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
“그, 내가 사과를 어떻게 해야…… 할까?”
“흐윽, 큽, 흐으으…….”
“아, 그래. 돈. 돈 줄게.”
석주의 뻐득뻐득한 머리로 떠올린 최선이었다. 돈만큼 만사형통인 게 없다. 사람을 쥐어패 놓고도 돈이면 해결되는 세상이다. 맞은 이도 돈을 받으면 그렇게 밑지는 거라고 여기지도 않았다. 코뼈가 부러지고도 천 원을 받았으면 남는 장사라 생각한단 말이다.
공장에서 미싱을 돌리거나, 공사판에서 온종일 막노동을 하면 오십 원에서 백 원을 버는 세상이니 그럴 만도 했다. 오죽하면 세상에 보석금이라는 게 존재하겠나. 미안하다, 잘못했다, 말로 하는 사과는 배도 부르지 않았고, 물건을 살 수도 없었다.
벌떡 일어난 석주가 지갑을 찾았다. 두툼한 가죽 지갑을 쥔 그가 백 원짜리 지폐 한 뭉치를 꺼냈다. 그것을 곧장 아진에게 내밀었다. 점잖은 위인의 얼굴이 그려진 지폐가 아진을 물끄러미 올려다봤다.
“…….”
아진이 입을 꾹 다물었다. 대충 봐도 오십 장은 넘어 보였다. 그럼 오천 원이다.
아진이 도박장에서 일할 땐 하루에 삼십 원 받았다. 그마저도 아진이 거기서 살아서 식비니 숙박비니 하며 십 원이 빠지고 이십 원을 받았다.
석주의 집에서는 육십 원을 받는다. 오천 원은 약 100일의 일당 값이었다. 도박장으로 치면 250일을 일해야 한다. 하룻밤 몸을 판 대가로는 지나치게 많은 금액이었다.
아진이 그것을 받았다. 석주의 얼굴이 한층 밝아졌다. 괘씸하게 속죄라도 했다고 생각한 것이다.
“모자라면 더 줄게. 곱절로 더 줄 수 있어.”
석주가 다시 아진의 맞은편에 앉았다. 그리고 수저를 들었다. 이제 마음 놓고 식사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입가에 작은 미소를 띤 그가 숟가락을 국그릇에 담그는데.
촤아악.
아진이 석주의 얼굴을 향해 돈을 집어 던졌다. 수십 장의 돈이 바깥에 퍼붓는 폭우보다 더 많이 쏟아져 내렸다. 아진이 빽 소리를 질렀다.
“남창 아니라니까!”
“너…….”
“남창 아니라는데 왜 돈을 줘요!”
아진의 마른 어깨가 씩씩 거칠게 들썩였다. 돈. 물론 좋지. 세상에서 제일 좋은 걸 뽑으라면 당연히 돈이지. 근데 아진은 이렇게 돈을 벌고 싶진 않았다. 제가 원해서 몸을 판 거라면 냉큼 받았겠지만, 어젯밤은 그런 게 아니었단 말이다.
아무리 보잘것없고 하찮은 종이라도 자존심은 있는 법이다. 더군다나 양반이고 천민이고 계급이라는 게 사라진 요즘 세상에. 종놈의 자존심은 꽤 꼿꼿하고 반듯했다.
아진은 석주가 미웠다. 어찌나 얄미운지 저 우뚝 선 코가 쏙 빠질 때까지 잡아당기고 싶었다.
“…….”
석주가 귀신이라도 본 얼굴로 흩뿌려진 돈을 쳐다봤다. 그의 얼굴이 서늘하게 굳었다. 그것을 본 아진이 어깨를 움츠렸다. 주먹이 날아오려나, 아니면 젓가락이 눈알에 꽂히려나, 명진을 불러다 제 목을 썰게 하려나 싶었다.
허나 석주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눈물을 벅벅 닦아 낸 아진이 다급하게 밥상을 정리했다. 국은 국끼리 모으고, 석주가 들고 있던 숟가락도 뺏어 쥐었다. 그러고는 상을 들며 일어나려 했다.
멍하니 있던 석주가 아진의 손목을 틀어쥐었다.
“왜? 어디 가게?”
“저 일하러 가야 해요. 설거지도 해야 하고 복도도 닦아야 하고 빨래도 해야 해요.”
“뭐? 그 몸으로 무슨 일을 한다고-”
“괜찮아요. 원래 아플 때도 일했어요. 제 일이니까요. 제가 안 하면 다른 사람이 해야 해요.”
“…….”
아진이 손목을 흔들어 석주의 손을 털어 냈다. 그는 앙상한 팔로 묵직한 밥상을 번쩍, 잘도 들어 올렸다. 종종걸음으로 방을 가로지른 그는 문 앞에 밥상을 내려놓고, 문을 열고, 밥상을 바깥에 내놓았다. 그리고 곧장 문을 닫으려다, 훌쩍 콧물을 삼키며 석주를 쳐다봤다.
그러더니 꾸벅 허리를 숙였다.
“안녕히 계세요.”
그 예의 바른 인사말을 끝으로 쾅! 문이 닫혔다. 백 원짜리에 둘러싸인 석주가 느릿하게 눈을 끔뻑였다.
여름 사과
꽃님은 아진을 보자마자 얼굴을 험상궂게 구겼다.
“등신아. 어디서 퍼질러 자다가 이제 나타났-”
잔소리를 퍼붓던 그녀가 입을 딱 다물었다. 아진의 모습이 뒤늦게 눈에 들어왔기 때문이다.
“너 꼴이 왜 그래?”
“……아줌마.”
부엌 한가운데에 밥상을 내려놓은 아진이 아랫입술을 쭈뼛쭈뼛 내밀었다가 당기길 반복했다. 그러다 바닥에 퍼질러 앉아 흐어어엉, 하고 어린아이처럼 울음을 터트렸다.
“이놈이 미쳤나…….”
꽃님이 그를 추슬러 일으켰다. 그리고 아진을 보며 숙덕거리는 종들에게 빽 소리를 질렀다.
“뭘 멍청하니 섰어! 일이나 해! 한 시간 뒤에 저녁이야!”
그 호통에 종들이 후다닥 냄비에 얼굴을 처박았다. 꽃님은 축 늘어진 아진을 질질 끌다시피 해서 부엌 밖으로 나왔다. 아진은 그녀의 우악스러운 손아귀에 이끌려 절뚝절뚝 걸어갔다. 그러다 눅눅한 목소리로 그녀를 불렀다.
“아줌마.”
“뭐.”
“나 씻고 싶어. 뜨거운 물로.”
그에 한껏 인상을 쓴 꽃님이 군말 없이 바깥 욕실로 방향을 틀었다.
아진은 나무판자를 덧대 만든 욕조에 무릎을 잔뜩 쪼그리고 들어가 앉았다. 폭이 어떻든 간에, 일단 뜨거운 물에 몸을 담그니 살 것 같았다. 간밤에 혹사당해 터진 뒷구멍이 따끔거리고, 엉덩이와 허벅지 안쪽이 시큰거렸지만 아프다고 엉엉 울 정도는 아니었다.
아진이 귀한 욕조 목욕에 손가락으로 찰방찰방 물장난을 치는데. 그의 등을 벅벅 닦던 꽃님이 눈을 부라리며 물었다.
“그러니까 사장 그놈이 그랬단 말이지?”
“응. 새벽에 갑자기.”
“씨발놈……. 내가 그놈 밥에다 쥐약이라도 타 주랴? 아니면 국에 농약이라도 들이부을까?”
“아니야. 그러지 마.”
“왜?”
“나한테…… 미안하대.”
“……사장이?”
“응.”
꽃님이 입을 꾹 다물었다. 사과. 그게 뭐 그렇게 어려운 건가, 싶지만 그렇다고 듣기 쉬운 건 아니었다. 더군다나 윗사람에게는. 또 더군다나 사내에게는.
그 사실이 퍽 놀랍긴 하다만, 그렇다고 이 일을 그냥 넘길 순 없었다. 꽃님은 정말 당장 내일 아침, 석주의 밥에다 쥐약을 넣을 수 있었다. 꽃님이 얼룩덜룩한 아진의 등을 철썩 내리쳤다.
“아!”
“……그래서. 등신 같은 게 사과받았다고 네, 알겠습니다, 하고 나왔냐.”
“아니야. 안 그랬어. 돈도 줬는데, 던져 버렸어. 나 남창 아니라고.”
“으이구. 화상아. 돈은 받아야지. 받고 모자라니 두 배로 쳐 달라고 해야지. 하여튼 멍청해서는…….”
석주는 사람도 죽이고, 아진에게 몹쓸 짓도 한 개새끼지만, 쪼잔한 개새끼는 아니다. 돈을 줬다면 분명 두툼한 다발을 내밀었을 것이다. 그걸 내던지고 나왔다니.
꽃님이 쯧쯧 혀를 찼다. 애가 어떨 땐 여우 새끼처럼 굴다가 또 어떨 땐 멍청한 개처럼 군다.
그에 아진이 눈을 동그랗게 뜨며 욕조 벽으로 바짝 붙어 앉았다.
“……그래? 그럼 다시 가서 달라고 할까? 오천, 오천 원은 돼 보였는데.”
“그만큼이나 주던? 돈이 썩어나는 새끼네.”
아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 많은 돈을 주는데 일말의 망설임도 없었다.
제게 백 원 다발을 내밀던 석주를 떠올린 아진이 입을 헤- 벌리며 중얼거렸다.
“사장님은 다른 창녀들한테도 오천 원씩 주나? 그럼 나도 몸이나 팔까. 두 번 팔면 집도 사겠-”
퍽. 이번엔 등으로 주먹이 날아왔다. 아진이 허리를 비비 꼬며 신음했다.
“아줌마-아……. 나 아파-아…….”
“등신 같은 생각 하지 마. 몸 팔면 끝이 험해.”
“끝?”
“험하게 뒤진다고. 창녀가 여든 먹을 때까지 살았다는 말 들어 본 적 있냐?”
“…….”
“남자 새끼들이랑 붙어 있으면 그런 거야. 그것들은 여자를 인간 취급을 안 해. 여자를 물건처럼 돈 주고 사는 새끼들은 더하고.”
“하지만 난 남자잖아.”
“몸 팔면 그때부터는 여자랑 다름없어.”
아진이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무슨 말인지 확실히 이해하진 못했지만, 그래도 어렴풋이 알 것도 같았다. 도박장에서 일하던 누나들이 자주 다쳤으니까.
남자들은 으레 손찌검을 해 댔다. 그 예쁘고 착한 누나들 때릴 때가 어디 있다고. 백옥 같은 피부에 시퍼렇게 멍이 들고, 피를 흘리던 누나들을 치료하며 어린 아진은 분하고 슬퍼서 질질 눈물을 짰다.
욕조 위로 턱을 올린 아진이 커다란 눈을 깜빡이며 꽃님을 올려다봤다. 꽃님이 불그스름하게 짓무른 아진의 눈가를 손가락으로 살살 문질러 닦았다. 땅이 꺼지라 푹 한숨을 내쉬기도 했다.
그녀의 걱정을 알아챈 아진이 해사하게 웃으며 말했다.
“나 괜찮아, 아줌마. 그래도 차에 치였을 때만큼 무섭고 아프진 않았어.”
“……그게 말이냐.”
꽃님이 아진의 머리에 아프지 않게 꿀밤을 먹였다. 아진이 히히, 철없이 웃었다. 그 천치 같은 웃음을 보던 꽃님은 저도 모르게 픽 따라 웃고야 말았다.
꽃님은 아진을 아꼈다. 말은 툭툭 투박하게 던져도 세상에서 아진을 챙기고 걱정하는 건 그녀뿐이었다.
아진이 아홉 살. 구르고 구르다 도박장에 도착했을 때. 그곳은 술집 겸 도박장이었다. 아진은 테이블 사이를 나돌며 재떨이를 비우거나 담배를 팔거나 술을 갖다 주는 일을 했었다.
그땐 꽃님이 아진에게 관심이 없었다. 부모 없고 돈도 없는 애새끼가 어디 한둘도 아니고. 굳이 관심을 두거나 동정할 필요가 없었다.
근데 아진은 꽃님이 좋았다. 그래서 강아지처럼 쫄래쫄래 따라다녔다.
그러다 하루는 꽃님이 아팠다. 몸살이었나, 고뿔이었나, 둘 다였나, 그랬는데 누구도 그녀를 돌보지 않았다. 금 사장은 걱정은커녕 누가 부엌일을 대신하냐며 분기탱천했다. 다른 직원들도 그랬다. 골방에 누워서 앓는 꽃님에게 관심도 가지지 않았다.
오로지 아진만, 그녀를 걱정했다. 재떨이를 닦다가 슬쩍 문을 열어 괜찮냐 묻고, 어디서 개밥 같은 죽을 해 와 먹으라 하고, 힘없는 고사리손으로 짜다 만 수건을 그녀의 이마에 철퍼덕 얹어 놓기도 했다. 밤에는 그녀의 옆구리에 붙어 쫑알쫑알 귀찮게 굴었다.
그날 이후부터였다. 꽃님이 아진을 싸고돈 건.
아진을 뒤로 돌린 꽃님이 덥수룩한 머리에다 비누를 칠하는데. 아진이 눈 한쪽을 찡그리며 그녀를 불렀다.
“근데, 아줌마.”
“또 뭐.”
“사장님이 나 예쁘대.”
“…….”
“얼굴 가리고 다니지 말래.”
바쁘게 움직이던 꽃님의 손이 뚝 멈췄다. 그녀의 눈이 차게 식었다. 아진을 뚫어지라 보는 시선이 자못 사나웠다. 바다 위의 돌풍을 응시하는 선장 같은 얼굴이었다.
허나 뒤돌아 있는 아진은 그녀의 얼굴을 보지 못했다.
“내가 다리 병신인 것처럼 사장님은 눈이 병신인가? 왜 남자보고 예쁘대? 나도 고추 달렸는데.”
“…….”
“……아줌마?”
“그래, 병신인가 보지.”
뒤늦게 나온 대답에 아진이 고개를 주억였다.
아, 우리 사장님은 병신이구나.
눈 병신이라 남자 종놈보고 예쁘다고 하는구나.
그렇게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