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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봐야 원체 순두부처럼 생긴 낯짝이라 무섭지도 않았다. 그저 우스울 뿐. 잘 하지도 못하는 욕설을 읊조리는 것도, 진걸의 이름 뒤에 매번 새끼라는 수식어가 붙는 것도 같잖았다. 굴러다니는 의자를 당겨 앉아 쉬고 있던 꽃님이 아진을 불렀다.
“아진아.”
“응?”
“너 방금 했던 말, 사장한테 가서 똑같이 해라.”
“……내가 미쳤어?”
아진이 질색하며 되물었다. 꽃님이 어깨를 한쪽으로 기울이며 말했다.
“사장은 좋아서 뒤집어질걸?”
영 이해하기 어려운 말이었다. 제가 한 말 중에 뒤집어질 정도로 좋을 게 뭐가 있나. 아진이 설핏 눈살을 찌푸렸다.
“……우리 사장님이 아무리 병신이라도 그 정도는 아니거든?”
그 말에 꽃님이 깔깔거리며 웃었다. 식탁을 탕탕 두드리고, 목이 꺾일 정도의 박장대소였다. 오죽 크게 웃는지, 마당 사람들이 다 쳐다봤다.
그 시선엔 석주 역시 껴 있었다. 먼 거리, 석주와 아진의 눈이 딱 마주쳤다. 아진이 파드득 떨며 몸을 돌렸다. 그러고는 꽃님의 팔뚝을 철썩철썩 때렸다.
“아줌마, 미쳤어? 왜 그래. 조용히 해!”
“으하하하하!”
그러나 꽃님은 더욱 호탕하게 웃기 시작했다. 같은 식탁에 있던 누나들도 키득키득 웃기 시작했다. 집중된 시선에 그러잖아도 붉던 아진의 얼굴이 터질 것처럼 새빨개졌다.
어쩔 줄 모르고 발을 동동 구르던 아진이 꽃님의 입에 쌈을 크게 말아 넣어 주었다. 그제야 꽃님의 웃음소리가 사그라들었다. 그들에게 집중되었던 시선 역시 흩어졌다.
“아줌마 진짜 왜 그래? 나 놀리려고 그런 거지?”
“웅.”
볼이 빵빵하게 부푼 꽃님이 힘껏 고개를 끄덕였다. 아진이 새치름히 그녀를 흘겨보았다. 꽃님이 그런 아진의 볼을 죽 잡아당겼다가 놓으며 웃었다.
환영회는 계속해서 이어졌다. 아진이 조금 짧은 다리에 체중을 실으며 삐딱하게 섰다. 그러다 참지 못하고 바닥에 퍼질러 앉았다. 고기고 뭐고 그냥 들어가 눕고 싶었다. 서 있는 게 고됐다. 술에 취해 더 그런 것 같기도 하고.
아진이 손을 뒤로 뻗어 툭툭 등을 두드리는데. 등 뒤로 인기척이 들렸다. 무언가를 내려놓는 듯한 소리도 들렸다.
아진이 쪼그려 앉은 채로 고개를 돌렸다. 그곳엔 가벼운 나무 의자가 하나 놓여 있었다. 그 뒤로 커다란 두루마기를 펄럭이며 멀어지는 석주의 뒷모습이 보였다.
아진이 석주와 의자를 번갈아 봤다. 문득, 조금 전 꽃님이 했던 말이 떠올랐다.
‘어디 모자란 등신처럼 흘끔흘끔 너만 쳐다보잖냐.’
아진의 입이 샐쭉 벌어졌다. 그가 의자를 당겨 와 엉덩이를 붙였다. 그래 봐야 딱딱한 나무 의자인데, 석주의 방에 놓인 소파만큼이나 푹신하게 느껴졌다.
아진이 히죽 웃으며 고기를 집어 먹었다. 지끈거리던 허리가 하나도 아프지 않았다. 그런 아진을 보던 꽃님이 옅은 미소를 띤 얼굴로 물었다.
“니글거리면 김치찌개라도 끓여 줄까?”
“괜찮아.”
“내 금방 해 오마.”
꽃님이 몸을 일으켰다. 그에 아진이 그녀의 팔꿈치를 잡아 다시 앉혔다.
“괜찮다니까. 오늘은 다 쉬는데 왜 사서 일을 하려고 해? 고기나 먹어. 얼마 먹지도 않더만.”
아진이 익은 고기를 꽃님의 앞으로 죄 몰았다. 누나들이 흘겨보는 게 느껴졌지만 모르는 척했다.
그도 그럴 게, 오늘 꽃님은 고기를 얼마 먹지 않았다. 조금 전 아진이 싸 주었던 쌈을 포함해 봐야 다섯 점이 채 안 됐다. 고기를 안 좋아하는 것도 아니고, 평소 식사량이 적은 것도 아니고. 또 저 먹이겠다고 안 먹나 싶었다.
근데 꽃님이 절레절레 고개를 가로저었다.
“요즘 입맛이 없어. 너나 먹어.”
“…….”
그 말에 아진의 눈이 대번에 가늘게 찢어졌다. 그러고 보니 어제도, 엊그제도 밥 먹는 모양새가 영 굼떴다. 그가 꽃님을 꼼꼼히 뜯어보았다. 어째 살이 좀 빠진 것 같다. 꽃님이 원체 풍채가 좋았던 터라 티가 많이 나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육안으로 살이 빠진 게 보일 정도였다.
아진의 이마 위로 걱정이 드리웠다.
“여름 다 지났는데 왜 이제 와 입맛이 없어? 그래도 먹어. 고기잖아.”
“안 먹는다니까 그러네.”
“……먹어.”
아진이 어울리지 않게 재촉했다. 꽃님이 푹 한숨을 내쉬며 마지못해 젓가락을 들었다. 그녀의 입에 들어가는 고기를 본 아진이 그제야 바짝 곤두서 있던 어깨를 풀어 내렸다.
그때, 명진이 짝짝 손뼉을 쳤다. 커다랗고 두툼한 손으로 손뼉을 치니 그 소리가 요란했다. 사람들의 시선이 모두 그쪽으로 모였다.
“자, 식구도 새로 생겼겠다. 다 같이 사진 한 장 박읍시다?”
명진이 출장 온 사진사에게 눈짓했다. 그러자 사진사가 부지런히 사진기를 펼치기 시작했다. 조직원들은 식탁을 그대로 들어 옆으로 치우고, 종들은 뒤로 물러났다. 아진 역시 젓가락과 접시를 챙겨 마당 끄트머리로 물러섰다. 석주가 준 의자는 질질 끌어 옆에 딱 두었다.
그러자 명진이 그들을 향해 손짓했다.
“어어, 어데 가요? 일하는 사람들도 다 같이 찍을 거요. 이리 와. 와서 서.”
그 말에 사람들이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조직원들은 이미 5열로 가지런히 줄을 서 있었다. 앞줄은 양반다리를 한 채로 앉고, 뒷줄은 서고, 그 뒷줄은 마루 아래턱으로 올라갔으며, 그 뒷줄은 대청마루로 올라갔다.
그들은 술을 마시느라 흐트러진 옷매무시를 가다듬고 머리를 넘겨 깔끔하게 했다.
그동안 종들은 숙덕숙덕 소곤소곤 야단법석을 떨었다.
“우리 사진은 왜 찍는다는 거야?”
“우리만 찍는 게 아니고 같이 찍자는 거 아녜요?”
“그러니까 왜.”
“식구라잖아, 식구.”
“찝찝한데. 사진에 찍히면 혼이 날아간다고 그랬다고.”
“염병하네. 사진 한 장에 얼만지 알지요? 잔말 말고 붙어 서요. 내 얼굴 어떻게 생겼는지 좀 보게.”
“사진 찍으면 우리한테도 나눠 줄랑가?”
“집 어디에 붙여 두긴 하겠지.”
“일단 찍읍세. 응? 찍어.”
종들이 뒤늦게 우르르 몰려갔다. 아진과 꽃님도 그 틈에 끼었다. 그들은 양쪽 귀퉁이에 붙어 섰다. 아진은 가장 끄트머리 둘째 줄에 우두커니 서 있었다. 사진을 찍는 건 생전 처음이라 뭘 어떻게 해야 할지 알 수가 없었다.
그가 멀뚱멀뚱 있자 옆에 있던 꽃님이 그의 저고리 끝을 아래로 탁탁 당겨 폈다.
“고개 들고. 번쩍-해도 눈 감지 말고. 앞머리 살짝만, 응, 그래, 그만큼만 걷어. 눈코입은 나와야지.”
“근데 아줌마. 진짜 사진 찍히면 혼이 나가?”
“그럼 극장에 나오는 배우들이랑 대통령은 다 혼 빠진 시체게?”
“아, 그렇네.”
아진이 고개를 끄덕이며 눈을 크게 떴다. 그러다 슬쩍 뒤를 돌아봤다. 석주는 가장 가운데, 댓돌 위에 올라가 서 있었다. 명진이 야단을 떨며 그의 두루마기를 펼쳐 주고 정장 재킷을 여며 주었다.
곧 사진사가 손을 흔들었다.
“자, 여기 보십시오.”
아진이 얼른 앞으로 시선을 돌렸다.
“이제 찍습니다. 하나, 둘, 셋 하면 눈 크게 뜨시고 턱 당기시고. 김-치- 하면서 웃는 겁니다. 아셨죠?”
“예!”
“김-치- 한번 해 보세요.”
“김-치-!”
사람들이 우렁차게 대답했다. 그러다 와르르 웃음을 터트렸다. 아진도 함께 웃었다. 이렇게 모여서 뭘 하는 게 처음이라 신기하고 기분이 좋았다. 쭈뼛거리던 아진이 곁에 선 꽃님의 손을 꾹 마주 잡았다. 고작 해 봐야 사진 찍는 건데, 이상하게 긴장이 됐다.
사진사가 사진기에 달린 검은 천막 안으로 얼굴을 쑥 집어넣었다. 그리고 크게 소리쳤다.
“자자, 갑니다. 하나- 둘- 셋!”
“김-치-!”
찰칵!
뻥튀기가 터지는 듯한 소리와 함께 온 세상이 해가 뜬 것처럼 환해졌다.
환영회가 끝났다. 조직원들은 술과 식은 고기, 김치 등을 들고 대청마루나 다실로 들어가 저들끼리 술잔을 기울였고 종들은 숯을 모으고 상을 정리했다. 아진도 절뚝절뚝 걸어 다니며 빈 술병을 걷어 상자에 넣었다.
그리고 가득 찬 상자를 부엌 창고 옆에 줄줄이 쌓아 놓았다. 그럼 때마다 오는 트럭이 빈 병을 가져가곤 했다.
아진이 느릿하게 마당을 걸었다. 대궐 같은 집을 빙빙 둘러 부엌까지 가려면 한나절이었다. 그가 푹 한숨을 내쉬었다.
“배부르다…….”
욕심을 부려 무리해서 먹었더니 고기가 목까지 찼다. 그래도 한순간일 것이다. 이걸 가져다 두고, 설거지를 하고, 수저와 그릇을 차곡차곡 정리할 때쯤이면 언제 그랬냐는 듯 꺼질 터였다.
아진이 콧잔등을 찡그리며 술 상자를 고쳐 드는데. 옆에서 튀어나온 손이 상자를 채 갔다.
“힉!”
놀란 아진이 제자리에서 펄쩍 뛰었다.
“그러게. 배가 올챙이처럼 나왔네.”
석주가 빙긋 웃으며 서 있었다. 아진이 그를 멍하니 바라봤다. 그러자 석주가 봉긋 솟은 아진의 배를 슥슥 쓰다듬었다. 뜨끈한 손바닥에 갑갑했던 속이 한결 가시는 것 같았다.
석주가 술 상자를 바닥에 대충 내려놓았다. 그러고는 아진의 손을 잡아당겼다.
“이리 와 봐.”
“어어……. 저 저거 갖다 놓고 설거지해야 해요.”
“하지 마.”
“아니, 그게 무슨…….”
석주는 힘으로 아진을 끌고 갔다. 아진이 뒤꿈치에 힘을 주고 버텨 봤으나 흙바닥 위로 질질 끌려간 자국만 남을 뿐이었다. 아진이 헛웃음을 흘렸다. 차마 입 밖으로 낼 순 없지만 사장님은 때때로 진짜 미친놈 같다.
몇 번 몸을 뒤틀던 아진은 이내 반항을 포기했다. 오늘 내내 진걸에게 그를 빼앗긴 기분이었던 터라 이렇게나마 그의 곁에 있고 싶었다. 그리고 뭐. 사장님이 설거지하지 말라고 했는데 누가 뭐라 하겠나.
아진은 될 대로 되라는 듯 석주를 따라갔다. 석주가 씩 웃으며 손을 맞잡았다.
석주의 걸음이 멈춘 곳은 그의 방이 보이는 뒷마당이었다. 그곳엔 사진사가 카메라를 만지작거리고 있었다. 석주를 발견한 사진사가 꾸벅 허리를 숙였다.
석주가 아진의 어깨를 감싸며 그에게 다가갔다.
“우리 사진 한 장 찍어 주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