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쌍피-92화 (92/261)
  • 92화

    석주가 아진의 뺨에 연신 입을 맞추며 허리를 움직였다. 아진이 그런 석주의 어깨를 매만졌다.

    “사장님, 사장님…….”

    “후우, 후…….”

    “아……, 어, 어떡해……. 으앗, 응! 너, 너무 좋……. 아흐응!”

    아진은 얼마 지나지 않아 금세 또 절정에 다다랐다. 석주는 아진의 분홍빛 성기를 쥐고 쭉쭉 잡아당기듯 흔들어 주었다. 아진이 허리를 튕기며 비명 같은 신음을 내질렀다.

    한참이나 몸을 떨며 절정 속에서 부유하던 아진이 이내 축 늘어졌다. 석주가 그런 아진의 위로 몸을 붙였다. 그리고 코끝이 스칠 듯 가까운 거리에서 아진에게 속삭였다.

    “아진아, 웃어 봐.”

    정말이지 뜬금없고 난데없는 요청이었다. 그도 그럴 게, 아진만 흥분제에 취한 건 아니었다. 물론 생전 약을 처음 해 보는 아진이 더 깊고 어두운 구렁텅이에 떨어진 건 맞으나, 석주 역시 오랜만의 약 기운에 이성이 마모되고 있었다.

    “…….”

    아진이 느릿하게 눈을 깜빡였다. 마치 석주의 말을 씹고 소화하는 것처럼. 그러다 천천히 입꼬리를 올리며 해사하게 웃었다. 짓무른 눈이 휘어지고, 터진 입술이 호선을 그리고, 열기에 달아올라 불그스름한 광대가 봉긋 올라오는 게 참…… 사무치게도 예뻤다.

    “…….”

    석주는 한동안 숨도 쉬지 않고 아진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러다 뭔가 고민하듯 머뭇거렸다. 허나 끝내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몸을 세웠다.

    그러자 돌연, 아진이 석주를 향해 손을 뻗었다. 그러더니 석주의 목을 꽉 껴안고, 가슴을 찰싹 붙여 왔다. 얼굴은 석주의 목덜미에다 비비적거렸다. 마치 아양 떠는 고양이처럼 말이다.

    석주가 버석하니 굳었다. 그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온몸으로 스며드는 아진을 받아 내기에 급급했다.

    그렇게 얼마나 있었을까. 아진의 입가에 만족스러운 미소가 떠올랐다. 따뜻한 석주의 품이 좋았다. 내내 그를 갉아 먹고 찔러 대던 냉기가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이렇게 그에게 안겨 있으면 다람쥐처럼 겨울잠이라도 잘 수 있을 것 같았다.

    석주를 매만지고 쓰다듬고 주무르던 아진이 그의 귓가로 입술을 가져갔다. 그러고는 소곤소곤 비밀을 이야기하듯 속삭였다.

    “사장님 무지…… 따뜻해요.”

    “…….”

    “좋다.”

    그 말에 석주가 눈을 크게 떴다. 그가 다급하게 아진을 보듬어 안았다. 아진이 기다렸다는 듯 석주의 품에 더 깊숙이 파고들었다. 석주가 작은 몸을 꽉 껴안았다.

    명치 언저리에 응어리져 있던 열기가 사그라드는 듯했다.

    * * *

    아진은 늦은 오전이 되어서야 눈을 떴다. 그리고 상황 파악이고 뭐고 할 겨를 없이 욕실로 뛰어가 속을 게워 냈다. 나중엔 신물도 나오지 않았는데 계속해서 구역질을 했다. 머리가 뱅글뱅글 돌았다.

    도박장에 있을 때, 막 성인이 된 아진은 꽃님과 누나들과 함께 코가 삐뚤어질 때까지 술을 마신 적이 있었다. 그리고 술병으로 사흘 내내 앓았다. 속이 까뒤집어지는데, 정말 죽는 줄 알았다.

    그런데 지금. 그때의 딱 곱절. 곱절만큼 괴로웠다.

    속이 메슥거리고, 입 안은 바짝바짝 말랐고, 식은땀도 났고, 눈알은 빠질 듯 지끈거렸으며, 냄새와 맛 같은 게 느껴지지 않았다.

    “으…….”

    한동안 양변기를 부여잡고 있던 아진이 욕실에서 기어 나왔다. 그러고는 다급하게 농을 펼쳐 이불을 꺼냈다. 갑자기 말로 설명할 수 없는 졸음이 무지막지하게 밀려왔다. 눈앞이 노랬다가 파랬다가 난리였다. 당장 눕지 않으면 까무러칠 것 같았다.

    아진은 이불을 펴자마자 쓰러지듯 누웠다. 그 후 이불을 덮거나, 베개를 베거나 할 겨를 없이 곧장 잠이 들었다.

    그렇게 밤이 되고, 석주가 퇴근했다. 아진은 얼굴에 졸음을 주렁주렁 달고 석주를 올려다봤다. 피하거나, 욕하거나, 도망치지 않았다. 뇌를 머리 밖으로 빼놓은 듯 넋을 잃고 있었다.

    “먹어.”

    석주가 그런 아진의 앞에 흥분제를 들이밀었다. 어제 먹었던 그 하얗고 동그란 알약이었다. 손에는 술병도 쥐고 있었다. 아진이 먹지 않겠다 반항하면 어제처럼 억지로라도 먹이겠다는 심보가 또렷이 보였다.

    아진은 그걸 거부하지 않았다. 싫다고 소리쳐 봐야, 반항해 봐야 석주를 막을 수 없다는 걸 알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어차피 석주와 이 밤을 보내야 한다면. 고통에 내몰려 아프다고 울고, 빌고, 애원하는 것보다야 좋다고 우는 게 백번은 나았다. 그럼 석주도 험상궂게 절 대하지 않을 것이고, 괜한 싸움을 할 필요도 없을 테니까.

    꽃님에 대해, 명진에 대해, 그리고 또 저의 결백에 대해 말하고 싶지만 그런다고 석주가 들어 줄 리도 없고. 아진은 그저 이 지독한 추위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온종일 이 호화로운 방에 갇힌 채 쌓아 온 외로움을 해갈하고 싶을 뿐이었다.

    석주는 아진이 약을 삼키는 걸 코앞에서 보고 있었다. 무언갈 받아 낼 것이 있는 사람처럼.

    그리고 아진이 약에 취해 허물어지고, 웃음이 헤퍼지고, 쾌락에 나약해지는 걸 아주 세세히 뜯어봤다.

    아진은 시시각각 희뿌예지는 정신에 천천히 눈을 감았다. 석주의 뜨거운 손이 팔뚝을 쥐는 게 느껴졌다. 아진은 석주의 손바닥을 통해 흘러오는 그의 뜨끈한 체온에 작게 신음했다.

    그리고 그날.

    두 사람은 아주 오랜만에 한 이불 속에서 서로를 안고 잠이 들었다.

    * * *

    아진은 오늘도 늦게 일어났다. 평생 부릴 게으름을 요즘 몰아서 다 부리는 것 같다. 도박장에서는 수면 시간이 다섯 시간을 넘긴 적이 없었다. 도박장은 저녁부터 아침까지 왕성했고, 오전에는 말만 호텔이지 닭장과 다름없는 방들을 돌며 콘돔과 이불 따위를 치워야 했고, 또 초저녁부터는 풍속점에서 쓰일 요리를 해야 했다. 하루가 정말 정신없이 바빴다.

    석주의 집으로 온 후에는 사정이 조금 나아졌지만, 그래도 일찍 일어났고 일도 열심히 했다.

    근데 깨우는 사람도 없고, 깨어날 필요도 없는 하루라니. 어색하다 못해 이상했다.

    한동안 멍하니 앉아 있던 아진이 꾸물꾸물 자리에서 일어났다. 푹신한 이불과 따뜻한 방바닥이 느껴졌다. 뒤도 얼얼하긴 했지만 터진 것처럼 아프진 않았다. 석주가 어제는 한 번만 하고 놓아주었기 때문이다.

    아니, 놓아준 게 아니라 끌어안고 잤지. 그대로.

    “…….”

    아진이 발가락을 꼼지락거렸다. 상황이 또 이상하게 돌아간다. 근데 알 수 있는 것도, 할 수 있는 것도 없었다. 제 의도와 하등 상관없이 여기까지 파도에 휩쓸려 왔다. 아마 앞으로도 계속 휩쓸려서 살게 될 것이다.

    그 종착지가 윤택한 육지인지, 외로운 섬인지, 아니면 검은 파도에 침몰하여 죽는 것인지는 모른다. 앞날이 막연하고 어두웠다.

    퉁퉁 부은 눈두덩을 대충 훔친 아진이 문으로 향했다. 배가 고팠다. 꼬르륵거리며 시끄럽게 우는 게 괴로웠다.

    그가 문고리를 잡아 돌리는데.

    “어…….”

    어째 문이 열리지 않았다. 문고리가 반쯤 돌아가다가 철컥, 멈추고. 또 반쯤 돌아가다 멈췄다. 잠긴 거였다.

    아진은 문 앞에 서서 느릿하게 눈을 끔뻑였다. 정신이 멍해서 아무런 생각도 들지 않았다. 그는 그대로 뒤돌아 창호지 문으로 향했다. 허나 창호지 문도 열리지 않았다. 바깥에 걸쇠가 걸린 건지 문이 손톱만큼 열리다 다시 닫혔다.

    아진은 서재 문과, 욕실 창문까지 확인하고서야 자신이 이 방에 수감되었다는 걸 깨달았다.

    아진은 방 한가운데에 멀뚱멀뚱 서 있었다. 그러다 별다른 반응 없이, 푹신하고 안락한 이불 속으로 돌아갔다.

    “졸려.”

    아진은 목 끝까지 이불을 꼭꼭 덮었다. 두꺼운 솜이불이 목을 조르는 듯한 느낌이 났지만 이불을 내리진 않았다.

    그는 본인이 갇혔다는 걸 알았으나 겁에 질리지도, 분노하지도 않았다. 오히려 안심했다.

    도망칠 수 없는 환경이 편안했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게 정당화될 수 있으니까. 저는 ‘어쩔 수 없이’ 이 방에 있어야 하는 거니까. 그건 제 탓이 아니니까. 제가 잘못한 건 없으니까. 저는 크고 어두운 파도에 휩쓸린 피해자일 뿐이니까.

    이러면 안 되는 걸 아는데. 이렇게 멀뚱히 시간을 허비하면 안 되는 걸 아는데.

    아진은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었다. 그는 너무 아팠고, 무서웠고, 외로웠다. 단순한 불행만 겪으며 살아온지라 꽃님과, 명진과, 석주를 동시에 감당하는 건 그에게 너무 버거운 일이었다.

    아진은 이불에 질식해 죽길 바라는 사람처럼 그것을 코끝까지 올려 덮었다. 그리고 눈을 감으면서, 정말 난데없이. 하얗고 동그란 알약을 떠올렸다.

    * * *

    [사장 강 석 주]

    지나치게 반짝이는 자개 명패가 책상 한가운데에 놓여 있었다. 처음 회사를 차릴 때. 명진이 그래도 사장님인데 이런 거 하나는 있어야 한다며 손수 만들어 놓아 둔 것이었다.

    그 명패를 보던 석주가 만년필을 내려놓고 담배를 물었다. 그리고 불을 붙이지 않은 채 눈을 느릿하게 감았다가 떴다.

    오랜만에 잠을 잘 잤더니 몸이 개운했다. 명진이 다친 이후로 몸이 가벼운 건 처음이었다. 아진을 껴안고 잤다고 활기를 되찾은 몸이라니. 어이가 없었다.

    제 품에 안겨 자던 아진의 체온이 어떠했는지, 그의 숨소리가 어떠했는지를 떠올리던 석주가 손을 느슨히 풀었다가 세게 말아쥐었다.

    라이터를 든 그가 담뱃불을 붙였다. 그리고 연기를 빨며 창가로 다가갔다.

    2층에 있는 석주의 사장실은 한 면이 통유리여서 회사 전체를 내려다볼 수 있었다. 도박장이던 이 건물은 지금 완전히 다른 쓰임새로 쓰이고 있었다. 지하는 수입해 오는 술, 시가 등을 쌓아 두는 창고로, 1층과 2층은 사무실로 쓰였다.

    1층과 2층의 가운데는 크게 뻥 뚫어서 호텔 로비처럼 만들어 놓았는데, 그 덕에 석주는 2층에서도 아래를 내려다보며 누가 오가는지, 회사가 어떻게 움직이는지를 시시각각 확인할 수 있었다.

    회사는 오늘도 북적였다. 회사가 인산인해인 건 며칠 되지 않았다. 정확히는 석주가 서울에 약을 풀기 시작하면서부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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