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쌍피-22화 (22/2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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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장 입구가 어둑해서 내부가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우당탕 쿠당탕, 무언가가 부서지고 무너지는 소리와 누군가의 고함, 비명은 계속해서 들려왔다.

석주가 정장 재킷 안주머니에서 총을 꺼냈다. 명진은 뒷주머니에서 큼지막한 회칼을 꺼냈다. 근처에 있던 조직원들도 저마다의 무기를 꺼내고, 그것이 없는 이들은 생선 궤짝을 발로 부숴 각목을 만들었다.

그들이 공장을 향해 다가갈 때였다. 공장에서 피를 죄 뒤집어쓴 직원들이 혼비백산하며 달려 나왔다. 그들의 발이 닿는 바닥 위로 붉은 발자국이 쿡쿡 찍혔다. 조직원도 그 사이에 끼어 있었다. 방금 명진에게 명령을 받고 들어간 이가 다른 조직원을 부축해 나오고 있었다.

석주와 명진이 그들을 향해 발을 바삐 놀리는데. 조직원의 뒤로 검은 그림자가 스몄다. 그리고,

“으아악!”

조직원의 등에 시퍼런 칼이 내리꽂혔다.

“약 달라고, 약!”

깡마른 남자였다. 바지만 대충 걸치고 있는 차림이었는데, 얼굴도 몸뚱이도 꾀죄죄한 게 한 달은 안 씻은 것 같았다. 날개뼈에는 유리 조각이 박혀 있고, 도끼 같은 것에 찍힌 건지 허벅지 살과 근육이 죄 벌어져서 피가 철철 났다. 근데도 아프지 않은지 신음 한 자락 흘리지 않았다.

칼이 꽂힌 조직원이 풀썩 아래로 쓰러졌다. 그의 부축을 받던 다른 조직원 역시 함께 쓰러졌다. 마른 남자가 원숭이처럼 그의 뒤에 올라탔다. 그러고는 푹푹푹 손 닿는 곳 아무 데나 칼을 내리꽂기 시작했다. 피가 분수처럼 솟구쳐 올랐다.

마른 남자가 개나리처럼 샛노란 눈알을 부라리며 다시 칼을 쳐들었다. 피에 흠뻑 젖은 칼이 조직원의 목덜미로 하강할 때였다.

탕!

묵직한 총소리가 울렸다. 석주가 총을 쏜 거였다.

총알은 직선으로 쭉 뻗어 나가 마른 남자의 오른쪽 가슴을 관통했다. 그 타격감에 남자가 뒤로 엎어졌다. 주위에 있던 조직원들이 얼른 쓰러진 이들을 구했다. 몇몇은 마른 남자를 둘러싸고 마구 칼을 쑤셔 댔다.

허나 남자는 총에 맞고 칼에 수십 번을 찔렸음에도 킬킬거리며 웃어 댔다. 아파하지도 않았고, 공포에 떨지도 않았다. 심장이 멈춰 죽는 그 순간까지 웃었다.

“씨부럴 약쟁이 새끼…….”

명진이 욕을 짓씹었다. 싸움꾼보다 상대하기 힘든 게 약쟁이다. 어디를 어떻게 쑤시고 부러트려도 아파하질 않는다. 숨이 완전히 끊길 때까지 오뚝이처럼 몇 번이고 일어나서 행패를 부렸다. 거기다 힘은 또 어찌나 센지. 정상적인 범위를 훌쩍 넘어서서 처리하기 여간 힘든 게 아니었다.

석주가 총을 든 손등으로 이마를 쓸어 넘겼다.

인천에 생각보다 마약이 많이 퍼졌나 보다. 오죽하면 여기까지 찾아왔을까. 약을 빼돌린 피라미가 누군지는 몰라도 태회파의 조직원이 다치기까지 했으니 그저 손목을 자르는 것으로 끝내긴 힘들 듯싶었다.

석주가 권총의 총알을 확인했다. 일곱 발 중에 하나 쓰고 여섯 발이 남았다. 이것으로는 부족하다. 석주가 장초인 담배를 대충 던지고는 바닥에 굴러다니는 궤짝 각목을 주워 들었다. 그것을 본 명진이 눈썹을 위로 올렸다.

“형님?”

“더 있어.”

“……예?”

명진의 반문과 동시에 공장에서 열댓 명의 사내가 튀어나왔다. 모두 방금 죽은 약쟁이와 비슷한 꼴이었다. 말랐고, 초췌하고, 땟국물이 가득했다. 손에는 조악한 식칼이 들려 있었고, 입과 코에는 희멀건 가루를 잔뜩 묻히고 있었다. 공장에 있던 마약을 발견한 모양이었다.

그것들은 칼을 들고 덩실덩실 춤을 췄다. 조직원들에게 칼을 휘두르며 뱅글뱅글 돌기도 했고, 빽빽 소리를 지르기도 했다. 하나같이 미친놈들이었다.

조직원들이 일제히 석주를 바라봤다. 명령을 기다리는 거였다. 석주가 그들을 훑어보았다. 조직원은 쓰러진 둘을 제외하고 저와 명진을 포함해 여덟 명밖에 안 된다. 나머지는 모두 종로에 있었다.

약쟁이들보다 적은 수로 싸운다니. 아마 쉽진 않을 것이다. 총으로 쏴 버린대도 머리통을 제대로 날려 단발에 죽이지 않는 한 계속해서 일어날 테다.

그래도 어쩌겠나. 제 팔이 잘린다 한들, 저 오만방자한 약쟁이에게 벌은 줘야지.

석주가 각목을 가볍게 돌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조직원들이 으아아아- 소리를 지르며 약쟁이들을 향해 달려들었다.

* * *

늦은 오후. 마루 닦기를 마친 아진은 부엌에서 콩나물을 다듬고 있었다. 양파나 감자에 비하면 손쉬운 일이라 퍼질러 앉은 발끝이 까딱까딱 여유롭게 움직였다.

오늘 저녁은 콩나물 불고기다. 불고기에 콩나물을 잔뜩 넣고 매콤한 양념에 달달 볶은 것인데 아삭아삭한 식감이 아주 끝내줬다. 다른 반찬으로는 소고기미역국과 달걀 장조림, 호박전 등이 있었다.

종들은 넉넉하게 한 미역국에 밥을 말아 먹게 되겠지만, 그래도 조직원들이 먹고 남긴 콩나물 불고기를 맛볼 순 있을 것이다. 꽃님은 종들이 한두 입씩은 먹을 수 있도록 부러 양을 많이 하곤 했으니까.

아진은 자꾸 어금니 사이로 배어 나오는 침을 꼴깍꼴깍 삼키며 콩나물 끝을 뗐다. 그러다 구겨 앉은 다리가 저려 엉덩이를 위로 추켜올렸을 때였다.

댕, 댕, 댕!

종소리가 울렸다. 커다란 집이 움찔움찔 떨릴 정도로 큰 종소리였다. 각자 일을 하던 종들이 번뜩 고개를 쳐들었다. 아진도 눈을 동그랗게 떴다.

“뭐야. 지금 왔다고?”

“아직 저녁 준비 안 됐는데!”

“지금 몇 시지?”

“4시 반이야, 4시 반.”

“보통 7시는 되어야 오지 않아? 일러도 6신데 왜 벌써 왔대?”

“아우, 몰라. 무슨 깡패 놈들이 대낮에 퇴근을 해.”

종들이 아비규환으로 소란을 떨었다. 그에 꽃님이 국자로 솥뚜껑을 탕탕 두드렸다.

“이년들아. 뭔 말이 그렇게 많아. 사장이니까 지 꼴릴 때 퇴근하는 거지. 나가서 인사나 해.”

그녀의 말에 종들이 앞치마를 내던지고 가스 불을 껐다. 아진도 찬물에 젖은 손을 바지춤에 대충 닦았다. 그 후 종들에게 휩쓸려 대문으로 나갔다.

아진은 늘 그랬듯 가장 마지막에 도착해서, 가장 끄트머리에 섰다. 흙바닥을 절뚝이며 달려왔더니 무릎도 시큰거리고 숨도 가빴다. 아진이 덥수룩한 앞머리 아래로 이마에 맺힌 땀을 훔치는데, 대문이 열리고 차가 들어왔다.

아진이 고개를 쭉 빼고 차를 응시했다. 가장 처음에 내릴 석주를 보기 위해서였다.

처음 이 집에 와서 차를 봤을 땐 전신에 오한이 들었는데, 그것도 몇 달이나 봤더니, 그리고 차에서 내리는 석주만 집중해 봤더니 전처럼 무섭지 않았다.

이내 검은색 차가 멈추었다. 두껍고 무거운 문이 열리더니 구둣발이 나왔다. 근데 어째 구두가 얼룩덜룩했다. 매일 아침 종들이 조직원들의 구두를 뼈 빠지게 닦아 광을 내는데 대체 어디서 무슨 짓을 하고 온 건지 구두가 엉망이었다.

아진이 설핏 눈살을 구겼을 때였다. 석주가 내렸다. 그의 뒤로 다른 조직원들이 우르르 따라 내렸다. 그와 동시에 종들이 저들끼리 응집하며 수군거렸다.

“어머, 어머…….”

“세상에 징그러워라…….”

“어우, 나는 못 보겠다.”

“…….”

아진이 입을 꾹 다물었다. 그의 눈동자가 지진이라도 난 듯 흔들렸다.

조직원들은 피 칠갑을 하고 있었다. 남의 피였으면 괴물 같은 놈들, 하고 말았겠지만 언뜻 봐도 상태가 심상치 않았다.

팔뚝이나 허벅지가 마구잡이로 찢어져 있었고, 누구는 턱주가리가 썰려 상반신이 온통 피로 젖었으며, 또 누구는 어디가 어떻게 찔린 건지 숨 쉴 때마다 입으로 울컥울컥 피를 뿜어 댔다.

잘 다린 정장은 피에 젖어 번들번들했으며, 늘 멀끔하게 입고 있던 두루마기는 둘둘 말려서 피를 지혈하는 데에 쓰였다.

붉은색의 향연에 갈피를 잡지 못하던 아진의 눈동자가 뒤늦게 석주를 찾았다.

그러나 미처 석주를 찾기도 전에, 조직원들은 바쁘게 집 안으로 들어가 버렸다. 그들이 훑고 지나간 흙바닥이 피로 흥건했다. 아진이 자동차 바퀴와 엉긴 피를 멍하니 응시했다.

그때, 조직원 하나가 꽃님에게 다가왔다. 명진의 아래 격에 있는 조직원이었다.

“저녁 식사는 원래 시간에 준비해. 죽도 끓이고. 솥 가득 뜨거운 물도 데워. 깨끗한 수건도 준비하고. 많이.”

“예.”

꽃님이 꾸벅 고개를 숙였다. 그녀의 곁에 서 있던 아진이 입술을 꼼질거렸다. ‘사장님도 다쳤나요. 많이 다쳤나요.’ 그걸 묻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가 꽃님을 앞질러 나가려는데. 꽃님이 아진의 팔꿈치를 확 잡아당겨 자신의 뒤로 숨겼다.

다행히 조직원은 아진에게 일말의 시선도 주지 않고 바쁘게 자리를 떴다.

“아줌마 왜 그래?”

아진이 신경질적으로 물었다. 그에 꽃님의 눈썹이 사납게 올라갔다.

“나대지 마. 내가 말했지. 조용히 살라고.”

“나 조용히 살고 있어. 여기서 어떻게 더 조용히 살아.”

“시끄러, 등신아. 지금도 나불거리고 있잖아. 부엌 가서 솥에 물이나 올려.”

“치…….”

아진이 입술을 부루퉁하게 내밀며 뒤를 돌았다. 그는 마당을 통해 절뚝절뚝 부엌으로 향하면서도 집 안을 집요하게 살폈다.

그러나 석주의 모습은 볼 수 없었다.

아진이 대야에다가 뜨거운 물을 옮겨 담았다. 사내종들이 그것을 부지런히 바깥으로 날랐다. 그럼 얼마 지나지 않아 대야가 새빨갛게 물들어 돌아왔다. 아진은 그 대야를 씻고 다시 물을 담았다.

그렇게 한 시간쯤 있으니 이런저런 소문이 들려왔다.

“종로 병원 의사를 싹 빼 왔대. 돈도 왕창 주고 칼 들고 협박도 했다는데?”

“으, 바닥이 온통 피야. 한동안 마루 닦으면 피가 배어 나오겠어. 이러다 귀신 붙는 거 아닌가 몰라.”

“둘이나 죽었다는데? 약쟁이들이 떼로 덤볐대.”

“분위기가 아주 별로야. 다 초상집에 온 얼굴을 하고 있어.”

“죽었다며? 그럼 초상집 맞지.”

“태회파 망하는 거 아니야? 그럼 우리는 어디로 가? 여기가 돈 제일 많이 주는데……. 깡패 놈들이 깡패 같지 않게 유들유들하기도 하고…….”

“망하기는 왜 망해. 100명 가까이 되는 놈 중에 고작 열댓 다친 것 가지고…….”

아진은 귀동냥으로 그들의 말을 듣고 있었다. 그러나 누구 하나 석주에 대해 말하는 이가 없었다. 죽은 사람이 누군데. 마루에 흘린 피는 누구 건데. 다쳤다는 열댓이 누군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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