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쌍피-26화 (26/2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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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진은 바지런히 술상을 해다 바치면서도 이상하다는 생각을 했다. 이상함을 느낀 건 아진만이 아니었다. 종들은 둘 이상 모이기만 하면 쯧쯧 혀를 찼다.

    “매번 식구, 식구 하더니 하나도 안 슬픈가.”

    “그러게 말이야. 호상도 아니고 칼에 찔려 죽었는데.”

    “뒤진 게 나였으면 서럽고 억울했을 거야. 동고동락하던 친구들이 장례식에 와 술 처먹으면서 낄낄거리기나 하고…….”

    “누가 깡패 아니랄까 봐 못 배워 먹은 게지. 예의가 없어, 예의가.”

    쪼그려 앉아 술병을 정리하던 아진이 입술을 삐죽였다. 우리 사장님. 그렇게 예의 없는 사람은 아닌데. 그냥…… 장례 치르는 방식이 조금 특이한 거지.

    아진은 종들의 말투가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한 소리 하진 않았다. 여자 종들에게 딴지를 걸었다간 ‘닥쳐, 이놈아.’ 하고 욕이나 얻어먹었겠지만 남자 종들은 대번에 주먹이나 발부터 날아올 게 뻔해서. 목덜미가 잡혀 저기 나무 뒤로 끌려갈지도 몰랐다.

    아진이 술병을 치우고 있을 때였다. 저 멀리서 누군가가 그를 불렀다.

    “아진아.”

    아진이 휙 고개를 돌렸다. 기름 떼로 얼룩진 앞치마를 한 꽃님이 부엌문으로 몸을 반쯤 내민 채 서 있었다.

    “응?”

    “이리 와.”

    그녀가 아진에게 손짓했다. 마지막 술병을 정리한 아진이 끙 소리를 내며 몸을 일으켰다. 그 후 지끈거리는 무릎을 한 번 털곤 꽃님을 향해 비척비척 걸어갔다. 부엌에 가까워졌을 때. 꽃님이 아진의 손목을 낚아채더니 안으로 휙 잡아당겼다. 굳은살이 잔뜩 박인 손에 아진이 팔랑거리며 빨려 들어갔다.

    꽃님은 아진을 아궁이 옆 시멘트 턱에 앉혀 놓았다. 그러더니 접시와 젓가락을 주었다.

    “와…….”

    아진이 눈썹을 올렸다. 접시엔 두부전과 명태전, 김치전, 육전, 애호박전이 그득하게 쌓여 있었다. 아진이 신난 얼굴로 젓가락을 들었다. 귀한 전이다. 도박장에 있을 땐 전을 부칠 일이 없어 구경도 못 했던 것들이었다.

    “아줌마, 고마워.”

    “…….”

    꽃님은 대답 없이 뒤집힌 솥뚜껑 앞에 앉았다. 그러고는 식용유를 넉넉히 두르고 김치전 반죽을 한 국자 턱 엎어 놓았다. 지글지글 맛있는 소리가 울렸다. 고소한 기름 냄새에 아진의 광대가 봉긋 올라갔다.

    진짜 잔칫집 같다. 실제로는 장례식이긴 하지만, 다 웃고 떠드는데 뭐 어떤가 싶었다.

    아진은 접시를 들고 꽃님의 곁에 철퍼덕 퍼질러 앉았다. 그리고 엉덩이를 꾸물꾸물 움직여 그녀의 옆으로 바싹 붙었다. 꽃님이 짜증을 내며 팔을 휘적거렸다.

    “왜 이래, 거치적거리게. 저리 가서 먹어.”

    “싫어.”

    배시시 웃은 아진이 두부전을 크게 베어 먹었다. 기름 맛이 난다 싶더니 엄청난 뜨거움이 혀 위를 날뛰었다.

    “아, 뜨, 뜨!”

    “으이구, 등신아. 천천히 먹어.”

    아진이 경련하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 와중에도 전을 꾸역꾸역 물고 있었다. 이 아까운 걸 뱉을 순 없으니까. 꽃님이 그런 아진의 접시에 적당한 크기로 썰어 둔 배추김치를 한 줌 올려놓았다. 아진이 히히 웃으며 그것을 입에 넣었다. 뜨끈하던 입 안이 한결 식었다.

    아진은 꽃님에게 종알종알 쓸데없는 말을 나불거리며 전을 먹었다. 젓가락으로 전을 조각내 꽃님의 입에 넣어 주기도 했다. 그렇게 배가 뜨뜻해지고 접시가 빌 때쯤, 아진이 나직이 꽃님을 불렀다.

    “아줌마.”

    “뭐.”

    “사람이 죽었는데, 왜 아무도 슬퍼하지 않지?”

    그 말에 바쁘게 움직이던 꽃님의 뒤집개가 멈췄다. 아진이 그녀를 빤히 바라봤다. 모르는 게 없는 꽃님은 답을 알고 있을 것 같아서.

    아진은 죽은 이들과 전혀 연이 없었다. 그들의 얼굴도 흐리멍덩했다. 그런데도 기분이 묘하게 울적했는데, 조직원들은 단체로 미친 것처럼, 보란 듯이 웃고 떠든다. 분명 이유가 있을 것이다.

    “호상이라고 여기면 호상이 되는 거야.”

    꽃님이 아진의 접시에 동그랗고 바삭하게 굽힌 김치전을 턱 올리며 대답했다.

    “응?”

    “억울하게 죽었다고, 의미 없이 죽었다고, 아프게 죽었다고, 불쌍하다고 울면 진짜 그렇게 죽은 게 된다. 그럼 혼이 못 떠나. 억울하고 화나서.”

    “…….”

    “좋게 보내면 좋은 곳에 가는 거다.”

    “…….”

    “복수하겠답시고 부득부득 쥐고 있으면 혼이 좋은 곳에 못 가. 복수 같은 건 죽은 사람 잘 보내고 해도 안 늦어. 깡패 놈들은 그걸 아니까 저렇게 웃는 거다.”

    아진의 젓가락이 접시 끄트머리를 슥슥 의미 없이 긁었다. 이해가 잘 안 됐다. 근데 대충 가늠하기로서니, 웃으면 복이 온다는 말과 일맥상통하는 게 아닌가 싶었다.

    아진이 턱을 주억이는데. 꽃님이 활짝 열린 부엌문 밖을 향해 고갯짓했다.

    “저 봐라.”

    아진이 그쪽을 향해 시선을 돌렸다. 그곳엔 얼굴이 희멀건 조직원이 구부정하게 앉아 웃고 있었다. 정장 재킷을 입은 그의 배 안쪽에는 두꺼운 붕대가 칭칭 감겨 있었다.

    “배때기가 찢어져서 창자가 줄줄 쏟아진 놈도 장례식에는 와야 한다고 새벽부터 와서 낄낄거리며 웃고 있지 않냐.”

    “…….”

    “깡패 놈들은 그게 애도라고 생각하는 거야.”

    아진이 멍하니 바깥을 쳐다봤다. 꽃님의 말을 듣고 나니 조직원들의 모습이 달라 보였다. 저 멀리 상 앞에 앉은 석주의 모습도 보였다. 그 역시 다른 이들과 다름없이 웃고 있었다. 그의 팔에 감긴 상주 띠가 묘한 기분을 들게 했다.

    “…….”

    사장님은 다른 방법으로 애도하고 있는 거구나. 갑자기 서글퍼졌다. 아진이 아랫입술을 불룩 내미는데, 꽃님이 기함할 말을 했다.

    “너도 내가 뒤지면 질질 짜지 말고 춤이나 춰. 좋은 곳에 가라고.”

    “아줌마가 왜 죽어! 그런 말 하지 마!”

    아진이 눈을 부릅떴다. 그에 꽃님이 킬킬거리며 웃었다.

    “내가 벌써 쉰셋이다. 죽을 날까지 얼마나 남았겠냐.”

    “요즘은 다 일흔까지 살거든?”

    “지랄.”

    “진짜야. 병원 가면 죽을병도 고쳐 준댔어.”

    “이놈아. 병원 한 번 가면 돈이 얼만 줄 아냐?”

    “나 돈 많아!”

    아진이 턱을 추켜올리며 말했다. 그에 꽃님이 절레절레 고개를 흔들었다.

    “미친놈. 지랄 똥을 싸라…….”

    “진짜야. 나 진짜 돈 많아. 아줌마 죽을병 세 번 걸려도 세 번 다 고쳐 줄 수 있을 만큼 많아.”

    석주에게 받은 오천 원이 그대로 있다. 월마다 받는 돈도 꼬박꼬박 모아 두고 있다. 쓸 일이 없어 그냥 무작정 모으는 것인데, 꽃님이 아프다면 그걸 탈탈 털어 쓸 수 있었다.

    꽃님은 아진이 세상에 유일하게 정붙이고 사는 사람이다. 비록 가족이라 칭할 수준은 안 되지만, 그럴 염치도 없지만, 어쨌거나 소중한 사람이었다.

    나이 든 꽃님이 시름시름 죽어 가는 걸 상상한 아진이 접시를 아무렇게나 내려놓았다. 그러고는 꽃님을 와락 껴안았다. 괜히 서러워져서는 그녀의 어깨에 찔끔찔끔 눈물을 찍어 내는데. 꽃님이 그의 마른 등을 툭툭 두들겨 주었다.

    “아진아. 사람은 언젠가 다 뒤진다.”

    “아줌마는 안 뒤져.”

    “죽는 걸 무서워하지 마라. 잘 살면 좋은 모습으로 다시 태어나니까.”

    “그래도 일흔까지 살아.”

    “아서라. 그 긴 세월을 지루해서 어떻게 사냐.”

    “안 돼. 일흔까지 살아.”

    아진이 훌쩍 울음을 삼켰다. 그 순진함에 꽃님이 쯧쯧 혀를 찼다. 그런 그녀의 입가에 옅은 미소가 떠 있었다.

    * * *

    장례식은 사흘간 치러졌다. 그동안 아진은 석주와 말 한 번 섞지 못했다. 평소였다면 밤에 그의 방을 찾아갔겠지만 석주가 밤새 빈소를 지킨 탓에 맞닥트릴 일이 없었다.

    그렇게 발인까지 끝난 이른 오전. 장례식이 완전히 끝나고 조직원들은 각자의 방에 들어가서 밀린 잠을 몰아 잤다. 뒤늦게 세상이 떠나가라 우는 이들도 많았다. 허나 그들도 이내 지쳐서는 까무룩 잠이 들었다. 사흘 밤낮으로 일을 한 종들도 장례식의 잔해를 치우고 곯아떨어졌다.

    온 집이 조용했다. 비도 그치고, 다시 더위가 찾아왔다. 바닥에 누워 있으면 살이 바닥에 쩍 붙었다가 떨어지길 반복했다. 맴맴 우는 매미 소리로 귀가 다 따끔거렸고, 창호지를 통해 스며 오는 햇볕은 사나웠다.

    배를 훤히 드러내 놓고 자는 종들과 달리, 혼자 이불을 꽁꽁 싸매고 자던 아진이 눈을 떴다. 이유는 모르겠다. 그냥 자연히 눈이 떠졌다.

    “…….”

    천천히 눈을 깜빡이던 아진은 이내 자신이 깬 이유를 알아차렸다. 석주가 걱정됐다.

    뭐 하고 있으려나. 모두가 그러듯, 그 역시 자고 있으려나. 혼자는 못 자는 사람인데. 그래도 사흘 내내 한숨도 자지 못했으니 혼자서도 잘 자려나. 설마 또 약을 하는 건 아니겠지.

    언젠가 밤에, 퀭한 모습의 석주와 맞닥트렸던 게 떠올랐다. 그것까지 상기하자 가만히 있을 수가 없었다. 벌떡 일어난 아진은 이불을 곱게 정리하고는 방을 나섰다.

    종 주제에 사장님을 걱정하는 게 몹시 유난스럽다 여길 수도 있겠지만 종의 발에 손수 약까지 발라 준 이다. 아진이 유난을 떨 만도 했다. 왕을 섬기는 충신의 기분이랄까.

    살금살금 석주의 방 앞에 도착한 아진이 귀를 기울였다. 아무런 기척도 들리지 않았다. 아진이 아랫입술을 잘근거렸다. 그러다 슬쩍 석주를 불렀다.

    “사장님……. 주무세요?”

    “…….”

    “……진짜 주무시는 거예요?”

    “…….”

    “그러면 저 그냥 갈게요…….”

    아진의 목소리는 작았다. 석주가 말똥히 두 눈을 뜨고 있어도 듣지 못했을 것 같았다. 그러나 아진은 그를 크게 부를 용기도, 멋대로 그의 방에 들어갈 용기도 없었다.

    아진이 입술 끝에 꾹 힘을 주며 등을 돌리는데. 벌컥. 문이 열렸다.

    “……아진이?”

    상박에 두루마기를 걸친 석주가 탁한 눈으로 서 있었다. 아진이 얼른 그의 앞으로 가 고개를 조아렸다.

    “사장님, 안녕하세요.”

    “왜 왔어?”

    “아, 사람들이 다, 다 자는데. 사장님은 뭐 하시나 궁금해서…….”

    “…….”

    “아니, 그게, 혹시 혼자 주무시나 싶어서……. 사흘 내내 못 주무셨잖아요. 근데 날도 너무 덥고, 등에 상처도 덜 나으셨고, 그, 그래서 혹시 못 주무시는 게 아닐까, 걱정이 돼-”

    아진은 말을 끝마치지 못했다. 석주가 그의 허리를 끌어당겼기 때문이다. 아진이 빼꼼 열린 방문으로 잡아먹히듯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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