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쌍피-82화 (82/261)

82화

여명이 은은히 눈꺼풀을 두드렸다. 아진이 퉁퉁 부어서 잘 움직이지 않는 눈꺼풀을 간신히 들어 올렸다. 눈알이 따끔따끔했다. 누가 잘 벼려진 바늘로 눈알과 눈가를 콕콕콕 찌르고 있는 것 같았다.

아진은 무심결에 손으로 눈을 비비려다, 팔이 움직이지 않는다는 걸 깨달았다. 그와 동시에 지난밤이 와르르 밀려왔다. 온통 석주와 아픔으로 점철된 지난밤이.

아진은 방 한가운데에 옆으로 누워 있었다. 손은 뒤로 묶여 있었고, 손을 묶은 저고리를 제외하면 이불도 옷도 걸치지 않은 채였다.

아진이 따가운 눈알을 굴려 석주를 찾았다. 어스름한 빛 사이로 떠도는 담배 연기를 따라갔더니 금세 그를 찾을 수 있었다.

석주는 나신으로 소파에 깊숙이 눌러앉아 담배 태우고 있었다. 그의 앞에는 술병이 잔도 없이 놓여 있었는데, 거의 바닥을 드러낸 상태였다. 그는 소파 등받이 뒤로 고개를 넘기고 있었다. 그래서 그가 어떤 표정을 하고 있는지 보이지 않았다.

그런 석주의 뒤로 창호지 문 한 짝이 반쯤 열려 있었다. 휘이잉-하고 겨울 아침 특유의 차가운 바람이 대차게 밀려왔다. 그 바람이 석주의 널찍한 방을 크게 휩쓸고 지나갔다.

피부를 할퀴는 듯한 찬기에 아진이 흠칫 몸을 떨었다.

춥다. 정말 지독하게 추웠다.

방바닥은 얼음장 같았고, 차게 식은 공기는 짐승의 발톱처럼 날카로웠다.

“으…….”

아진이 몸을 동그랗게 말며 신음했다. 추위를 피하려 한 작은 움직임이었는데 엄청난 고통이 밀려왔다. 몸이 마디마디로 조각나는 것 같았다. 특히 허리와 엉덩이가 아팠다. 살이 저며지고 뼈가 뒤틀리는 듯한 고통이었다.

아진은 저도 모르게 입을 벌리며 신음했다가, 툭, 하고 입가가 터지는 따끔함에, 콩주머니처럼 퉁퉁 부은 뺨이 찢어지는 듯한 아픔에 얼른 입을 다물었다. 그러다 숨을 잘못 들이켰는데, 빡빡할 정도로 부푼 목구멍이 그것을 소화하지 못해 엉켰다.

“콜록…….”

아진이 작게 기침했다. 폐가 난도질당하는 듯한 고통이 일었다. 목구멍이 따끔따끔한 게 하루 내내 소리를 질러서 그런 건지, 아니면 고뿔에 된통 걸린 건지 분간이 안 됐다.

하긴. 어저께는 돼지와 진걸을 피해 산에서 잤고, 어제는 추운 방에서 내내 석주를 받아 내다 까무러쳤으니 고뿔에 안 걸리는 게 더 용할지도 모르겠다.

기침을 한 번 했더니 끊임없이 올라왔다. 입을 꾹 다문 아진이 욱욱거리며 기침을 속으로 삼켰다. 눈을 꾹 감고 코로 색색 숨을 내쉬며 호흡을 정리하는데, 인기척이 들렸다. 아진이 찔끔 눈을 떴다.

“…….”

석주가 지척에 서 있었다. 그가 문 담배 끝에서 붉은 불씨가 깜빡깜빡 점멸을 반복했다.

아진이 기침 탓에 눈물이 맺힌 눈으로 그를 물끄러미 올려다보는데. 석주가 발로 맥없이 널브러진 아진의 다리를 옆으로 슥 벌렸다. 온갖 남세스러운 액체가 뒤엉킨 뒤가 찔걱거리며 벌어졌다.

그에 그러잖아도 하얗게 질렸던 아진의 안색이 더욱 희게 질렸다. 설마. 설마, 설마!

“아니, 안…… 안 돼요, 사장님…….”

아진이 피맺힌 입술을 달싹였다. 설마 또 하려고, 또! 도망치고 싶었는데 몸이 도무지 움직이질 않았다. 고개조차 내저을 수 없어 입만 벙긋거리는 게 다였다.

그러든 말든, 석주는 아진의 가랑이 사이를 내려다보며 담배 연기를 머금었다가 뿜기를 반복했다.

아진이 뻐근한 다리를 오므렸다. 그 행동이 매우 고통스러웠는데, 석주는 손쉽게 다리를 다시 벌려 냈다. 아진의 아래에 자리 잡은 그가 자신의 성기를 슥슥 아래위로 흔들었다. 하루 내내 이어진 정사에 불알이 텅 빌 정도로 정액을 싸질렀는데. 그런데도 아진을 괴롭히겠다고 부득부득 좆을 세우는 게 가히 악귀 같았다.

“사장……님…….”

아진의 눈에 눈물이 차올랐다. 석주는 담배를 꼬나문 채, 금세 발기한 성기를 찔끔찔끔 정액을 흘리는 구멍에 맞췄다. 그리고 귀두를 잘잘 흔들어 마른 성기에 정액을 묻혔다. 그 후 쿠우욱 성기를 박아 넣었다. 벌어질 대로 벌어진 구멍이 딱 알맞게 석주의 것을 받아 물었다.

“아흑…….”

“후…….”

석주는 제 좆에 맞게 헐거워진 아진의 뒷구멍이 꽤 만족스러웠다. 담배를 입 한쪽으로 옮긴 그가 양손으로 아진의 허벅지를 움켜쥐고 자신에게로 바짝 당겨 왔다. 삽입이 깊어졌다.

석주는 아진의 엉덩이와 자신의 골반을 착 붙인 채로 허리를 쳐올리기 시작했다. 뒤로 묶인 아진의 팔꿈치가 쿵쿵 바닥을 찧었다.

아진은 초점 없는 눈으로 석주를 보고 있었다. 그러다 시선을 위로 올렸다. 빛을 받지 못해 어둑한 천장이 보였다. 그 천장이 들썩들썩 움직였다.

그것을 가만히 보던 아진이 천천히 눈을 감았다.

보라색 무릎

아진은 눈을 뜰 때마다 다른 장면을 목격할 수 있었다. 대부분은 석주의 아래에 깔려 흔들리는 장면이었고, 소파에 앉은 그가 허공을 보며 담배 피우는 모습을 보거나, 또는 그가 수화기를 잡고 누구와 통화하는 것도 봤다.

“명진이는? 응. ……그래. 다른 애들은? 괜찮아? 어. 덕재는 시킨 일 어떻게 됐냐고 물어봐라. 그래. 꽃님이-…….”

어렴풋이 꽃님의 이름을 들었던 것 같은데, 곧장 정신을 잃어서 뒷말은 듣지 못했다. 어쩌면 그 모든 게 꿈일 수도 있고.

그렇게 여러 번 까무러쳤다가 일어났을 땐 방이 훤했다. 아침인지 낮인지는 알 수 없었다.

아진이 느릿하게 눈꺼풀을 움직였다. 해가 뜨고 지는 걸 두 번씩 본 것 같다. 대충 이틀이 지났단 말이다. 기억이 드문드문 끊겨 있어 확실하진 않았다. 어쩌면 그보다 더 긴 시간이 지났을 수도 있고.

“…….”

텅 빈 석주의 방. 아진은 여전히 바닥에 널브러져 있었다. 누가 대충 벗어 둔 옷가지처럼 구겨진 채 방치된 상태였다. 손 역시 묶여 있었다. 뒤로 꺾인 어깨도 아팠고, 손목도 쓰라리고, 손가락은 얼음처럼 차게 식어 있었다.

아진이 꿈지럭꿈지럭 손가락을 움직였다. 그것만으로도 전신에 찌릿한 고통이 몰아쳤다. 그래도 아진은 입술을 꾹 말아 문 채 손목을 뒤틀었다.

다행히 저고리는 어렵지 않게 풀렸다. 석주가 묶어 둔 매듭이 헐거웠다기보다는, 천이 해졌다는 게 맞겠다. 석주에게 거칠게 잡히고, 당겨지고, 바닥에 문대진 천이 끊긴 거였다.

“으…….”

아진이 보랏빛으로 멍든 손목을 품에 안았다. 피가 통하며 손이 저릿했다. 내내 뒤로 당겨져 있다가 앞으로 돌아온 어깨도 욱신거렸다.

아진은 한동안 고통을 삼키고 있었다. 그러다 꿈틀꿈틀 몸을 일으켰다. 이 방에서 나가고 싶었다. 한시라도 빨리 나가고 싶었다.

항상 석주의 방에 들어올 때면 어떻게든 늦게 나가고 싶어 빈둥거렸는데. 그럼 석주가 웃으며 머리를 쓰다듬어 주거나, 엉덩이를 깨물며 음담패설을 하거나, 그냥 여기서 살라며 저를 안고 뒹굴곤 했다.

하지만 지금은 아니었다.

방 안에 가득한 석주의 담배 냄새와, 비릿한 정액 냄새가 괴로웠다. 무엇보다 석주가 다시 들이닥칠까, 겁이 났다. 성큼성큼 와서는 또 제 가랑이를 벌리고 좆을 쑤실까 두려웠다.

그렇다고 도망가겠다는 건 아니었다.

아진은 갈 곳이 없었으니까. 이런 상황에서도 도망칠 곳이 없었으니까. 그리고 이대로 도망치면 석주가 오해하고 있는 그 모든 거짓이 진실이 되어 버릴 테니까.

단지 방에서만 나가고 싶었다. 나가서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제 일을 하고 싶었다. 실로 할 일이 많았다. 이틀이나 자리를 비웠으니 쌓인 게 많을 것이다. 비질도 해야 하고, 부엌일도 도와야 하고, 설거지도 해야 했다. 그게 ‘원래’ 제 일이니까.

허나 몸이 제대로 움직이지 않았다. 석주에게 내몰려 혹사당한 데다가 이틀 동안 물 한 잔 마시지 못했으니 당연했다. 몸은 비정상적일 만큼 차게 식어 가만히 있어도 오들오들 떨렸다.

아진이 소파 옆에 놓인 협탁을 쳐다봤다. 항상 술 한 병과 석주의 재떨이, 그리고 물병이 놓여 있던 곳이었다. 오늘도 그랬다. 헌데 물병이 텅 비어 있었다.

“목말라…….”

따뜻한 물 한 잔 마시면 좋을 것 같은데. 아진이 마른 입술을 뻐끔거렸다.

한 번 갈증을 인지하니 목이 너무 말랐다. 삼킬 침도 없었다. 기침하면 목구멍에서 모래가 역류하는 게 아닌가 싶을 정도였다.

주위를 두리번거리던 아진의 시선 끝에 욕실이 닿았다. 아진은 고민할 것 없이 몸을 움직였다. 가랑이 사이로 끈적하게 흘러내리는 석주의 흔적도 처리하고, 몸도 씻고, 목도 축이기 위해서였다.

아진은 방 끄트머리에 있는 욕실까지 오는 데에 아주 긴 시간을 소모했다. 반은 엉금엉금 기어서 오고, 또 반은 넘어졌다가 일어나며 얼떨결에 왔다. 무릎이 후들거려서 걷는 게 불가능에 가까웠다.

간신히 욕실에 도착한 아진은 일단 목부터 축였다. 물을 넘기는 목구멍이 너무 아팠지만 뭐 어쩌겠나. 소리를 질렀다간 벙어리가 될 것 같았고, 청승맞게 울자니 이제 더 짜낼 눈물도 없었다.

“…….”

아진은 무표정한 낯으로 몸을 씻었다. 팔을 올릴 힘도 없어 바가지에 물을 받아 얼굴을 처박고, 다리 사이도 닦아 냈다. 차디찬 물에 뼈가 다 시렸지만 따로 방도가 없으니 그저 참는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한참을 설치다 진이 다 빠져 욕실 바닥에 퍼질러 앉았다.

“하아…….”

아진이 욕실 창문을 멀뚱히 바라봤다. 그러다 콜록콜록 기침도 하고, 세수한 지 얼마나 됐다고 이마에 송골송골 맺힌 식은땀을 훔쳐 내기도 했다. 턱 끝에 아롱아롱 매달린 물방울도 닦아 냈다.

반질반질한 욕조에 아진의 얼굴이 비쳤다. 괴상하게 눌린 안면이 영 보기 께름칙했다. 뺨 한쪽은 푸르딩딩하게 물들었고, 피딱지가 앉은 입술은 하얗고, 눈알은 벌건 게 퍽 다채로웠다. 얼굴에 무지개가 뜬 것 같았다.

아진이 킥킥 웃었다. 제 꼴이 우스워 웃지 않을 수가 없었다.

아진은 한동안 늘어져 있었다. 손 하나 까딱하고 싶지 않았다. 그냥 이렇게 멍하니 있다 다시 잠들고 싶었다. 그리고 이 끔찍한 상황이 모두 끝났을 때 일어났으면, 했다.

저는 아무것도 하지 않은 채로 죄인이 되었으니, 또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있어도 누군가 진실을 알려 주지 않을까, 하는 헛된 희망을 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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