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쌍피-104화 (104/261)
  • 104화

    “……혼?”

    이해할 수 없는 말에 석주가 눈살을 찌푸리며 고개를 뒤틀었다. 그러자 꽃님이 벌떡 소파에서 일어났다. 그래 봐야 작은 키라 석주의 눈높이에 한참 못 미쳤으나 그 기세가 예사롭지 않았다.

    “너……. 너…… 아진이한테 무슨 짓 했어.”

    “아무 짓도 안 했습니다.”

    석주는 뻔뻔하게 거짓을 내놓았다. 꽃님이, 그리고 기헌이 무슨 꿍꿍이인지 모르니 순순히 진실을 이야기할 수 없었다.

    석주가 흘끔 손목시계를 확인했다. 아진에 관해 마지막으로 보고를 받은 지 이제 고작 30분이 지났다. 그런데도 애가 달았다. 아진이 궁금했다.

    석주는 집에 있는 조직원에게 앞으로 한 시간에 한 번씩 보고하라고 말해야겠다고 생각하며 입을 뗐다.

    “아진이가 보고 싶으면 여태 어디 있었는지, 누굴 봤는지, 그동안 뭘 했고, 왜 이제 나타났는지 알려 줘야 합니다.”

    그 말에 꽃님의 눈동자가 바쁘게 움직였다. 석주의 말을 되씹고, 그 말에 담긴 무언가를 추론하고, 가늠하는 듯한 움직임이었다. 그리고 몇 초 지나지 않아, 꽃님의 얼굴이 붉으락푸르락 요동쳤다. 그녀가 성치 못한 몸으로 제자리에서 쾅쾅 뛰며 발광하기 시작했다. 회사가 울릴 정도로 쩌렁쩌렁하게 소리를 지르기도 했다.

    “이, 이 미친놈! 이 병신들! 이 병신!”

    “아줌마.”

    “똑똑한 줄 알았더니 천치였구나! 이 멍청한 것들! 육시랄 것들! 천벌 받을 것들! 이 미친 새끼! 이것들이 아진이를, 허억…….”

    꽃님의 몸부림은 일 분이 채 가지 못했다. 그녀가 가슴을 움켜쥐며 상체를 앞으로 확 고꾸라트렸다. 수술 후 제대로 처치를 못 했으니 몸이 멀쩡할 리 없었다. 꽃님은 간헐적으로 등을 꿈틀거리며 숨을 꺽꺽 거꾸로 들이마셨다. 제대로 움직이지 않는 손가락이 갈퀴처럼 구부러졌다.

    석주가 그녀에게로 다가갔다.

    “일단 병원부터-”

    짝!

    석주는 말을 끝마치지 못했다. 꽃님이 대뜸 석주의 뺨을 후려쳤기 때문이다. 자못 매서운 손찌검에 석주의 고개가 비스듬히 옆으로 돌아갔다. 꽃님은 그로도 모자란지 주먹으로 석주의 가슴을 쾅쾅 내리치며 악을 질렀다.

    “내가 잘 부탁한다고 그렇게 말했는데! 그렇게 말했는데!”

    “…….”

    “내가 그 꼴을 당하면서도, 그래도 아진이 곁에는 네가 있으니 괜찮을 거라고 믿었는데! 이게 무슨 일이야! 아이고, 이게 무슨 일이야!”

    꽃님의 발악에 조직원들이 헐레벌떡 그녀를 막아섰다. 꽃님은 손과 팔이 잡혀 다시 소파에 앉게 됐다. 그녀를 둘러싼 조직원들이 험상궂게 으르댔다.

    “이 아줌마가 처돌았나.”

    “아줌마 뒤지고 싶어요? 누구한테 손을 올려요.”

    “씨발, 아까부터 프락치 새끼 말하는 게 재수 없었는데. 지금 누구를 죄인 취급하는 거요? 일은 아진이 그놈이 다 쳐 놨는데, 왜 애먼 우리 형님한테 욕을 하냔 말이야.”

    줄줄이 이어지는 말에 꽃님의 눈알이 시뻘겋게 달아올랐다. 그녀가 발작하듯 몸을 뒤틀며 소리쳤다. 마치 집에 불이 나 어쩔 줄 모르고 발을 동동 구르는 사람 같았다.

    “우리, 우리 아진이가 뭘 했다고! 그 여린 애가 뭘 했다고! 뭘 할 수 있다고 아진이 혼을 덕지덕지 묻히고 있을 만큼 개짓거리를 해 댄 거야!”

    “아줌마. 그놈아가 한 짓이 몇 갠 줄 알아요? 약 빼돌리고, 뒷집에 불 지르고, 국에 약 타고, 여자도 막 죽이 삐고, 도둑질에, 명진이 형님에, 아우, 씨발 것.”

    아진을 향한 원색적인 비난에 꽃님의 눈썹이 악귀처럼 추켜 올라갔다. 한 손을 허리에 짚은 그녀가 사또처럼 크게 호통쳤다.

    “뭔진 몰라도 그 짓을 아진이가 했겠냐! 최진걸 그 빌어먹을 놈이 했겠지, 이 등신들아!”

    그 말에 조직원이 조소하며 적반하장으로 턱을 추켜올렸다.

    “하, 아줌마. 그게 최진걸 혼자서 한 게 아니라-”

    “이순이 그년이랑 작당해서!”

    뜻밖의 이름의 등장에 모두가 숨을 거꾸로 말아 먹었다. 조직원들이 저마다 고개를 좌우로 갸웃거렸다.

    “뭐?”

    “아줌마, 뭐라고?”

    “누구?”

    조직원들에겐 영 낯선 이름이었다. 식구면 또 모를까. 종들의 이름까지 외울 정도로 여유가 있진 않았다. 하나같이 갈피를 못 잡고 갸웃거리는 행색에 꽃님이 으아아, 하며 분통을 터트렸다.

    반면, 석주의 낯빛은 거무죽죽하게 물들었다. 이순이라는 이를 알아서 그랬다.

    제 방 정리를 도맡아 해 주던 여자였다. 물병에 물을 채우고, 책상을 정리하고, 이불을 펴거나 개고, 부엌일도 하며, 저녁에는 아진의 곁에 앉아 설거지를 하던. 납작한 광대에 주근깨가 많고 단발머리인 여자 종이었다.

    그 여자가 왜. 어째서 그 여자의 이름이 꽃님의 입에서 나오나. 석주는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석주가 자신의 입가를 쓰다듬는데. 꽃님이 재차 빽 소리를 질렀다. 조직원들의 뒤통수를 후려치는 듯한 목청이었다. 실로 조직원 몇몇은 목을 움츠리기도 했다.

    “이순이 말이야, 이순이! 그년 그게 금 사장 때문에 아주 회까닥 돌았어!”

    “…….”

    “그게 도박장에 있을 때부터 금 사장이 좋다고 그렇게 따라다녔었는데. 미친년이 진짜 지가 금 사장 부인이라도 된 줄 아나! 지가 무슨 복수를 하겠다고, 아이고, 미친년!”

    주절주절 앞뒤 없이 이어진 꽃님의 말에 따르면 이순은 수년 전, 골드 호텔에 직원으로 들어왔을 때부터 금 사장을 흠모했다고 한다. 약에 손을 대기 전의 금 사장은 번지르르한 양복을 입고 다녔고, 여자 직원들에게 으레 눈웃음을 쳤으며, 같잖은 말로 꾀어내 욕정을 풀곤 했단다.

    이순 역시 그 욕정의 해소로 한두 번쯤 쓰였고, 그녀는 금 사장에게 속절없이 빠져들었다고 했다. 꽃님을 그것을 ‘병’이라 칭했다.

    이순은 이따금 금 사장의 연인이나 부인인 것처럼 행동하곤 했는데, 도박장 직원들에게 안주인 행세를 하거나, 금 사장과 눈짓이나 대화를 주고받는 여자들을 괴롭히거나 했다고.

    그러나 태회파가 도박장을 앗아 가며 그 괴상한 ‘병’은 자연히 사라졌다고 했다. 금 사장이 죽었다는 말에 놀란 것 같았지만, 그뿐이었다고.

    꽃님은 금 사장이 죽음으로써 그 ‘병’이 다 나은 줄 알았단다. 이순은 금 사장을 찾지도 않았고, 그의 이야기를 꺼내지도 않았으며, 태회파 조직원들이 웃통을 벗고 운동하면 그 모습을 히죽거리며 쳐다봤단다.

    근데 이번에 중호파에 잡혀가서, 그곳에 있던 이순을 봤다고 했다.

    알고 보니 이순은 여전히 금 사장을 사모하고 있었고, 죽은 그의 복수를 위해 중호파와 내통하고 있었다고. 단편적인 장면들만 봐서 이순이 무슨 짓을 어떻게 했는지는 모르지만, 분명 뭔가를 하긴 했을 거라고 했다.

    “…….”

    그 말을 들은 석주의 눈앞이 희뿌옇게 번졌다. 깊은 물 속에 잠긴 듯 귀가 먹먹해지고, 손발이 저릿해졌다.

    이순의 이름이 나온 것도 놀라운데, 그 이름 뒤로 금 사장이 등장한 건 더욱 놀라웠다. 이순이 제가 죽인 금 사장과 그런 관계였다고. 그래서 중호파와 내통했다고.

    전혀 몰랐다. 정말, 전혀 몰랐다. 왜냐하면 이순은 종이었고, 여자였기 때문이다.

    석주는 편협한 이였다. 으레 프락치라 하면 남성을 떠올렸고, 누군가가 다치고 죽었다면 그 가해자 역시 남성을 의심했다.

    사실 편협하다기보다는 그게 효율적인 추론이었다. 여자를 죽이는 것도 남자였고, 남자를 죽이는 것 역시 남자였으니까. 여자는 항상 피해자였다.

    그래서 석주는 종을, 특히 여자 종을 찰나도 의심하지 않았다. 그 편협함의 말로가 이러하다니.

    석주가 따끔거리는 마른침을 삼키며 눈을 꾹 감았다가 떴다.

    아니, 아직 모른다. 이순이 무슨 짓을 했는지 꽃님도 모른다고 하지 않았나. 프락치가 둘인지, 셋인지 확신할 수 없었다.

    근데 아니면 어쩌지. 아진이 그 프락치에 포함이 안 되어 있으면 어쩌지. 그럼 여태 제가 한 짓은 다 뭐지. 제가 무슨 짓을 한 거지.

    석주의 눈동자가 갈피를 잡지 못하고 나부끼는데. 꽃님이 조직원들을 헤치며 다가왔다. 그녀가 뭉툭한 손으로 석주의 두루마기 깃을 꽉 움켜쥐었다.

    “우, 우리 아진이 죽었어? 어? 네가 죽였어?”

    “…….”

    “왜 대답을 안 해! 아진이 죽였냐고!”

    “……안 죽였습니다.”

    “살아 있는 거야? 정말? 근데…… 뭐가 이렇게……, 뭐가 이렇게 많아. 뭘 이렇게 많이 묻히고 있어.”

    꽃님이 석주의 몸 여기저기를, 정확히는 몸 주위를 훑었다. 마치 파리를 쫓아내는 듯한 손짓이었다. 석주는 그 행동이 달갑지 않았다. 제게는 보이지 않는 것을 보는 꽃님이 섬뜩하기도 했고, 제가 아진의 피를 진탕 뒤집어쓰고 있는 것 같아 죄스럽기도 했다.

    석주의 옷깃을 움켜쥔 꽃님의 손에 점점 더 힘이 들어갔다. 아귀힘이 세졌다기보다는, 그녀가 점점 아래로 쓰러지고 있어서 그랬다.

    “아진이, 아진이 데리고 와…….”

    “…….”

    “데리고 와……. 아진……이…….”

    마지막까지 아진을 부르던 꽃님이 이내 정신을 잃었다. 석주가 까무러친 그녀의 등을 받쳤다. 조직원들이 그를 도와 꽃님을 다시 소파에 올려 두었다. 석주가 그녀의 코 아래에 검지를 갖다 댔다. 옅긴 하지만 숨결이 느껴졌다.

    “병원으로 보내.”

    “예, 형님.”

    조직원이 얼른 고개를 끄덕였다. 그가 소파 아래에 쪼그려 앉자, 다른 조직원이 꽃님을 추슬러 그의 등 위로 얹었다. 꽃님을 업은 조직원을 중심으로 몇몇이 바쁘게 회사를 나섰다.

    석주가 멀어지는 꽃님을 보며 담배를 물었다. 그러자 덕재가 라이터로 불을 붙여 주었다.

    “형님. 꽃님이 아줌마 말을 믿어야 합니까?”

    “글쎄.”

    “그럼 이제…… 우짭니까?”

    “이순이라는 여자를 찾아야겠지.”

    “아직 서울에 있을까요?”

    그 물음에 석주가 입에서 연기를 내뿜었다. 그가 꽃님의 손에 구겨진 두루마기를 아래로 탁탁 잡아당기며 고개를 끄덕였다.

    “있을 거야.”

    금 사장 집이 서울에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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