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쌍피-99화 (99/261)
  • 99화

    끼이익…… 끼이익…….

    아득한 정신 너머, 마루가 뒤틀리는 소리가 귓구멍에 박혀 왔다. 아진은 생각이고 뭐고 할 것 없이 번쩍 눈을 떴다. 뻑뻑한 눈알이 찢어지는 듯 아팠지만 그런 자잘한 고통에 손 놓은 지 오래였다.

    아진은 땅을 짚고 일어나려 했다. 하지만 약 기운의 잔상에 시달리는 몸에, 후들거리는 다리에, 발목을 억척스레 깨물고 있는 무거운 족쇄에, 뒤틀린 무릎에, 무엇 하나 아진의 직립을 도와주는 게 없었다.

    특히나 최근에 달게 된 족쇄가 그렇게 어렵고 힘들었다. 자꾸 엉키는 사슬 하며, 발등을 짓누르는 철근의 무게와, 비릿한 쇠 냄새까지, 모든 요소가 끔찍이도 싫었다. 제가 진짜 수감된 죄인 같아서 더 싫었다.

    멋대로 약을 먹었던 그날 이후, 아진은 족쇄를 참으로써 더욱 좁은 공간에 수감됐다. 이제 그가 본인의 의지로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문이나 창문, 석주의 서재 같은 곳에는 손끝조차 닿지 않았다.

    족쇄를 달고, 말뚝을 박는 내내 어차피 도망갈 곳도, 도망갈 수도 없다고, 그러니 그러지 말라고 울부짖었는데. 석주는 늘 그랬듯, 귓등으로도 듣지 않았다.

    아진이 시뻘겋게 살이 짓무른 발등을 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그런 와중에도 발소리는 계속해서 가까워지고 있었다. 분명 그의 도착을 알리는 종소리가 온 집 안에 울려 퍼졌을 텐데, 그건 전혀 듣지 못했다. 그러다 저 조용한 발소리에 찬물이라도 맞은 듯 벌떡 일어난 제 꼴이 참 우스웠다.

    아진은 이마에 송골송골 땀이 맺힐 정도로 몸부림을 치고서야 몸을 일으킬 수 있었다. 헐겁게 걸치고 있던 두루마기가 어깨 아래로 스르륵 흘러내렸다. 무심코 그것을 잡아 올리는데, 몸이 기우뚱한다 싶더니 또 철퍼덕 바닥에 엎어졌다.

    “으…….”

    비쩍 마른 몸이 영 말을 듣지 않았다. 지난밤 혹사당한 가랑이 사이도 지끈거렸고, 알록달록하게 멍이 올라온 엉덩이도 곤장을 맞은 듯 아팠다.

    아진이 방바닥에 이마를 문대며 꿈틀거렸다. 그러나 포기하지 않았다. 팔자 좋게 널브러져 있다간 호되게 혼날 터였다.

    아진은 팔에 힘을 주고 앞으로 엉금엉금 기기 시작했다. 딱딱한 바닥에 닿는 무릎이 아팠지만 그런 걸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방문이 얼마 남지 않았다며 자신을 응원하고 재촉하는데. 팔꿈치가 맥없이 꺾여 턱부터 바닥에 쾅 처박혔다.

    “아흐…….”

    아진이 두 손으로 자신의 턱을 감싸 쥐었다. 찌르르한 울림이 턱을 타고 정수리까지 올라왔다. 그가 옅은 신음을 흘리며 인상을 쓰는 순간. 문이 열렸다. 복도에 줄줄이 선 초롱불이 어두운 방 안으로 스며 왔다. 그 어스름한 빛 위로 크고 새까만 그림자 서 있었다.

    석주였다.

    “아…….”

    아진이 허탈한 탄식을 흘렸다. 그가 두려움 섞인 눈으로 그림자를 올려다보았다. 그러자 그림자가 성큼성큼 방 안으로, 아진의 앞으로, 아진의 눈 안으로 들이닥쳤다.

    곧 턱이 잡혔다. 그 손길이 우악스럽진 않았다. 살이 내려 각이 선 턱선을 쓰다듬는 엄지가 뜨거웠다.

    “아진아.”

    낮은 음성이 다정하게 아진을 불렀다. 아진의 군청색 눈동자가 크게 출렁거렸다.

    “손님이 왔는데 이러고 있으면 어떡해. 응?”

    이러면 누가 값을 치러 주겠어. 그가 검지로 아진의 볼을 톡톡 두드렸다. 꾸짖는 음성에 장난기가 스며 있었다. 그러나 아진은 웃지 못했다. 그저 마른 어깨를 덜덜 떨고만 있었다.

    석주가 왜 웃지 않냐는 듯 아진의 터진 입꼬리를 위로 슬쩍 올렸다. 그다지 위협적이지도, 아픈 손길도 아니었는데 아진은 등줄기에 살얼음이 스미는 듯한 공포를 느꼈다.

    “죄송, 죄송합니다…….”

    아진이 볼품없이 쉰 목소리로 사과했다. 그에 석주가 괜찮다는 듯 그의 뒤통수를 슥슥 쓰다듬어 주었다. 그러고는 몸을 일으켰다.

    석주는 어둑한 방에 불을 켜고, 옷을 갈아입었다. 아진은 그것을 멍하니 보고 있었다. 석주는 정적으로 움직였다. 행동에 군더더기가 없었고, 부산스럽지도 않았다.

    헌데 그것을 보고 있는 아진은 숨이 찼다. 석주가 자신의 사형 집행을 준비하는 것처럼 보였다. 심장이 쿵쾅쿵쾅 거칠게 뛰었다. 하아, 하아, 하아, 몰아쉬는 제 숨소리가 귓구멍을 북처럼 두드렸다.

    그러다 속에서 무언가가 훅 치받아 왔다. 괴한의 주먹처럼 묵직하고 힘센 무언가였다. 갑작스러운 가격에 아진은 막을 새도 없이 입을 벌리며 신음해야 했다.

    “우욱…….”

    뜨거운 액체가 명치 저 아래에서부터 올라와 목젖을 짓눌렀다. 시큼하고 역겨운 맛이 입 안을 온통 물들였다. 아진은 누운 채로 토를 하기 시작했다.

    석주가 주는 마약을 먹은 후부터 이렇게 종종 속을 게워 내곤 한다. 이유는 몰랐다. 이렇게 약쟁이가 되는구나, 그런 생각만 들었다.

    아진은 매끈한 바닥을 더럽히는 토사물을 보며 얼굴을 있는 대로 찌푸렸다. 눈물이 그렁그렁하게 맺혔다.

    그가 토해 내는 건 토사물이 아니라 괴로움이었다. 공포였고, 슬픔이었고, 끝나지 않는 이 지옥 같은 나날에 대한 한탄이었다.

    아진이 파르르 몸을 떨며 구역질을 이어 가는데, 토만 가득하던 시야에 크고 단단한 손바닥이 침범했다. 잔 흉터가 많은 석주의 손이었다. 그가 쏟아지는 아진의 토를 손으로 받았다.

    놀란 아진이 다급하게 자신의 입을 틀어막았다. 그러자 석주가 그의 등을 슥슥 쓰다듬어 주며 쓸데없이 다정한 목소리로 말했다.

    “마저 해.”

    “…….”

    아진이 그를 가만히 응시했다. 순간 과거의 석주가, 제 더러운 발을 따뜻하게 주물러 주고, 헝클어진 제 머리칼에 입을 맞춰 주던 석주가 떠올랐다.

    그러나 아진은 그 환상을 금세 털어 냈다. 이제는 과거가 그립지 않았다. 그날이 다시 오지 않으리라는 걸 알아서 그랬다.

    그때의 석주는 죽었다. 그때의 저도 죽었다.

    제 눈앞에 있는 이는 다른 석주였다. 그의 눈앞에 있는 저도, 다른 아진이었다. 석주가 그리 믿었고, 그리 만들었다.

    아진이 탁, 석주의 손을 쳐 냈다. 그러고는 치미는 구역질을 입 안에 문 채, 절뚝절뚝 욕실로 향했다. 그의 발목에 걸린 사슬이 쩔그렁거리며 늘어졌다가 뭉치길 반복했다.

    석주가 멀어지는 그를 물끄러미 바라봤다.

    석주에게 턱이 잡힌 아진이 필사적으로 고개를 내저었다. 눈앞에는 하얗고 동그란 알약이 산란하고 있었다. 그래서 그것이 한 개인지, 세 개인지, 아니면 열 개인지 분간이 안 됐다. 그 때문에 더욱 무서웠다.

    아진은 눈물을 뚝뚝 떨구며 석주의 손을 밀어 냈다. 무딘 손톱으로 석주의 손목을 벅벅 긁기도 했다.

    “사장님……. 싫어요……. 흐으, 먹기, 먹기 싫어요…….”

    “먹어, 아진아. 윽윽거리면서 우는 거 듣기 싫으니까.”

    “…….”

    “네가 그럴 때마다 남창이 아니라 짐승이랑 떡 치는 기분이란 말이야. 손님 기분도 생각해 줘야지. 응?”

    모진 말에 아진의 눈에서 알이 굵은 눈물이 후두둑 쏟아졌다. 종이었다가, 남창이었다가, 이제는 짐승이 됐다. 아진의 눈에서 빛이 사라졌다. 새파란 밤하늘 같던 눈동자가 구정물이라도 덮어쓴 듯 탁했다.

    그가 시선을 아래로 내렸다. 그리고 천천히 입을 벌렸다. 알약 몇 개가 입으로 와르르 쏟아졌다. 물인지 술인지 분간이 되지 않는 것도 쏟아졌다. 아진이 그것을 통째로 꿀꺽 삼켰다.

    몇 분 후면, 저는 석주의 무릎에 뺨을 비비며 정사를 조를 것이다. 다 쉬어 빠진 목소리로 부끄러운 줄도 모르고 사장님, 사장님, 하며 석주를 보며 웃고 터진 엉덩이를 들이밀 것이다. 그럼 석주는 한결 부드러워진 얼굴로 저를 안아 주겠지.

    석주는 이렇게 하루하루 제 영혼을 지워 가고 있었다. 그 지우개질에 한 치의 망설임도, 머뭇거림도 없었다.

    이미 눈물로 얼룩진 아진의 뺨 위로 또 다른 눈물이 흘러내렸다. 목구멍에 걸린 알약이 쓰게 녹기 시작했다.

    아진은 창호지 문으로 어스름한 아침이 얼굴을 들이밀 때쯤에야 정신을 찾았다. 몸은 옆으로 뉘어져 있었고, 허리엔 석주의 팔이 감겨 있었다. 등 뒤로는 석주의 단단한 가슴팍과 뜨끈한 체온이 느껴졌다. 발목을 감싼 차갑고 무거운 족쇄도 느껴졌다.

    아진은 눈을 가늘게 뜬 채 굳어 있었다. 미약하게 들썩이는 어깨가 아니었다면 죽은 거라 착각해도 이상할 게 없는 꼴이었다.

    한참 동안 미동 없이 있던 아진이 느릿하게 눈을 깜빡였다. 분명 가만히 누워 있는데, 사위가 자꾸 옆으로 기울었다. 머리 쪽이 무거워져서 위로 솟을 것 같다가, 또 누가 다리를 잡아당기는 것처럼 아래로 미끄러질 것 같은 느낌이 번갈아 났다.

    두통이 일었다. 속도 메슥거렸고, 입 안이 텁텁했다. 약을 먹고 나면 늘 이랬다.

    약 기운에 눌려 있던 고통들이 하나둘 고개를 들이밀기도 했다. 석주의 거친 몸짓을 받아 낸 뒤와, 내내 벌어져 있던 가랑이와, 그에게 잡혔던 팔과 골반이 아팠다.

    그런데도 아진은 신음 한 자락 흘리지 않았다. 이제는 한 몸이 되어 버린 통각들이었다.

    허나 여전히 적응이 안 되는 게 있었다. 바로 듬성듬성 사라져 버리는 시간이었다. 쏜살같이 사라졌다가, 증발했다가, 또 어느 순간 갑자기 우르르 무섭게 몰려오는 그 시간이 적응이 안 됐다.

    아진은 어제가 오늘인지, 그저께가 어제인지, 내일이 오늘인지 구분할 수 없었다. 석주의 방에는 시계도 있었고, 벽 한쪽이 창호지 문이라 해가 뜨고 짐도 알 수 있었는데, 약에 취하면 그게 다 부질없어졌다.

    하루가 지났는지, 일주일이 지났는지 도통 가늠이 안 되는 것이다.

    그럼 절망해야 하는데, 아진은 자꾸 희망을 품게 됐다.

    아주 긴 시간이 지난 게 아닐까. 이만하면 100만 원이라는 그 거대한 빚에도 균열이 가지 않았을까. 손만 뻗으면 그 끝을 쥘 수 있지 않을까. 이 방에서 나가 꽃님을 만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그런 희망.

    아진이 힘없는 손으로 자신의 허리를 감싼 석주의 손등을 툭, 툭 두드렸다. 석주는 반응이 없었다. 그러나 아진은 알았다. 그가 자지 않는다는 걸.

    석주는 매일 밤. 절 안고만 있을 뿐 잠을 자지 않았다. 이유는 모른다. 본인이 자는 사이 제가 그의 목을 비틀어 죽이고 도망갈까, 감시하는 건지. 아니면 그저 잠이 오지 않는 건지. 눈을 감고 있으면서도 잠은 자지 않았다.

    “사장님…….”

    아진이 쉬어 빠진 목소리로 석주를 불렀다.

    “…….”

    석주는 아무런 대답도 없었다. 그러나 아진은 그가 듣고 있으리라는 걸 믿어 의심치 않았다.

    “저 빚…… 어, 얼마나…… 남았어요?”

    “…….”

    그 말에 석주가 반짝 눈을 떴다. 아진의 허리를 안고 있던 손에 힘이 들어갔다. 그 미약한 움직임을 눈치챈 아진이 꾸물꾸물 몸을 돌려 석주를 바라봤다.

    “마, 많이, 많이 남았어요? 50만 원? 아니면…… 80만 원?”

    컴컴한 허공 언저리에서 두 사람의 시선이 맞물렸다. 아진이 색색거리며 숨을 크게 들이마셨다가, 가늘게 내뱉었다. 숨 쉬면서 말하는 게 참 버거웠다.

    “빚 다 갚으면…… 꽃님이 아줌마 어디 있는지, 알려 주실 거예요?”

    “…….”

    “사장님……. 대답해, 주세요…….”

    제발요……. 아진이 석주의 옷자락을 잡으며 졸랐다. 퍽 귀여운 짓이었다. 그런 아진을 눈 한 번 깜빡이지 않고 쳐다보던 석주가 쓴웃음을 지었다.

    “……그래. 빚 다 갚으면 알려 주마.”

    그가 아진의 머리칼을 살살 빗어 넘겼다. 보드랍고 윤기가 흐르던 전과 달리 조금 푸석해진 머리칼이 손가락을 간질였다. 그래도 여전히 아름다운 머리칼이었다.

    석주의 긍정에 아진의 낯빛이 한결 밝아졌다.

    “감사……합니다.”

    그가 들릴 듯 말 듯 하게 웅얼거리며 석주의 품을 파고들었다. 그리고 소리 없이 눈물을 떨구었다. 잠깐 멈칫거리던 석주가 아진을 마주 안았다. 왼쪽 가슴팍이 눅눅히 젖어 들어갔다.

    “…….”

    석주는 그것을 선연히 느끼면서도 아무런 말을 하지 않았다. 그저 고집스레, 아진을 안고만 있었다.

    아진이 시시각각 바스러져 간다. 무너지고, 닳는다. 그런데도 석주는 부득부득 아진을 움켜쥐고 있었다. 그가 자꾸 가벼워지고 작아져서 손아귀에 힘을 풀 수가 없었다.

    더욱 움켜쥐고, 더욱 옥죄어야 했다.

    멍청한 짓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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