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0화
“…….”
아진이 아랫입술을 꽉 깨물었다. 돼지도, 진걸도 저를 잡는 걸 포기한 걸까. 아니, 그럴 리 없다. 회칼과 낫으로 저를 죽이러 온 이들이다. 이렇게 쉽게 포기할 리 없었다.
어쩌면 이미 위에 올라가 있을지도. 이 끝없는 숲의 꼭대기에, 새파란 달빛을 받으며 저를 기다리고 있을지도.
그래. 그들은 모두 멀쩡한 다리를 가지고 있으니 진즉 올라갔을 것이다.
아진은 고민했다. 도피처를 탐색하는 눈동자가 불안하게 방황했다. 마른 손가락으로 나무 기둥을 긁던 그가 이내 숨을 말아 먹었다. 그리고 올라왔던 길을 다시 내려가기 시작했다.
아진은 아주 긴 시간 동안 산을 배회했다. 불편한 다리로 공포에 질려 헤매는 산은 그 어떠한 세상보다 넓고 아득했다. 무릎이 후들거렸다. 잠깐 눈을 깜빡이면 힘이 풀려 낙엽 위로 풀썩 쓰러지기 일쑤였다.
그래도 아진은 포기하지 않았다. 내려오고 또 내려왔다. 내리막으로 가늠되는 길만 골라 걷고 있는데 어째 뒷집이 보이질 않았다. 마당에 불이 환하게 켜져 있을 집도 보이지 않았다.
온통 나무와 어둠뿐이었다. 그 새까만 어둠 틈에서 낫을 든 돼지가 나오면 어쩌나, 회칼을 든 진걸이 나타나면 어쩌나, 그도 아니면 호랑이를 비롯한 짐승이 나타나 이빨을 들이밀까 여간 두려운 게 아니었다.
“후우으…….”
다리가 점점 무거워졌다. 발이 말뚝이 된 것 같았다. 걸음을 디딜 때마다 바닥에 푹푹 내리꽂히는 게 다시 뽑기가 무척이나 힘들었다.
아진이 말을 듣지 않는 허벅지를 탕탕 두드렸다. 그리고 다시 움직이려 고개를 쳐드는데.
번쩍. 세상이 밝아졌다. 아진이 무언가에 홀린 듯 빛을 쳐다봤다. 동그랗고 샛노란 빛 두 개가 떠 있었다. 아진의 머리통만 한 빛은 꼭 작은 달 같았다. 허나 달은 아니었다. 아진은 그 정체를 알고 있었다.
자동차의 헤드라이트였다.
아진의 호흡이 뚝 끊겼다. 끼이익-하고 자동차 바퀴가 바닥을 긁는 소리가 들렸다. 진짜인지 환청인지는 알 수 없었다. 그런 걸 판단할 이성이 남아 있지 않았다. 아진은 순식간에 열 살. 차 사고를 당했던 그 길거리로 회귀한 상태였으니까.
헤드라이트가 깜빡, 깜빡 느리게 반짝였다. 마치 아진에게 최면을 거는 듯했다.
아진이 그것을 멍하니 쳐다봤다. 눈은 코앞에 있는 헤드라이트를 보고 있었지만, 망막에 맺히는 건 다른 풍경이었다.
거친 엔진 소리. 매캐한 연기를 내뿜으며 구르는 바퀴. 머리 위로 드리우는 자동차의 네모난 그림자. 하늘 위로 떠오르는 작은 체구. 그를 따라 함께 하늘로 비상하는 저. 딱딱하고 차가운 바닥을 구르는 몸뚱어리. 으깨진 무릎. 으깨진 머리통.
아진이 아래를 내려다봤다. 새까만 발 아래로 질퍽하고 진득한 피가 웅덩이처럼 퍼져 나가고 있었다. 그런 와중에도 헤드라이트는 아진을 꿰뚫을 듯 맹렬하게 번쩍였다.
“어흐윽…….”
그 빛에, 그 기억에, 그 환상에 짓눌린 아진이 천천히 무너졌다.
아진이 다시 눈을 떴을 땐 세상이 환했다. 달빛은 못 뚫은 나무 사이를 해는 용케 뚫은 모양이었다.
근데 그렇다고 또 엄청 환하지도 않았다. 하늘에 검은 연기가 흩날리고 있었다. 매캐한 냄새도 났다. 누가 한겨울에 화전이라도 하나, 싶은 냄새였다.
아진은 멍하니 그 매캐한 냄새를 들이켜고 있었다. 그러면서 여기가 어디인지, 제가 왜 이곳에 있는지 반추했다. 그러다 돼지와 진걸을 상기해 냈다.
아진이 퍼뜩 자신의 팔을 만졌다. 다행히 두 팔 다 멀쩡히 붙어 있었다. 그 후엔 정면을 쳐다봤다. 헤드라이트를 번뜩이던 차가 아직도 저를 노리고 있을까 봐.
하지만 눈앞에는 겨울을 맞아 앙상해진 나무만 우뚝 서 있을 뿐이었다. 아진이 낯선 나무들을 뚫어지라 쳐다봤다.
제가 헛것을 봤을까. 하지만 분명 자동차 빛을 봤는데. 엔진 소리도 들었는데. 혹, 진걸과 돼지도 환영인가. 귀신에게 홀리기라도 한 건가.
아진이 다급하게 바지를 걷어붙였다. 무릎에 점 같은 구멍이 송송 나 있었다. 피딱지도 엉겨 있었다.
앞머리도 더듬었다. 늘 눈앞을 가리던 앞머리가 단출해졌다. 그게 어색해서 손가락으로 앞머리를 앞으로 슥슥 빗어 내렸다. 그런다고 머리가 기는 것도 아닌데 말이다.
아진이 초점 없는 눈동자로 지끈거리는 다리를 만지작거리는데. 휘잉……. 건조한 바람이 몸을 아프게 쓸고 지나갔다. 아진이 본능적으로 커다란 바위 아래로 몸을 욱여넣었다. 바위가 얼음 같았지만 기댈 무언가가 있다는 것만으로도 한결 마음이 놓였다.
“…….”
아진은 자신의 무릎을 껴안고 그 사이에 얼굴을 파묻었다.
집으로 돌아가야 할 것 같은데. 지금 몇 시지. 석주가 왔을까. 오지 않았으면 어쩌지. 아직 돼지와 진걸이 버티고 있으면? 돌아가자마자 낫과 회칼에 팔다리가 도려질 것이다. 도축 당하는 닭처럼 깍깍 소리를 지르다 까무러칠 게 분명했다.
아무도 저를 도와주지 않겠지. 석주도, 꽃님도 없으니까. 저는 명진을 다치게 한 파렴치하고 역겨운 병신이니까.
“하아…….”
아진이 한숨을 거듭했다. 목이 까끌거렸다. 야밤에 난데없이 산을 오르며 혹사당한 다리와 무릎이 지끈지끈 난리였다. 추위에 언 손가락과 발가락은 깨질 것 같았다.
아진이 붉어진 손가락에다 호오, 입김을 불었다. 그러고 있으니 울컥 서러움이 치받았다.
“씨팔……. 이게 거지지 다른 게 거진가…….”
제가 아무리 온 불행에 파묻혀 살아왔어도 갈 곳 없이 산에서 밤을 보낸 건 처음이었다. 춥고, 아프고, 배고프고, 무섭고……. 하나하나 나열하기도 버거운 이 감정을 동시에 겪고 있으니 정신이 바스러지는 게 시시각각 느껴졌다.
“사장님 보고 싶다.”
따뜻한 사장님이 그리워……. 그 커다란 손으로 꽁꽁 언 제 손발을 쥐고 꾹꾹 주물러 줬을 텐데……. 아진이 작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그때였다. 바스락. 마른 나뭇잎이 밟히는 소리가 났다. 아진이 고개를 번쩍 쳐들고 주위를 훑었다. 그러나 온통 나무만 자욱할 뿐. 움직이는 것은 보이지 않았다.
아진이 불안하게 손가락을 꿈지럭거리는데. 또 바스락 소리가 났다. 바위 뒤쪽에서 난 소리였다.
아진이 반대쪽으로 휙 고개를 돌렸다. 이번엔 소리의 실체가 보였다. 큼지막한 덩치 하나가 나무를 피해 가며 이쪽으로 올라오고 있었다.
아진은 눈을 가늘게 뜨고 덩치의 얼굴을 바라봤다. 돼지라기엔 살집이 없고, 진걸이라기엔 머리카락이 너무 짧았다. 진걸이 칼을 들고 저를 쫓아오다 머리를 깎았을 리는 없고. 다른 사람이라는 건데. 누구지…….
아진이 조마조마하게 입술을 물어뜯는 사이, 덩치는 금세 근처까지 다다랐다. 비로소 그의 안면을 확인한 아진이 눈썹을 올렸다.
태회파의 조직원이었다. 이름은 모르나 얼굴은 분명 익숙했다.
아진의 입가에 희망찬 미소가 떠올랐다. 석주구나. 석주가 저를 찾으라 보낸 것이구나.
그가 벌떡 일어났다. 아니, 일어나려 했다. 그러나 밤사이 혹사당한 데다가 추위에 꽁꽁 언 다리는 마음대로 움직여 주지 않았다. 반쯤 일어났던 아진은 바위를 쥐고 철퍼덕 뒤로 엎어지고야 말았다.
황량한 나뭇가지가 시야를 가득 메웠다. 가파른 경사를 타고 몸이 주르륵 미끄러졌다. 놀란 아진이 어, 어……, 하며 버둥거리는데. 발목이 텁 잡혔다. 동시에 미끄러지던 아진의 몸이 멈췄다.
몸이 다시 주르륵 위로 끌어 올려졌다. 아진이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꿈지럭꿈지럭 상체를 일으켰다. 그리고 저를 잡아 준 조직원을 올려다봤다.
“저, 저 찾으러 온 거예요?”
“…….”
조직원은 대답하지 않았다. 아진이 꾸벅 고개를 숙였다. 감사합니다, 그렇게 말하기 위해서였다. 근데 넓적한 손이 다가온다 싶더니 뒷덜미가 아프게 잡혔다. 우악스러운 손아귀 힘에 목이 확 졸렸다.
“윽…….”
아진이 억눌린 신음을 흘렸다. 그의 손아귀에서 벗어나려 몸을 흔들었으나 하릴없는 반항이었다. 조직원은 아진의 뒷덜미를 잡고는 성큼성큼 산에서 내려가기 시작했다.
조직원에게 잡혀 온 아진은 뒷마당에 내팽개쳐졌다.
“아윽…….”
단단한 바닥 위로 이마를 찧었다. 반사적으로 손을 내밀었다가 손바닥도 죄 쓸렸다. 무릎도 지끈거렸다. 여기저기서 산발적으로 올라오는 고통에 아진이 몸을 웅크리는데. 어째 분위기가 심상치 않았다.
빼꼼 고개를 든 아진이 주위를 훑었다. 조직원은 물론 종들까지 죄 마당에 나와 있었다. 그들은 모두 묘한 시선으로 아진을 보고 있었다. 우글우글 모여 있으면서 입방아를 찧는 이도 없었다.
마치…… 마당에서 돼지의 팔을 자르던 그때와 같았다. 달라진 게 있다면 돼지 대신 제가 엎어져 있다는 거였다.
아진이 비척비척 상체를 일으켰다. 그리고 이 기묘한 정적의 시발지이자 주최자일 사람을 찾아 시선을 옮겼다.
석주를 찾는 거였다.
그를 찾는 건 어렵지 않았다. 그는 마루에 걸터앉아 있었다. 사내종 방을 등진 채였다.
석주는 한쪽 다리는 접어 댓돌 위에 올려 두고, 반대쪽 다리는 길게 늘여 놓았다. 항상 반질반질한 구두가 오늘은 조금 탁했다. 구두가 더러운 건지, 아니면 아침인데도 끄물끄물한 날씨 탓에 그리 보이는 건지 알 수 없었다.
넥타이 없이 셔츠에 정장 재킷과 두루마기를 걸친 그는 피곤해 보였다. 거뭇거뭇하니 턱수염 자국도 올라와 있었다. 마른 입술로 담배를 꼬나문 채였고, 먼 산을 응시하는 검은 눈동자가 전에 없이 차갑고 딱딱했다.
아진이 그런 석주를 멍하니 쳐다보는데.
창호지 문이 활짝 열린 종들의 방에서 서랍장 하나가 마당으로 내던져졌다. 아진의 서랍장이었다. 곁에 서 있던 조직원들이 그것을 마구 헤집기 시작했다. 남 보여 주기 민망스러울 정도로 볼품없는 옷가지들이 흙바닥 위를 아무렇게나 굴러다녔다.
석주가 주었던 초콜릿은 발에 밟혀 으깨졌고, 꼭꼭 정성스레 눌러쓴 글씨가 가득한 공책은 찢어졌다.
아진은 자신의 살림살이가 진창이 되는 걸 물끄러미 보고 있었다.
그때. 약 5kg이 사라져서 온 집 안이 발칵 뒤집혔을 때. 그때도 제 살림살이가 엎어지긴 했지만 그건 제 손으로 그런 거였다. 남이 제 것을 짓밟는 건 생각보다 훨씬 폭력적이었고, 모욕적이었으며, 무서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