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쌍피-71화 (71/261)
  • 71화

    아진은 무언가가 잘못됐음을 깨달았다. 사실 명진의 가슴에 칼을 쑤신 도은이 제 이름을 말했을 때부터, 돼지와 진걸에게 쫓겨 산으로 도망칠 때부터, 조직원에게 목덜미가 잡혀 개처럼 끌려왔을 때부터 알고 있었지만 애써 무시해 왔는데.

    더는 부정할 수가 없었다. 뭔가가 잘못됐다. 그리고 저는, 저를 집어삼키는 이 어둠에서 쉽게 발을 빼지 못할 것 같았다.

    아진의 눈동자가 거칠게 출렁거렸다. 우물쭈물하던 그가 석주를 부르려 할 때였다.

    “사장-”

    “형님! 찾았습니다!”

    조직원 하나가 방에서 하얀 봉투를 들고 나왔다. 그것은 곧장 석주에게 전달됐다. 이로 지그시 담배를 깨문 그가 봉투를 열었다.

    봉투 안에는 돈이 들어 있었다. 대충 봐서 5천 원쯤 되어 보였다. 그리고 언젠가 석주가 아진에게 주었던 그의 명함 한 장과 사진도 들어 있었다. 아진과 석주, 둘이서만 찍었던 사진이었다.

    “…….”

    석주는 그것을 빤히 쳐다보고 있었다. 그에 아진이 엉금엉금 그를 향해 기어갔다. ‘그건 사장님이 저한테 주신 돈이잖아요. 미안하다고, 사과라고 준 그 5천 원이잖아요. 제가 훔친 거 아니에요. 아시잖아요.’ 그렇게 말하기 위해서였다.

    그때, 또 다른 조직원이 붕붕 팔을 흔들었다.

    “여기도 찾았습니다!”

    모두의 시선이 그쪽으로 향했다. 석주 역시 돈 봉투를 마루에 던져놓으며 그곳으로 고개를 돌렸다.

    큼지막한 보따리 하나가 마루 아래에서 끄집어지고 있었다. 거친 면포로 쌓인 보따리는 한눈에 보기에도 크고 무거웠다. 힘 좋은 조직원이 낑낑거리며 빼내야 할 정도였다. 다른 조직원이 그를 도와 보따리를 펼쳤다.

    온갖 잡동사니가 쏟아졌다. 깨진 석주의 크리스털 컵, 복도 선반에 두던 도자기, 탁상시계, 조직원들의 것으로 추정되는 넥타이와 손목시계, 그리고 열쇠 꾸러미, 뚱뚱한 종이봉투, 조금씩 소분된 약 봉투, 석주의 라이터, 권총, 피에 전 과도…….

    그것을 본 종들이 웅성거렸다. 조직원들도 하나둘씩 말을 뱉었다.

    “어, 저거 내 넥타인데.”

    “저건 내 시곈데. 잃어버린 줄 알았던 게 저기 있었구만?”

    “육시럴 도둑놈 새끼가…….”

    그 말에 아진은 정신이 아득해졌다. 상황이 흘러가면 안 되는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었다.

    그가 어쩔 줄 모르고 머뭇거리는 사이, 마루에서 일어난 석주가 보자기 앞으로 다가왔다. 그리고 한쪽 무릎을 굽히고 쪼그려 앉아, 무심한 손길로 그것들을 뒤지기 시작했다.

    가장 먼저 손이 간 건 열쇠 꾸러미였다. 열쇠는 반질반질하니 복사한 지 얼마 안 된 듯했다. 모두 눈에 익는 게, 석주의 집 열쇠였다. 대문 열쇠, 창고 열쇠, 명진의 방 열쇠, 석주의 방과 서재 열쇠, 하물며 화장실 열쇠까지. 없는 게 없었다.

    “…….”

    석주의 잇새로 훅 담배 연기가 뿜어졌다. 눈썹 위로는 오목한 홈이 파였다.

    열쇠 꾸러미를 대충 집어 던진 그는 다른 것도 하나하나 살펴보았다. 어디서 난 건지 5만 원이 넘게 든 돈 봉투와 권총, 과도 등을 들었다가 놓았다. 그러다 시선이 간 게, 손바닥만 한 검은 가죽 상자였다.

    담배를 고쳐 문 석주가 그 상자를 열었다. 반질반질한 금색 시계가 나타났다. 며칠 전, 석주가 명진의 생일 선물로 주었던 그 시계였다.

    그것을 본 조직원들이 자리에서 방방 뛰었다. 씨발놈, 개새끼, 우라질 등. 온갖 욕설이 아진의 뒤통수에 내리꽂혔다. 종들이 세상에, 어떻게 저걸, 악귀 같은 놈, 역겨운 놈 따위의 말을 하는 것도 들려왔다.

    그에 아진이 퍼드득 몸을 떨며 정신을 차렸다. 그가 엉금엉금 석주의 앞으로 기어갔다. 그러고는 도리도리 경련하듯 고개를 흔들며 읍소했다.

    “사, 사장님. 이거 제 거 아니에요. 진짜 제 거 아니에요, 사장님. 제가 안 그랬어요.”

    할 말이 그것밖에 없었다. 아닌 걸 아니라고 하지 또 뭐라고 하겠나. 다른 변명거리도 생각해 봤으나 떠오르는 게 없었다. 그래서 겁이 났다. 석주가 저를 오해할까 봐. 오해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어서.

    아진의 큼지막한 눈동자에 눈물이 그렁그렁 차올랐다. 추위에 붉게 언 뺨이 부들부들 떨렸고, 나무와 흙에 쓸려 피가 비치는 손은 어쩔 줄 모르고 바닥을 짚었다가, 자신의 허벅지를 쓰다듬었다가, 주먹을 말아쥐었다가 난리였다.

    아진이 다시금 입을 뗐다.

    “사장님. 정말 제가 안 그랬…….”

    그러나 조악한 변명 한마디조차 끝마치지 못했다. 철썩. 날카로운 소리와 함께 뺨이 날아갔기 때문이다. 엄청난 힘에 아진은 그대로 옆으로 쓰러졌다. 볼이 떨어진 것 같았다. 머리도 웅웅 울렸고, 눈알은 빠질 것처럼 지끈거렸다.

    아진이 얼떨떨한 표정으로 입을 우물거렸다. 누가 때렸지. 누가. 왜. 어째서. 녹슨 사고가 삐걱삐걱 뒤엉켰다. 고통과 당황에서 헤어 나오지 못한 그가 몸을 꿈틀거리는데, 머리채가 잡혔다. 거센 힘에 아진의 상체가 그대로 번쩍 들렸다.

    그제야 비로소, 아진은 자신에게 손찌검한 이가 누구인지 또렷하게 직시할 수 있었다.

    석주였다.

    믿을 수 없는 상황에 멍하니 그를 올려다보는데, 석주의 손이 재차 날아왔다. 또 철썩, 하는 소리와 함께 아진의 몸이 출렁거렸다. 이번에는 석주가 머리채를 잡고 있어 옆으로 넘어지지도 못했다.

    “우윽…….”

    어찌나 세게 맞았는지, 대번에 코피가 터졌다. 볼과 입술도 터져서 비릿한 피 맛이 느껴졌다. 콧잔등이 지끈거렸고 눈앞은 희뿌옇게 번졌다.

    아진이 끅끅 숨을 뒤틀며 입을 벙긋거렸다. 도박장에서 일하며 뺨을 맞은 적은 셀 수도 없이 많은데. 일격에 코와 입술이 죄 터진 건 처음이었다.

    “큭……. 사장……님…….”

    아진이 덜덜 떨리는 손으로 자신의 머리채를 쥔 석주의 손목을 쥐려 했다. 그러나 손끝이 닿기도 전에 석주가 휙 손을 거두었다. 아진이 그대로 옆으로 쓰러졌다. 미처 석주에게 닿지 못한 손도 바닥으로 나부꼈다.

    “…….”

    석주가 구겨진 아진을 서늘한 눈으로 내려다봤다. 그의 잇새로 희뿌연 연기가 쏟아졌다. 그 연기가 아진의 얼굴을, 아니, 석주의 눈앞을 온통 가렸다.

    사흘 전. 명진이 칼에 찔렸던 날. 석주는 명진과 함께 병원으로 왔다. 명진은 가슴에 칼을 꽂은 채 수술실로 들어갔다. 손가락 봉합 수술도 함께 진행됐다.

    수술하는 내내 의사가 수시로 나와 피가 부족하다며 우는소리를 했다. 조직원들이 서로 피를 주겠다며 팔을 걷어붙였지만, 술에 약 기운까지 있어 거절당했다.

    그래서 그 새벽에 돈다발을 들고 시내를 배회해야 했다. 피를 나누어 주면 돈을 주겠다고. 그렇게 모으고 모아 겨우 수술을 끝냈을 땐 이미 밤이 다 가고 아침이 도래해 있었다.

    핏기 하나 없는 얼굴로 누워 있는 명진을 보던 석주가 푹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다 손으로 벅벅 얼굴을 문댔다.

    명진이 칼에 맞은 게 한두 번도 아닌데. 지금처럼 목숨이 위태로울 정도로 다친 적은 없지만, 그래도 몸에 칼자국이 수두룩하게 박혀 있는데. 이번 상처는 왜 이다지도 충격적이고 괴로운지 모르겠다.

    아마.

    ‘아진아, 오늘이라며.’

    ‘오늘이라며! 오늘이면 다 죽일 수 있다며!’

    ‘이 새끼야! 네가 오늘이라며! 야 이 개새끼야! 네가 오늘이라며!’

    그 우짖던 목소리가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기 때문이겠지. 간이 의자에 앉은 석주가 엄지와 중지로 자신의 관자놀이를 꾹 짓눌렀다. 머리가 깨질 것 같았다.

    긴 머리를 귀신처럼 풀어 헤치고 명진의 가슴팍에 칼을 꽂아 넣던 여자와 그 여자를 ‘도은 누나’라며 친근하게 부르던 아진, 그리고 저를 올려다보던 당황 어린 그의 얼굴이 머릿속을 난장판으로 헤집고 있었다.

    석주가 담배를 꼬나물었다. 곁에 서 있던 조직원이 얼른 라이터를 들이밀었으나 손을 휘저어 거절했다. 그리고 필터를 잘근거리며 붕대가 칭칭 감긴 명진의 손을 바라봤다.

    기껏 챙겨 온 손가락은 쓸모가 없었다. 붙을지 안 붙을지 모르겠다고 자신 없어 하던 의사는 결국 손가락을 고스란히 돌려주었다. 그것은 어느 조직원의 주머니로 돌아갔다. 명진이 살아 있는데 땅에 묻을 수도 없고, 불에 태울 수도 없고, 기념이라고 가지고 다닐 수도 없는지라 일단 갖고만 있으라 했다.

    뻑뻑한 눈을 감았다가 뜬 석주가 명진에게 시선을 고정한 채 물었다.

    “이름이 뭐더라……. 도은이었나. 그 여자는?”

    “일단 창고에 가둬 놨습니다.”

    “안 죽었어?”

    “예.”

    “…….”

    석주가 헛웃음을 흘렸다. 이거 원. 도은의 명줄이 긴 게 다행인지 불행인지 모르겠다. 가서 들어야 할 게 많은데, 듣기가 두려웠다.

    “근데, 형님. 그년…… 덕재 말로는 꼭 약쟁이 같답니다.”

    “약쟁이?”

    “예. 총 맞았는데도 아파하지도 않고 힘은 황소 같고 바락바락 소리 지르면서 대드는 게……. 약쟁이 아니겠습니까?”

    “…….”

    약쟁이. 석주가 입 모양으로 그 단어를 거듭 읊조렸다. 약을 만들어 파는 일을 하니 약쟁이를 마주치지 않으려야 않을 수가 없는데. 이렇게 예상치 못하게 맞닥트릴 때마다 꼭 피를 본다. 그게 불쾌하기 그지없었다.

    석주가 눈을 가늘게 좁히는데, 조직원 서넛이 석주의 곁으로 다가왔다. 명진의 아래 격으로 태회파 내에서 꽤 위치가 있는 이들이었다. 그만큼 석주와 오래된 이들이기도 했다.

    “분명 계획된 일입니다. 우리 다 취해가 정신이 한 개도 없었다 아입니까? 일부러 명지이 형님 생신날에 쳐들어온 게 분명합니다.”

    “맞습니다. 그리고…… 제 생각인데, 우리가 술에 취한 게 아니라 약에 취한 게 아닌가, 싶지 말입니다.”

    “어어. 니도 그랬나? 이상하재? 이상한 거 맞재? 형님. 제가 말술 아입니까? 근데 시발, 어제는 소주 두 병 빨았다고 바로 가뿟다 아입니까.”

    “우리야 뭐 술 마셔서 그렇다 캐도, 술 별로 마시지도 않은 종들까지 싹- 다 정신이 해롱해롱했습니다. 분명 이상합니다.”

    “술에 미리 약을 타 놓은 겁니다.”

    “아니, 술에 탄 건 아닙니다.”

    분주하게 말이 오가는데, 구석에 서 있던 조직원이 돌연 목소리를 높였다. 모두의 시선이 그리로 향했다. 그가 덩치 큰 사내들 사이를 비집고 석주에게로 다가왔다.

    “정석이가 어제 뒷집 경비 서는 날이라가, 술은 입에도 안 댔답니다. 저녁 먹고 바로 뒷집으로 갈라 캤다 카데예.”

    “근데.”

    “근데 그놈도 정신 차리니까 다실 구석에 널브러져 있었답니다. 그니까 국이나 밥에 약을 탄 겁니다. 밥은 아무래도 약 타면 맛이 졸라게 티가 나이까 국이나 김치 뭐 이런 데 탄 게 아인가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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