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쌍피-20화 (20/261)

20

“그래.”

석주는 쉽게 승낙했다. 아진의 얼굴이 한층 환해졌다. 명함을 두 손으로 쥔 그가 석주의 품에 안긴 채로 꾸벅 인사했다.

“감사합니다.”

그러더니 석주를 올려다보며 배시시 예쁘게 웃는다. 눈이 가느스름하게 휘어지고, 눈썹 끝과 눈꼬리 끝이 아래로 처졌다. 찹쌀떡 같은 광대는 원만한 동산을 그렸다. 입도 방긋 벌어졌다. 그 틈으로 오밀조밀하게 보이는 치아와 붉고 축축한 혀가 쓸데없이 야했다.

인사를 마친 아진이 고개를 내리려 할 때였다. 돌연 석주가 그의 턱을 감싸 쥐었다. 그리고 고개를 내리지 못하게 했다. 아진이 눈을 동그랗게 뜨는데.

입술이 마주 닿았다.

석주의 윗입술과 아진의 아랫입술이, 석주의 아랫입술과 아진의 윗입술이 겹쳐졌다. 그리고 순식간에, 석주의 혀가 아진의 입 안으로 쑥 들어왔다.

허나 입맞춤은 길지 않았다. 석주가 아진의 입술 전체를 세게 빨았다가 놓으며 멀어졌기 때문이다.

촉, 하는 물기 어린 소리와 떨어진 입술에 아진의 눈동자에서 초점이 사라졌다.

입맞춤은 처음이었다. 평생에 처음이기도 했고 석주와 처음이기도 했다.

‘그날’. 석주에게 온몸이 빨렸을 때도 입술은 빨리지 않았다. 석주가 정신이 없던 와중에도 아진의 입술을 탐하지 않은 것으로 보아 버릇인 것 같았다. 타인과 숱한 밤을 보내면서도 입맞춤은 하지 않은 버릇.

근데 그걸 왜 저와…….

아진이 멍하니 눈을 끔뻑이고 있으니, 석주가 그의 허리를 쥐어 책상 위에 앉혀 놓았다. 같은 방향을 보고 있던 두 사람이 마주 보고 앉게 됐다. 석주보다 높아진 시선에 아진이 그를 내려다봐야 했다.

아진은 한 손에는 석주의 명함을 쥔 채, 반대 손으로 자신의 입술을 만지작거렸다. 석주가 그런 아진을 뚫어지라 보며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두 손으로는 책상을 짚고, 팔 사이에 아진을 가두었다. 이내 두 사람의 시선이 일직선상에 위치했다.

석주가 큼지막한 군청색 눈동자에 비치는 자신의 얼굴을 보며, 낮은 목소리로 속삭였다.

“돈은 싫다고 입술을 한 바가지나 내밀더니. 명함 한 장이 좋다고 그렇게 해맑게 웃어?”

“…….”

“이래 놓고 예쁘다 하지 말라고. 예쁜 짓은 골라 하면서.”

아진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게 어째서 예쁜 짓인지 이해가 안 돼서 그랬다. 그러다 이해를 말기로 했다. 사장님은 잠 병신에 이어 눈 병신이기도 하니까. 제 얼굴이 예쁘다고 하는 사람이니 다른 게 예뻐 보이지 않으란 법은 없었다.

근데 이 자세는 조금 불편하다. 몸이 아니라 마음이. 방금 입맞춤을 한 것도 그렇고. 아진이 아랫입술을 잘근거리며 눈알을 굴렸다. 책상 아래로 떨어진 다리는 휘적휘적, 발은 꿈지럭꿈지럭 야단을 떨었다.

그때. 석주가 아진의 턱을 가볍게 쥐고 올렸다.

“입술 빨 거야.”

아진이 흠칫 어깨를 떨었다. 석주가 머리를 비스듬히 옆으로 흘린 채 물었다.

“싫어?”

“…….”

아진은 잠시 고민했다. 그러다 천천히 고개를 가로저었다. 싫진 않았다. 석주의 고추와 조우하는 건 문제가 되겠지만, 입맞춤은 괜찮을 것 같았다. 어쩐지 가슴께가 간질거리고 무릎이 안으로 모이는 기분도 나쁘지 않았고.

아진의 허락에 석주는 입꼬리를 한껏 끌어당기며 웃었다. 그러고는 커다란 손으로 아진의 뺨과 옆통수를 한 손에 감싸 쥐었다.

석주는 가볍게 입술을 물었다가 떼길 반복했다. ‘빨 거야.’라고 천박하게 말한 것과는 달리 퍽 상냥했다. 쪽, 쪽쪽, 쪽 이어지는 소리가 귀엽기까지 했다.

아진은 눈을 말똥말똥 뜬 채 입술을 내어 주고 있었다. 후끈하고 말랑한 체온에 입술이 빨리는 기분이 퍽 나쁘지 않았다.

그때. 석주가 옅게 웃으며 말했다.

“눈 감아야지.”

말 잘 듣는 아진이 얼른 눈을 감았다. 석주가 그의 입술을 물었다. 전과 달리 짙은 입맞춤이 시작됐다.

석주의 뜨거운 혀가 아랫입술을 핥았다. 혀끝으로 콕콕 찌르듯 움직이다가, 혓바닥 전체로 핥았다. 그 달콤함에 아진이 사르르 녹으면 돌연 아랫입술을 세게 빨아 당기기도 했다.

“으응…….”

아진이 눈을 꼭 감았다. 이미 그와 밤을 보냈는데, 서로의 고추가 어떻게 생겼는지도 아는데, 고작 입맞춤이 뭐라고 몹시 수줍었다.

석주는 질기게 아진의 입술을 물고 빨았다. 그러다 아진이 하아, 하고 신음과 한숨이 섞인 것을 내뱉는 순간 잇새로 혀를 쑥 집어넣었다.

“읏…….”

갑작스레 들이닥친 뜨겁고 두툼한 혀에 아진이 저도 모르게 목을 뒤로 뺐다. 허나 석주가 그의 뒤통수를 쥐고 있는 탓에 불발로 그쳤다.

석주는 곧장 깊은 곳으로 파고들었다. 혀끝으로 입천장을 힘차게 긁어내리기도 하고, 치아와 잇몸을 뱀처럼 나돌며 핥기도 하고, 방자하게 도망 다니는 아진의 혀를 잡아다 얽고, 비비고, 가끔 센 흡입력으로 자신의 입 안까지 끌어가 앞니로 긁거나 아프지 않게 잘근거리기도 했다.

“흐우, 응, 흣…….”

“하아…….”

입맞춤은 점점 더 질척해졌다. 마구 섞여서 누구의 것인지 판가름할 수 없는 타액에 입술이 온통 젖었다. 가끔 석주가 아진의 턱까지 핥는 바람에 턱도 축축했다.

아진이 혀뿌리 언저리에 고인 타액을 꼴깍 삼켰다. 저도 남자라고 목젖이 아래위로 움직이며 꽤 말똥한 소리가 났다.

석주가 소리 죽여 웃었다. 그에 내내 눈을 감고 있던 아진이 눈을 반짝 떴다. 왜 웃나 싶어서. 그 큼지막한 눈동자를 본 석주의 낯에서 표정이 사라졌다.

그가 아진의 뒤통수를 고쳐 쥐었다. 그러고는 자신 쪽으로 끌어당기며 본인의 얼굴은 아진 쪽으로 더욱 들이밀었다. 충돌 같은 입맞춤에 두 사람의 치아가 따닥, 하며 부딪쳤다.

“흣!”

놀란 아진이 턱을 안으로 말았으나 석주의 입술은 피할 수 없었다. 아진이 쥐고 있던 석주의 명함이 바닥으로 나풀나풀 떨어졌다.

그러든 말든 석주는 게걸스럽게 아진의 입술을 탐했다. 아진이 삼키려던 타액까지 죄 끌고 가 쭉쭉 빨아 먹었다.

입술이 아리기 시작했다. 석주에게 빨리고 씹힌 혀도 지끈했다. 코끝이 마주 닿아 있어 숨을 제대로 내쉬지 못하니 숨도 가빴다. 아진이 석주의 가슴팍을 밀어 냈다. 허나 석주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

몇 번 더 석주를 밀어 내던 아진은 이내 포기하고 몸을 축 늘어트렸다. 한층 말랑해진 아진에 석주가 그의 허리를 안고 몸을 붙였다. 발기한 아랫도리가 아진의 허벅지를 쿡쿡 찔렀다. 아진이 뒤늦게 다리를 오므려 봤지만 소용없었다.

아진이 어쩔 줄 모르고 목을 움츠리는데. 석주의 뜨거운 손이 엉덩이를 콱 움켜쥐었다. 아진이 앉은 채로 펄쩍 뛰었다. 석주의 손목을 쥐고 밀어 내 봤으나 힘 차이가 어마어마했다. 손톱으로 그의 손등을 박박 긁기까지 했는데도 석주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

“흐우, 사장, 님, 으응, 사장……님…….”

아진이 도리도리 고개를 내저었다. 극렬한 거부에 석주가 마지못해 손을 뗐다. 아진이 안심하려는 찰나. 떨어진 석주의 손이 난데없이 아진의 가슴으로 안착했다. 옷 위로 가슴을 주무르고, 엄지로 도드라진 유두를 누르고 비비는 손길이 외설적이기 짝이 없었다.

아진의 몸이 움찔움찔 떨렸다. 그 와중에도 목구멍으로 쑤셔 박히는 석주의 혀에 숨이 막혀 왔다. 아진의 얼굴이 발그레해졌다. 부끄러움과 열기 그리고 호흡 곤란이 더해진 붉은색이었다.

그러다 아진의 눈꺼풀이 가물가물하게 감길 때쯤. 석주가 떨어졌다.

“하아, 하아…….”

아진이 색색 숨을 몰아쉬었다. 마른 어깨와 가슴이 바쁘게 들썩였다. 석주는 그런 아진을 눈으로 탐하며 작은 얼굴에 쪽쪽쪽 잘게 입을 맞춰 댔다. 아진은 석주에게 몸을 맡긴 채 축 늘어져 있었다. 지금은 숨을 쉬는 것만으로도 벅찼다. 가끔 손등으로 홧홧한 입술을 눌러 식히기도 했다.

그렇게 수 분이 흐른 후. 아진이 바람기가 많이 섞인 음성으로 석주를 불렀다.

“사장님.”

“응.”

“더워요.”

“옷 벗겨 줄까.”

냉큼 나온 음흉한 배려에 아진이 설핏 미간을 구겼다. 그가 두 손으로 석주를 밀어 냈다. 전과 달리 석주는 순순히 한 걸음 물러나 주었다.

“……아니요. 잘래요.”

아진이 책상 아래로 스르륵 미끄러지듯 내려왔다. 바닥을 딛는 뒤틀린 무릎이 지끈거려 다리를 슬쩍 털기도 했다. 그가 허리를 숙여 바닥에 떨어진 석주의 명함을 쥐었다. 살짝 우그러진 귀퉁이를 손가락으로 눌러 펴더니 그것을 바지 주머니에 쑥 넣는다.

“잔다고?”

석주가 잘못 들었다는 듯 되물었다. 그의 앞섶이 남산처럼 부풀어 있었다. 그것을 못 본 체한 아진이 바르게 섰다. 그리고 석주를 향해 꾸벅 허리를 숙였다.

“네. 안녕히 주무세요.”

아진은 절뚝절뚝 이불을 향해 걸어갔다. 천천히 몸을 뉜 그는 이불을 목 끝까지 꼭꼭 덮었다. 그러고는 미련 없이 눈을 감았다.

그 모든 행동을 멀뚱히 지켜보던 석주가 헛웃음을 흘렸다. 저 조그마한 게 사람을 가지고 논다. 그게 조롱이 아니어서 헛웃음만 나왔다.

석주가 자신의 머리칼을 마구 흩트렸다. 그러다 대충 책상을 정리했다. 와이셔츠를 벗어 의자에 아무렇게나 걸어 두고, 불을 껐다. 그 후 아진의 곁을 파고들었다. 아직 잠들지 않은 아진이 본능적으로 꾸물꾸물 도망갔으나 그의 허리를 낚아채 품에 안았다.

발기가 죽지 않은 석주의 좆 대가리가 아진의 토실토실한 엉덩이를 쿡 찔렀다. 아진이 얼굴을 찡그렸다. 그가 석주의 몸을 밀어 내려는데.

“사장님, 고추가 또-”

“아진아.”

석주가 묵직한 음성으로 아진의 말을 막아섰다. 흠칫 놀란 아진이 입을 꾹 다물었다. 그러자 석주가 그를 양껏 안은 채, 그의 허벅지 사이에 성기를 수납했다. 가랑이 사이로 들어오는 뜨겁고 묵직한 살덩이에 아진이 목을 움츠렸다.

석주는 그러든 말든 쓸데없이 감미로운 목소리로 아진의 귓가에 속삭였다.

“잘 자.”

그 말에 아진이 실소했다. 석주가 킥킥거리며 웃었다. 그 웃음소리가 어찌나 천진한지. 아진은 무심코 따라 웃고야 말았다.

그렇게 두 사람은 함께하는 밤에 익숙해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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