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쌍피-67화 (67/261)

67화

찢어진 현실

이틀이 지났다. 아진은 이틀 동안 별다른 일 없이 보냈다.

매일 아침 마당에 비질을 하고, 부엌에 가 일손을 돕고, 병원으로 보낼 도시락을 싸고, 시간이 빌 땐 눈에 들어오지도 않는 글공부를 꾸역꾸역 잡고 있다가, 밤에는 종 방에 들어가 몸을 옹송그린 채 잠이 들었다.

바람이 숭숭 들고, 다른 사내들의 코골이가 요란한 종 방에서 자는 건 불편했다. 석주의 방에서 자면 편할 텐데, 라는 생각을 하고 또 하면서도 발걸음이 그리로 향하는 일은 없었다.

이상하게 석주의 방에 들어갈 수가 없었다. 죄지은 것 없이 죄인으로 사는 건 이미 충분히 겪어 온 일이거늘, 이번은 달랐다.

석주의 방에 가면 안 될 것 같았다. 괜히 발을 들였다간 집 귀신이 어디 감히 발을 들이냐고 호통이라도 칠 듯해 무서웠다.

‘기죽으면 순식간에 죄인 된다. 세상이, 사람들이 그렇게 만든다고. 그러니까 당당하게 굴어.’

언젠가 꽃님이 해 준 말을 떠올리며 가슴을 펴 보기도 했지만, 종들의 의심 어린 눈초리를 받기만 하면 절로 몸을 움츠리게 됐다. 어깨가 안으로 말리고 고개도 수그러들었다.

그도 그럴 것이, 집에 석주도 없고, 명진도 없고, 조직원들에 꽃님까지 없는 상황에서 종들의 입방아는 소리도 커지고 수위도 세졌다. 그들은 숨겨 놓았던 아진에 대한 혐오를 가감 없이 표출했다.

“그럴 줄 알았어. 아진이 걔가 좀 음침-하잖아. 머리도 맨날 이-렇게 내리고 다니고. 귀신처럼……. 거기다 병신이기까지 하니, 으으, 불결해. 원래 그런 거랑은 한 밥상 쓰는 거 아닌데…….”

“아니, 어떻게 다리 병신이랑 창녀랑 붙어먹을 생각을 했대?”

“그러게. 도은이 걔는 그렇게 안 봤는데 어쩌다 아진이 같은 놈팡이한테 혼이 팔려서, 쯧쯧…….”

“그러니까 둘이 그렇고 그런 관계였는데, 사장님이 아진이한테 치근덕거리니까 도은이가 복수하러 왔다는 거야?”

“그렇다던데.”

“이상하네. 근데 왜 칼은 명진이 놈한테 휘둘러?”

“……그건 나도 모르지. 근데 도은이가 좀 이상해지지 않았어?”

“글쎄. 나는 도박장에 있을 때도 도은이랑은 안면이 없어서…….”

“김 씨. 창고에 있는 도은이한테 밥 갖다 주잖아. 뭐라고 말 안 해?”

“큼……. 그게 말이지……. 도은이 고 계집애 완전 회까닥 돌았어.”

“무슨 말이야?”

“아니, 사장님이 그년 어깨에 총을 쐈잖어.”

“응, 그렇다며.”

“근데 하-나도 아파하질 않아.”

“저번에 진걸이가 갇혀 있을 때처럼?”

“씁……. 진걸이랑은 좀 달라. 진걸이는 가면 꼬박꼬박 인사도 하고, 밥도 주는 대로 먹고 그랬는데 도은이는 대답도 안 하고, 알아듣지 못할 말만 중얼중얼한다니까? 가끔 지랄병 걸린 것처럼 발작도 하고…….”

“귀신 들린 거 아니야?”

“어마마, 그럴 수도 있겠네. 김 씨. 창고 갈 때 조심해.”

“귀, 귀신? 씨부랄 거. 그냥 밥 갖다 주지 말까? 어차피 먹지도 않는데?”

“그, 저기……. 내가 아까 점심 가지러 온 깡패들이 하는 말을 들었는데 말이야.”

“왜, 뭔데, 뭔데.”

“도은이 걔가 약쟁이가 됐다드만?”

“으잉? 약? 뽕 말하는 겨? 여기 깡패들이 파는 그거?”

“그래. 그래서 총 맞고도 아파하지도 않고, 밥도 안 먹고, 귀신 들린 것처럼 그렇다고 하더라고. 내 생각인데 말이야…….”

“응, 뭔데, 뭔데.”

“아진이가 도은이한테 이 집 약을 야금야금 훔쳐서 갖다 준 게 아닐까? 그리고 도은이가 약쟁이가 돼서 약을 못 참으니까 집에 와서 명진이든 사장님이든 목을 따라. 그럼 약을 왕창 주겠다. 뭐 그렇게 말을 한 거지.”

“이야, 그럴 수도 있겠네. 근데 아진이는 왜 그랬대?”

“뭐……. 사장님 죽이고 약 다 차지하려고 그런 거겠지. 5kg에 5천만 원이라잖어. 그것도 아니면 저한테 치근덕거리는 사장이 혐오스러워서 죽이려 한 걸 수도 있고.”

“세상에……. 그렇구먼…….”

“근데 아진이는 도은이를 언제 만난 거야? 걔가 집 밖을 나간 적이 있어? 교통사고 이후로 차라면 기겁해서 안 가지 않나? 도박장에 있을 때도 심부름 좀 다녀오라 하면 기를 쓰고 싫다 했었잖아.”

“……그건 나도 모르지.”

“에이, 이 대궐 같은 집에 걔 하나 몰래 오가는 게 뭐 그리 어려운 일일까 봐! 그리고 아진이도 스물이 넘었는데 아직도 차를 무서워하겠어?”

“응, 그건 그렇지…….”

“하여튼 이상해. 이 집구석 너무 이상해.”

하릴없는 입방아를 끝낸 종들이 하나둘 제자리로 돌아갔다. 모퉁이 뒤에서 걸레로 마루를 닦던 아진이 푹 한숨을 내쉬었다. 너무 터무니없는 소리들이라 어디서부터 어떻게 풀어 나가야 할지 가늠이 안 됐다. 헛웃음만 나왔다.

“하아…….”

아진이 걸레를 꾹 움켜쥐며 마루에 주저앉았다. 그리고 마당 건너편에 있는 창고를 응시했다.

그들의 말마따나 현재 도은은 창고에 있었다. 언젠가 진걸이 갇혔던 그 창고에. 총 맞고 치료도 안 했는데 피를 질질 흘리면서 아직도 살아 있다. 김 씨 말로는 밥도 안 먹고 잠도 안 잔다는데. 어쩌면 진짜 약쟁이가 된 걸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그녀의 칼에 찔린 명진은 수술을 몇 번이나 했다고 한다. 그 수술이 잘 됐는지, 잘 안 됐는지, 눈을 떴는지, 말았는지 아무것도 모른다. 간간이 옷가지나 도시락을 가지러 집에 들르는 조직원들이 명진에 관련해서는 입도 벙긋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리고 집에 크고 작은 사건이 생길 때마다 의심을 받던 진걸은 이번에는 눈초리를 받지 않았다.

도은이 들이닥친 날, 술에 흠뻑 취해 말단 조직원들이 모여 있는 방에서 정신없이 자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현재 병원에서 자질구레한 시중을 들고 있다고 했다.

그 말인즉슨…… 지금 진걸이 아진보다 나은 신세라는 거다.

모든 불행의 시초로 떠밀려진 아진은 꽃님의 소식도 들을 수 없었다. 수술 날짜가 벌써 이틀 전인데. 수술은 잘 했는지, 아프진 않은지, 언제쯤 퇴원할 수 있는지, 제 전화를 기다리고 있진 않은지, 외롭진 않은지, 궁금한 것도 걱정되는 것도 많았으나 전화를 걸 줄 몰랐다.

이럴 줄 알았으면 석주가 전화 거는 걸 잘 보고 있을걸……. 맨날 등신같이 수화기만 들고 있었다.

혹시나 싶어 아까 낮에 몰래 석주의 방에 들어가 전화기를 만지작거렸는데, 전화를 거는 방법은 물론, 병원의 전화번호조차 몰랐다. 그래서 한참 수화기를 들었다가 내려놓기만 하고 다시 나와야 했다.

“짜증 나…….”

아진이 벅벅 머리를 긁었다.

이게 대체 무슨 일인지 모르겠다. 모두가 아진을 사건의 중심에 두고 입방아를 찧는데, 정작 아진은 아는 게 하나도 없었다. 다른 건 다 차치하더라도 꽃님의 안위와 명진의 안위 정도는 알고 싶은데. 모든 사실에서 아진은 철저히 배제된 상태였다.

아진이 다시 창고를 쳐다봤다. 집을 짓고 남은 시멘트와 나무를 덕지덕지 붙여 만든 창고는 고즈넉하고 아름다운 본집과는 전혀 다른 생김새였다. 보기만 해도 춥고 등줄기에 소름이 돋아났다.

저 서늘한 곳에, 도은이 원피스 하나만 입고 갇혀 있는 것이다.

아진이 아랫입술을 잘근잘근 깨물었다.

사실 어제부터 도은을 보러 가고 싶었다. 처음엔 대체 왜 그랬냐고. 거기서 제 이름은 왜 불렀냐고. 그래서 제 처지가 너무 난감해졌다고. 원망하고 싶었는데 나중엔 그녀가 걱정됐다.

도박장에 있을 땐 정말 정말 좋은 사람이었던 터라. 제가 도움도 많이 받았고, 위안도 많이 받았다. 진걸이 저를 패면 저와 함께 진걸의 욕을 하며 상처를 치료해 준 친절한 사람이었다.

그래서 몰래 가 볼까, 싶다가도 제 발목을 움켜쥐었던 억센 손을 떠올리면 차마 발이 떨어지질 않았다. 발목에 그녀의 손자국이 또렷하게 남아 있는 터라 공포가 계속되고 있었다.

“그래도 누나가 죽는 건 싫은데…….”

아진이 입술을 더욱 세게 깨물었다. 이틀 내내 씹어 대던 입술이 끝내 견디지 못하고 툭 터져 피를 비췄다. 아진이 손등으로 그것을 대충 닦아 냈다.

그러고는 세찬 콧김을 내뿜으며 벌떡 몸을 일으켰다.

늦은 밤. 아진은 부엌 구석에 굴러다니던 손전등을 들고 조심히 창고로 향했다. 그가 이렇다 할 잠금장치 없이 사슬만 칭칭 감긴 문을 열었다.

끼이이-하며 문을 열자마자 쿰쿰한 곰팡내가 훅 밀려왔다. 아진이 턱을 안으로 말며 인상을 썼다가 폈다. 그리고 절뚝절뚝 창고 깊숙한 곳으로 발을 들였다. 무거운 문이 바람에 밀려 쿵 닫혔다. 그 소리가 뭐라고 아진은 어깨까지 튕기며 놀랐다.

창고는 크지 않았다. 그 덕에 아진은 어렵지 않게 도은을 찾을 수 있었다.

도은은 구석진 곳에 널브러져 머리를 벽에 쿡 처박고 있었다. 피에 젖었다가 굳은 머리가 섬뜩하게 엉킨 채였다.

꼭 귀신 같은 꼴에 아진은 당장 뒤돌아 도망치고 싶었다. 그러나 이내 생각을 고쳐먹었다. 사람이 사람한테 그러면 안 되지. 꽃님이 그랬다. 사람답게 살라고. 그래야 나중에 복 받는다고.

아진은 마른침을 삼키며 조심히 도은에게 다가갔다. 그러다 세 걸음쯤 떨어진 곳에서 멈추었다. 행여 도은이 그때처럼 제게 달려들면 얼른 내빼야 하니까.

“……누나.”

“…….”

“도은 누나.”

아진이 소곤소곤 도은을 불렀다. 도은은 처음엔 들은 척도 않더니 몇 번 더 부르자 머리를 천천히 들어 올렸다. 아진이 손전등을 천장으로 비췄다. 어둠이 한결 가시고 아진의 얼굴이 나타났다.

“나 아진이야.”

“……아진이?”

“응. 아진이.”

“…….”

도은이 입을 꾹 다물었다. 머리칼 사이로 언뜻 비치는 얼굴이 잔뜩 일그러져 있었다. 우는 건지, 아파하는 건지 알 수 없는 표정이었다. 그래도 아진은 조금 안심했다. 이틀 전, 저를 부르짖으며 몸을 뒤틀던 도은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아진이 천천히, 아주 천천히 도은에게 다가갔다. 그리고 그녀의 앞에 쪼그려 앉았다. 허나 멀쩡한 무릎이 하나밖에 없어 다 앉기도 전에 뒤로 발라당 넘어져야 했다. 등 뒤로 서늘하고 축축한 바닥이 선연히 느껴졌다.

아진이 퍼덕거리며 상체를 일으켰다. 그러고는 아무 일 없었다는 듯 양반다리를 하고 앉았다. 그 모습에 도은이 작은 웃음을 흘렸다.

“아직도 쪼그려 앉는 걸 못 하는구나?”

“……응. 여태 병신이거든.”

아진이 그녀를 따라 웃었다. 그 후 잠깐 정적이 흘렀다. 도은은 턱을 추스를 힘도 없는지 입을 뻐끔 벌린 채 아진을 응시하고 있었다. 우물쭈물하던 아진이 갖고 온 비닐을 주섬주섬 헤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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