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쌍피-48화 (48/2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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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직 살아 계세요?”

    “아니.”

    석주가 고개를 내저었다. 그에 아진이 울상을 지었다. 일면식도 없는 이들이나 어쨌든 석주의 부모이지 않나. 침울한 아진의 낯에 석주가 피식 웃으며 그의 어깨를 고쳐 안았다.

    “진짜 아버지는 아니야. 진짜 아버지는 얼굴도 몰라. 뒤졌는지 도망을 갔는지. 어머니께서 날 혼자 키웠는데, 내가 열두 살 때쯤 병으로 돌아가셨어. 가난해서 병원이고 약이고 구할 수 없을 때라 무슨 병으로 돌아가셨는지도 몰라.”

    “그럼…….”

    “열일곱 무렵 날 거둬 주신 양아버지. 그분께 약 만드는 걸 배웠지.”

    “그분은 어떻게 약 만드는 걸 알았는데요?”

    “나처럼 약 파는 장사를 했거든. ……약쟁이였기도 하고.”

    아진이 눈을 빠르게 깜빡였다. 약쟁이였다고? 어쩐지 석주와는 영 어울리지 않았다. 아진은 약은 못 봤어도 약쟁이들은 으레 봐 왔다. 큰 판을 노리고 도박장에 자주 들렀기 때문이다. 하나같이 마르고, 퀭한 게 꼭 해골이 걸어 다니는 것 같았다. 그런 사람이 석주의 양아버지라니. 이질적이었다. 아진의 의문을 눈치챈 석주가 입을 뗐다.

    “처음부터 약쟁이는 아니었어. 원래는 청태파라는 조직의 이인자였지.”

    “어, 청태파요? 태회파처럼 태네요? 그럼 파도라는 뜻이에요?”

    “똑똑하네. 맞아. 푸른 파도라는 뜻의 부산 조직이야.”

    “아…….”

    “아버지는…… 좋은 분이셨다. 멋지고, 사람 귀한 줄 알고, 동정할 줄 알고, 양아치처럼 아무한테나 시비를 걸거나 여자를 때리는 일 같은 건 없었어.”

    “지금 사장님처럼요?”

    “푸흐, 그래. 그런 분이라 하루 벌어 하루 살던 나를, 귀염성도 없고 다 큰 남자였던 나를 불쌍히 여겨 거둬 두기까지 하셨지.”

    석주가 피식 웃으며 아진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그대로 손을 내려 말랑말랑한 볼을 문지르기도 했다. 아진이 한쪽 눈을 어그러트리며 질문을 이어 갔다.

    “그런 분이 어쩌다 약쟁이가 되셨대요?”

    “청태파의 우두머리는 아버지를 좋아하면서도 미워했어. 조직원들은 물론 부산 시민들까지 아버지를 너무 잘 따르니까, 시기한 거지. 그 시기는 질투가 됐고, 끝내 원망과 증오가 됐다. 아버지를 내쳐야 한다는 모리배들의 말도 한몫 톡톡히 했지.”

    “…….”

    “결국엔 없는 명분을 만들어 아버지를 잡아 가뒀고, 강제로 약을 투약했어.”

    “…….”

    “당시에 나를 비롯해 아버지를 따르는 조직원들은 마약 거래를 위해 중국에 가 있었고, 말릴 사람은 하나도 없었다.”

    “…….”

    “출장 가면 항상 아버지도 함께 가시는데, 그날은 우두머리가 아버지를 따로 불러 잡아 뒀었어. 이상하다 생각은 했는데, 등신같이 그냥 생각만 했다.”

    석주가 어금니를 꾹 씹었다가 놓았다. 아진이 그런 석주의 손을 맞잡았다.

    “한 달. 아버지는 한 달 만에 창고에서 약쟁이가 됐어. 청태파 우두머리는 아버지가 얼마나 망가졌는지 부산 시민이 모두 보길 바랐어. 그래서 아버지를 시내 극장 앞에다 짐승 풀어 놓듯, 풀어 놓았지.”

    “…….”

    “아버지는 약을 찾아서 부산 시내 길바닥을 기어 다니다 골목에서 아사하셨다.”

    아진이 발을 우뚝 멈췄다.

    “아사……라면…….”

    석주가 따라 멈췄다.

    “굶어 죽었어.”

    아진이 입을 꾹 다물었다. 요즘 세상에 굶어 죽다니. 다들 살기 어렵다고 불평불만을 하지만 입에 풀칠하기도 버겁다, 라는 말은 사라진 지 좀 됐다. 주위 나라에 비하면 한국은 제법 잘사는 나라였으니까.

    잘살고 못살고의 기준은 장롱에 돈이 얼마나 있냐, 고기반찬을 얼마나 자주 먹냐의 차이지 밥을 먹고 못 먹고의 차이는 아니었다.

    근데 굶어 죽었단다. 서울에 사는 거지도 굶어 죽진 않았다. 사람들은 어째서 석주의 아버지에게 밥을 주지 않았을까.

    울적한 아진의 낯에 석주가 쌉싸름한 미소를 띠었다.

    “인간이란 게 그래. 그들이 굶어 죽으려 할 때, 아버지는 당신의 곳간을 털어 쌀을 주고, 소금을 줬는데. 어렵게 생활하던 조직원에겐 당신의 밥숟가락도 넘겨줬었는데. 반대가 되니 아무도 도와주지 않더라고.”

    “나쁜 사람들이네요. 시민들도, 조직원들도. 다 한 식구였을 텐데…….”

    “원래 배신이라는 건 한순간이다. 기회만 있으면, 내게 득 되는 것만 있으면, 반대로 내게 흠 되는 것만 있으면 하게 될 수밖에 없어.”

    “……지금도 있어요? 청태파?”

    “없어.”

    석주가 단호하게 말했다.

    “내가 다 죽였거든.”

    아진이 잠깐 숨을 멈췄다. 석주가 그런 아진을 내려다보며 옅게 미소 지었다. 그의 검은 눈동자에 오래되어 색이 죽은 피가 소용돌이치고 있었다. 아진은 뒷걸음질을 치지 않기 위해 최선을 다해야 했다.

    “오래 걸리긴 했지만, 하나하나 빼놓지 않고 죽였다. 그리고 아버지 편이었던 이들을 모아 새로 조직을 만들었어.”

    “그게 태회파……군요.”

    파도가 모인다는 게 무슨 뜻인지 몰랐는데. 비로소 알 것 같았다.

    “그래. 그리고 부산 여기저기에 남아 있는 아버지 흔적을 보기 괴로워서, 사람들이 미워서, 그렇다고 깡패 아닌 사람들을 도륙할 순 없으니 사업을 키운다는 명목으로 서울에 왔지.”

    아진이 작게 고개를 주억였다.

    두 사람은 잠깐 멈췄던 산책을 다시 이어 갔다. 석주가 아진의 작은 손을 조물조물 주무르며 말을 마무리했다.

    “아무튼, 아버지가 약은 기가 막히게 만드셨었어. 그때 약 맛을 못 잊은 이들이 여전히 우리한테서 약을 사 가지.”

    “그렇구나…….”

    아진이 느릿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석주가 했던 말을 꼼꼼히 되씹었다. 석주를 멋진 사내, 양반 같고 신사 같은 사내라고 생각했는데. 저와는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파란만장한 삶을 살아왔구나 싶어서 가슴이 찡했다. 주책이었다.

    그러다 뒤늦게 정신 차린 아진이 이만 돌아가자고 말하려는데. 석주가 그의 손을 당겨 자신 쪽으로 끌어왔다. 아진이 석주의 품에 안겼다. 석주가 그의 허리를 감싸 몸을 붙였다. 그리고 아진의 늘씬한 허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아진이 네 이야기도 해 봐.”

    “네?”

    “어쩌다 도박장에서 일을 하게 된 건지, 네 부모는 누구인지, 친한 친구는 없는지, 그런 거.”

    “…….”

    아진이 자신의 목덜미를 긁었다. 어려운 질문도 아닌데 쉽게 말문이 트이질 않았다. 그런 이야기를 남에게 한 적이 없어서. 물어 주는 이도 없었고, 누군가에게 토로하고 싶다는 생각도 안 해 봤다.

    아진은 섣불리 입을 떼지 못하고 우물쭈물했다. 석주는 그의 손을 만지작거리며 잠자코 기다렸다. 이내 아진이 천천히 입을 뗐다.

    “부모님은…… 몰라요.”

    “몰라?”

    “네. 제가 여섯 살 때 납치를 당했는데,”

    “……뭐? 납치?”

    “네.”

    아진이 몹시 여상하게 대꾸했다. 끔찍한 말을 하면서 일말의 동요도 없었다. 석주가 입을 벙긋 벌렸다. 웬만해선 놀라는 일이 없는 그인데, 방금 아진이 한 말은 놀랍다 못해 충격적이었다.

    납치라니. 생각지도 못한 과거였다. 제가 괜한 걸 물었다. 석주가 더는 말하지 않아도 된다고 하려는 찰나. 아진이 허탈한 웃음을 흘렸다.

    “아니, 사실 그냥 제가 납치라고 생각하는 거예요. 부모님이 절 버린 건지, 판 건지, 잃어버린 건지 모르죠. 기억이 없으니까.”

    “…….”

    “근데 꽃님이 아줌마가 저는 원래 주어진 생이랑 다른 삶을 살고 있댔어요. 부잣집 아들로 세상 사랑을 다 받고 자라야 하는데 이 꼴로 사는 걸 보니 납치돼서 인생이 바뀐 거라고 했어요. 근데 그게 더, 음, 기분 좋으니까 그냥 그렇게 믿고 살아요.”

    아진이 민망하다는 듯 어색하게 입꼬리를 올렸다. 말하고 나니 참 등신 같다. 석주가 절 어떻게 생각할지 겁도 났다. 저 좋자고 생각하는 것도 정도가 있지 그렇게 믿고 사냐고 비웃으면 조금 슬프겠다, 그런 생각을 하는데.

    석주가 진지한 낯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아무래도 그렇지. 네가 도박장에서 화투패 정리할 관상은 아니니까. 내가 말했지 않냐. 넌 귀하게 자란 양반집 도련님 같다고.”

    예상외의 대답에 아진의 눈이 크게 떠졌다. 그래. 석주도 그런 말을 한 적이 있긴 했다. 자려고 누운 저를 한참이나 뜯어보더니 말했었지.

    ‘넌 꼭 귀하게 자란 양반집 도련님 같아. 생긴 것도 그렇고. 보들보들한 피부도 그렇고.’

    놀리는 거라 생각했는데. 진심이었던 모양이다. 아진이 자꾸 씰룩거리며 올라가려는 입꼬리에 아랫입술을 지그시 깨물었다. 그러자 석주가 심각한 낯으로 물었다.

    “어쩌다 부모랑 헤어졌는지 몰라? 기억이 아예 없어?”

    “네. 음……. 드문드문 뭐가 기억나기는 하는데…….”

    “뭔데? 뭐든 말해 봐라.”

    “어……. 부모님 기억은 아니에요. 그분들은 전혀 기억이 안 나요. 처음 기억은 아주 어두운 곳에서 며칠 있었던 거예요. 습하고 창문도 없었어요. 바람 소리가 세게 났는데 그게 짐승 소리 같았어요. 너무 무서워서 까무러칠 때까지 울었던 기억이 나요.”

    “…….”

    “그다음엔 알전구가 흔들리는 지하 같은 곳에 있었어요. 원래 있던 곳이랑 비슷한데 달랐어요. 하수구 냄새가 났거든요. 거기엔 저보다 어린애들도 있었고 다 큰 형, 누나들도 있었어요. 어른들도 많이 오갔어요.”

    “…….”

    “거기서 누가 저를 샀는데 닭이랑 돼지가 엄청 많은 부자 아저씨였어요. 그 아저씨 축사에 가서 달걀 줍는 일을 했는데, 얼마 안 돼서 닭이 병 걸려서 다 죽었어요. 그래서 다시 팔려 갔죠. 그게 도박장 금 사장님이었어요.”

    “…….”

    “그러다 한 날, 심부름 다녀오다 교통사고를 당했고, 그 후엔 계속 도박장 안에서 살았어요. 그게 다예요.”

    단조로우나 비극적인 삶의 나열에 석주가 볼 안쪽 살을 지그시 씹었다. 모래라도 삼킨 듯 속이 갑갑하고 껄끄러웠다. 그가 아진의 손을 힘주어 쥐며 물었다.

    “신고를, 신고를 왜 안 했어?”

    “그게 뭔지, 어떻게 하는 건지 몰랐으니까요.”

    “…….”

    “그때 저는 어렸잖아요. 사실 몇 살이었는지도 정확히 몰라요. 닭장 아저씨한테 팔려 갈 때 제 목에 걸린 팻말에 여덟 살이라고 적혀 있었거든요. 그래서 지금은 제가 스무 살이라고 생각하고 사는데, 어쩌면 더 어릴지도 몰라요.”

    아진이 잔잔한 음성으로 말을 이었다. 단어 하나하나가 시큰둥했는데, 그래서 더 슬프고 안쓰러웠다. 석주가 아진의 광대를 살살 쓰다듬으며 다시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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