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쌍피-100화 (100/261)
  • 100화

    [二月十一日 현성일보]

    [잔칫집에 피바람!-조폭의 勢力다툼]

    [十일 밤 六시 三O분경 시내 東大門 구 가든 식당에서 폭탄이 터졌다. 鍾路 구에 사는 金모(48)씨는 폭탄 十개를 몸에 두르고 식당에 잠입했다.]

    [경찰 조사에 의하면 金모 씨는 심각한『필로-폰』중독이었으며, 약에 취해 범행을 저질렀다 한다. 범인인 金모씨는 폭발에 휘말려 죽었다.]

    [이날 가든 식당에서는 徐菀의 유명 조직인 中虎파의 우두머리 朴씨의 조카 결혼식 뒤풀이가 있었다. 경찰은 조폭의 勢力 다툼으로 보고 범행 主謀者를 찾고 있으나 金모씨의 죽음으로 수사가 어려워지고 있다.]

    [폭발 사건을 수사 중인 서울지검 鄭 부장검사는 徐菀을 어지럽히고 시민을 폭행하는 범죄 조직을 대대적으로 수사하겠다고 했다.]

    [해당 폭발로 가든 식당에서 결혼식 뒤풀이에 참석했던 관객과 조직원 十四명이 사망했고, 二十명이 중상을 입었다. 다행히 아이들은 놀이방에 모여 있어 一 명도 죽거나 다치지 않았다.]

    기사를 다 읽은 석주가 신문을 덮었다. 그의 입가에 만족스러운 미소가 떠올랐다.

    두혁이 생각보다 일을 잘 처리했다. 석주는 약쟁이가 어디를 가는지, 언제 어떻게 폭탄을 터트리는지 하나도 몰랐다. 폭탄만 지원해 줬을 뿐, 나머지는 전부 두혁에게 맡겼기 때문이다. 믿음의 표현이었는데, 그래도 내심 걱정은 했다.

    근데 이렇게나 시원하게 터트려 줄 줄이야. 더군다나 일반 시민이나 무고한 이들이 다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한 말도 잘 지켜 주었고. 이만하면 더할 나위 없이 만족스러웠다.

    “배 띄우라고 해.”

    석주가 사장실 문 앞에 서 있던 덕재에게 말했다. 덕재가 고개를 끄덕이며 문을 나섰다.

    일을 잘 마친 두혁과 그를 따르는 용마파는 석주가 뒤를 봐주는 배를 타고 북쪽으로 이동할 것이다. 거기서 새로이 자리를 잡고, 타인의 간섭 없이 본인들의 사업을 꾸려 갈 터였다.

    감흥 없는 눈으로 신문의 다른 기사를 뒤적이던 석주가 담배를 물었다. 그리고 자리에서 일어나 창가로 다가갔다. 바쁘게 움직이는 조직원들이 보였다.

    “열네 명이 죽고 스무 명이 다쳤다…….”

    석주가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기헌의 조카 결혼식이었으니, 중호파의 핵심 인사들이 대거 참석했을 것이다. 수락파나 용마파와는 비교할 수 없는 고위 간부들이 줄줄이 다치거나 죽었을 거라 생각하니 치미는 통쾌함이 갈무리가 안 됐다.

    석주가 큭큭거리며 웃었다. 그의 잇새로 흘러나가는 담배 연기가 덩실덩실 춤을 추는 듯했다.

    석주가 조직원들에게 일러 누가 어떻게 다쳤는지 알아보라 해야겠다는 생각을 하는데. 창밖이 소란스러워졌다.

    검은 옷을 입은 무리가 정문을 통해 들어오고 있었다. 척 보기에도 손님이나 영업장 사장은 아니었다.

    태회파 조직원들이 그들을 막아섰다. 덩치 좋은 사내들끼리 부딪히니 금세 소란이 일었다. 웅성거림과 동시에 욕설들이 창문을 뚫고 석주의 귀까지 들려왔다.

    석주가 눈을 가늘게 떴다. 파도처럼 밀었다가 밀리는 사내들 사이로 혼자 멀찌감치 우뚝 서 있는 이가 보였다.

    기헌이었다.

    “…….”

    석주가 담배 필터를 지그시 깨물었다. 분위기가 심상치 않았다. 조금 더 방관했다간 회사 안에서 패싸움이라도 날 기세였다.

    석주가 깊게 담배를 빨아 당겼다. 장초가 금세 짧아졌다. 그것을 재떨이에 비벼 끈 그가 문을 열고 사장실 밖으로 나갔다.

    석주가 긴 다리를 느슨히 꼬았다. 먼지 하나 얹히지 않은 그의 구둣발이 나른하게 까딱였다. 자신의 이마를 쓰다듬던 그가 전방을 응시했다. 널찍한 책상 건너, 기헌이 앉아 있었다.

    기헌은 못 본 새 얼굴이 조금, 아니 많이 상했다. 턱부터 왼쪽 뺨이 전부 불에 구운 쫀드기처럼 우그러져 있었는데 그 꼴이 꽤…… 통쾌했다. 제가 보낸 폭탄 탓에 생긴 게 분명한 상처라. 한편으로는 조금 아쉽기도 했다. 눈꺼풀이나 입술이 녹았어도 괜찮았을 텐데, 싶어서.

    눈꺼풀이나 입술은 생활에 지장이 가니까. 눈 한 번 깜빡일 때마다, 밥 한 술 뜰 때마다 분노해 주었으면, 했다. 제가 매 순간 아진을 떠올릴 때마다 기헌에게 분노하는 것처럼 말이다.

    석주가 라이터를 켰다가 끄길 반복했다. 반짝이는 불에 기헌의 눈동자가 설핏 구겨졌다. 폭발에 사람들의 사지가 튀어 오르고, 피가 흩뿌려지고, 아끼는 자들이 비명을 지르며 죽어 가는 걸 떠올리는 모양이었다.

    그러나 그는 금세 표정을 지워 냈다. 그러고는 입술을 옆으로 한가득 째며 웃었다.

    “내 참, 강 사장이 언제쯤 날 보러 와 줄까, 기다리고 기다리다가 내가 먼저 왔어요. 응?”

    “그래요? 왜 기다리셨을까. 우리가 뭐, 일을 같이 하는 것도 아니고.”

    석주가 라이터 뚜껑을 탁 소리 나게 닫았다. 그것을 책상 위에 던지듯 내려놓은 그가 시선을 사무실 저 멀리 던졌다. 이 만남이 지루하다는 걸 가감 없이 표현하는 거였다.

    그러나 기헌은 기분 나쁜 티 하나 없이 껄껄거리며 웃었다. 번쩍이는 손목시계가 감긴 손목을 크게 한 번 흔들기도 했다.

    “아하하, 꼭 일을 같이해야 보나. 서울이 그렇게 큰 것도 아니고. 오가며 마주치고 그러는 거지. 아무튼 그래서 내가 이렇게 왔잖아. 암만 기다려도 안 와서.”

    “…….”

    석주가 자신의 볼 안쪽 살을 핥았다. 쓸데없는 잡소리를 들어 주고 있기가 영 불쾌했다. 망가진 얼굴과 마주하고 있는 것도 비위가 좋지 않았고.

    그때, 기헌이 널찍한 사무실 앞에 줄줄이 앉아 있는 손님들을 턱짓으로 가리켰다.

    “아이고, 씨발. 여기는 사람이 디지게 많네, 그래. 우리 회사는 날파리만 졸라게 날리는데 말이야. 부러워, 강 사장. 응? 부러워.”

    손님들은 모두 서울에 업장을 두고 있는 이들이었다. 새로운 계약을 하기 위해 온 이들도 있었고, 이미 계약하고 약속된 날짜에 약을 받으러 온 이들도 있었다.

    가벼운 발걸음으로 왔던 손님들은 갑자기 들이닥친 기헌에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고개를 푹 숙인 채 시선을 피하고 있었다. 아무래도 이전엔 모두 기헌의 손님이었던 터라.

    “박 사장님도 손님으로 오시면 제가 계약서 후하게 써 드리겠습니다.”

    석주가 담배를 물며 말했다. 그리고 나른한 손놀림으로 담배 끝에 불을 붙였다. 곧 희뿌연 연기가 아지랑이처럼 흘렀다.

    “나한테? 후하게?”

    기헌이 검지로 자신을 가리키며 되물었다. 석주가 눈썹을 올린 채 고개를 끄덕였다. 그에 기헌이 탕탕 책상을 두드리며 웃었다.

    “좋지, 좋아. 음, 좋고말고. 요즘 서울 바닥 휘어잡고 있는 강 사장 물건인데. 나도 맛 좀 봐야지. 내 곰곰이 생각해 보고 곧 답 주리다.”

    “예, 그러시죠.”

    석주가 심드렁하게 대답했다. 구심점으로 가지 못하고 주변으로만 빙빙 도는 대화가 영 재미가 없었다. 답답한 건 기헌도 마찬가지였을까. 그가 의자를 앞으로 당기며 책상에 바짝 붙었다.

    “아, 맞아. 이 말 하려고 왔는데.”

    “무슨 말 말입니까?”

    “몇 달 전에 선물 보냈더만? 영 이상한 데 보내서 내가 받은 줄도 모르고 있었지 뭐야. 거참, 내가 아끼던 건데 선물을 반만 보내서 좀 놀랐어요.”

    석주가 도통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는 듯 머리를 갸웃거렸다. 그러다 아, 짧은 탄식과 함께 고개를 끄덕였다. 진걸의 머리를 말하는 모양이었다. 줬던 당일엔 이렇다 할 반응이 없었지. 그 보고를 이제야 받은 듯했다.

    “그리고 결혼식 선물도 잘 받았어. 아주 크-고 화끈하더니만? 강 사장이 우리 조카 결혼식도 챙겨 주고. 덕분에 새신랑 면상 반이 날아갔다니까. 입이 안 다물려. 신부가 징그럽다고 도망갔어, 도망.”

    “…….”

    “으아, 부산 싸-나이들은 이게 응? 배포가 달러. 나 같은 서울 촌놈이랑은 비교가 안 되네.”

    기헌이 양손을 마구 흔들며 능청을 떨었다. 그가 준 것은 고작 수류탄 하나뿐인데. 받은 건 다이너마이트였으니 그럴 만도 했다.

    허나 석주는 웃지 않았다. 검지와 중지 사이에 담배를 끼우고 기헌을 지그시 응시하고 있을 뿐이었다. 경청 아닌 경청에 기헌이 이러쿵저러쿵 신나게 말을 이어 갔다.

    “난 처음에 약쟁이가 수류탄 들고 왔길래 햐, 이게 또 뭔 귀여운 짓인가 했다니까. 근데 그 새끼 그게 허리에 폭탄을 줄줄이 싸매고 있더라고. 이야, 나는 생전 그런 폭발은 처음 봤어. 진짜 이렇게 뒤지나 싶더라고.”

    그의 말이 끝남과 동시에 석주가 설핏 미간을 구겼다. 난처하다는 듯 검지로 자신의 짙은 눈썹을 슥슥 문지르기도 했다.

    “음…… 결혼식이요? 박 사장님 조카분이 결혼하셨습니까? 이런, 몰랐네요. 알았으면 화환이라도 보냈을 텐데. 하-얀 걸로.”

    “…….”

    “근데 폭발이라니. 불꽃놀이를 크게 하셨나 봅니다. 아쉽네요. 좋은 구경인 줄 알았으면 보러 갈 걸 그랬습니다.”

    석주가 ‘하얀’을 강조해서 말했다. 모름지기 하얀 화환이라 하면 장례식에 쓰이는 것인데 말이다. 입가를 꿈틀거린 기헌이 무어라 말하려는 찰나, 석주가 딱딱 손을 튕기며 그의 말을 가로막았다.

    “아, 아아, 아니다. 그거 말씀하시는구나. 가든 식당이었나. 맞죠? 기사에서 봤습니다. 얼굴이 영 상하셨다, 싶었는데 그 때문인가 봅니다?”

    “하하…….”

    “많이 다치고 죽었다던데……. 마음이 많이 안 좋으시겠습니다. 얼른 주동자를 찾아야 할 텐데 말입니다.”

    “뭐……. 친한 경찰들이 꼭 찾아 주겠다고 하는데, 그러지 말라고 했어요. 깡패 짓 하다 보면 이런 일도 있고 저런 일도 있고 하는 거지.”

    기헌이 됐다는 듯 손을 휘저었다. 그러고는 석주의 앞에 놓인 담배를 턱짓으로 가리켰다. “강 사장, 나도 담배 하나만?” 석주는 친절하게도 담배 한 개비를 손수 빼서 그에게 내밀었다. 기헌이 고개를 내밀고 그것을 이로 받아 물었다.

    그러고는 석주가 담뱃불을 붙여 주길 기다렸다. 허나 석주는 라이터를 그의 앞으로 슥 미끄러트리기만 했을 뿐, 붙여 주진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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