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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밖에도,
“아진이가 약 맛을 기가 막히게 안대.”
“아진이가? 그놈 술도 못 마시지 않아? 도박장에 있을 때 위스키 한 잔 마시고 토를 질펀하게 하지 않았었어?”
“약은 다른가 보지. 그래서 태회파 사업에 큰 힘이 된다더만? 사장님이 아주 좋아한대.”
“하, 그 다리 병신 놈이 별걸 다 할 줄 아네…….”
라든가.
“아진이가 사장님 아들이라던데.”
“뭐? 아들이라고?”
“그래. 갓난쟁이 때 떨어졌다가 이번에 아주 우연히 만난 것 같더라고. 그래서 매일 끼고 잔다는 거 아니야.”
“세상에, 세상에. 근데 둘이 너무 다른데?”
“아진이는 엄마를 닮았나 보지.”
“그 엄마는 어딨는데?”
“나도 몰라. 깡패 놈 부인이 어디 잘 먹고 잘 살겠어? 비명횡사했거나 밤에 몹쓸 짓이라도 당했겠지.”
“에구머니나…….”
라든가.
“아진이가…….”
“아진이가?”
“자객이래.”
“……뭐라고?”
“칼을 아주 기가 막히게 쓴대. 그래서 태회파가 서울을 먹으려고 중호파를 치는데, 아진이가 중호파 대가리의 멱을 따러 간다고 하더라고.”
“아, 아진이가 칼을 잘 써?”
“그래. 아주 휙휙 휘두르면 사람이 대번에 토막 난대.”
“이를 어째. 나 아진이 어렸을 때 구박 많이 했는데. 다리 병신이라고…….”
“자네만 했어? 나도 했어. 아우, 씨부랄. 아진이가 갑자기 밤에 칼 들고 우릴 다 도륙 내는 건 아니겠지?”
“돼지 놈 엊그제 쫓겨났잖어. 그놈 설마…… 죽었나? 밤새 쥐도 새도 모르게 사라졌다던데, 아진이가 죽여 버린 거 아냐?”
라든가. 언뜻 들어도 터무니없는 것들이 많았는데, 유일한 유흥이 입방정인 종들은 매일 다른 소문을 만들어 갔다.
아진은 그걸 굳이 나쁘게 생각하지 않기로 했다. 괴롭힘과 구박이 줄었고, 어쩐지 종들이 제게 친절하고 눈치를 보는 게. 뭐랄까. 팔자에도 없던 권력을 쥔 기분이었다. 진정한 사내가 된 것 같고. 힘이 세진 것 같고. 고된 역경과 고난을 헤치고 성공을 쟁취한 설화 속 주인공이 된 것 같기도 했다.
제 평생 이런 관심과 이런 대접은 처음이었다. 매번 귀찮은 놈, 거치적거리는 놈, 쓸모없는 놈, 역겨운 놈으로 취급받다가 이제야 비로소 사람이 된 것 같았다.
아진은 비실비실 웃음이 나왔지만 애써 덤덤한 척, 본인의 일을 해 갔다. 비질도 열심히 했고, 부엌 시중도 바쁘게 들었고, 마루도 박박 닦았다.
요령을 피울 수도 있지만 그런 건 성미에 맞지 않았다. 제가 하지 않으면 남이 해야 하니까. 아마 저 다음으로 약한 이가 하게 될 것이다. 그건 싫었다.
그렇게 일과가 끝나고 밤이 오면, 방에 가만히 누워 있다가 느지막이 석주의 방으로 건너갔다.
마루를 가로지르는 아진의 발걸음이 활기찼다. 전과 달리 집 안 복도를 가로지르는 것에 조급해하지 않았다. 이따금 마주치는 조직원들도 아무런 말을 하지 않았다.
아진은 그게 참 좋았다. 진정한 이 집 사람이 된 것 같아서. 가족이 된 것 같아서.
석주의 방 앞에 도착한 아진이 똑똑 문을 두드렸다. 문은 늘 그랬듯, 빠르게 열렸다. 곧 웃는 얼굴의 석주가 나타났다.
“아진아, 왔어?”
따뜻하면서 동시에 시원한, 두 사람만의 밤이 시작되는 순간이었다.
요즘 아진과 석주는 몹시 다채로운 밤들을 보내고 있었다. 석주는 매일 그에게 콜라를 갖다 바쳤고, 가끔 포도나 복숭아 같은 걸 투박한 손으로 손수 씻어 주기도 했다. 그 밖에도 미제 초콜릿이나 캐러멜 같은 것을 두어 개씩 주었다.
뭘 그렇게 자꾸 먹이는지. 오죽하면 일주일 사이 아진의 얼굴에 살이 올랐을 정도였다.
물론 아진은 그저 좋기만 했다. 아무리 요즘 한국이 역사 이래로 가장 풍요롭다느니, 평화롭다느니, 경제 발전 속도가 엄청나다느니 하지만 그건 ‘뿌리’가 있는 한국인이나 그렇고. 출생 신고가 됐는지 안 됐는지도 알 수 없는 아진에겐 딴 세상 이야기였다. 근데 요즘은 배가 꺼질 일이 없다.
처마 아래에 앉은 아진이 발을 달랑거렸다. 그의 손에는 석주가 준 막대사탕이 들려 있었다. 이따금 장터에 나간 누나들이 사 오면 한두 개씩 얻어먹던 왕사탕과는 전혀 다른 맛이었다. 초콜릿과 우유가 섞인 맛이 났는데, 콜라와는 또 다른 느낌으로 천상의 맛이었다.
아진은 열과 성을 다해 사탕을 빨아 먹었다. 그의 치아와 사탕이 부딪치며 달그락달그락 소리가 났다. 사탕을 물고 입술을 동그랗게 모았다가 빼내며 쪽쪽거리기도 했다.
그의 옆에 앉아 담배를 태우던 석주가 픽 웃었다.
“맛있어?”
“네!”
아진이 사르르 눈을 휘며 대답했다. 석주가 엄지로 그의 눈가를 슬쩍 훑었다. 보들보들하고 시원한 피부에 가슴을 억누르던 더위가 한결 가시는 듯했다.
아진이 마루 아래로 떨어트려 놨던 다리를 접어 올렸다. 옷을 무릎까지 동동 걷어붙여 드러난 종아리가 새하얬다. 새까만 밤이라 그 하얀 발이 더욱 도드라졌다.
석주는 후우, 담배 연기를 내뿜으며 흘끔흘끔 수시로 그 발을 관음했다. 하얀 발등, 매끈한 피부, 마른 발목, 도드라진 복사뼈 같은 것들. 열과 치열한 사투를 벌이던 저의 밤을 청량하게 만들어 준 하얀 피부에서 도무지 눈을 뗄 수가 없었다.
“하나 더 갖다 줄까?”
금세 사탕 하나를 먹어 치운 아진에 석주가 자리에서 일어나려 했다. 몇 주 전, 필로폰을 거래하는 미국인들에게 언질을 해 두었다. 필로폰 한두 봉지를 덤으로 주고 단 과자들을 잔뜩 받는 것이다.
그렇게 몇 상자가 들어오면 반 정도는 생긴 것과 다르게 단걸 좋아하는 조직원들에게 나누어 주고, 나머지 반은 챙겨 와 아진에게 한둘씩 주었다. 한 번에 다 주면 더는 제 방에 안 올 수 있으니 조금씩, 야금야금 주어야 했다.
“아니요. 괜찮아요.”
“왜. 하나 더 먹지.”
“내일 먹으면 되죠. 그럼 내일도 행복하잖아요. 지금은 충분히 행복하니까 더 안 먹어도 돼요.”
아진이 사탕 막대를 앞니로 잘근잘근 깨물며 말했다.
“…….”
석주는 그 말에 딱히 동의하진 않았으나 구태여 반론을 제기하진 않았다. 오늘 두 개 먹으면 두 배로 기분이 좋지. 내일은 내일이고. 허나 아진이 그렇다는데. 그리고 그 말인즉슨 내일도 오겠다는 뜻이지 않나. 그럼 됐다.
석주는 담배를 마저 태웠다. 아진이 그런 석주의 옆모습을 빤히 바라봤다. 그러다 난데없이 물었다.
“사장님은 결혼 안 하세요?”
“……그런 건 갑자기 왜 물어?”
석주가 후우, 담배 연기를 뿜으며 되물었다. 그에 아진이 슬쩍 옆으로 엉덩이를 옮겼다. 아진의 팔뚝과 석주의 팔뚝이 간간이 닿을 만큼 가까운 거리가 됐다.
아진은 뭔가 큰 비밀이라도 이야기할 것처럼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그래 봐야 있는 거라곤 일정한 간격으로 선 가로등밖에 없는데 말이다. 밤벌레만 우는 주위를 확인한 그가 소곤소곤 말했다.
“사람들이 그래요. 사장님이 저를 끼고 자는 게 제가 사장님 아들이라서 그렇대요.”
“……뭐?”
“혹 예전에 아들 있으셨어요? 저만 한 아들? 제가 아무래도 보통 남자보다 작으니까 음…… 한 열여섯 살, 열일곱 살쯤 되는 아들?”
“…….”
석주가 입을 뻐끔 벌렸다. 그런 소문이 돈단 말인가. 석주는 가슴이 따끔거리는 걸 느꼈다. 양심에 찔리는 거였다.
남들 눈엔 저와 아진이 아빠와 아들로 보인다니. 나이 차는 띠동갑 정도로 알고 있는데. 덩치 때문인가. 제가 쌀 한 가마니라면 아진은 쌀 한 톨이라서? 아니면 액면가가 그런 건가. 아니, 아무리 그래도 아빠와 아들은 심한데.
석주가 심각한 얼굴로 자신의 뺨을 쓰다듬는데. 아진이 다시 물었다.
“이미 결혼하셨던 거예요?”
아진의 미간에 걱정이 끼었다. 행여 석주에게 좋지 않은 과거가 있는 게 아닌가 싶어서. 허나 아진의 걱정과 달리 석주는 심드렁한 낯으로 고개를 내저었다.
“아니.”
“그럼 곧 하셔야겠네요. 더 늦으면 부인 될 사람도 싫어할 텐데. 물론 사장님은 나이가 더 있어도 여전히 멋지고 잘생겼겠지만, 그래도 보는 눈이 있으니까……. 빨리 안 하면 하자가 있다는 소문이 돌 거라고요.”
“너 임신하면 너랑 결혼할 건데.”
석주가 아진의 허리를 감쌌다. 그러고는 뭐가 좋은지 킥킥 웃으며 아진의 뺨에 입술을 비볐다. 아진은 멍하니 굳어 있었다. 방금 너무 기함할 소리를 들어서.
“……네?”
“너랑 한다고. 결혼.”
아진이 입을 뻐끔 벌렸다. 석주가 도통 무슨 소리를 하는 건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아진이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는 사이. 석주가 으득 어금니를 짓씹으며 읊조렸다.
“아들은 씨발, 무슨 아들이야…….”
그러더니 아진의 손을 끌어다 자신의 아랫도리로 가져다 댔다. 뜨겁고 묵직한 무게가 아진의 손바닥을 가득 채우고도 남았다. 손이 닿자마자 단단해지는 게 무서울 정도였다.
“어느 미친놈이 아들 보면서 발정해?”
“…….”
아진이 눈을 빠르게 깜빡였다. 그러다 뒤늦게 석주의 말이 농이 아니라 진심임을 깨달았다. 아진이 고개를 위로 한껏 쳐들었다. 이렇게까지 가까이 붙어 있으면 눈높이 차이가 매우 커지기 때문에 앞머리가 뒤로 넘어갈 만큼 턱을 쳐들어야 석주를 바라볼 수 있었다.
“사장님.”
“응.”
“혹시…… 외국에요.”
“응.”
“남자도 임신할 수 있는 약 같은 게 생겼어요?”
“뭐?”
“그래서 저한테 자꾸 임신 어쩌구 하시는 거예요? 저 임신해요? 그, 그럼 어떡해요? 저 고추 떨어지는 거예요?”
아진이 석주에게 잡히지 않은 손으로 자신의 아래를 덥석 쥐었다. 한 손엔 자신의 양물을, 반대 손으로는 석주의 양물을 쥐고 있는 게 꼭 욕심 많은 아이 같았다.
예상외의 답에 석주가 와르르 웃음을 터트렸다.
아진의 순진함은 상상을 초월한다. 그게 못내 사랑스러웠다. 제가 개 같은 말로 그를 속이고 농락해도 들키지 않을 것 같달까. 그래서 아진을 이렇게 과자나 사탕 따위로 계속 제 곁에 잡아 둘 수 있을 것 같은, 그런 오만한 생각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