수 하나였는데, 진수가 죽고 나서는 금 사장님만 졸졸 따라다녔고요. 근데 그런 금 사장님을 강 사장님이 죽이셨잖아요.”

“…….”

“그래서 내가 걜 찾아갔어요. 이런저런 일 할 건데, 같이 할 거냐고 물었더니 좋다더라고요.”

“하…….”

“음……. 강 사장님이 진걸이를 그렇게 쉽게 죽일 줄은 몰라서…… 걔가 그렇게 됐지만……. 그래도, 하늘에서 금 사장님이랑 만나서 호탕하게 웃고 있지 않겠어요? 강 사장님 엿 먹인 거잖아요. 진걸이가. 거기다 아진이 걔도 흠씬 혼내 주고 싶어 했는데. 그걸 강 사장님이 대신해 줬네.”

이순이 까르르 웃었다. 손바닥으로 테이블을 탕탕 두드리기도 했다. 석주가 그 모습을 빤히 쳐다봤다. 그의 관자놀이가 씰룩씰룩 안으로 들어갔다가 나옴을 반복했다.

그것도 모르고, 그것도 모르고……. 저는 아진과 진걸이 어떻게 한곳에 심긴 프락치일 수 있는지 의문스러워했다. 진걸은 아진을 지독히도 싫어했으니까. 기헌이 제 눈을 가리려 별짓을 다 하는구나, 하며 혀를 차기도 했다.

입을 크게 벌리며 깔깔거리는 이순을 보던 석주가 쓰게 조소했다. 이순의 말을 곧이곧대로 믿을 순 없었다. 그녀가 기헌이 시키는 대로 거짓말을 할 수도 있는 거고, 아니면 그냥 미친 것일 수도 있고, 또 다른 꿍꿍이가 있을 수도 있었다.

근데 이상하지. 거짓말하는 거 아니냐며 캐물을 수가 없었다. 왜일까. 듣기 무서운 진실을 듣게 될까 봐 두려운 걸까.

석주가 지나치게 쓴 커피를 머금었다. 그리고 빳빳이 펼치고 있던 어깨를 느슨히 아래로 풀며 다시 물었다.

“꽃님이 아줌마는 왜 데리고 갔지?”

“아, 그 아줌마 눈치가 귀신이거든요. 안 그래도 조만간 처리해야겠다, 싶었는데 알아서 철퍼덕 쓰러져 주더라고요. 거기다 아진이가 그 아줌마를 좀 아껴요? 그래서 이야, 이거 잘 써먹을 수 있겠구나 싶었지요.”

“아진이한테 죄를 덮어씌우려고 아줌마를 납치했다고?”

“아니, 아니, 아니죠.”

이순이 고개를 도리도리 내저었다. 그로 모자라 손도 좌우로 마구 흔들었다. 그녀가 의자 등받이에다 깊숙이 등을 묻었다. 그리고 다리를 꼬았다가, 다리 사이에 치마가 껴서 그것을 빼내며 말했다.

“당신을 속이는 데에 써먹은 거죠.”

“뭐?”

“사장님 눈을 가리고, 귀를 막는 데에 써먹은 거라고요. 아진이와 관련되어 있는 것처럼 대충 엮어 놓으면, 알아서 와서 냅다 엎어지셨잖아요, 사장님이.”

똑똑한 줄 알았더니. 등신이었어. 이순은 아무리 생각해도 우습다는 듯, 어쩜 그리 바보 같을 수 있냐는 듯 킥킥거리며 턱을 좌우로 흔들었다.

석주는 아무런 말도 할 수가 없었다.

‘알아서 와서 냅다 엎어지셨잖아요.’

그 말이 너무 적나라해서. 너무 정곡이라. 부끄럽고 수치스러워 입이 떨어지질 않았다.

차라리 치밀하게 짜인 계략이었으면 아차, 속았구나, 했을 텐데. 이렇게 듣고 보니 참으로 허술하기 짝이 없는 계획이었다. 여태 이순의 입에서 나온 일들은 제가, 그러니까 ‘강석주’가 없었으면 완성될 수 없는 일들이었다.

기헌과 이순이 구덩이를 파 놓았는데, 사냥감이던 제가 알아서 구렁텅이로 굴러갔고, 발목을 내주었고, 눈을 감은 것과 다름없었다.

석주의 낯에 균열이 갔다. 그 잘생긴 패배자의 얼굴을 빤히 보던 이순이 히죽히죽 입꼬리를 올렸다.

“왜요? 왜 그런 표정이에요? 다른 것도 아니고, 예전에 죽인 금 사장님 하나 때문에 일이 이 지경이 될 줄은 몰랐어요?”

“…….”

“다 당신이 자처한 거지. 그러게 왜 내 남편을 건드려서, 그 멋진 남자를 죽여서, 일을 이 지경으로 만들어요.”

이순이 새치름히 석주를 노려봤다. 그러다 곰팡이 핀 쿠키를 다시 입으로 가져갔다. 그 손놀림이 몹시 기품 있었다. 이미 목젖을 드러낼 만큼 깔깔 웃어 놓고, 입을 가린 채 쿠키를 야금야금 베어 무는 꼴이 영 괴상했다.

석주가 손바닥을 크게 펼쳤다. 손금 사이사이에 땀이 축축하게 스며 있었다. 이마에도 땀이 묻어났다.

이순의 집은, 아니 금 사장의 집은 난방이 전혀 되지 않아 이따금 잇새로 입김이 뿜어질 정도로 온도가 낮았는데 석주는 몹시 덥다고 느꼈다. 펄떡펄떡 뛰는 심장 때문에 명치에 불이 붙은 것 같았다. 휘몰아치는 빗소리가 장작이 타오르는 소리처럼 들릴 정도였다.

혼란의 파도에 휩쓸려 침몰했다가 솟구치길 반복하던 석주가 정신을 다잡기 위해 벅벅 마른세수를 했다. 그러다 뒤늦게 더듬더듬 입을 뗐다.

“아진이가…… 도망을 갔었는데…….”

“도망요? 아진이가요? 그 절름발이가?”

이순이 도무지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는 듯 고개를 갸웃거렸다. 석주가 그녀를 집요하게 쳐다봤다. 몰라? 왜 몰라? 다 본인이 했다면서, 그걸 왜 몰라. 그날. 도은이 죽고, 뒷집에 불이 났던 날.

아진이가 집에 있었다면, 집에만 있었다면, 아무것도 모른다는 듯이 집 어딘가에서 몸을 옹송그리고 자고 있었다면 이런 일은 없었을 텐데. 가장 중요한 그 사실을 모른다니-까지 생각할 때였다.

이순이 눈썹을 들썩이며 무언가를 생각해 냈다.

“아, 아아…… 그거 창두랑 진걸이가 한 짓이에요.”

“……창두?”

또 다른 낯선 이름의 등장이었다. 석주가 설핏 눈살을 구기는데, 이순이 친절하게 설명을 덧붙였다.

“옛날에 도둑질했다고 사장님이 팔 잘라서 쫓아낸 남자 종이요. 걔 이름이 창두예요.”

“…….”

석주가 입을 꾹 다물었다. 누군가 했더니, 또 제가 저지른 일에서부터 움튼 악의 씨앗이었다. 물론 돼지는, 그러니까 창두는 본인이 먼저 석주의 재산에 손을 대는 죄를 저지르긴 했지만, 그래도 그때. 팔을 자르지 않고 대충 혼내서 보내 주었으면 이런 일이 없었을지도 몰랐다.

석주가 지끈거리는 머리에 눈을 감았다가 떴다. 이순이 그를 구경하며 나긋한 음성으로 말을 이어 갔다.

“창두는 제가 섭외한 게 아니에요. 박기헌 사장님이 알려 주셨지. 창두가 먼저 중호파로 찾아갔대요. 강 사장님한테 복수하고 싶다고, 뭐든지 시켜 달라고.”

“…….”

“근데 창두는 이미 얼굴이고 뭐고 다 드러난 놈이라서 써먹을 데가 마땅치 않았거든요. 그때 진걸이가 아주 좋은 수를 냈어요.”

“아진이를…… 제 발로 집에서 빼내는 수?”

“네. 황명진이가 다쳐서 사장님이고 조직원들이고 다 병원으로 몰려갔던 그때. 내가 도은이를 죽였던 날. 그날 내가 창두가 집으로 들어올 수 있게 문을 열어 줬어요.”

“…….”

“그때 아진이는 뒷마당에서 설거지를 하고 있었는데, 난데없이 창두가, 팔 한쪽이 잘린 창두가 걔 앞에 낫을 들고 나타난 거죠.”

이순이 자신의 한쪽 팔뚝을 그으며 팔이 잘린 걸 흉내 냈다. “아진이가 얼마나 기겁하던지.”라며 키득키득 웃기도 했다. 그러다 이내 웃음을 사그라트리고 커피를 홀짝였다. 찻잔을 내려놓을 땐 다시 기품 있는 규수로 돌아갔다.

“아실진 모르겠지만 아진이가 겁이 많아요. 어렸을 때부터 맞고 자라기도 했고, 사내새끼가 작고 마른 데다가 다리까지 저니까 겁이 없으려야 없을 수가 없었죠.”

“…….”

“아무튼, 그날 아진이는 혼비백산해서 도망쳤어요. 근데 그 앞에는 진걸이가 회칼을 들고 서 있었죠.”

석주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그날이다. 제가 진걸을 죽인 날. 진걸을 찾았는데, 몇 시간이 지나서야 나타났었다. 어디서 거나하게 운동이라도 하고 온 것처럼 헉헉거리면서, 한겨울인데 이마에 땀을 송골송골 달고서. 어차피 죽일 놈이라 그의 행방까지는 알려고 하지 않았다.

그때, 집에 갔었구나. 아진이에게 회칼을 들이밀었구나.

석주가 자신의 목덜미를 주물렀다. 두통이 심했다. 눈알도 지끈거렸고, 관자놀이가 누가 송곳으로 후벼 파는 것처럼 아팠다.

“두 사람에게 몰린 아진이는 제가 미리 열어 둔 뒷집 쪽문으로 도망쳤어요. 그리고 그 다리로 산 타고 도망쳤죠.”

“…….”

“사장님한테서 도망친 게 아니라, 낫이랑 칼 들고 쫓아오는 창두랑 진걸이 피해서 도망친 거예요.”

“…….”

“살려고. 살아 보겠다고.”

이순이 쯧쯧 혀를 찼다. 본인이 아진을 그렇게 만들어 놓고, 그를 동정하기라도 하는 듯한 얼굴이었다.

“걔 인생은 항상 그랬어요. 매 순간 살기 위해 도망쳐야 했죠. 그래도 사장님 집으로 가고부터는 덜 그런가, 싶었는데. 팔자는 어쩔 수 없나 봐요. 그렇죠?”

이순이 싱긋 웃으며 석주에게 동의를 구했다. 그러다 찻잔을 들고는 “그때, 진걸이가 아진이를 무지 죽이고 싶어 했는데. 그거 말리느라 애먹었다니까요.”라며 호호 웃었다.

“…….”

석주는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 아진의 팔자 때문일까. 이 일이 진정 아진의 팔자가 사나워서 일어난 걸까.

……이마저도 아진의 탓으로 돌릴 수 있나. 그래도 되나. 그게 가당키나 한가.

석주가 마른침을 따갑게 삼켰다. 단단하게 굳은 그의 낯을 보던 이순이 반대쪽으로 다리를 꼬았다. 굽 높은 하이힐이 바닥으로 떨어졌다. 애당초 그녀의 발에 맞지 않아서 욱여넣다시피 신은 거였다. “내 남편이면서 내 발 크기도 모르고, 참…….” 이순이 쯧쯧 혀를 차며 그것을 주워 신었다. 그 후 석주를 직시했다.

“원래는 강 사장님이 집으로 돌아와서 아진이의 부재를 확인할 때까지 산에서 못 내려오게 할 생각이었어요. 그러다 산에서 죽으면 어쩔 수 없고.”

“…….”

“근데 또 사장님이 마침 그날 새벽에 집으로 오셨더라고요. 아주 찰떡같이 들어맞았어.”

이순이 짝 손뼉을 쳤다. 석주는 헛웃음을 흘렸다. 그 신랄한 반응에 이순은 신이 난 얼굴로 있었던 일을 종알거렸다.

“황명진이가 다쳤고, 도은이는 죽었고, 뒷집엔 불이 났고, 아진이는 사라졌고, 집에 온 사장님은 마루 아래에서 제가 모아 둔 패물을 찾았고.”

“…….”

“참, 재미난 연극이죠? 극은 제가 썼고, 판은 박기헌 사장님이 펼쳤고, 주인공은 당신이었어요.”

“……그래.”

재미있네. 정말 재미있는 연극이었다. 제가 주인공이 저라는 걸 몰라서 문제긴 한데. 석주가 재킷 속에서 담뱃갑을 꺼냈다. 그리고 바닥을 탁 쳐서 하나를 빼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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