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
파란 피
뙤약볕이 내리쬐는 여름날의 생선 냄새는 상상하는 것보다 훨씬 고약하다. 비릿하고 시큼하고 퀴퀴한 냄새가 난다. 갓 잡아 올린 것도 뒤돌아서면 금세 쿰쿰한 악취를 뿜어 댔다. 그 악취 탓에 코는 물론 머리까지 띵했다.
석주가 부러 담배를 힘껏 빨았다가 연기를 후우- 자욱하게 뿜어냈다. 악취에서 멀어지고자 하는 하찮은 발악이었다. 그런 석주의 미끈한 구둣발에 생선 내장이 밟혔다. 석주가 참지 못하고 “씨발.” 욕을 짓씹었다.
그가 바닥에 구두 밑창을 벅벅 문지르는데. 명진이 킬킬거리며 다가왔다.
“어이구, 형님. 그렇게 인상 쓰시다 잘-생긴 얼굴이 다 문드러지겠습니다.”
그 말에 석주가 푹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고 명진의 넙데데한 어깨에 한쪽 팔을 올리며 한탄했다.
“명진아. 생선 말고 다른 걸 좀 찾자. 통조림이나, 타이어나, 쌀이나, 파이프나 응? 좋은 거 많잖냐. 냄새도 안 나고 깔끔하고.”
오늘, 석주와 명진을 비롯한 태회파는 인천항에 왔다. 물건 배송을 확인하기 위해서였다. 궤짝에 마약을 그득 실어 쪽배를 타고 바다에 나가 거래하던 시절은 지났다. 요즘은 항구의 지분을 사서 컨테이너 몇 개를 한꺼번에 보낸다.
수출이 왕성해지고, 정부는 신시장을 개척한 기업에게 독점권을 주하고 수출 장려금까지 주었다. 그 일로 작년엔 수출 1억 달러를 달성했다고 전 국민이 덩실덩실 춤을 췄다. 경제 성장이 수직으로 이루어지면서 수출은 더욱 활발해졌다.
덕분에 마약 수출 역시 활발해졌다. 오가는 수출품이 매우 많아 그것을 하나하나 확인할 수 없으니, 그 틈을 이용해 파는 것이다. 잘만 숨기면 합법적인 방법으로 마약을 전 세계에 내다 팔 수 있었다.
태회물산의 수출품은 계절마다, 시기마다 조금씩 달라졌는데, 여름엔 주로 생선이었다. 배를 갈라 내장을 빼내고 그 속에다 비닐로 둘둘 감은 마약을 넣는 것이다. 주변에는 부패를 막아 주기 위한 소금을 양껏 뿌려서 눈속임하기 좋았다.
석주의 불평에 명진이 도리도리 고개를 내저었다.
“여름엔 생선이 딱이라니까요. 무게 속이기도 쉽고, 손질도 쉽고, 중국이나 일본 가서도 통관들이 냄새가 고약하다고 안 열어 본다 아입니까.”
“넌 내 코가 불쌍하지도 않냐.”
“허! 부산에 있을 땐 아무 소리도 안 하시더니. 이제 서울 사람 다 되셨습니다, 형님.”
명진이 앙칼지게 어깨를 튕겼다. 그에 석주가 씩 웃었다.
맞는 말이었다. 부산에 있을 땐 석주가 직접 생선 대가리도 썰고, 배도 갈랐다. 마약을 숨기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냥 일이었다. 항구에 죽치고 앉아 때마다 들어오는 어선의 생선을 분류하고 손질하고 정리하는 일.
가끔 궤짝 사이로 떨어진 생선은 몰래 주머니에 챙겨 놨다가 그것으로 주린 배를 채우기도 했다. 몸에서든 집에서든 비린내가 풀풀 났는데. 뭐 얼마나 됐다고 그게 까마득한 옛일처럼 느껴졌다. 다시 하라면 못 할지도 모르겠다.
문득, 며칠 전 아진이 했던 말이 떠올랐다.
‘지금 이런 집에 사는데 어떻게 천성이 천민이에요.’
‘천성이 양반이니까 그런 거지.’
‘사장님이 과거에 어떤 삶을 살았든, 이제 제자리를 찾아온 거예요.’
종알거리던 목소리를 상기하자 입가가 절로 당겨 올라갔다. 석주가 장난기 가득한 얼굴로 말했다.
“내가 천성이 양반이라 그런가 보다.”
“예?”
“농담이야.”
도통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는 명진의 낯에 석주가 킥킥거리며 웃었다. 명진이 그런 석주를 뚫어지라 바라봤다. 그러다 자신의 두루마기를 뒤로 탁 펼치며 물었다. 엊그제부터 궁금하던 게 있는데, 오늘에서야 물어보려는 심산이었다.
“석주 형님.”
“응.”
“간밤에는 잘 주무셨습니까?”
“응. 잘 잤어.”
“왜요?”
“응?”
석주가 눈썹을 올리며 반문했다. 그에 명진이 턱 아래의 흉터를 벅벅 긁으며 중얼거렸다.
“아니, 요즘에는 언니야들도 안 부르시고, 피곤하다고 담배를 뻑뻑 피우지도 않으시고, 밥도 잘 드시고, 낯빛도 반질반질하시고……. 그래서 여쭤 봤습니다.”
“음…….”
“혹시 약 하시는 건 아니지예?”
“안 해. 잘생긴…… 죽부인이 생겨서 그래.”
“……예?”
명진이 그게 무슨 씻나락 까먹는 소리냐는 표정을 지었다. 석주는 또 혼자 킥킥거리며 웃었다. 명진이 눈을 가늘게 떴다. 석주가 말하는 ‘죽부인’이 무엇인지 가늠하려는 거였다. 그러나 전혀 짚이는 게 없었다.
명진이 그게 대체 뭐냐고 물으려는데. 조직원 하나가 빠른 걸음으로 다가와 머리를 조아렸다.
“형님. 물건 확인 다 했습니다. 함 보시겠습니까?”
“아니, 됐어.”
석주가 꽁초만 남은 담배를 던졌다. 물기 가득한 바닥에 밟기도 전에 불씨가 사라졌다. 그가 텁텁한 입맛을 다시며 조직원의 팔뚝을 툭 쳤다.
“생선 실한 거로 한 궤짝 챙겨라. 집 가서 저녁으로 먹게.”
“예, 형님.”
조직원이 꾸벅 허리를 숙이고는 바쁘게 사라졌다. 배 아래에 두 손을 깍지 낀 명진이 툴툴거렸다.
“제대로 보시지도 않을 거, 뭣 하러 여까지 오셔 가지고는……. 도로도 안 깔려서 길도 험하고 먼디 그냥 종로에 계시지. 두루마기에 냄새 배면 억수로 짱난다 아입니까.”
불평 같으나 살펴보면 결국 걱정이 그득한 명진의 말에 석주가 피식 웃었다. 그가 명진의 곁에 붙어 섰다. 그리고 열심히 생선 궤짝을 옮기고 있는 수십 명의 직원을 바라봤다.
“명진아.”
“예, 형님.”
“여기 우리 태회파 식구들이 몇이나 있냐.”
“예? 한 다섯 있지 말입니다.”
명진은 답해 놓고도 손가락으로 재차 세어 보았다. 조직원의 이름들을 중얼거리더니 다섯이 맞는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명진은 조직원, 그러니까 흔히 말하는 ‘식구’들의 이름을 모두 알고 있었다. 석주 역시 그랬다. 말 그대로 식구이기 때문에.
“그래. 다섯. 고작 다섯이야. 다른 애들은 직원이지. 돈 주고 고용한 직원. 우리 식구가 아니라.”
“그게 문제가 됩니까?”
“언제 어떻게 뒤통수칠지 모른다는 뜻이다. 간간이 얼굴 비춰 주고, 내가 여기를 지켜보고 있다, 이렇게 티를 내 줘야 허튼짓하는 새끼들이 없어.”
그 말에 명진이 석주를 따라 공장을 둘러보았다. 듬성듬성 있는 조직원들 말고는 하나같이 얼굴이 낯설었다. 그것을 인지하자 등줄기에 뻣뻣한 힘이 들어갔다.
석주가 그런 명진의 어깨에 팔을 얹었다. 그리고 고저 없는 음성으로 말했다.
“옛날에는 도둑질하는 놈이 잘못이었지만, 요즘은 문단속 똑바로 안 한 놈이 잘못이 되는 세상이다.”
“……새겨듣겠습니다, 형님.”
석주가 고개를 끄덕이며 뒤를 돌았다. 그리고 공장 밖으로 쭉 걸어 나왔다. 바닷바람에 그의 두루마기가 펄럭거리며 휘날렸다.
생선 비린내가 멀어지고, 시원한 바다 냄새가 밀려왔다. 그 역시 비릿하긴 했지만 생선이 부패하는 냄새와 비교하면 향기로운 수준이었다.
석주가 숨을 크게 들이마셨다. 그래도 폐부에 가득 찬 생선 악취는 쉽게 옅어지지 않았다. 그가 쩝 입맛을 다셨다.
난데없이 아진이 떠올랐다. 어젯밤 코를 묻고 잤던 그의 목덜미가 그리웠다. 부들부들하니 갓난쟁이 같은 냄새가 나는데, 그걸 맡으면 잠이 그렇게 잘 온다.
입이 마르는 느낌에 석주가 또 담배를 꺼내는데, 어느새 다가온 명진이 라이터를 대령했다. 석주가 담배 끝을 가져다 댔다. 불씨가 금세 옮겨붙었다.
“작업반장 불러다 마약 꿍쳐 가는 새끼 없는지 불시에 확인하라고 해. 주머니, 양말 속, 모자, 입 안까지 꼼꼼히 살피라고.”
석주가 희뿌연 연기를 흘리며 말했다.
“예? 와예? 누가 삥땅 치기라도 한답니까?”
“기택이가 우리 마약이 인천에 은근히 돌고 있다는 말을 들었단다. 항구 쪽 집창촌에서 없어서 못 판다고.”
“하! 우리는 우리나라에 마약 안 판다 아입니까?”
“그렇지.”
태회파는 국내에는 마약을 유통하지 않았다. 꼬리가 길면 잡히는 법이다. 그래서 외국에만 갖다 판다. 잡힐 염려가 현저히 줄어들기 때문이다.
석주가 돈을 싸다 바치는 고위 공무원 몇몇은 알고도 눈감아 줬다. 딱히 국내에 피해가 없으니까. 국가는 태회물산이 합법적으로 수출품을 내다 팔고 엄청난 금액의 외화를 벌어 오는 것으로 아니까.
하물며 조직원 몇몇은 애국이라며 어깨를 으쓱하기까지 했다. 수백 년 전부터 시비를 걸어오는 중국과 일본 놈들을 뽕에 허우적거리게 한다는 이유였는데 뭐, 딱히 틀린 말도 아니라 정정하지 않았다.
근데 국내에 태회파의 마약이 돈다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인천에서 태회파의 마약이 돈다면, 태회파는 의도치 않게 남의 장사를 물먹인 게 됐다. 인천에도 경찰이 있고, 깡패 역시 있었다. 그들은 적당한 관계를 유지하며 공생하고 있을 텐데 거기 태회파가 끼면 괜한 싸움이 날지도 몰랐다.
명진의 낯이 험상궂게 뒤틀렸다.
“언 간땡이 처부은 새끼가 빼돌렸다는 뜻입니까? 이 육시랄 새끼가……. 찾으면 우짜까예?”
“해 왔던 대로 처리해.”
석주가 담배를 문 채 대답했다.
태회파는 도둑질을 하면 팔을 자른다. 부산에서부터 그랬다. 바깥에서 뭘 훔치고 다니는지는 알 바가 아니지만 조직의 물건에, 석주의 물건에 손을 대면 반드시 잡아다 팔을 잘랐다. 그건 배신과 다름없는 짓이니까.
조직원들이 망나니처럼 굴어도 딱히 말을 얹지 않는 석주이나 도둑질과 배신에는 몹시 민감하게 굴었고, 처벌 역시 자비라곤 없었다.
“예, 형님. 근데 혹시…… 우리 아가 그런 건 아니겠죠?”
“아닐 거야. ‘뒷집’에 마약이 그득히 쌓여 있는데 굳이 여기까지 와서 빼돌렸을까. 그것도 인천이면 서울이랑 크게 멀지도 않지 않냐. 잡힐 게 뻔한데, 안 그랬을 거야.”
“예. 알겠습니다.”
명진이 고개를 주억이고는 멀찌감치 서 있던 조직원 하나를 불렀다. 그리고 석주와 나눈 대화를 전달했다. 명진처럼 얼굴이 붉으락푸르락해진 조직원이 씩씩거리며 공장 안으로 들어갔다.
멀어지는 그를 보던 명진이 석주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일 끝났는데, 종로로 갈까예? 아니면 일찍 집으로 갈까예?”
“음, 집에 갈까? 생선도 실었는데.”
“예. 그럼 그렇게-”
으아아악!
명진이 한창 말을 하는데. 공장 저 안쪽에서 둔탁한 비명이 울려 퍼졌다. 명진과 석주가 동시에 휙 뒤를 돌아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