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쌍피-37화 (37/2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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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석주는 방 앞 복도를 가로질러 대청마루로 나왔다. 대청마루는 현관 옆에 있는 마루로 대문과 앞마당이 훤히 보이는 곳이었다. 앞마당은 집 안에 있는 마당 중에 가장 큰 마당이며, 으레 석주가 퇴근하면 종들이 나란히 서서 인사를 올리는 자리이기도 했다.

    항상 가지런하고 질서 있던 마당이 오늘은 분위기가 자못 달랐다.

    조직원 열댓이 나와 있었는데 상박에 두루마기만 겨우 걸친 채 씩씩거리며 서 있었고, 아닌 밤중 소란에 자던 종들도 깨서 모여들고 있었다.

    석주와 명진은 마루 위에 서 있었다. 그들을 따라온 아진은 석주 뒤에 숨어 얼굴만 빼꼼 내민 채였다. 앞머리를 묶었다 풀어 머리칼이 삐죽 서 있었다. 아진이 그것을 꾹 눌러 내리며 주위를 두리번거리다 마당 한가운데에 피떡이 되어 엎어져 있는 이를 발견했다.

    “어…….”

    얼굴이 죄 뭉개져서 알아볼 수 없었으나, 두툼한 덩치에 물처럼 흐물거리는 살들로 보아 그였다. 돼지. 몇 주 전 석주의 앞에서 아진의 뒤통수를 날렸다가 코가 깨져 쫓겨났던 그 돼지 말이다.

    돼지는 무릎을 꿇은 채로 바닥에 엎어져 있었다. 벌어진 입술 사이로는 침과 섞인 피가 질질 늘어졌고, 콧물인지 코피인지 모를 것도 흘리고 있었다. 숨은 쉬고 있는 것 같은데 움직임은 없었다.

    “뭔데.”

    석주가 피떡이 된 돼지를 내려다보며 물었다. 턱 아래의 흉터를 긁적이던 명진이 그 질문을 기다렸다는 듯이 냉큼 상황을 고했다.

    “저 새끼가 밤늦게 집에 숨어들었다 아입니까.”

    “뭣 하러.”

    “약을 훔치려고 했답니다. 가따 팔라 했는지, 아니면 지가 처물라고 했는지는 모르겠습니다. 아무튼 뒷집으로 갈라 캤는데, 문이 잠겨 있으니까 뒷집 앞에 있던 창고를 들쑤셨답니다. 근데 거는 무기밖에 없다 아입니까.”

    “…….”

    “그래가 거서 총 들고 마, 바로 앞에 있던 금태네 방에 쳐들어가가, 금태한테 총 딱 겨누면서 약 내놓으라 했답니다.”

    “금태는? 다쳤어?”

    “언-지요. 그놈이 어디 순순히 다칠 놈입니까. 누워 있다가 저 새끼 발로 까 버렸답니다. 그래서 총은 마당으로 날라 가고, 문짝도 뿌가졌습니다.”

    “…….”

    “시끄러우니까 주변 방에서 자던 아들이 다 튀어나와 가 쌔리 팼답니다. 그러다 저것들을 발견했고예.”

    명진이 돼지 앞에 놓인 패물들을 가리켰다. 흙바닥에 뒹굴어 더러워진 권총, 조직원 중 누군가의 것으로 추정되는 번뜩이는 손목시계, 작은 자개장, 석주가 술 마실 때 쓰는 크리스털 잔, 미제 선글라스 등이었다.

    다행히 필로폰은 보이지 않았으나 어쨌거나 모두 석주의 집에서 훔친 것이 맞았다.

    석주의 표정이 서늘하게 식었다. 그가 자신의 뺨을 긁적이며 돼지를 응시했다. 어떤 처벌을 내릴지 고민 중인 듯했다. 모두가 석주를 바라봤다.

    이내, 석주의 도독한 입술이 떨어졌다.

    “하던 대로 하자.”

    그 말에 조직원들이 씩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잠을 자던 종들이 모두 앞마당으로 불려 나왔다. 명진이 모두 부르라 명했기 때문이었다. 꽃님 역시 졸음을 다 털어 내지 못한 얼굴로 나타났다. 아진이 그녀에게로 다가가려 했다.

    그런데, 석주가 그의 팔꿈치를 잡아채 다시 자신의 옆에 두었다. 아진이 그를 올려다봤다. 허나 석주는 널브러진 돼지만 쳐다보고 있었다.

    이내 종들과 조직원들이 모두 모였다. 자정이 훌쩍 넘은 늦은 시각에 난데없는 회동이었다.

    명진이 크게 주위를 둘러봤다. 그러다 댓돌 옆에 서 있던 덩치 좋은 남자를 불렀다.

    “어여, 금태야.”

    “예, 형님.”

    “비니루가 없다.”

    “아, 예! 지금 갖고 오겠습니다.”

    금태가 후다닥 어딘가로 사라졌다. 금세 다시 나타난 그의 손에는 방 한 칸만 한 투명 비닐이 들려 있었다. 조직원들이 그것을 바닥에 넓게 펼쳐 깔았다.

    그리고 그 위로 돼지가 질질 끌려왔다. 몇 분 전에 정신을 차린 돼지는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상황을 파악하려 했다. 그러나 이미 늦은 시점이었다.

    마루에 서 있던 명진이 댓돌 위로 내려왔다. 거인만큼 커다란 그의 발이 댓돌 한편을 꽉 채웠다. 큼큼 목을 가다듬은 그가 우렁찬 음성으로 일장 연설을 하기 시작했다.

    “모두 잘 들으시요! 우리는 한 식구요. 우리 조직원이든, 여서 집안일 하는 사람이든, 한집에 사니 어쨌거나 식구라 이 말이요.”

    “…….”

    “그래서 누가 괴롭히면, 바로 가가 후드려 패 주고, 복수해 주고, 아프면 돌봐 줄 거고, 사업이 잘되면 지금보다 돈도 더 많이 줄 거요. 왜냐! 식구니까!”

    “…….”

    “근데 식구끼리 하면 안 되는 짓이 있어! 바로 배신. 응? 배신이랑 도둑질이요. 그거는 절-때로 용납이 안 돼. 절-때 안 돼. 나도, 여 계시는 우리 석주 형님도. 그거를 아주 치가 떨리게 싫어해. 당한 게 너-무 많거든.”

    “…….”

    “도둑질은 배신이랑 똑같아. 처음엔 야금야금 하찮은 걸 꿍쳐 팔다가 그다음엔 집안 기둥도 훔쳐 팔아 삐고, 그다음엔 집도 팔아 삐고, 또 나중엔 우리 식구 목까지 갖다 팔아 삔다 말이야. 엉?”

    “…….”

    “뒤에서 속닥속닥 우리를 씹거나, 일을 좀 게을리하거나, 그런 건 괜찮아. 식구끼리라도 그럴 순 있지! 암! 근데 배신이랑 도둑질은 아니야. 그건 우리를 아주 엿 먹이는 일이다, 이거야.”

    “…….”

    “그래서 우리 태회파는 배신, 도둑질은 아주 강력한 벌을 줘.”

    명진이 후우, 하며 숨을 몰아쉬었다. 그러고는 재차 사람들을 훑어보았다. 조직원들은 뒷짐을 진 채 무표정한 낯이었고, 이런 상황에 면역이 없는 종들은 저들끼리 어깨를 다닥다닥 붙이며 모여들었다. 몇 분 전까지만 해도 잠기운이 출렁거리던 얼굴들이 하나같이 희멀겠다.

    명진이 한쪽에 모인 사내종들을 뚫어지라 응시하며 입술을 달싹였다.

    “배신은…… 발각 즉시 목을 딴다.”

    사람들이 동시에 헛숨을 들이마셨다. 석주의 뒤에 숨어 있던 아진도 숨을 거꾸로 마셨다. 도박장에서 목이 그였던 직원 하나를 떠올린 탓이었다. 그때 피가 어떻게 솟구쳤는지, 그가 어떻게 쓰러졌고, 어떤 신음을 흘렸고, 피 웅덩이가 얼마나 빠르게 퍼져 나갔는지 또렷이 기억하고 있었다.

    “그리고 도둑질은 팔을 썬다.”

    사람들이 웅성거렸다. 분명 배신보다 후한 처사인데, 어째 더 잔인하고 무섭게 느껴졌다. 사람들의 낯빛이 시시각각 변해 가는데, 명진은 아랑곳하지 않고 말을 이어 갔다.

    “팔을 얼마큼 썰지는 훔친 것에 따라 다르다. 이 돼야지 새끼는, 총도 훔쳤고, 약까지 훔치려 했으므로 팔뚝을 자를 거다. 야들아.”

    명진이 조직원들을 향해 눈짓했다. 줄줄이 서 있던 조직원들이 비닐 위의 돼지를 향해 다가갔다. 심상치 않은 기운을 느낀 돼지가 벌떡 일어났다. 흠씬 두들겨 맞아 비실비실하더니 갑자기 어디서 힘이 솟은 모양이었다.

    “으아아!”

    그가 고함을 지르며 문을 향해 달려 나갔다. 허나 지천에 조직원들이 깔려 있는데 도망이 가능할 리 없었다. 돼지는 몇 걸음 가지 못해 목덜미가 잡혀 다시 비닐 위에 엎어졌다. 사람들이 저마다 탄식했다.

    “어여. 도망치면 발목도 썰린다?”

    조직원 하나가 엎어진 돼지 위에 올라탔다. 다른 이는 버둥거리는 다리를 잡았고, 또 다른 이는 큼지막한 칼을 들고 왔다. 부엌에서 쓰는 칼과 달리 넓적하고 굵은 게 도살자나 쓸 법한 것이었다.

    그것을 본 돼지가 빽빽 소리를 지르기 시작했다. 눈알이 시뻘겋게 달아올랐다. 그가 석주를 보며 울부짖었다. 살에 파묻혀 조막만 한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하게 차올랐다.

    “으아아! 사장님, 잘못했습니다. 잘못했습니다, 사장님! 살려 주십시오!”

    “…….”

    “사장님! 먹고살라고 그랬습니다. 먹고살라고! 한 번만 살려 주시면, 으아아, 사장님! 제발! 제발!”

    돼지가 사지를 마구 펄떡거렸다. 어찌나 힘차게 저항하는지. 그의 몸을 억누르고 있던 조직원들이 들썩거릴 정도였다. 허나 그들의 손아귀를 벗어날 순 없었다.

    조직원이 칼을 들어 올렸다. 드문드문 녹이 슨 칼이 달빛을 받아 탁하게 번쩍였다. 그것이 바람을 가르며 후웅, 아래로 떨어졌다.

    퍽!

    “끄아아아악!”

    둔탁한 소리에 아진이 질끈 눈을 감았다.

    조직원들이 피에 젖은 비닐을 접었다. 종들은 새파랗게 질린 얼굴로 그것을 보고 있었다. “이제 다시 자러 가소.” 명진이 뒤늦게 종들을 들여보냈다. 그들은 도망이라도 치듯, 빠른 걸음으로 사라졌다.

    석주에게 손목이 잡힌 아진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서 있었다. 돼지는 조직원들이 병원으로 싣고 갔다. 팔만 자른다 했지, 죽이겠다는 말은 하지 않았으니 살려는 준단다. 팔뚝 아래로 덩그러니 잘린 팔은 조직원이 어딘가로 들고 나갔다.

    “으…….”

    아진은 속이 메슥거렸다. 도박장에서 일을 하며 칼부림을 심심찮게 봐 왔지만 이렇게 가까이서 보는 건 처음이었다. 구역질이 올라왔다. 몸이 덜덜 떨렸다. 턱도 부들부들 떨렸다. 가만히 있는데도 고개를 가로젓는 것처럼 보일 정도였다.

    생각나면 안 되는 장면이 자꾸 떠올랐다.

    차, 바퀴, 번뜩이는 불빛, 하늘을 날던 몸, 찢어지는 소리, 그런 것들이 아진의 눈앞을 가득 메웠다. 체온이 시시각각 증발했다.

    석주가 그 떨림을 눈치채지 못할 리 없었다.

    “추워?”

    석주가 물었다.

    “아……니요…….”

    아진이 어색하게 웃으며 대답했다. 갑자기 석주가 매우 멀게 느껴졌다. 제 앞머리를 묶어 주고 좋다고 웃던 사람인데. 제게 사탕 따위를 주고 밥 먹는 개를 보듯 흐뭇해하는 사람인데. 저 없이는 못 잔다며 징징거리는 사람인데. 완전히 다른 사람처럼 느껴졌다.

    오죽하면 그에게 잡힌 손목을 빼내고 도망가고 싶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석주가 아진의 양쪽 팔뚝을 쥐었다. 옷 너머로 손바닥에 닿는 피부가 찼다.

    “몸이 찬데. 들어가자.”

    아진이 미약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어쨌거나 이곳을 벗어나고 싶은 건 맞아서. 한동안은 앞마당을 볼 때마다 피가 튀고 살이 짓이겨지고 뼈가 부러지는 환영이 보일 것 같았다.

    석주가 아진을 데리고 방으로 돌아갔다. 복도를 가로지른 그들이 방문 앞에 서는데. 뒤따라온 명진이 넌지시 그를 불렀다.

    “석주 형님.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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