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쌍피-12화 (12/2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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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주가 불안한 눈으로 마른 소년을 살폈다. 희멀건 피부 위로 제 흔적이 온통 난도질되어 있었다. 배가 고파서 소년을 잡아먹으려 한 게 아닌가 의심이 될 정도로 자욱한 잇자국, 입술 자국. 그리고 함부로 다루었다는 게 여실히 보이는 손자국, 마찰에 까진 피부, 퉁퉁 부은 눈두덩.

거기까지 자신의 죄악을 확인한 석주가 고개를 푹 숙였다.

“미친 새끼…….”

백정도 아니고. 떡 한번 치겠다고 싫다는 놈을 잡아다 강제로 좆을 쑤셔 넣다니. 제가 아무리 개차반이라지만 정도가 있었는데. 미친 게 틀림없었다.

석주의 자기 비하에 명진이 눈을 부릅떴다.

“예? 누가요? 이 새끼가요? 이 새끼가 형님한테 뭔 짓 했어요?”

명진이 엉덩이를 들썩이며 아진을 노려봤다. 금방이라도 아진의 목을 똑, 하고 분지를 기세였다. 저 넙데데한 손이면 일 분이 채 되지 않아 아진은 초주검이 될 것이다.

“아니, 아니야.”

석주가 명진의 어깨를 밀어 멀어지게 했다. 그리고 근처에 아무렇게나 구겨져 있던 이불을 당겨 아진의 나신을 가렸다. 얼룩덜룩한 몸이 시야에서 사라졌다. 그런데도 석주의 눈앞엔 아진의 나신이 여전히 아른거리고 있었다.

“…….”

명진은 그 꼴을 죄 보고 있었으면서도 아무런 말을 하지 않았다. 매번 여자만 안다가 남자를 안은 이유가 무엇인지, 어젯밤을 그와 보낸 것인지, 그래서 여태 잔 건지, 아무것도 묻지 않았다.

어찌 됐든 석주가 무사하고, 며칠 잠을 못 자던 그가 푹 잤다면 그것으로 됐다. 그가 수면을 위해 남창 몇을 잡아 죽였대도 상관없었다.

명진이 흉터가 울룩불룩하게 도드라진 자신의 턱을 벅벅 긁으며 말머리를 옮겼다.

“오늘도 비가 억수로 와서 종로로 가는 건 힘들 것 같은디, 우짜까예?”

“그냥 쉬어.”

“예. 뒷집 공장은 계속 돌아가는 중입니다.”

“그래.”

석주는 꼬박꼬박 대답하면서도 이불 위로 빼꼼 드러난 아진의 옆얼굴에서 시선을 뗄 줄 몰랐다. 그것을 본 명진은 자신이 자리를 비켜 줘야 할 때라는 걸 알아차렸다.

깡패는 두 가지를 잘해야 오래 살아남을 수 있다. 줄을 잘 서는 것. 그리고 눈치를 잘 보는 것. 싸움과 칼질은 부수적인 것이다. 명진은 두 가지 다 잘해서 여기까지 올라온 사람이었다.

명진이 이만 나가겠다는 듯 몸을 일으키며 물었다.

“식사는, 방으로 들라 할까요?”

“어.”

석주가 고개를 한 번 끄덕였다. 명진이 금방 들이겠다며 석주의 방을 나가려 했다. 문을 연 그가 밖으로 막 발을 디뎠을 때였다. 석주가 낮은 목소리로 그를 불렀다.

“명진아.”

“예, 형님.”

“밥 두 공기 가져와라. 여기……랑 같이 먹게.”

명진이 그가 말하는 ‘여기’를 쳐다봤다. 석주의 옆구리에 붙어 색색 숨을 내쉬고 있는 조막만 한 인간. 존재가 아주 하찮고 작아서 이 집에 있던 놈인가, 하고 되짚어 보게 되는 인간. 그 하찮은 게 이 집의 가장 윗사람과 겸상을 하게 생겼다.

명진은 의아했지만 더 묻지 않았다. 그저 꾸벅 허리를 숙였을 뿐이다.

“……예, 형님.”

석주는 아진을 이불로 둘둘 싸매 놓고 일단 씻기부터 했다. 생각을 정리할 필요가 있었다. 어젯밤 기억이 드문드문 이가 나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하나하나 떠올리고 나니 더 화가 났다.

대체 왜 그랬을까. 평생 사내에겐 일말의 흥미도 없었는데. 아진을 보자마자 떡을 쳐야겠다고 생각한 사고의 흐름이 저 자신도 이해가 안 됐다.

그 밤하늘처럼 신비롭게 예쁜 얼굴 때문인가. 그 얼굴에 홀리기라도 한 건가.

아니, 그래도 그렇지. 새벽 늦게까지 그의 뒷구멍을 들쑤신 건 얼굴만으로는 설명이 안 됐다.

“어쨌거나 확실한 건 내가 미친놈이라는 거지…….”

석주가 셔츠 단추를 여미며 조소했다. 아무리 좆을 막 휘두르고 다니는 놈팡이였어도 싫다는 이를 잡아다 강간한 적은 없었다. 그건 사람을 도륙하고 목을 쳐 내는 것과는 질이 다른 죄였다.

강간이라는 건 막돼먹은 남자나, 수컷으로서의 매력일랑 없는 반푼이나, 욕정에 인생을 팔아먹은 병신들이나 하는 거지 않나.

석주가 옷장 문을 쾅, 세게 닫았다. 그러고는 뒤를 돌아 이불에 묻혀 있는 아진을 내려다봤다.

“…….”

이제 뭘 해야 할까. 고민하던 그는 보드라운 수건을 들고 욕실로 들어갔다. 그것을 적셔 짠 후 온갖 액체로 젖은 아진의 몸을 살살 닦아 내기 시작했다.

작약한 몸에 빼곡한 제 흔적들을 보며 푹푹 한숨을 내쉬는데. 아진의 눈가가 꿈틀거렸다. 놀란 석주가 얼른 손을 거두었다. 아진이 깨어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제 잘못과 마주하고 싶지 않아서.

근데. 바람과 달리 아진이 천천히 눈을 떴다.

진수성찬이었다. 북어 한 마리가 다 들어간 게 아닌가, 싶을 정도로 생선 살이 많은 북엇국. 하얀 쌀밥. 시원하게 익은 김치. 달콤하고 짭조름한 장조림. 멸치볶음. 마늘종 무침. 그리고 떡갈비 두 덩이까지.

평소였다면 이게 꿈이냐 생시냐 하며 바쁘게 숟가락을 놀렸을 것이다. 요즘 한국에는 밥 굶는 사람도, 끼니 걱정하는 사람도 없다지만 그건 아진에겐 해당하는 말이 아니었으니까.

근데 오늘은 영 목구멍이 까끌까끌해서 밥알이 넘어가지 않았다. 기분을 표현하는 비유가 아니라, 실제로 그랬다. 밤새 신음을 어찌나 내질렀는지, 또 입 가득 물고 있던 제 바지가 어찌나 축축하고 억셌는지. 혀와 입술, 입가가 사포라도 물고 있는 것처럼 까끌까끌했다.

그래서 북엇국만 휘젓고 있었다.

밥상머리 앞에서 아주 오만무도한 자세였는데, 누구도 그를 꾸짖지 않았다. 같이 앉아 있는 이가 석주밖에 없어서 그랬다. 꽃님이 있었다면 음식 귀한 줄 모른다며 어제 먹은 게 다 올라올 정도로 뒤통수와 등을 후려 맞았을 터였다.

“맛이 없어?”

아진을 따라 국만 휘젓던 석주가 넌지시 물었다. 아진이 입을 꾹 다문 채로 고개를 내저었다. 맛이야 있겠지. 꽃님이 만든 것인데. 그녀의 손을 거치면 진흙도 갈비가 됐다.

“근데 왜 안 먹어.”

“그냥……. 입이 아파서…….”

“…….”

그 말에 석주가 입을 딱 다물었다. 그리고 혀로 자신의 입천장을 긁어 내렸다. 아진이 입이 아픈 이유가 저 때문임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석주가 아진의 밥그릇을 가져갔다. 그것을 국그릇에다 엎었다. 입맛이 없을 땐 이렇게 뜨끈한 국물에 밥을 말아다 김치와 한술 뜨는 게 최고다. 그래서 그런 건데. 아진이 눈을 동그랗게 뜨더니 푹 한숨을 내쉬며 수저를 내려놓았다.

“저…… 국에 밥 마는 거 싫어해요……. 배가 빨리 꺼져서…….”

“아, 그, 그래? 그럼 내 거 먹어.”

석주가 얼른 아진의 국그릇과 제 것을 바꾸었다. 밥그릇도 바꿔 주었다. 그 후엔 다시 정적이었다.

아진이 손등까지 내려온 셔츠를 어색하게 접어 올렸다. 입을 옷이 없어 석주가 준 셔츠를 받아 입었는데. 몸에도, 마음에도 맞지 않았다. 사그락거리면서 보드라운 질감도 그렇고, 지나치게 큰 품도 그랬다. 평소 제가 입던 것은 남은 거적때기를 잘라다 만든 옷이었으니까.

아진이 떡갈비를 향해 젓가락을 가져갔다. 그러자 석주가 얼른 떡갈비 접시를 아진 쪽으로 밀어 주었다. 그래 봐야 작은 밥상이라 아진의 손이 닿지 않는 곳이 없음에도 그랬다.

아진은 그 꼴이 영 어색하고 이상했다. 대체 석주가 제게 왜 이러는지 모르겠다. 그래도 아침에 눈뜨자마자 알몸뚱이로 내쫓기는 것보다야 낫나…….

코를 훌쩍인 아진은 아주 느릿하게 식사를 이어 갔다. 평소라면 게 눈 감추듯 밥을 욱여넣었을 텐데. 목구멍이 해질 대로 해져서 음식물을 삼키는 게 힘들었다. 그 귀한 떡갈비도 우물우물 녹여 먹는데, 조금 서러웠다. 김치는 목에 걸려 기침이라도 할까 봐 손도 못 댔다.

결국은 국에 밥을 말아 먹게 됐다. 목구멍은 걸레짝이다만 이런 밥상을 언제 다시 받을 수 있을지도 모르고. 먹을 수 있을 때 먹어야지. 배가 일찍 꺼지든 말든 대수랴. 싶어서였다.

그리고 국물에 밥 알갱이가 둥둥 떠다니는 것을 한술 뜨는데. 후두둑. 눈물이 떨어졌다.

이 상황이 어찌나 서러운지. 그런 취급을 당해 놓고도 밥상이 아깝다고 꾸역꾸역 엉덩이를 붙이고 수저질을 하는 제가 너무 개떡 같았다.

석주가 사장이든 깡패든 얼굴에 주먹이라도 날려 줘야 하는데. 발길질을 하다가 되레 얻어맞더라도 바락바락 악을 써야 하는데. 고작 북엇국이랑 떡갈비가 아쉬워서 이러고 있다니.

진짜 등신. 멍청이. 똘추.

아진이 입술 끝에 꾹 힘을 줬다가 풀며 부지런히 숟가락을 입으로 가져갔다. 그러다 흐으윽, 하고 울음 한 자락을 흘리고야 말았다.

석주의 넙데데한 어깨가 움찔 떨렸다. 그의 손에서 툭 떨어진 수저가 그릇 위로 와장창 시끄럽게 나뒹굴었다. 석주가 그것을 얼른 집어 밥그릇 옆에 가지런히 내려놓았다.

그동안 아진은 뚝뚝 눈물을 떨구었다. 석주가 엉덩이를 들썩였다. 달래고 위로해야 할 것 같은데, 그런 쪽으로는 영 재능이 없어서 어려웠다. 입을 떼 봐야 ‘뒤지기 싫으면 닥쳐’, ‘혀를 뽑으면 그칠 거냐?’ 뭐 그딴 말만 나올 것 같았다.

아진이 소매로 눈가를 벅벅 문댔다. 둘둘 만 석주의 셔츠 소매가 눈물로 젖어 들었다. 그 모습이 어찌나 처량하고…… 예쁜지.

씨발, 이 순간에 예쁘다니 그게 무슨 개 좆같은 소리냐, 싶다만 진짜 예뻤다.

질질 짜는 애를 앞에 앉혀 두고 늘 입고 다니던 제 하얀 셔츠가 저렇게 예쁘고 야한 옷이었나, 그딴 생각이나 하고 있었다. 누가 알면 어쩌나 겁이 날 정도로 파렴치한 생각이었다.

그때. 아진이 석주를 올려다봤다. 흐트러진 앞머리 사이로 붉어진 눈시울이 드러났다.

“사장님……. 저, 저어, 흐윽, 남창 아니에요…….”

“어? 아, 아니야? ……미안해. 미안하다…….”

“흐우으……. 윽, 흐어어…….”

“내가 어제 제정신이 아니어서……. 그러면 안 됐는데……. 잘 알아봤어야 했는데…….”

아진을 보고 있으니 석주의 죄의식은 점점 더 무거워졌다. 그와 동시에 아랫도리도 점점 더 발기했다. 석주는 이런 자신이 낯설어 숨이 다 턱턱 막혔다. 행여 발기한 좆을 그가 볼까, 밥상을 슬쩍 자신 쪽으로 당겨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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