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쌍피-101화 (101/261)
  • 101화

    쯧, 혀를 찬 기헌이 직접 담뱃불을 붙였다. 곧 그의 잇새로도 하얀 담배 연기가 뿜어졌다. 몇 번 연기를 빨던 그가 있는 대로 인상을 썼다. 그의 주름진 이마가 꿈틀거렸다.

    “아이고, 독한 거 피우네. 이런 거 피우면 일찍 뒤지는데……. 아, 무슨 말 하고 있었지, 어어. 결혼식 일. 별거 아니에요. 신경 쓰지 말어. 다- 내가 잘못 살아서 벌 받는 거 아니겠어?”

    줄줄이 이어지는 기헌의 독백에 석주가 피곤 섞인 한숨을 내쉬었다. 기헌이 귀찮았다. 제가 왜 이따위 수작질에 장단을 맞춰 주고 있어야 하는지 알 수가 없었다.

    근데, 기헌이 책상 위로 한 팔을 걸치며 석주의 심기를 살살 긁어 왔다.

    “에이, 강 사장. 왜 모르는 척해. 벌이면 강 사장도 이골이 나지 않았나?”

    “…….”

    “그…… 아끼는 동생이 아직도 병원에 있다면서요? 그것도, 큭, 창녀한테 칼 맞아서? 떡 치는 버릇이 고약한가 봐. 예끼, 그럼 쓰나. 여자한테.”

    기헌이 손을 팔락거렸다. 명진이 눈앞에 있었으면 어깨나 팔뚝을 한 번 두드렸을 법한 손짓이었다. 무미건조하던 석주의 낯에 균열이 생겼다. 명진의 이야기는 참아 주기 힘들었다.

    그 균열을 눈치챈 기헌이 고개를 가로저으며 쯧쯧 혀를 찼다.

    “낫기 힘든가 봐. 다친 지 한참 된 것 같은데 아직도……. 하긴 폐 이런 데 찔리면 좆같지, 아주. 나도 젊을 때 가슴에 칼 맞아 봐서 알어요.”

    기헌이 자신의 가슴을 슥슥 문질렀다. 그곳에 진짜 칼자국이 있는지 없는지는 기헌 본인만 알 터였다.

    석주가 담배를 재떨이에 비벼 끄며 자세를 바로 했다. 더는 그의 걸걸한 목소리를 들어 주고 싶지 않았다. 이만큼 돌고 돌았으면 본론으로 들어가도 될 것 같았다. 물론, 그 본론은 여기까지 행차하신 기헌이 알고 있을 것이다.

    “여기까지 왜 오셨습니까? 정신 사납게 직원들까지 데리고.”

    “아, 어어. 내가 강 사장한테 줄 선물이 하나 있는데. 너무 놀랄까 봐 미리 알려 주려고.”

    “…….”

    “이번 주 내로 받을 수 있도록 해 줄 테니 기다리고 있어요, 응?”

    석주의 눈매가 차게 식었다. 선물. 으레 좋은 뜻으로 쓰이는 것이나, 기헌과 석주 사이에서의 선물은 그다지 반가운 게 아니었다. 약쟁이, 수류탄, 프락치, 배신, 강탈 등과 일맥상통하는 단어인지라.

    석주의 머리가 바쁘게 굴러갔다. 그가 말하는 선물을 가늠하는 거였다.

    조금 전 명진을 언급했으니 그에게 해코지를 하겠다는 뜻인가. 아니면 폭탄을 배로 돌려주겠다는 뜻인가. 그도 아니면 또 다른 꿍꿍이가 있나.

    책상 아래로 숨어든 그의 손가락이 까딱까딱 분주하게 움직이는데. 기헌이 킬킬거리며 웃었다. 그가 석주가 비벼 끈 꽁초 위로 자신의 담배를 짓이겼다.

    “아이, 뭐 나쁜 건 아니야. 폭탄도 아니고, 불장난도 아니고, 칼도 아니니까 너-무 걱정하지 말고.”

    “…….”

    “그냥 음, 어, 그래. 꽃. 꽃 같은 거 있잖아. 무해하고, 아름답고, 받으면 기분 좋-은 거. 그런 거야.”

    기헌은 자신의 비유가 만족스럽다는 듯 혼자 웃으며 고개를 끄덕여 댔다. 그러더니 이만 가 보겠다며 몸을 일으켰다. 그의 뒤에 서 있던 중호파 조직원이 얼른 의자를 빼 주었다. 묵직한 코트도 어깨에 얹어 주고, 챙이 단단한 중절모도 내밀었다.

    그것을 받아 쓴 기헌은 미련 없이 뒤를 돌았다. 멀어지는 그의 뒷모습을 보던 석주가 의자에서 일어났다.

    관자놀이가 지끈거렸다. 기헌이 대놓고 선전포고를 하고 갔으니 준비를 단단히 해야 했다. 어디서 어떻게 무슨 일이 일어날지 알 수 없었다. 그가 어금니를 꽉 짓씹는데.

    “아, 강 사장!”

    돌연 등을 돌린 기헌이 석주를 불렀다. 석주가 그를 노려보듯 봤다. 긴장감 가득한 그 얼굴에 기헌이 빙글빙글 웃으며 말했다.

    “내가 궁금한 게 하나 있었는데. 그때 말이야. 그…… 다리 절던 친구.”

    “…….”

    순간, 석주는 세상이 잠시 멈추는 듯한 저항감을 느꼈다. 중력이 뒤틀리고, 하늘이 바닥으로 가라앉는 것 같은, 그런 느낌. 몸이 너무 무거워져서 발이 땅에 박힌 듯한 느낌.

    그의 동공이 바늘구멍처럼 움츠러들었다. 반면 눈동자는 조금 커져서 희번들하게 번쩍였다. 분노한 호랑이 같은 눈이었다.

    허나 기헌은 석주의 살벌한 기백에도 눈 한 번 깜빡이지 않았다. 그저 샐쭉 웃으며 말을 잇기만 했다.

    “그 친구는 잘 있나?”

    “…….”

    “다리 병신인 것치고는 인상이 워낙 좋아서 가끔 생각나더라고.”

    “…….”

    “안부 전해 줘. 잘- 있었으면 좋겠다고.”

    비아냥인지 진심인지 구분하기 어려운 문장이었다. 기헌은 되물을 틈도 주지 않고 회사를 나갔다. 그를 뒤따라 험상궂은 인상의 깡패들이 우르르 나갔다. 몇몇은 겁도 없이 회사 바닥에다 카악, 하며 침을 뱉기도 했다.

    그에 태회파 조직원들이 그들의 뒤통수에다 대고 질펀하게 욕을 씹어 댔다. 흥분한 몇몇은 그들에게 달려들다 주변 이들이 막아서기도 했다.

    “…….”

    석주가 담배가 반쯤 들어 있는 담뱃갑을 손으로 콰드득 구겼다. 폭탄을 던진 것도 저고, 기헌의 식구들을 죽인 것도 저인데, 어째서인지 패배한 듯한 기분이 들었다.

    그의 입에 아진이 오르내렸다는 그 이유 하나 때문이었다.

    * * *

    “아……, 으응, 아! 사장님, 좋아, 요……. 아응! 좋아요…….”

    벽을 짚고 선 아진이 달뜬 신음을 흘렸다. 뜨겁고 두툼한 성기가 뒤로 콱콱 처박힐 때마다 눈앞이 번쩍번쩍했다. 아무것도 없어 민둥한 벽이 하늘 위가 됐다가, 꽃밭이 됐다가, 천둥 치는 밤이 되기도 했다.

    “하아…….”

    아진의 골반과 아랫배를 단단히 감싸 쥔 석주가 푸걱푸걱 좆을 쑤셔 댔다. 약만 먹으면 몸이 말랑하게 풀어지는 아진 덕에 성기가 뿌리까지 전부 들어갔다가 매끄럽게 빠져나왔다. 극상의 쾌락이 석주의 등줄기를 타고 흘렀다.

    그럼 어느 정도 부드럽게 아진을 대해 줄 만도 한데. 항상 그랬는데. 오늘의 석주는 가멸차고 자비도 없었다. 좆으로 아진의 배를 뚫겠다는 것처럼 집요하고 잔인하게 굴었다.

    깊숙이 처박힌 성기에 아진이 몸을 떨며 사정을 하든, 울고 불며 빌든, 좋다고 자지러지든 그저 퍽퍽 세게 치대기만 했다.

    그러다 석주의 귀두가 아진의 아랫배 쪽을 부욱 긁으며 안쪽까지 거칠게 짓뭉갰다. 뒤틀린 다리로 까치발을 서 있던 아진이 파드득 몸을 떨며 몇 번째인지 모를 정액을 싸질렀다. 그러고는 체력이 다해 주르륵 아래로 엎어졌다.

    벽에 머리를 쿵 박고, 허리는 아래로 늘어트렸으며, 다리는 갓 태어난 망아지처럼 비틀거렸다. 사지를 못 가누는 어린아이가 된 듯한 기분이었다. 그의 발목에 매달린 족쇄가 쩔그렁쩔그렁하며 듣기 싫은 소리를 냈다.

    아진은 요즘 약 기운이 빨리 떨어진다. 기이하리만큼 솟아오르던 체력도 금세 바닥나고, 너무 좋아서 까무러칠 것 같던 쾌감에도 무뎌졌다.

    아진이 움찔움찔 간헐적으로 몸을 떨며 힘겹게 사정의 여운을 삼키는데. 석주가 철썩 그의 엉덩이를 때렸다. 동그랗고 새빨간 엉덩이가 보기 좋게 흔들렸다.

    “아진아. 똑바로 서야지.”

    “못, 으응, 못 해요……. 아진이는, 못 해…….”

    사장님이 해 줘. 응? 사장님이……. 속눈썹에 그렁그렁하게 눈물이 맺힌 아진이 뒤를 돌아보며 웅얼거렸다. 평소의 석주라면 피식 웃으며 못 이기는 척 아진을 안아 주었을 것이다. 자세도 편히 바꿔 주고, 이마나 눈가에 입술을 비벼 주기도 했을 것이다.

    석주는 약에 취한 아진에게 너그러웠으니까.

    근데 오늘은 아니었다. 아진의 뒷덜미를 움켜쥔 그가 강제로 마른 몸을 일으켜 세웠다.

    “서라고.”

    입술을 비죽 내민 아진이 후들후들 떨리는 다리를 추슬렀다. 그리고 아예 벽에다 몸을 딱 붙여 버렸다. 이렇게 있는 게 그의 힘을 받아 내기 쉬울 것 같아서.

    이제 아진은 어떻게 해야 석주에게서 벗어날 수 있는지, 어떻게 해야 이 상황을 조금이라도 빨리 끝낼 수 있는지 골몰하는 게 아니라 어떻게 해야 버틸 수 있는지를 가장 먼저 생각하게 됐다.

    제가 무슨 꼴이 되든, 어떻게 무너지고 쓰러지든 석주는 본인이 만족하기 전까지 저를 놓아주지 않았으니까.

    석주가 아진의 뒤에 바짝 붙어 섰다. 그리고 다시금 허리짓을 이어 가기 시작했다. 그의 눈동자가 차갑게 얼어 있었다.

    ‘그냥 음, 어, 그래. 꽃. 꽃 같은 거 있잖아. 무해하고, 아름답고, 받으면 기분 좋-은 거. 그런 거야.’

    오늘 오후, 회사로 찾아왔던 기헌이 한 말이 머릿속에서 떠나질 않았다. 그가 말하는 선물이 무엇인지 가늠이 안 됐다. 굳이 꼽자면 아진과 관련한 것 같은데. 그가 주겠다는 게 아진일까. 하지만 아진은 이렇게 제 손에, 제 품에 있지 않나. 어디 감히 그따위가 주고 말고 할 수 있단 말인가.

    석주가 뿌득 이를 갈았다. 그러고는 아진의 엉덩이를 자신 쪽으로 당겨 오며 성기를 깊숙이 욱여넣었다. 이미 자신의 잇자국이 가득한 아진의 어깨를 꽉꽉 깨물기도 했다.

    아진의 날개뼈가 꿈틀거리며 경련하는 게 보였다. 배가 뚫릴 것 같다느니, 너무 깊다느니, 죽는다느니, 하며 제 팔을 잡아 오는 손이 느껴졌다.

    석주가 그 손을 벽으로 밀쳐 결박했다. 그리고 땀에 젖은 아진의 목덜미에 얼굴을 처박은 채 절정을 토해 냈다.

    사그라지는 열기에, 귓가를 맴도는 아진의 가쁜 숨소리에, 스며 오는 그의 청량한 체온에 불안감이 조금 가시는 것도 같았다.

    머리칼이 축축이 젖은 석주가 욕실에서 나왔다. 찬물을 잔뜩 뒤집어썼더니 정신이 맑아졌다. 그래 봐야 5분이 채 가지 않아 열에 다시 뒤덮이겠지만, 지금은 기분이 썩 좋았다.

    석주가 머리를 턴 수건을 빨래 바구니에 대충 던져 넣었다. 그리고 방 안으로 고개를 돌리는데. 먼저 씻겨 둔 아진이 두루마기만 걸친 채 또 파도 그림을 응시하고 있는 게 보였다.

    이제는 앉는 것도 힘들어하는 몸이라 옆으로 비스듬히 누워서, 눈을 느릿하게 끔뻑이며 그림을 보는 모습이 참 익숙했다. 요 며칠 내내 저 자세로, 저렇게 그림만 보고 있던지라.

    “…….”

    석주는 별다른 말 없이 그를 지나쳤다. 그리고 농에서 이불을 꺼냈다. 아진에게 맞춰 쓰는 두툼하고 보드라운 이불을 넓게 펴고, 베개도 놔두었다. 항상 아진이 덮고 자는 솜이불도 꺼내 놓았다.

    방에 말뚝을 박은 이후로는 타인을 들이지 않는지라 석주는 모든 걸 본인의 손으로 직접 해야 했다. 그게 그렇게 귀찮거나 번거롭지 않았다. 아진이 이 방에, 제가 아닌 다른 이와 있는 것보다야 훨씬 마음이 편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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