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쌍피-32화 (32/2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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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아치라는 단어는 석주에게 그다지 모욕적인 단어가 아니었다. 깡패. 양아치. 개새끼. 씨발새끼. 육시랄 새끼. 뭐 그런 말도 그랬다.

석주는 그런 호칭을 부정할 만큼 양심이 없지 않았다. 저는 나쁜 놈이 맞았고, 그래도 나쁜 놈 중에서는 바르게 살려고 노력하는 편이라 조금 떳떳할 뿐이었다.

석주의 뻔뻔함에 아진이 실소했다. 진짜 이상한 사장님이야. 그가 절레절레 고개를 내젓는데. 석주가 그런 아진을 서재 쪽으로 이끌었다. 그러고는 아진을 자신의 의자에 앉혀 놓았다. 솜을 넣고 가죽으로 덧댄 의자는 크고 푹신하고 석주의 냄새가 났다.

아진이 왜 이러냐며 일어나려는데. 석주가 서재 뒤에 있던 다락을 드르륵 열더니 무언가를 꺼내 책상에 턱 내려놓았다.

병이었다. 소주병보다 조금 더 길고, 모양새가 꿀렁꿀렁 요상한 병. 아, 그래. 사이다와 비슷했는데 까만 액체가 들어 있었다. 그리고 꼬부랑글씨가 적혀 있었다.

아진이 그것을 빤히 봤다. 그러다 책상에 걸터앉은 석주에게로 고개를 돌렸다.

“간장이에요?”

그 말에 뿌듯한 미소를 짓고 있던 석주가 눈을 꾹 감았다가 떴다. 순간 눈앞이 아득했다.

“아니, 콜라야.”

“……콜라요?”

“콜라 몰라?”

“몰라요.”

석주가 예상 밖이라는 듯 인상을 썼다. 아무리 가짜 호텔이라도 어쨌든 호텔이라는 곳에서 일했으니 본 적이 있을 거라 생각했는데. 요즘 서울에서 한창 유행이라 바쁘게 수입해 오는 것이기도 하고. 근데 전혀 모를 줄이야.

석주가 나긋한 음성으로 콜라를 설명했다.

“미국에서 유행하는 음료수야. 달고, 따끔해. 사이다처럼. 근데 좀 달라.”

“…….”

아진이 다시 병을 바라봤다. 검고 탁한 게 영 음료수 같지 않았다. 아진이 자신의 목을 벅벅 긁으며 말했다.

“구정물…… 같은데요.”

아무리 봐도 먹고 싶은 생김새는 아니었다. 맛도 이상할뿐더러 먹으면 몸이 아플 것 같았다. 좋게 봐 줘야 탕약 정도였다. 아진이 손끝으로 병을 툭 건드렸다. 차가운 유리 질감이 느껴졌다.

“구정물 아니야. 맛있는 거야. 명진이는 사무실 들어가면 이걸 끼고 살아. 다른 애들도 좋아해. 필로폰 10g이랑 이거 한 상자랑 바꿀 정도라고.”

지극한 설명에 아진이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였다. 뭐, 그렇다 치고.

“근데 이걸 저한테 왜 보여 주시는데요? 자랑하는 거예요?”

그 말에 석주가 푸하, 웃음을 터트렸다. 제가 설마 종을 불러다 놓고 음료수나 자랑하는 놈이겠나. 하여튼 아진의 발상은 특이했다. 동시에 깜찍하고.

석주가 병을 아진의 앞으로 쭉 끌어왔다.

“너 줄게.”

그에 아진의 입매가 해괴하게 뒤틀렸다. 선물인데 기분이 좋지 않았다. 석주가 준 돈, 사과, 밥, 약, 모든 게 달갑지 않았으나 이번 건 유달리 별로였다. 뭐랄까. 선물로 똥을 받은 기분이랄까.

아진이 고개를 비스듬히 뒤틀며 되물었다.

“꼭…… 받아야 해요?”

“…….”

석주가 입을 꾹 다물었다. 이게, 이게, 이런 반응이면 안 되는데. 일단 하나 주고 좋아하면 매일 한두 개씩 가져와서, 앞에 앉혀 두고 먹는 걸 구경할 생각이었는데. 돈을 줄 때도 그렇고 사과를 줄 때도 할 때도 그렇고. 아진의 반응은 도무지 예상이 어렵다.

어떻게 해야 하나……. 머리를 굴리던 석주가 병따개를 가져왔다.

“일단 마셔 봐.”

뻥, 시원하게 뚜껑을 딴 그가 크리스털 잔에 꼴꼴 콜라를 따랐다. 값비싼 잔에 검은 액체가 출렁거렸다. 기포가 터지며 쏴- 하는 소리도 났고, 아무도 건드리지 않음에도 미세한 물방울들이 툭툭 위로 튀어 올랐다.

아진이 아랫입술을 비죽 내밀었다. 아무래도 석주가 화가 난 것이 틀림없다. 그래서 이렇게 새로운 방법으로 벌을 주는 것이다.

“아진아. 괜찮아.”

석주가 머뭇거리는 아진을 달랬다.

“봐 봐.”

그러더니 콜라를 두 모금 꿀꺽꿀꺽 마셨다. 아진이 크게 움직이는 그의 목젖을 빤히 봤다. 석주는 인상을 쓰지도 않았고, 구역질을 하지도 않았다. 그저 자신의 아랫입술을 슬쩍 핥았을 뿐이다.

잔에 다시 콜라를 따른 그가 그것을 아진에게 내밀었다. 아진이 마지 못해 잔을 받았다. 그리고 도살장에 끌려가는 소 같은 얼굴로 석주를 바라본 후, 홀짝 음료를 마셨다.

“…….”

아진의 눈이 커졌다. 그가 잔 안의 음료를 빤히 바라봤다. 그러더니 몇 번 연달아 다시 마셨다. 석주가 킥킥 웃으며 아진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맛있지?”

“네.”

아진이 망설임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달콤하고 시원하고 따끔거리는 게 신기한 맛이었다. 먹는 순간 목구멍이 뻥 뚫리는 듯하고, 배 속이 쏴- 하며 머리가 맑아지는 게 만병통치약이 아닌가 싶을 정도였다.

아진이 호롭, 하고 작게 콜라를 마셨다. 아까워서 한 번에 많이 먹을 수가 없었다. 사이다와 비슷한데 분명 다르다. 아진이 신기하다는 듯 병을 돌돌 돌렸다. 병은 또 어떻게 이렇게 요상한 모양새로 만든 건지.

“미제는 미제인가 봐요.”

멋진 맛이네……. 아진이 중얼중얼 감탄했다. 그에 석주가 크게 웃음을 터트렸다. 애늙은이 같은 소리를 하는 아진이 우스웠다. 동년배 친구가 없어서 그런가 싶기도 하고.

“마저 먹어.”

“제가 다 먹어도 돼요?”

“응. 다 네 거야.”

석주가 가볍게 대꾸하며 등받이 없는 간이 의자를 끌고 왔다. 그리고 아진을 의자째로 슬쩍 밀고, 책상 앞에 앉아 펜을 들었다. 다시 일을 시작할 모양이었다.

아진이 커다란 의자에 앉아 있고, 석주는 간의 나무 의자에 앉아 있는 게 영 이상했지만 정작 본인들은 몰랐다.

신난 낯으로 콜라를 홀짝이던 아진은 책상 위에 있던 빳빳한 서류로 석주에게 팔랑팔랑 부채질을 해 주었다. 그러다 가끔 석주의 관자놀이에 고인 땀을 손가락이나 손등으로 닦아 주기도 했다.

만병통치약을 먹은 덕에 힘이 불끈불끈 났다. 기분도 좋았다. 시키지도 않은 시중을 들 정도로.

석주는 가끔 아진의 손이 닿을 때마다 볼 안쪽 살을 지그시 깨물긴 했지만 별다른 말이나 행동은 하지 않았다.

방이 조용해졌다. 들리는 거라곤 활짝 열어 둔 창호지 문을 통해 들어오는 밤벌레 우는 소리와 매미 울음소리가 다였다. 석주는 여러 서류를 살피며 장부를 작성했고, 아진은 열심히 콜라를 마셨다.

아진의 손에 부채 대용으로 들린 서류는 팔랑팔랑 부지런히 움직이다가 그가 콜라를 마실 땐 잠깐 멈췄다. 그게 어찌나 귀여운지. 석주는 숫자를 쓰다가도 실없는 놈처럼 피식피식 웃음을 흘려야 했다.

그렇게 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까. 아진이 마침내 콜라 한 병을 다 비웠다. 아진이 끅, 하고 짧게 트림했다. 석주가 또 크게 웃음을 터트렸다. 사내놈들과 함께 살다 보니 트림이고 방귀고 아무렇지도 않거늘, 아진이 하는 건 왜 이리 곰살맞고 귀여운지 모르겠다.

석주가 아진의 앞머리를 슥슥 쓸어 넘겨 주는데. 아진이 빈 콜라병을 빤히 보며 말했다.

“사장님.”

“응.”

“저 이거 병 가져도 돼요?”

그에 석주의 표정이 뒤틀렸다. 그의 한쪽 눈썹이 비죽 위로 올라갔다.

“……돈은 줘도 싫다 하더니, 이 병이 갖고 싶어?”

“네.”

“이딴 게?”

“네. 예쁘게 생겼잖아요.”

아진이 병의 주둥이부터 끝까지 쭉 내리며 쓰다듬었다. 창백하고 가느다란 손가락이 병을 쓸어내리는 것에 돌연 석주는 정신이 아찔해졌다. 제가 원체 성욕이 많긴 했지만 누군가의 손가락을 보고 발정한 적은 없는데. 별걸 다 경험한다.

석주가 슬쩍 다리를 꼬았다. 마음 같아선 당장 아진을 엎어 두고 엉덩이에다 제 좆을 문지르고 싶다만, 마지막 정사가 고작 이틀 전이라 그럴 수 없었다.

정사 바로 다음 날, 아진은 시름시름 앓았다. 그러다 이제 겨우 정신을 차렸는데, 지금 아진의 뒤를 비집고 들었다간 그에게 미움을 받을지도 몰랐다.

후우, 하고 한숨과 욕정을 동시에 토해 낸 석주가 단호히 고개를 내저었다.

“안 돼.”

“왜, 왜요?”

아진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설마 거절당할 줄 몰랐기 때문이다.

“쓰레기 같은 거 모으지 마. 내일 또 줄 테니까.”

“정말요?”

“응.”

석주의 말에 아진이 배시시 웃었다. 내일도 이 신기한 걸 먹을 수 있다니. 신이 났다. 다른 종들은 꿈에도 못 꿀맛이라 같잖은 우월감이 들기도 했다. 아진이 샐쭉 웃으며 몇 방울 간신히 남은 콜라를 마저 들이켰다.

석주에게 특별한 사람이 되는 거. 생각보다 더 좋은 것 같았다.

* * *

그날 이후로 석주는 더 이상 저녁 시간에 아진을 끼고 돌지 않았다. 그러나 상황은 이미 크게 달라졌다. 종들 사이에 은근히 소문이 돌았기 때문이다.

“아진이가 사장이랑 어째 친해?”

“그러게 말이야. 둘이 너무 다르지 않아?”

“아진이랑 같은 방 쓰는 정 씨 말이 아진이가 밤마다 어딜 간대.”

“어딜?”

“사장님 방에 가는 것 같다던데. 혹시, 둘이…….”

“둘이 뭐?”

“떡이라도 치나?”

“미쳤어? 사장님이 뭐 하러 아진이랑 떡을 쳐? 마음만 먹으면 창녀를 열 명씩 부를 수 있는데. 굳-이 집에서 일하는 사내종이랑 붙어먹을까!”

“그렇지. 그렇긴 한데, 아진이 걔가 하얗고 낭창하잖아.”

“그래 봐야 다리 병신에 좆 달린 남자야. 얼굴도…….”

“얼굴도?”

“어……. 아진이가 어떻게 생겼지? 맨날 머리를 이렇-게 내리고 있어서 얼굴이 가물가물하네.”

“그러게. 나도 기억이 안 나네. 어릴 땐 되게 귀엽게 생겼던 것 같은데. 좀 크고부터는 바가지라도 뒤집어쓴 것처럼 머리를 기르고 다녀서…….”

“에이, 아무튼, 둘이 떡 치는 사이는 아니야.”

“왜, 난 맞는 것 같은데…….”

가장 큰 소문은 아진과 석주가 밤마다 그렇고 그런 짓을 하고, 아진이 그 짓을 끝내주게 해서 석주가 아주 정신을 못 차린다는 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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