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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님은 빵을 야금야금 먹었다. 그러다 아진이 쿨럭 기침하자 일어나서 우유를 꺼내 왔다. 아진이 그것을 단숨에 삼켰다. 뻑뻑한 빵과 시원한 우유의 조화가 기가 막혔다.
아진은 열심히 케이크를 먹었다. 꽃님은 느리긴 하나 부지런히 젓가락을 움직였다. 떡이면 모를까, 빵은 만드는 건 물론, 접하기 쉬운 음식이 아니어서 꽃님에게도 그저 신기하고 맛있기만 했다.
그렇게 한창 케이크를 먹는데. 아진의 잔에다 우유를 따라 주던 꽃님이 뒤늦게 물었다.
“근데 너 머리 꼴이 왜 그래?”
“아…….”
아진이 이마를 짚었다. 이마가 훤히 드러나 있었다. 손을 조금 더 올리자 앞머리를 질끈 묶고 있는 머리끈이 만져졌다. 무려 분홍색 리본이 달린 머리끈이었다.
아진이 얼른 그것을 빼내며 민망한 웃음을 띠었다.
“사장님이 하라고 해서…….”
이틀 전. 석주가 약과와 함께 머리끈을 내밀었었다. 그것으로 앞머리를 묶으면 약과를 주겠다는 거였는데, 아진은 큰 고민 없이 허락했다. 어차피 밤새 방 밖으로 나가지도 않고, 머리를 묶으면 저도 편하고. 분홍색 리본이 마음에 안 들긴 했지만 제 눈에 보이는 것도 아니고 무슨 문제가 되나 싶었다.
실은 약과가 너무 먹고 싶었다. 겉은 단단하고 속은 말랑하고 이로 물면 끈적이면서도 달짝지근한 게 너무 먹고 싶어서. 어젯밤은 롤케이크를 받는 대신 머리를 묶었고 말이다.
아진이 붕 뜬 앞머리를 꾹꾹 내리누르는데. 그를 빤히 보던 꽃님이 물었다.
“사장 놈이 좋냐?”
“엉?”
“그놈이 잘해 줘?”
“음…….”
아진이 빵을 우물거리며 고민했다. 그러다 고개를 주억이며 긍정했다.
제가 누군가에게 좋은 대접을 받아 본 적이 없어 확신하진 못하나, 석주는 제게 잘해 주는 게 확실했다. 때리지도 않고, 구박하지도 않고, 그렇다고 밥을 굶기는 것도 아니고.
부러 챙겨다 먹이고, 잠잘 때도 꼭 껴안고 자고, 예쁘다는 듯 머리도 자주 쓰다듬어 준다.
물론, 제 가랑이 사이로 자꾸 본인 좆 대가리를 들이밀어서 난감하긴 하지만 그건 석주를 나쁜 사람이라 칭할 만큼 지대한 영향을 미치진 않았다.
“응. 잘해 줘.”
이윽고 아진이 답을 내놓았다. 그에 꽃님이 아진을 뚫어지라 바라봤다. 그녀의 상체가 아진 쪽으로 기울었다. 고생을 많이 한 탓에 주름이 일찍 져 부리부리해 보이는 눈은 부릅뜨였다가 가늘어지길 반복했고, 동그랗게 말린 입은 호오오, 하며 숨을 머금었다가 휘우우, 하며 뱉어 냈다.
다소 소름 끼치고 경박스러운 작태였으나 아진은 익숙한 듯 빵을 마저 입에 욱여넣었다.
“왜?”
“…….”
“또 뭐가 보여?”
입 안을 빵으로 가득 채운 아진이 웅얼거리며 물었다. 아줌마가 눈을 꾹 감았다가 떴다. 그러다 길게 한숨을 내쉬며 젓가락으로 빵을 푹 찔렀다.
“모르겠다. 니들 사이에 니들 둘만 있는 게 아니어서.”
“응?”
“뭐가 끼어들 거란 말이야.”
“안 좋은 거야?”
“잘 안 보이네.”
“음…….”
뭔갈 생각하던 아진이 어깨를 으쓱였다. 누가 끼어들든 말든 간에 그 사람이 설마 위협이 되겠나. 어떤 이라도 석주보다 덩치가 크고, 석주보다 힘이 셀 리 없었다.
아진이 다시 빵에 집중하는데. 꽃님이 흐트러진 아진의 머리를 슥슥 정리해 주었다.
“그래도 얼굴 가리고 다녀.”
“사장님 앞에서도?”
“그놈은 이미 네 등신 같은 얼굴에 넋 빠진 놈이니 됐어.”
“응.”
아진이 끄덕거렸다. 우리 사장님이 눈 병신이라 참 다행이야. 그런 생각을 하는데. 꽃님이 별안간 철썩! 아진의 등을 후려쳤다.
“그만 처먹고 다른 애들 일어나기 전에 머리에 물이나 묻히고 와.”
“아우……. 때리지 마-아…….”
“얼른!”
“알았어, 알았어.”
아진이 등을 말며 마지 못해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수돗가가 있는 부엌 밖으로 나가다, 다시 돌아와 얼마 남지 않은 빵을 마저 입에 쏙 집어넣었다. 하얀 볼이 빵빵하게 부풀어 올랐다. 그 모습에 꽃님이 국자를 마구 흔들었다.
“웬 돼야지가 부엌을 싸돌아다녀! 썩 안 나가!”
장난스러운 내쫓음에 아진이 키득키득 웃으며 부엌 밖으로 나왔다. 찰랑거리며 흔들리는 파란 나뭇잎 사이로 스미는 쨍한 빛이 눈을 때렸다.
아침이 오고 있었다.
* * *
평화로운 나날의 연속이었다. 석주의 극진한 대접으로 아진은 피둥피둥 살이 올랐고, 집은 평화로웠으며, 태회파의 일은 승승장구로 뻗어 나갔고, 크게 다쳐서 병원에 입원했던 이들은 하나둘 집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가장 좋은 점은, 여름이 끝나 간다는 거였다. 늦은 밤만 되면 드문드문 불어오는 가을 냄새에 석주는 기분이 좋았다. 그의 곁에 있는 아진 역시 기분이 좋았고.
늦은 밤. 아진은 석주의 서재 책상 한쪽을 떡하니 차지한 채로 연필을 움직이고 있었다. 그의 앞엔 큼지막한 공책과 책 하나가 놓여 있었다. 아진은 [바둑이 와 철수 (국어1-1)]이라 적힌 책을 새치름히 노려봤다. 그러더니 그것을 공책에다 하나하나 따라 썼다.
“바눅, 바둑 아…… 바둑 아……. 이리 오니, 오너나, 오너라…….”
꽉 움켜쥔 연필 끝에 힘이 잔뜩 들어가서 공책이 움푹움푹 파였다. 손이 저릿저릿했으나 아진은 입술을 뾰족하게 모은 채 열심히 글을 썼다.
일주일째였다. 아진이 글을 익히기 시작한 건.
원래 아진은 글을 몰랐다. 그래서 석주의 명함도 읽지 못했고, 로숀을 찾지 못해 샴푸로 얼굴을 냅다 문지르기도 했었다.
그러다 어느 날, 간만에 일을 일찍 마친 석주는 아진을 품에 안고 책을 읽었다. 아진은 그 모습을 빤히 봤고, 석주는 그가 책을 읽고 싶어 그런 것이라, 싶어 보던 책을 건네주었다. 그랬더니 아진이 도리도리 고개를 내저었더랬다.
‘저 글 못 읽는데요.’
‘이건 한자가 아니라 한글책이야.’
‘한글도 몰라요.’
아진은 평생 학교에 가 본 적이 없다. 어렸을 때부터 일을 했고, 뭘 배울 여유 따위 없었다. 도박장에서 재떨이를 갈고 바닥을 닦는 데에는 글이 필요하지도 않았고. 담배나 술은 색이나 모양으로 외웠다.
근데 석주는 그것이 퍽 충격적이었던 모양이다.
‘동양 글 중에 한글이 제일 쉬운데 그걸 왜 못 해?’
‘못 해도 잘 살아요. 상관없어요.’
‘…….’
석주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그러다 다음 날, 공책 하나를 사 왔다. 기역, 니은, 디귿 등이 적힌 글 연습 공책이었다. 아진은 하기 싫어했으나, 석주가 붙잡고 가르쳤다. 사람이 아무리 모자라도 이름은 쓸 줄 알아야 한다고. 삶이 바쁘고 정신없어도 이름은 알아야 한다고.
그건 또 맞는 것 같아서 아진은 석주에게 자신의 이름을 배웠다.
[아진]
지읒도 이상하고, 니은도 이상한 글씨였지만 아진은 마냥 좋기만 했다. 그러다 석주의 이름도 써 보았다.
[깅석주]
석주는 졸지에 ‘깅’씨 성을 가지게 되었다. 그렇게 한바탕 웃고 넘어갔는데, 아진은 다음 날도 다음 날도 부지런히 기역, 니은, 디귿, 리을. 아진, 아진, 아진. 강석주, 강석주, 강석주를 쓰더니 금세 공책 한 권을 모두 채웠다.
석주는 그게 퍽 기특해서 공책 두어 권과 학생용 국어책도 구해다 주었다. 그리고 그 후로, 아진은 저렇게 매일 책상에 앉아 글공부를 했다.
석주는 그게…… 아주, 매우, 몹시 마음에 들지 않았다.
저렇게까지 열과 성을 다해 공부할 줄은 몰랐던 터라. 저 희멀건 공책에게 아진을 빼앗긴 듯해 분노가 일 지경이었다.
아진의 옆자리에 앉은 석주는 담배를 뻑뻑 원수처럼 태웠다. 그가 부러 아진 쪽으로 연기를 뿜었다. 희뿌연 담배 연기가 공책 위를 자욱하게 덮었는데, 아진은 아랑곳하지 않았다. 석주가 주먹을 꽉 움켜쥐었다. 넙데데한 손등 위로 핏줄이 울룩불룩 올라왔다.
결국 참지 못한 석주가 그에게로 손을 뻗었다. 아진이 앉은 의자의 팔걸이를 쥐고 자신 쪽으로 쭉 당겨 왔다. 아진이 끼이익 소리를 내며 끌려왔다. 그런데도 아진은 고개를 들지 않았다. 분홍색 리본으로 앞머리를 묶어 놓고 얼굴 한 번 제대로 보여 주지 않는 게 야속하기 그지없었다.
석주가 아진의 목덜미를 쓰다듬었다. 그의 엄지가 무른 살결을 꾹 내리누르며 아래로 내려갔다. 그러다 동그란 어깨를 매만지고, 그 후에는 헐겁게 묶인 저고리 안으로 손이 쑥 들어갔다. 아진의 시원한 맨살이 만져졌다.
“아이참…….”
아진이 성가시다는 듯 어깨를 뒤틀었다. 그런데도 고개는 들지 않았다. 담배를 문 석주가 눈을 가늘게 떴다. 그러고는 아진의 맨가슴을 만졌다. 사내라 납작한 게 딱히 만질 게 없긴 하다만 그래도 모아쥐면 말랑한 살이 손가락 사이사이로 짓눌렸다.
“흐…….”
아진이 목을 움츠렸다. 그러나 여전히 연필을 꼭 쥐고 있는 상태였다. 석주는 그 작은 반응을 관음하며 계속해서 손을 움직였다.
손끝에 작은 알갱이가 걸려 왔다. 정사 때마다, 그리고 아진이 잠들었을 때마다 석주가 몰래몰래, 알음알음 열과 성을 다해 만지고 빨아 준 덕에 그 부피가 조금 커진 유두였다.
석주가 그것을 엄지와 검지로 쥐었다. 그러고는 돌돌 굴리듯 만졌다가 꾹 으깨듯 짓눌렀다.
“아!”
찌릿한 감각에 아진이 퍼뜩 고개를 들었다. 그가 팩 석주를 노려봤다. 그러든 말든 석주는 계속해서 아진의 가슴을 주물러 댔다. 엄지로 유두를 살살 누르기도 하고, 가슴 전체를 꽉꽉 모아 쥐기도 하고, 가끔 손가락이 남으면 우묵하니 파인 쇄골도 만져 주었다.
아랫입술을 꾹 씹은 아진이 다시 공책에 얼굴을 처박았다. 그에 석주의 한쪽 눈썹이 비죽 모나게 올라갔다.
어쭈.
석주가 아진의 의자를 조금 더 자신 쪽으로 끌어왔다. 그리고 거치적거리는 아진의 저고리를 휙 풀어 버렸다. 거친 모직이 사르르 풀어지며 아진의 가슴팍이 훤히 드러났다. 뭐 얼마나 만졌다고 새빨개진 유두에 석주가 입맛을 다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