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4화
석주가 엄지로 자신의 이마를 슥슥 긁었다. 이렇게 뜬금없이 자꾸 아진이 떠오르는 게 못마땅했다. 그렇다고 생각을 잘라 낼 수도 없는 노릇이다.
그렇게 속아 놓고, 그 결과로 명진이 저렇게 누워 있는데도 아직 정신을 못 차린 거지. 병신같이.
석주가 한숨과 함께 담배 연기를 쏟아 냈다. 그리고 담배가 반 토막 났을 때쯤, 주차장에 주차된 차로 향했다.
“최진걸은?”
석주가 덕재에게 물었다. 덕재가 얼른 대답했다.
“목 잘라서 중호파가 운영하는 카바레에 갖다 줬습니다.”
“그랬더니?”
“별말 안 하던데요. 그냥 놀라기만 했습니다. 근데 제가 보기엔, 그게 진걸이 목이라서 놀랐다기보다는 사람 시체라 놀란 것 같았습니다.”
“…….”
“나중에 진걸이 얼굴 확인하고도 쯧쯧 혀만 차고는 별다른 반응이 없더라고요. 몸은 어디 있냐 묻지도 않고, 왜 죽였냐 묻지도 않고……. 식구가 죽었으니까 냅다 칼부터 들이미는 게 당연할 낀데, 희한하지요.”
“……그래. 희한하네.”
석주가 짧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가장 선두에 있는 차에 탔다. 조직원들이 제각각 차에 올라탔다. 덕재는 석주의 옆자리에 앉았다.
“꽃님이 아줌마는?”
석주가 창문을 내리며 물었다. 덕재가 상체를 석주 쪽으로 돌리며 고개를 살짝 아래로 숙였다.
“아직…… 못 찾았습니다. 사방으로 찾고 있는데, 흔적도 없습니다. 주변 사람들한테 수소문도 해 봤는데, 밤에 사라진 거라 본 사람이 하나도 없답니다.”
“…….”
“의사가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닙니다. 수술한 날 사라졌다고. 가뜩이나 상태도 안 좋은 아줌마 가슴을 부득부득 째가 수술해 놨는데. 제대로 못 살피면 진짜 일 날 거라 카던데요.”
그 말에 석주가 담배 끝을 꾹 물었다가 놨다.
그의 말마따나, 꽃님은 상태가 좋지 않았다. 쓰러져서 병원에 와 검사를 했을 당시, 의사가 좋지 않은 말만 줄줄이 쏟아 냈다. 심장은 물론 폐도 안 좋다. 당장 수술해야 하지만, 수술해도 경과를 알 수 없다. 힘들 것이다. 아플 것이다. 비용도 많이 든다, 등등.
석주는 돈 상관 없이 얼른 수술하길 바랐다. 그리고 아진 모르게 꽃님과 통화했다. 그때 꽃님이 했던 말이 있다.
‘의사한테 들었습니다. 내가 많이 안 좋다고.’
‘어련히 알아서 잘했겠지만, 아진이한테 굳이 내 상태 전해 주지 마세요. 그놈 그거 또 앞뒤 분간 없이 울고불고 별 지랄을 다 할 테니까.’
‘부득부득 수술하라니까 하긴 하겠는데, 괜히 아진이랑 인사도 못 하고 갈까 봐 그건 좀 걱정이네요…….’
‘부탁 하나 합시다. 혹여 내가 수술실 들어갔다가 못 나오거든, 돈 좀 전해 주세요. 내가 일하면서 모아 둔 돈이 조금 있어요. 수술비에 병실비에 사장님한테 빚져 놓고 그걸 또 따로 챙긴다는 게 민망스럽긴 한데…… 그거 아진이한테 전해 주세요.’
‘큰돈은 아닌데, 내가 뭐 가족이 있는 것도 아니고, 줄 사람도 없고……. 그걸로 아진이가 밥이라도 실컷 사 먹게.’
‘걔가 어릴 때부터 못 먹어서 키도 땅딸막하고 비쩍 말랐어요. 지금이야 보기 좋아도 나이 들어서도 말라깽이면 사람이 없어 보이니까 잘 먹어야 하는데…….’
‘그리고 또…….’
‘……사장님.’
‘아진이 좀 잘 부탁합니다.’
‘아진이가 사장님을 많이 좋아해요.’
‘애가 평생 구박만 받고 살아서 누구한테 사랑받고 귀염받고 그런 게 익숙하질 않으니까 더 좋은가 봐.’
‘요즘 폐에 바람 든 사람처럼 비실비실 웃고 살아요. 그런 건 첨 봐.’
‘…….’
‘사장님도 알고 있겠지만 우리 아진이 참 예뻐요. 애가 험하게 살아왔으면서도 모난 데도 없고, 애교도 많고, 정도 많고……. 얼굴도 뭐, 보셨다시피 묘하게 생겼지요?’
‘애가 팔자가 사나워서 추위도 이상하게 많이 타고 눈물도 많긴 한데, 또 모르지. 사장님이랑 있으면 울 일이 웃을 일이 될지도.’
‘모쪼록 아진이 좀 챙겨 주세요. 꼭 부탁합니다.’
꽃님과의 대화는 그게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다. 항상 아진을 통해 듣는 그녀와 비슷하면서도 달랐다. 성격이 괄괄하고 욕도 많이 하고 신(神)기가 있어 섬뜩한 아줌마일 거라 생각했는데. 그녀는 차분했고, 진심으로 아진을 아껴 주는 사람이었다.
그런 꽃님이, 죽을까. 죽었을까. 중호파가 죽게 내버려 뒀을까.
만약 중호파가 꽃님을 빼돌렸다면, 그 빼돌린 이유가 원래 중호파의 식구였다거나, 혹은 아진에게 중요한 사람이기 때문이라면, 죽게 두진 않았을 것이다.
아주 짧은 통화였지만 꽃님은 ‘식구’로 들이기에 부족함이 없는 이였다.
무엇보다 맡은 일을 잘하지 않나. 그러니까 음식 솜씨가 기가 막힌단 말이다.
딱히 맛, 음식, 식욕 등에 흥미가 없는 석주도 고봉밥을 한 그릇씩 뚝딱 비우게 하는 맛이었다. 조직원들은 바깥에서 외식을 하자, 저녁을 먹고 가자, 해도 단호히 마다하며 집에서 먹을 거라고 씩씩거릴 정도였다. 명진도 그녀의 밥을 참 좋아했다.
석주가 차 문 안쪽에 달린 재떨이에 꽁초만 남은 담배를 비벼 껐다. 그리고 입 안에 남은 연기를 천천히 흘려보내며 말했다.
“중호파가 침대째로 데려갔으니 다른 병원에 입원을 시키든, 의사를 붙여 두든 하겠지. 죽일 거였으면 번거롭게 데리고 가지 않았을 거야. 정신도 못 차리고 있던 아줌만데 냅다 칼로 쑤시면 그만 아니냐.”
“그렇죠, 형님.”
“의사한테 물어봐. 꽃님이 아줌마한테 필요한 약이 뭔지. 그리고 약국 돌아다니면서 그 약 사 간 사람 있는지 알아보라고 해.”
“서울에 있는 약국을 전부 다요?”
“아니. 그건 너무 오래 걸릴 테니까, 일단 큰 병원 중심으로 돌고, 다음으로는 중호파 업장 근처로 돌아.”
“예, 알겠습니다.”
말을 마친 석주가 기다란 다리를 비스듬히 꼬았다. 그리고 룸미러를 통해 운전석에 앉아 있는 조직원을 바라봤다.
“회사로 가자.”
“예, 형님.”
이내 차가 우르릉, 하고 거칠게 울더니 출발했다. 그의 차를 따라 다른 차들도 움직이기 시작했다. 차가운 겨울바람이 창문을 통해 세차게 쏟아졌다. 그것을 몇 번이나 들이마시던 석주가 크고 작은 건물이 제각각으로 솟아 있는 서울을 보며 입술을 달싹였다.
“회사에 약이 얼마나 있지?”
“어……. 8kg 정도입니다. 다음 달에 일본 쪽으로 보낼 약은 어떻게든 될 것 같습니다. 근데 다음 달, 다다음 달 중국으로 보낼 약이…….”
덕재가 말끝을 흐렸다. 석주가 창문틀에 팔을 괴며 대꾸했다.
“집 근처에 건물 하나 사. 도로변이랑 떨어져 있고, 산이랑 붙은 곳으로.”
“예.”
“재료도 다시 알아보고. 값은 두 배로 쳐 줄 테니까 하루빨리 달라고 해.”
“예, 형님.”
덕재가 꼬박꼬박 고개를 끄덕였다.
짧은 대화가 끝나고, 석주는 빠르게 스쳐 가는 서울 풍경을 한참 동안 보고 있었다. 매일같이 생겨나는 건물 덕에 어제 봤던 풍경이 오늘은 또 달랐다. 아마 내일도 다르겠지.
길거리에 사람도 많았다. 다들 뽀얀 새 옷을 입고 하하 호호 웃으며 돌아다니는 게 유복해 보였다. 거지도 보이지 않았다. 대신 주점, 카바레, 노래방, 호텔, 모텔, 술집 등이 우후죽순으로 생겨났다. 그렇게 생기고 또 생기는데도 망하는 곳이 없었다.
천박하게 반짝이는 네온사인을 보던 석주가 나직이 덕재를 불렀다.
“덕재야.”
“예, 형님.”
“우리도 서울에서 장사할까.”
“……예? 국내에 약을 파실라고요?”
“그래. 우리도 중호파 것 좀 뺏어 먹지, 뭐.”
석주가 큭큭거리며 웃었다. 덕재가 그런 석주를 빤히 쳐다봤다. 농인지 진심인지 모르겠다는 표정이었다. 여전히 창턱에 팔을 괸 석주가 고개를 사선으로 비틀어 덕재를 쳐다봤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웃고 있던 얼굴이 차게 식어 있었다.
“일단 종로부터 시작하자. 종로에 있는 풍속점, 주점, 도박장에 좋은 필로폰으로 50g씩 나눠 줘. 맛보기용이다 치고.”
“…….”
“우리 명함도 주는 거 잊지 마라. 지금 빠는 게 태회파 약이라고 똑똑히 알려 줘.”
“…….”
“추후에 사러 오거든, 중호파보다 조금씩 싼 값에 팔아.”
아마 사러 올 거야. 우리 것이 맛이 좋으니까. 한참 말을 잇던 석주가 몸을 바로 세웠다. 그러더니 바람이 휘몰아치며 들어오는 창문을 올렸다. 시끄럽던 차내가 고요해졌다.
석주가 덕재의 손에 들린 라이터를 채 갔다. 아까 석주의 담뱃불을 붙여 주고 미처 주머니에 넣지 못한 라이터였다.
그가 엄지로 라이터를 밀어 켰다. 새빨간 불길이 길게 솟구쳤다. 석주가 그것을 보며 고저 없는 목소리로 말했다.
“그리고…….”
“…….”
“부산에서 애들 좀 데리고 와야겠다.”
그 말에 덕재가 숨을 크게 들이마셨다.
* * *
댕, 댕, 댕.
집 안을 쩌렁쩌렁하게 울리는 종소리에 기절한 듯 자던 아진이 게슴츠레 눈을 떴다. 익숙한 종소리. 석주가 퇴근했다는 걸 알리는 소리였다.
이전이었다면 헐레벌떡 마당으로 나갔겠지만, 오늘은 옴짝달싹하지 않았다. 움직일 수 없는 몸이라 그랬다. 나간다고 한들 석주가 기꺼워할 것 같지도 않고.
“으…….”
욕실 근처에서 구겨져 자던 아진이 옅은 신음과 함께 몸을 뒤틀었다. 몸이 너무 아팠다. 안 아픈 곳이 없었다. 매번 눈을 뜰 때마다 몰려오는 고통이 색달라서 도무지 적응이 안 됐다.
욱신거리는 몸과 찌릿한 등줄기, 따끔거리는 엉덩이, 쓰라린 가랑이를 하나하나 짚어 가던 아진이 방을 살폈다. 불 하나 켜지지 않은 석주의 방은 온통 검었다.
“허…….”
아진이 헛웃음을 흘렸다. 분명 눈을 감기 전엔 아침이었다. 것도 파란 새벽이 몰려오는 아침. 늦은 밤까지 석주와 몸을 섞었고, 기절했다가, 이른 아침 석주가 출근하는 기척에 잠깐 눈을 떴다.
그리고 또 잠들었는데. 다시 눈뜨니 밤이었다. 하루가 이렇게 허무하다니. 누가 저 몰래 태양을 켰다 끄는 게 아닌가 의심이 될 정도였다.
더 큰 문제는, 이렇게 허무하게 보낸 하루가 벌써 나흘째라는 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