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쌍피-17화 (17/2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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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진이 걸레를 만지작거리며 웅얼거렸다.

“어쨌든 싫어요. 사장님이랑 자면 뒤도 엄청 아프고, 사장님이 몸도 자꾸 물어뜯고, 깨물고, 이상한 말도 하고…….”

그에 석주가 설핏 웃었다. 그가 가느다랗고 차가운 아진의 손목을 만지작거리며, 어울리지 않게 나긋한 음성으로 설명했다.

“떡 치자는 거 아니야. 그냥 잠만 자자는 거야.”

“……잠만요?”

“응.”

“왜요?”

“너랑 자니까 잠이 잘 오더라고.”

아진이 이해가 안 된다는 듯 고개를 갸웃거렸다. 어째서 그게 가능한가. 뽕을 빨아도, 술을 마셔도 잠을 못 잔다는 양반이 저와는 잘 잔다니.

석주가 혼란스러워하는 아진의 앞으로 잘생긴 얼굴을 들이밀며 속삭였다.

“네가 다리 병신인 것처럼. 나는 잠 병신이야.”

“…….”

“우리 병신끼리 돕고 살까?”

* * *

늦은 밤. 사방으로 울려 퍼지는 잠꼬대와 코골이에 갇힌 아진은 솜이불을 덮은 채 천장을 가만히 올려다보고 있었다. 묵직하고 가지런히 박힌 대들보가 보였다. 그 구석 어딘가에, 제가 서랍장을 타고 올라가 숨겨 둔 돈 봉투도 보였다.

‘네가 다리 병신인 것처럼. 나는 잠 병신이야.’

‘우리 병신끼리 돕고 살까?’

석주가 한 말이 계속해서 뇌리를 맴돌았다.

“잠 병신…….”

그런 건 듣도 보도 못했는데. 대체 어디에 문제가 있으면 잠을 못 자나. 종일 일도 하는 사람이. 저라면 피곤해서 집에 오자마자 밥 두 공기 뚝딱 비우고 시원한 마루에 퍼질러 누워 다음 날까지 자 버릴 텐데. 마음의 병 같은 거라도 있는 건가.

아진이 꾸물꾸물 몸을 옆으로 돌렸다. 얇은 창호지 너머로 파란 달빛이 스며 왔다.

석주는 뭘 하려나. 잠을 못 자니 또 뻑뻑 담배를 태우려나. 아니면 혼자 술을 마시려나. 아까도 피곤해 보이던데. 내일 일은 어찌 나가려나. 저승사자처럼 눈이 퀭해져서 돌아다니려나. 마약 사러 온 손님들이 그를 보고 도망가지나 않을지 걱정이었다.

“아니, 내가 걱정을 왜 해.”

아진이 반대로 몸을 뒤집었다. 그렇게 큰 사내가 고작 잠 좀 못 잤다고 큰일이나 있으려고. 잠 못 잔 게 하루 이틀도 아닐 텐데. 종 주제에 저택 사장님을 걱정하는 게 우스웠다.

아진이 눈을 꽉 감았다. 그냥 자자.

그러나 아진은 몇 초 지나지 않아 또 반짝, 눈을 떴다.

“아니-이……. 오늘은 누나들도 안 온다는데…….”

창녀를 왜 안 불렀대. 부르면 두 시간이라도 잔다면서. 제가 같이 자자면 자 줄 줄 알았나?

……그럴 수도 있겠네. 저는 종이니까. 사장님이 시키면 시키는 대로 하는 게 맞지. 설마 거절할 거라고는 생각지 못했을 수도 있었다.

“아후으…….”

아진이 이불을 머리끝까지 올렸다. 그리고 조용히 발을 퍼덕였다. 아까부터 석주가 만져 주었던 손길이 떠올라 발을 가만히 둘 수가 없었다. 그의 뜨거운 체온에 달아올랐던 발은 진즉 차게 식어 발가락이 시렸다.

아진은 두툼한 이불을 덮어쓴 채 호흡을 멈추고 있었다. 그러다 폐가 빵빵하게 부풀어 질식할 것 같을 때쯤, 이불을 내리고 파하, 숨을 내뱉었다.

“……잘 자는지 보고만 올까?”

아진이 꿈지럭꿈지럭 몸을 일으켰다.

아진은 뒤꿈치를 들고 살살 복도를 걸어 석주의 방으로 건너왔다. 불편한 다리로 조용히 마루를 걷는 게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그리고, 그렇게 기껏 와 놓고는 문 앞에서 서성거렸다.

괜히 왔나 싶기도 하고, 석주가 아까 그렇게 가더니 왜 왔냐며 화를 내면 어쩌나 싶기도 하고, 괜히 들어갔다가 잠든 그를 깨우면 혼나지 않을까 싶기도 하고.

아진이 목덜미를 벅벅 긁었다. 그러다 입술을 겹쳐 문 채 똑똑 문을 두드렸다. 그 후 얼른 손을 거두고 문이 열리길 기다렸다.

그러나 문은 열리지 않았다. 아진의 낯이 실망에 침잠했다. 같이 자자더니. 혼자 자나.

“사장님은 거짓말쟁이야.”

잠 병신이랬으면서. 아진이 아랫입술을 비죽 내민 채 뒤를 돌았다. 그리고 절뚝절뚝 방으로 향하기 시작했다. 그의 등줄기가 매가리 없이 축 늘어졌다.

그렇게 아진이 막 명진의 방까지 도착했을 때였다. 벌컥, 문 열리는 소리가 나더니 낮은 음성이 묵직한 밤을 헤쳤다.

“누구야.”

아진이 얼른 뒤를 돌았다. 석주가 문 앞에 서 있었다. 그는 나신이었다. 평소엔 느슨한 바지도 입고, 두루마기도 걸치고 있더니 오늘은 정말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나신이었다.

흠뻑 젖은 머리칼에서 떨어진 물방울이 그의 두툼한 목선을 따라 흘러내렸다. 초롱 빛이 은은히 스미는 몸도 물 때문에 번들번들했다. 아마 욕실에 있다가 나온 것이리라.

아진이 멍하니 그를 쳐다보는데. 석주가 씩 입꼬리를 올리며 웃었다.

“아진이네.”

석주의 방에 들어온 아진은 어쩔 줄 모르고 제자리에서 발을 굴렀다. 고개는 푹 숙인 채였다. 석주의 나신이 남세스러워서 도무지 눈을 들 수가 없었다.

단단하고 동그란 엉덩이, 근육이 짙게 선 허벅지, 울룩불룩한 등 근육, 평소와 달리 축 내려앉은 머리칼, 단단하고 널찍한 가슴팍, 그리고 앞으로 서나 뒤로 서나 보이는 구렁이 같은 성기. 고추. 성기. 좆. 성기.

아진이 목을 더욱 움츠렸다. 그러면서도 석주의 몸을 흘끔거리는 걸 멈출 수 없었다. ‘그’날 밤에도 생각했던 것 같은데. 대체 저 크기의 고추는 뭔가 싶다. 보고 있으면서도 믿기질 않았다.

몸도 그랬다. 아진이 숱이 봐 온 남자들의 몸과 달랐다. 훨씬 단단하고 크고 두껍다. 저쯤 되니 우락부락한 깡패들의 우두머리로 있을 수 있구나 싶었다.

아진이 자신의 앙상한 팔뚝을 괜히 문질렀다. 석주와 비교하니 자신의 사내답지 못함이 더욱 두드러지는 것 같아 짜증이 났다.

석주는 매우 굼뜨게 움직였다. 포근한 수건으로 머리를 털고, 속옷 없이 바지를 입었다. 그러면서 이따금 아진을 보며 뜻 모를 미소를 짓기도 했다.

참다못한 아진이 몸을 욕실 쪽으로 돌리며 말했다.

“저, 저도 씻고 올까요?”

“왜. 나랑 떡 치게?”

“아뇨, 아뇨!”

아진이 손과 머리를 함께 가로저으며 열렬히 부정했다. 석주가 피식 웃으며 곱게 깔린 이불을 향해 턱짓했다.

“그냥 누워도 돼.”

그 말에 아진이 어색하게 이불로 다가갔다. 하얀 잠자리가 눈처럼 깨끗했다. 발을 들이기 송구스러울 정도였다. 아진이 입술 한쪽을 물며 망설이는데. 석주가 그를 지나 이불을 막 헤치더니 털썩 누웠다. 그리고 자신의 옆자리를 툭툭 두드렸다.

아진의 눈썹이 위로 올라갔다.

“가, 같이 자요?”

“그럼?”

“잠만 자자고 하셨잖아요.”

“잠만 잘 건데.”

“저는 조금, 조금 떨어져서 자는 줄 알았는데…….”

“그게 어떻게 같이 자는 거야. 따로 자는 거지.”

예상 밖의 전개에 아진은 어쩔 줄 모르고 우두커니 서 있었다. 석주가 으음, 하고 목으로 신음했다. 그러더니 손을 길게 뻗어 아진의 무릎 뒤를 쥐고 자신 쪽으로 훅 당겼다.

마치 상어에게 발이 물려 끌려가는 듯한 느낌에 아진이 기겁하며 몸을 퍼덕거렸다. 허나 석주의 힘을 이길 순 없었다. 아진은 그대로 석주의 품에 쓰러졌다. 석주가 작약한 몸을 요리조리 펴고 두들겨 자신의 옆에 곱게 눕혔다.

“안 잡아먹을 테니까 자, 그냥.”

석주는 아진의 턱 끝까지 이불을 덮어 주었다. 아진이 새초롬히 석주를 쳐다봤다. 그러자 석주가 보란 듯이 아진의 곁에 누웠다. 이불은 아진에게 죄 몰아 주고 상박을 드러낸 채로.

두 사람의 팔뚝이 딱 맞닿았다. 한쪽은 정상이라기엔 체온이 너무 뜨거웠고, 한쪽은 또 너무 차가웠다. 그래서 맞붙어 있으니 꽤 괜찮은 온도가 됐다.

이상하지. 정말 이상할 정도로, 이상하게 편안했다.

아진의 눈꺼풀이 금세 무거워졌다. 가물가물하게 깜빡이는 게 금방이라도 잠이 들 것 같았다. 아진이 석주 쪽으로 슬쩍 몸을 돌렸다. 그러자 석주가 기다렸다는 듯 아진을 바라봤다.

“사장님.”

아진이 잠기운에 먹먹해진 음성으로 그를 불렀다.

“응.”

석주가 가볍게 대답했다.

“안녕히 주무세요.”

“푸흐……. 그래.”

인사 예절만 바른 아진에 석주가 픽 바람 빠지는 소리를 내며 웃었다. 사장님 병신이에요? 사장님 싫어요. 할 땐 언제고. 인사는 참 꼬박꼬박 잘한다.

아진의 숨소리는 금방 사그라들었다. 색색 가늘고 규칙적으로 내쉬는 숨이 그렇게 평화로울 수 없었다. 그가 깊은 잠이 들 때까지 기다리던 석주는 휘영청 뜬 달이 세상을 지배했을 때. 아진의 허리로 슬쩍 손을 뻗었다.

나쁜 짓을 하려는 의도는 없었다. 다만 조금 더 몸을 붙이고 싶었을 뿐. 시원한 그를 품 안 가득 안고 자면 좋은 꿈을 꿀 것 같았다.

석주가 아진의 허리 뒤를 감싸 자신 쪽으로 쭉 끌어왔다. 마른 몸은 손쉽게 품에 안착했다. 석주의 입가에 만족스러운 미소가 떠올랐다.

그는 아진이 베고 있던 베개까지 저 멀리 밀어 버렸다. 그 후 아진의 머리 아래로 자신의 두툼한 팔뚝을 끼워 넣었다. 두 사람이 더욱 가까워졌다.

석주가 아진의 몸을 지분거리며 눈을 감는데. 석주의 목덜미에 얼굴이 파묻힌 아진이 탁한 음성으로 말했다.

“자꾸 만지지 마세요.”

움찔 놀란 석주가 목을 뒤로 물렸다. 그리고 아진을 내려다보는데. 덥수룩한 머리 때문에 눈을 뜨고 있는지 감고 있는지 도통 보이질 않았다.

“안 자?”

“아직요.”

“그럼 얼굴 봐도 돼?”

“…….”

아진이 입을 꾹 다물었다. 석주와의 대화는 항상 이상하게 흘러간다. 과정도 이상하고 결론도 이상하다. 제가 학교 한번 다닌 적 없는 멍청이긴 하지만 석주의 사고방식이 이상하다는 건 알 수 있었다.

잠시 고민하던 아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제 엉덩이에다 고추를 집어넣겠다는 것도 아니고, 그 정도는 허락해 줄 수 있었다.

석주가 쓸데없이 멋지게 웃으며 아진의 앞머리를 살살 쓸어 넘겼다. 곧 푸른 달빛 아래 아진의 얼굴이 훤히 드러났다. 석주가 입을 꾹 다문 채 아진을 응시했다.

보면 볼수록 아름다운 얼굴이다. 절세미인, 경국지색 뭐 그런 흔한 말로는 표현이 불가능했다.

밤과 달이 어우러진 얼굴이었다. 잔잔하게 반짝이던 밤하늘이 땅으로 내려와 사람이 된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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