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8
석주가 뒤를 돌아봤다. 그러자 명진이 슬쩍 아진을 쳐다봤다. 말을 올리는 데에 아진이 있는 게 불편하다는 뜻이었다. 그에 석주는 괜찮다, 라고 말하려다 하얗게 질린 아진을 보았다.
“먼저 들어가서 자.”
석주가 친히 방문을 열어 주었다. 아진이 기다렸다는 듯 후다닥 방 안으로 들어갔다. 그러고는 활짝 열린 창문을 닫고, 이불 속으로 넘어지듯 들어갔다. 그가 이불을 꼭꼭 덮는 것까지 본 석주가 문을 닫았다.
“뭔데.”
명진이 석주의 곁으로 한 걸음 가까이 다가왔다.
“종로 병원에서 연락이 왔는데, 그놈아 깨어났답니다.”
그 말에 석주의 눈이 가느스름하게 좁아졌다. ‘그놈’이 누군지 단번에 알아차렸기 때문이다.
한 달 전, 인천 공장에서 약쟁이들의 습격을 받았을 때. 석주는 약쟁이 둘과 씨름하다 칼을 맞아 죽을 뻔했었다. 등에 구렁이 같은 칼자국이 난 그 순간이었다.
‘누군가’가 황소 같은 힘으로 약쟁이들을 떠밀었고, 약쟁이 하나는 곧장 바다에 빠졌다. 남은 약쟁이는 석주의 등에 꽂았던 칼을 빼내 ‘누군가’의 배로 쑤셔 넣었고, 그 ‘누군가’는 배가 가로로 쩍 갈려 내장을 쏟아 냈다. 병원으로 가면서 다른 조직원이 그의 창자를 손으로 떠받치고 있었을 정도였다.
‘누군가’는 약쟁이들의 습격으로 죽은 두 명의 조직원 다음으로 가장 큰 상해를 입었고, 여태까지 혼수상태에 있었다. 그런데 오늘 비로소 깨어난 것이다.
반가운 소식이었다. 그런데도 석주는 어쩐지 가슴이 묵직해지는 기분이 들었다. 원하든, 원치 않았든 저를 살리다 다친 이라서.
석주가 자신의 뺨을 쓸어내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내일 출근 전에 병원 먼저 가자.”
“예.”
“조사는 해 봤어?”
“아, 예. 공장에 있던 우리 아가 하는 말로는 묵묵하고 성실한 놈이랍니다. 보셨다시피 덩치도 좋고예.”
“…….”
“우리가 공장 먹기 전부터 일했던 놈이라 카던데요. 스물넷이고 인천에서 산 지는 삼 년쯤 됐답니다. 원래 서울에서 살다가, 동생이 어캐 죽어삐가 그길로 인천으로 내려갔고, 고기잡이배랑 공사판이랑 뭐 일용직 여러 곳 전전한 것 같더라고예.”
“가족은?”
“죽은 동생이 다랍니다. 만나는 여자도 없고예. 혼자 벌어 먹고사는 놈입니다.”
그 말에 석주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이상한데. 한창일 나이에 여자가 없어?”
“아, 기냥 간간-이 창녀촌에 들른답니다. 그래서 거기 포주들하고도 이야기를 나눠 봤는데, 잘 모르더라고요? 그래도 꾸역꾸역 물어보니까 여자를 팬 적도 없고, 소란 일으킨 적도 없고, 약도 안 한답니다.”
“…….”
석주가 으음, 하고 목으로 신음했다. 그의 두툼한 목젖이 아래위로 움직였다. 너무 깨끗하다. 뭐, 흠이 있는 자가 아니니 다행이지만 어쩐지 찝찝했다.
새로운 이는 조심해야 한다. 찰나의 접점 후 흘려보낼 이가 아니라면 더더욱.
심각한 석주의 낯에 명진이 말을 덧붙였다.
“의사한테도 캐물어 봤는데, 진짜 몸에 주사 자국 같은 건 없었답니다. 눈뜨자마자 아파하길래 약도 쪼매 줘 봤는데, 안 한다 했다 캅니다.”
“혹시 모르니까 한 번 더 조사해 봐. 왜 도망가지 않고 겁도 없이 뛰어들었는지, 왜 나를 살리려 했는지 알아야 해.”
석주의 말에 명진이 눈썹을 위로 한껏 올렸다.
“와예? 기냥 돈 조금 주고 고맙다, 하고 팽하면 되는 거 아입니까? 기특한 놈이긴 한데 굳이. 아……. 설마…… 거두실라고예?”
“……보고.”
명진이 고개를 바쁘게 끄덕였다. 아무래도 조금 더 뒤져 봐야 할 듯했다. 어쩌면 식구가 될지도 모르니까.
“샅샅이 뒤져 보겠습니다.”
“그래.”
말을 마친 석주가 뒤를 돌았다. 명진이 꾸벅 허리를 숙였다. 그는 석주가 방문을 열 때까지 인사를 하고 있었다. 막 방 안으로 발을 디뎠던 석주가 돌연 뒤를 돌아 명진을 불렀다.
“명진아.”
“예, 형님.”
“잘 자.”
난데없는 감미로운 인사에 명진이 고개를 들었다. 그러다 퍼뜩 다시 허리를 숙였다.
“……예. 형님도 안녕히 주무십쇼.”
“응.”
짧은 대답을 끝으로 문이 닫혔다. 그제야 허리를 편 명진이 기름을 잘 먹여 반질반질한 문을 바라봤다. 그리고 아무도 듣지 못할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진짜 잘 주무셔야 합니다, 형님.”
* * *
고무신을 신은 아진은 타박타박 시멘트 바닥 위를 걷고 있었다. 주변엔 막 새로 지어져 번들번들한 건물들이 줄줄이 있었고, 서양식 옷을 입은 사람들이 곁을 스쳐 갔다.
아진은 그들을 올려다보며 길을 걸었다. 그러다 문득, 제 몸이 작아졌음을 인지했다. 마치 열 살 때처럼 말이다. 제 손에 들린 장바구니도 발견했다. 녹색 장바구니는 아진의 몸뚱이만 해서 팔에 걸고 있으면 밑이 바닥에 질질 끌렸다.
아진은 장바구니를 들어 어깨에 멨다. 바닥에 구멍이라도 났다간 돌아가서 흠씬 혼날 터였다.
그러나 아무리 추켜 올려도 장바구니는 계속 바닥에 끌렸다.
아진은 어렸을 때부터 덩치가 작았다. 또래 아이들에 비해 뼈도 가늘었다. 애당초 장을 보러 가는데 아진이 온 것부터가 말이 안 됐다. 오이 한 뭉치도 간신히 들고 오는 몸뚱이라.
아진이 푹 한숨을 내쉬는데. 갑자기 장바구니가 쑥 무거워졌다. 조금 전만 해도 분명 텅 비어 있었는데 당근이 가득했다. 크기가 제각각인 당근은 흙을 다 털어 내지 못해 더럽고, 더 무거웠다.
아진이 털썩 장바구니를 바닥에 내려놓았다. 손바닥이 지끈거렸다.
고개를 내리자 온통 붉어진 손바닥이 보였다. 장바구니에 쓸린 손가락 역시 새빨갛게 줄이 나 있었다.
‘아야…….’
아진이 허공에다 손을 탈탈 털었다. 그가 호오, 호오 손바닥을 부는데. 누군가가 다가왔다. 그러고는 냅다 머리통을 후려쳤다.
‘야. 빨리 안 와?’
아진보다 한 뼘은 더 큰 남자아이였다. 같은 나이인데 아진과 달리 쑥쑥 자랐다. 손도 훨씬 컸다. 아진이 그를 뚫어지라 바라봤다. 그러다 문득 그의 이름을 상기했다. 진수. 성은 떠오르지 않았다.
진수는 장바구니를 들고 있지 않았다. 작은 당근만 하나 들고 그것을 야금야금 씹고 있었다.
‘응……. 미안…….’
아진이 시무룩한 얼굴로 사과했다.
사실 장 보는 건 아진의 일이 아니었다. 힘이 없어서 뭘 제대로 갖고 오지도 못하는데 이런 걸 시킬 리가 없었다. 원래 어른이 하지만, 급하게 필요해서 심부름을 나온 차였다.
그마저도 진수에게 내려진 심부름이었으나, 진수는 당연하게 아 진을 끌고 나왔다. 고사리손으로 화투패를 정리하던 아진은 별다른 말 없이 그를 따라 나왔고.
원래 그랬다. 진수는 대체 뭐가 그렇게 불만인지 항상 아진을 괴롭혔고, 아진을 종처럼 부렸다. 틈만 나면 넘어트리고 손찌검을 해 대서 어른들도 무슨 애새끼가 저리 못됐냐며 혀를 찰 정도였다.
그러나 아진은 아무런 반항도 하지 않았다. 일전에 하기 싫다며, 절 왜 자꾸 괴롭히냐며 땍땍 대들었다가 진수의 형이 아진을 창고에 처박아두고 흠씬 두들겨 팼기 때문이다. 아진은 그 어린 나이에 맞아 죽는다는 게 뭔지 깨달아야 했다.
그 후로 아진은 납작 엎드려 살았다. 진수는 날이 갈수록 더욱 아진을 괴롭혔다. 허나 그 누구도 아진을 동정하거나 돌봐 주지 않았다.
‘똑바로 들어, 병신아!’
진수가 재차 아진의 머리통을 후려쳤다. 아진이 이를 악물고 번쩍 장바구니를 들었다. 양손으로 힘껏 들었더니 앞이 반은 보이고 반은 보이지 않았다.
바구니 무게에 휩쓸린 아진이 이리 휘청, 저리 휘청했다. 그러다 집채만큼 커다란 자동차 한 대가 아진의 곁을 휑- 하고 스쳐 지나갔다. 놀란 아진이 얼른 옆으로 비켜섰다. 그리고 흙먼지를 내뿜으며 멀어지는 자동차를 멍하니 바라봤다.
‘멋지다.’
혼잣말을 중얼거리던 아진이 다시 앞을 바라보는데. 진수가 하늘을 날고 있었다. 어, 왜……. 까지 생각함과 동시에 아진 역시 하늘로 붕 떠올랐다.
하늘이 가까워졌다. 호랑이의 으르렁거림 같은 자동차의 엔진 소리가 귓구멍을 가득 메웠다. 손바닥을 무겁게 짓누르던 장바구니의 무게가 일순 사라졌다. 흙 묻은 당근이 하늘에 나부끼는 게 보였다.
찰나의 비상 후, 아진은 매우 빠른 속도로 낙하했다. 그리고 바닥에 닿기도 전에, 또 다른 차가 그를 뻥 쳤다. 번뜩이는 헤드라이트에 부딪힌 다리가 으스러졌다. 아진은 쏘아진 화살처럼 그대로 앞으로 날아갔다.
아진은 한참 동안 바닥을 굴렀다. 그러다 온몸이 부서지는 듯한 고통과 함께 멈췄다.
아진이 멍하니 눈동자를 굴렸다. 하늘이 보였고, 건물이 보였고, 무언가에 젖어 번들번들한 자동차 바퀴가 보였고, 그 틈에 깔린 진수가 보였다.
진수는 눈을 부릅뜨고 있었다. 매우 많은 피를 흘리고 있었으며, 팔다리는 끈 떨어진 인형처럼 아무렇게나 뒤엉켰고, 뒤통수가…… 없었다.
아진이 입을 뻐끔거렸다. 그러나 아무런 말도 나오지 않았다.
‘에구머니나!’
‘세상에!’
‘이리 좀 와 봐요!’
‘병원에 데리고 가야 하는 거 아니야?’
‘부모는 어디 있어? 애들만 있었어?’
‘이를 어째. 얘는 이미…….’
사람들이 웅성거렸다. 그러나 그 소리는 길지 않았다. 하늘이 어둑해지고, 사람들이 사라졌다. 건물들은 납작해지더니 땅에 묻혀 버렸고, 남은 건 멀뚱히 선 자동차와 머리 반절이 없는 진수와 널브러진 아진뿐이었다.
세상이 어두워졌다. 아진과 진수만 조명을 받는 것처럼 쨍하게 빛났다. 아진이 자신의 다리를 내려다봤다. 움푹 꺼진 무릎과 괴이한 각도로 휘어진 종아리가 낯설면서도 익숙했다.
아진이 다시 진수를 바라봤다. 징그럽기 짝이 없는데 자꾸 시선이 갔다.
그리고 그때. 먼 허공을 응시하고 있던 진수가 데구루루 눈을 굴리더니 아진을 쳐다봤다.
시선이 마주쳤다.
늦은 새벽 아진이 번뜩 눈을 떴다. 달리기라도 한 것처럼 숨이 가빴다. 헉, 헉, 헉, 가슴팍을 들썩이며 바쁘게 호흡하고 있으니 누군가의 손이 머리칼을 쓸어 주었다. 커다랗고 뜨거운, 석주의 손이었다.
“아진아. 왜 그래?”
나신의 석주가 걱정스러운 눈으로 아진을 바라봤다.
“…….”
아진이 탁한 시선으로 석주를 응시했다. 아직 꿈에서 헤어 나오지 못한 눈동자가 갈팡질팡했다. 그러자 석주가 엄지로 그의 눈가를 살살 쓰다듬어 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