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쌍피-61화 (61/2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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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울어지는 복도

    아진이 앞마당을 서성거리며 엄지손톱을 잘근잘근 씹었다. 없던 버릇이라 씹는 모양새가 영 어색했는데, 불안할 마음을 달랠 길이 그뿐이라 무작정 계속 씹고 있었다.

    약 삼십 분 전, 쓰러진 꽃님을 본 아진이 찢어지는 비명을 질렀다. 그 소리에 집안사람들이 다 뛰쳐나왔고, 꽃님은 곧장 병원으로 실려 갔다.

    아진은 차에 실려 가는 꽃님을 따라가려다, 진동하는 엔진 소리와 움직거리는 바퀴에 멈칫했고, 차는 그 찰나를 기다려 주지 않고 순식간에 출발해 버렸다.

    아진은 차가 떠나자마자 그 순간을 후회했다. 차가 뭐라고. 공포가 뭐라고. 그 무엇보다 무서운 게 꽃님이 죽는 것인데. 그딴 게 다 뭐라고!

    지금 걸어서라도 가 볼까, 집 밖에 버스가 다니나, 근데 몇 번을 타야 하지, 아니 꽃님이 어느 병원으로 갔는지도 모르는데. 아까 물어볼걸! 등신 새끼! 등신 새끼!

    그렇게 자책과 후회를 반복하는데. 집에서 석주와 명진이 나왔다. 평소와 달리 명진이 앞서 있었다. 그들을 뒤따라 조직원 몇몇이 우르르 나왔다. 아진이 얼른 그들에게 다가갔다.

    “꼬, 꽃님이 아줌마한테 가는 거예요?”

    “어. 병원 가 봐야 안 되겠나.”

    명진이 넥타이를 하며 말했다. 마당으로 차 한 대가 들어왔다. 명진이 급하게 차에 올라탔다. 다른 조직원들도 차에 탔다. 아진이 절뚝절뚝 그 차로 다가갔다. 어색하게 차 문을 잡고 올라타려는데. 두툼한 팔이 허리를 감쌌다. 아진이 그대로 차에서 떨어져 나왔다.

    “넌 어디 가?”

    석주였다. 아진이 멀어진 차를 애원하듯 쳐다봤다. 쭉 펼쳐진 손끝이 차 문에 닿을 듯 말 듯 했다.

    “아, 아줌마한테…….”

    “뭐 하러?”

    “……네?”

    “명진이가 가 보고 전화할 거야.”

    석주가 아진을 끌고 집으로 향했다. 그러면서 명진에게 눈짓했다. 명진이 고갯짓으로 석주에게 인사하곤 차 문을 닫았다. 아진이 숨을 말아 먹었다.

    “그, 그래도 가서 봐야…….”

    “그러니까, 뭐 하러 가냐고. 지금 검사 중이라 정신없을 텐데.”

    “아줌마가…… 혼자 있잖아요…….”

    “명진이가 가잖아. 오늘 내내 아줌마 옆에 있을 거야.”

    “하지만 아줌마랑 친한 건 전데…….”

    아진이 허리를 감싼 석주의 팔을 힘껏 밀어 냈다. 허나 석주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 그때, 차가 거친 엔진 소리를 토해 내더니 출발했다. 아진이 멀어지는 차를 멍하니 쳐다봤다. 뒤도 돌아보지 않고 가 버리는 차가 어찌나 밉고 서럽고 분한지. 눈에 핑- 하고 눈물이 다 고였다.

    “놔주세요, 사장님……. 흐, 놔주세요…….”

    아진이 대문을 통과해 사라지는 차를 아련히 바라봤다. 석주가 그런 아진의 몸을 돌려 자신을 보게 했다. 아진의 큼지막한 눈동자에 눈물이 일렁였다. 석주는 그 애처로운 낯을 보면서도 굳은 표정을 풀지 않았다.

    “아진아. 종로 병원이 어디 있는지 알아?”

    “어…… 종로, 종로 어디에…….”

    “그럼, 종로에 도로가 얼마나 많은지, 차가 얼마나 많은지는 알아?”

    “…….”

    아진이 입을 벙긋거렸다. 그가 걱정하는 게 제 공포라면 그건 문제가 안 됐다. 지금은 진심으로 차보다 꽃님의 죽음이 더 두려웠으니까. 아진이 굳센 표정으로 석주를 직시했다.

    “괜찮아요. 갈 수 있어요. 차 하나도 안 무서워요, 이제.”

    “…….”

    헌데 석주의 낯이 되레 험상궂어졌다. 그가 아진을 질질 끌고 집으로 들어섰다. 아진은 뒤꿈치에 힘을 잔뜩 주고 버텼지만 그의 힘을 이길 순 없었다.

    “사장님!”

    결국 아진은 석주의 방까지 끌려오고야 말았다. 아진을 놔준 석주가 문을 쾅 닫았다. 그리고 커다란 몸으로 문을 가리고 섰다.

    “분위기가 흉흉해. 괜히 나갔다가 중호파 놈들한테 잡힐 수도 있어.”

    “하지만…….”

    아진이 잘근잘근 아랫입술을 씹었다. 잠깐이라도 보고 싶은데. 꽃님이 지금 살아 있긴 한 건지 알고 싶은데. 가족이 없어 그 무서운 병원에 혼자 있을 텐데. 제가 가 줘야 하는데. 할 말은 많지만 어째서인지 입 밖으로 나오질 않았다.

    아진이 죄 없는 입술만 물어뜯는데, 석주가 그의 앞에 바짝 붙어 섰다.

    “검사해 보고. 위독하다고 하면 그때 데려다줄게.”

    그 말에 아진의 눈이 튀어나올 듯 커졌다.

    “위, 위독할 수도 있는 거예요? 죽을병, 그 뭐더라, 어, 암 그런 거?”

    “아닐 거야. 아닐 테니까, 내일이나 내일모레쯤 집에 올 테니까, 일단 기다려 봐.”

    “…….”

    아진이 고개를 푹 숙였다. 그의 머리칼이 온통 앞으로 흘러내렸다. 석주가 미웠다. 별일이든 아니든, 가서 보고 싶단 말이다. 함께 있어 주고 싶단 말이다. 그게 뭐 그리 어렵고 대단한 일이라고 저를 막아서는지 이해가 안 됐다.

    제 무릎이 아작 났던 열 살. 보호자도 뭣도 없이 혼자 병원에 있으면서 얼마나 무서웠는데. 병원비가 없어 붕대만 칭칭 감은 채 쫓겨나는 게 얼마나 서러웠는데. 아무것도 모르면서.

    굵직한 눈물이 뚝뚝 떨어졌다. 그것을 보던 석주가 코로 한숨을 내쉬었다. 그가 조심히 아진의 뺨을 감싸 올렸다. 아진은 고집스레 시선을 내리고 석주를 봐 주지 않았다. 울음을 삼키는 눈가와 코끝이 붉었다.

    석주가 그런 아진의 볼을 살살 쓰다듬으며 그를 달랬다.

    “얼굴 봐 봐. 왜 울어. 많이 놀랐어?”

    “…….”

    “아진아. 아줌마는 괜찮을 거야. 아무리 큰 병이라도 수술하면 나을 수 있어. 내가 우리나라에서 최고로 실력 좋은 의사한테 치료받게 하마. 응? 그러니까 울지 마라.”

    석주는 지극히 아진을 달랬다. 허나 아진은 병원에 가지 못하는 것이 서러운지 입을 앙다문 채 눈물만 뚝뚝 흘려 댔다. 석주가 아진의 뺨에 꾹 입술을 눌렀다가 뗐다.

    그런 석주의 눈이 전에 없이 건조했다. 평소라면 호들갑을 떨며 아진을 걱정했겠지만, 지금은 아니었다.

    꽃님이 병원에서 홀로 죽어 가는 것보다, 아진이 제집을 떠나는 게 더 싫었으니까. 다른 종들이야 장도 보고, 가족도 만나며 밖을 오가나 아진은 그러지 않았으면 했다. 파렴치한 같아 입 밖으로 꺼내진 못했지만 그가 차를 무서워하는 게 반갑기까지 했었다.

    아진은 오롯이 제집에서, 제 품에서 살아야 했다. 그래야 제가 사랑해 주기도, 지켜 주기도 편하니까.

    아진은 한참 동안 울었다. 한 시간은 족히 운 것 같다. 서러움 가득한 울음 사이로 꽃님이 보고 싶다며, 그녀가 걱정된다며 석주를 졸랐으나 석주는 그를 도닥이기만 하고 끝내 허락해 주지 않았다.

    결국 포기한 건 아진이었다. 석주는 소파에 앉아 아진을 자신의 허벅지에 눕혀 놓고 그의 머리칼을 쓰다듬어 주었다.

    아진은 석주의 허벅지에 눈물을 찔끔찔끔 찍어 내다, 붉어진 눈으로 그를 올려다봤다. 간간이 히끅히끅 딸꾹질을 하는 게 상황에 맞지 않게 귀여웠다.

    “아줌마…… 괜찮겠죠?”

    “그럼.”

    “아줌마가 그렇게 쓰러지는 건 처음 봤어요. 솥을 혼자 번쩍번쩍 들 만큼 힘도 센데……. 목소리도 크고…….”

    “…….”

    “아, 요즘 속이 안 좋다고 밥을 잘 안 먹었긴 했어요. 그리고 밥하다 말고 가만히 서 있기도 하고, 일찍 자러 갔다가 늦잠을 자기도 하고……. 그냥 피곤해서 그런가 보다, 했는데…….”

    “정말 그냥 피곤해서 쓰러진 걸 수도 있어. 저번에 너도 그랬잖아. 별일 아닐 거야. 이참에 부엌에서 일할 사람을 더 찾아야겠다. 꽃님이 아줌마 안 힘들게.”

    석주가 나긋한 음성으로 아진을 달랬다. 아진이 고개를 끄덕이며 다시 석주의 허벅지에 뺨을 묻었을 때였다.

    따르릉, 따르릉.

    서재 책상에 있는 전화기가 날카롭게 울었다. 아진이 벌떡 상체를 들었다. 석주가 그의 뒤통수를 크게 쓰다듬어 주고는 몸을 일으켰다.

    긴 다리로 성큼성큼 서재에 도착한 석주가 전화를 받았다.

    “어. 명진이냐. ……그래. 아줌마는? 어. 의사가 뭐라던? ……어. 응. 알았다. 꽃님이 아줌마 지금 통화할 수 있는 상태야? 어. 그래. 바꿔 봐라.”

    석주가 아진에게 손짓했다. 아진이 기다렸다는 듯 석주의 곁으로, 전화 앞으로 달려갔다. 석주가 그에게 수화기를 내밀었다. 아진이 조심스레 귀를 가져다 댔다. 전화를 받아 보는 게 처음이라 모습이 영 어색했다. 직접 수화기를 들어야 하는데, 어쩔 줄 몰라 석주가 대신 들어 주었다.

    수화기에서는 바람 소리 같은 게 났다. 마른 낙엽이 사부작거리며 부딪히는 소리 같기도 했다. 그 잡음 속에 꽃님의 목소리는 없었다. 기다리다 못한 아진이 슬쩍 꽃님을 불렀다.

    “아, 아줌마?”

    -……어, 아진이냐?

    아진이 눈을 크게 떴다. 꽃님이었다. 정말 꽃님이었다. 조금 낯설긴 하지만 말투며 목소리며 그녀가 맞았다. 아진이 석주의 손에서 와락 수화기를 채 갔다. 그리고 수화기에 들어갈 듯 머리를 들이밀었다.

    “아줌마! 괜찮아? 안 아파?”

    -괜찮지 그럼.

    “아픈 건? 아까 엄청 세게 넘어졌어. 이마에 혹 난 거 아니야?”

    -혹 안 났어. 그냥 머리만 조금 지끈해. 술 마신 것처럼 어지럽기도 하고. ……많이 놀랐냐?

    “그럼! 놀랐지!”

    -놀랄 것도 많다.

    “의사가 뭐래? 많이 아프대?”

    -아직 몰라. 뭐 온갖 검사를 다 했는데, 결과 나오려면 좀 있어야 한다더라. 근데 지금 멀쩡히 잘 걸어 다니고 하는 걸 보니 큰 병은 아닐 거란다.

    “하아…….”

    아진이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손등으로 눈두덩을 벅벅 문지른 그가 수화기를 두 손으로 고쳐 쥐었다.

    “그럼 집엔 언제 와?”

    -몰라. 결과 나와 봐야 안다니까.

    “내가…… 내가 갈까?”

    아진이 석주를 슬쩍 등지며 말했다. 뺨 위로 석주의 날카로운 시선이 박히는 게 느껴졌지만 모르는 척했다. 꽃님이 여지만 준다면, 그녀가 절 필요로 하면 새벽에 몰래 도망을 쳐서라도 그녀에게 갈 생각이었다.

    헌데 꽃님이 대차게 거절했다.

    -됐다. 여까지 뭐 하러 와. 네가 의사냐? 와서 뭘 할 수 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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