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4
한옥은 참 신기한 건물이다. 낮에도 예쁜데, 밤은 더 예쁘다. 종들이 부지런히 밝히는 불 때문에 예쁜 거겠지만, 아무튼 예뻤다.
아진은 집 여기저기에 불을 놓는 걸 좋아했다. 각방에는 전기를 이용한 전구를 쓰지만 복도는 여전히 초롱을 두었다. 초롱 아래엔 판판한 돌을 깔아 불난리를 방지했다.
그게 어찌나 예쁜지. 기름을 잘 먹여서 반들반들한 마루에 비치는 불도 예쁘고, 창호지에 스미는 주홍빛 그림자도 예쁘고, 때에 맞춰 코끝에 스치는 음식 냄새도 예뻤다.
아니, 이건 예쁜 게 아닌가.
집에 불을 밝힌다는 건 저녁 식사 시간이 됐다는 뜻이다. 부엌은 바빴다. 퇴근한 수십 명 장정들의 주린 배를 채워 주어야 했기 때문이다. 불을 밝힌 아진도 헐레벌떡 전쟁 같은 부엌에 뛰어들었다.
오늘 저녁은 값비싼 소고기로 부친 육전, 사내들이 좋아하는 부산식 돼지국밥, 잘 익은 깍두기와 꽃님이 아줌마 특유의 손맛으로 만든 봄동 무침, 바삭하고 노릇하게 구운 김치전, 오징어젓갈과 흰 쌀밥이었다.
아줌마들이 그릇에다 밥을 산더미처럼 담았다. 그럼 아진을 비롯한 남자들이 그것을 부엌 바로 옆에 붙은 다실로 옮겼다.
원래 차를 마시는 용도로 마련된 다실은 널찍하고 문도 사분합문[1]으로 열려서 조직원들이 다 같이 모여서 식사하는 장소로 사용했다. 천장도 어찌나 높은지. 위를 올려다보면 대들보가 까마득하게 멀었다.
꽃님이 아줌마는 “방마다 밥상 하나씩 넣으라고 안 하는 게 어디야.”라며 좋아했다.
아진은 수백 개에 달하는 그릇을 열심히 날랐다. 질이 좋은 사기그릇에 예쁘게 담긴 육전을 보며 군침을 꼴딱꼴딱 삼키기도 했다.
그렇게 밥상을 다 차리고, 두툼한 방석도 가지런히 놓고 나면 조직원들이 하나둘 등장한다. 그쯤엔 종들이 퇴장하고 아진 혼자 남았다. 그는 꼬부랑글씨가 쓰인 양주나 투명한 병에 담긴 소주를 식탁 아래 몇 개씩 놓아두었다.
아진이 절뚝이며 느릿하게 움직이는데도 조직원들은 그를 재촉하거나 윽박지르지 않았다.
“어여. 여기 소주 두 병 더 도.”
“네.”
“어, 석주 형님은 그 양주 안 드신다. 찐한 갈색에 검은색 띠 붙은 거로 들고 온나.”
“아, 네!”
그들은 필요한 것만 시켰다. 다리 병신이라는 소리를 하루에 다섯 번씩 듣던 도박장과는 사뭇 달랐다. 거기서는 토끼처럼 뛰어 보라는 놈이나, 본인과 달리기를 해서 이기면 오백 원을 주겠다는 놈들이 수두룩했는데 말이다.
처음엔 사람도 죽이는 나쁜 놈들이 절 병신이라고 놀리지 않는 게 신기했다. 그러다 나중에 알게 된 건데, 조직원 중에 저처럼 어디가 아픈 이들이 몇 있었다.
싸우다가 팔의 힘줄이 잘려 손가락을 잘 움직이지 못한다거나, 무릎에 칼이 쑤셔 박혀서 다리를 전다거나 하는 이들 말이다.
그래서인지 그 누구도 아진을 놀리거나 헐뜯지 않았다. 아, 도박장에서 함께 넘어온 종들은 여전히 아진을 다리 병신, 절름발이, 깽깽이라고 부르긴 했다.
술 배분을 마친 아진이 다실 구석에 달린 문으로 향했다. 부엌과 연결된 샛문이었다. 종들은 다실의 미닫이문이 아니라 이 문으로 오갔다.
아진이 막 문을 열고 부엌으로 내려가는 계단에 발을 디뎠을 때였다.
“야들아. 형님 오신데이.”
명진의 목소리가 뒤통수를 간질였다. 아진이 휙 고개를 돌렸다. 퇴근 때와 달리 하얀 와이셔츠만 입은 석주가 다실로 들어오고 있었다.
아진이 그를 멍하니 쳐다봤다. 재킷을 입고 있을 때도 덩치가 커 보이는데, 저렇게 셔츠만 입고 있으니 넙데데한 어깨와 근육이 더욱 도드라졌다.
멋있다. 그런 생각을 하는데. 끄트머리에 앉아 있던 조직원이 휙 아진을 쳐다봤다. 소스라치게 놀란 아진이 얼른 문을 닫았다. 그리고 행여 머리채가 잡힐까. 얼른 부엌 안으로 들어갔다.
그를 발견한 꽃님이 아줌마가 이리 오라며 손짓했다.
“뭘 또 멍청히 서 있어. 이리 와서 밥 먹어.”
그녀의 손에는 큼지막한 그릇에 담긴 국밥이 들려 있었다. 뽀얀 국물 사이로 고깃덩이가 듬성듬성 보였다. 금세 만면 가득 웃음을 띤 아진이 절뚝절뚝 다가갔다.
* * *
아진은 부엌 뒷문을 나와 장독대가 빼곡히 선 뒷마당에서 설거지를 하고 있었다. 아진이 들어가서 뒹굴어도 될 만큼 커다란 대야에 각양각색의 그릇이 가득 쌓여 있었다. 아진은 종 서넛과 둘러앉아 뽀득뽀득 열심히 그릇을 닦았다.
아무리 봄이라지만 개울물을 퍼 쓰다 보니 손가락이 새빨갛게 얼었다. 손끝이 산열매처럼 툭 하고 터질 것만 같았다. 다른 이들은 옆에 뜨거운 물이 든 주전자를 하나씩 두고 손을 담갔다가 뺐다. 그러나 아진의 옆만 텅 비어 있었다.
종들은 아진에게 뜨거운 물을 나눠 주겠다는 말도 하지 않았고, 아진 역시 달라고 하지 않았다. 특혜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부엌에 나도는 게 주전자였고, 아진은 그저 귀찮아서 물을 데우지 않았을 뿐이었다.
아진이 거품이 뭉게뭉게 묻은 손가락을 입으로 가져가 호호 불었다.
그때. 아진의 옆에 묵직한 주전자가 툭 놓였다. 작은 의자에 쪼그려 앉아 있던 아진이 고개를 쳐들었다. 꽃님이 불퉁한 표정으로 아진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물 데워 쓰랬지. 하여튼 등신 같은 놈이야…….”
쯧쯧 혀를 찬 꽃님이 뒤를 돌았다. 비싯 웃은 아진이 펑퍼짐한 엉덩이를 흔들며 멀어지는 꽃님을 쳐다봤다.
“고마워, 아줌마!”
아진이 주전자 안에 냅다 손을 쑤셔 넣었다. 꽁꽁 얼었던 손이 녹으며 찌르르 울렸다. 그게 좋아서 손가락으로 찰랑찰랑 물장구를 쳤다. 그러다 다시 설거지를 시작했다.
그렇게 설거지가 얼추 끝났을 무렵이었다. 훌쩍 콧물을 삼킨 아진이 밤공기에 발갛게 얼은 귓바퀴를 어깨로 슥슥 문지르는데. 어딘가 어정쩡한 걸음 하나가 설거지 무리 앞에 섰다.
얼굴이 노랗게 질린 이순이었다. 스물여덟인 그녀는 아진과 함께 도박장에 있다가 이곳으로 넘어온 이였다. 콧잔등과 이마가 납작하고 광대에 주근깨가 잔뜩 박혀 있었다.
다리를 요상하게 꼰 그녀가 네모난 상자 하나를 흔들었다.
“이거 사장님 방에 갖다 줄 수 있는 사람? 나, 아우, 똥 싸기 직전이야. 근데 지금 당장 갖다 놔야 하거든? 여자들 왔대. 해 줄 수 있는 사람? 어려운 일 아니야. 그냥 방문 열고 소파 옆 협탁에 두면 돼.”
그 말에 설거지 무리가 턱을 안으로 당기며 상체를 뒤로 밀었다. 거부였다. 다른 곳도 아니고 석주의 방으로 가라니 께름칙한 것이리라.
그러나 아진은 달랐다. 그가 번쩍 손을 쳐들며 일어났다.
“나! 누나, 내가 갈래!”
“어, 고맙다, 아진아.”
이순이 아진의 품으로 상자를 던졌다. 그리고 장독대 너머, 창고 옆에 있는 바깥 화장실로 후다닥 뛰어갔다. 아진이 히죽 웃으며 손에 묻은 물을 옷에 슥슥 닦았다. 그 후 뒤늦게 이순이 던져 준 상자를 확인했다.
[콘돔-크고 우람한 남성용]
아진은 바깥에 있는 마루로 가지 않고 안쪽에 있는 복도를 가로질렀다. 사실 종들은 대개 집 바깥으로 다녔다. 하물며 조직원들도 그 복도로 들어서는 건 피했다. 석주가 머무는 방이 있는 복도의 초입이었으니까.
그러나 아진은 복도를 쓸고 닦는 역할인 만큼 아무렇지 않게 거닐곤 했다. 지금도 그랬다. 더군다나 이순이 당장 가져다 놔야 한다고 말했을 만큼 급한 것이니 돌아갈 시간이 없었다.
“콘돔…….”
아진은 끝없이 긴 복도를 부지런히 걸으며 상자를 내려다봤다.
콘돔이 뭔지는 알았다. 아진은 어엿한 성인이었으니까. 사실 성인이 아닐 때도 알았다. 풍속점에서 일을 하니 모를 수가 없었다. 물론, 써 본 적은 없었다. 어떤 여자가 절름발이의 말라깽이를 좋아하겠나.
근데 석주는 이걸 낱개도 아니고 상자로 쓴다.
“부럽다…….”
저는 평생 하나라도 쓰면 다행일 텐데. 잠시 시무룩해하던 아진은 이내 다시 활기를 되찾았다.
오늘 드디어 석주의 방에 들어가 볼 수 있을 테니까. 이 집에서 가장 큰 석주의 방은 어떠한 생김새일지 궁금했다. 침대는 얼마나 클지, 책상은 무슨 나무로 만들었을지, 농은 어떤 생김새일지 알고 싶었다.
아진이 다실을 지나, 작은 화장실, 명진의 방, 또 실내 정원까지 빙 둘러 석주의 방에 있는 복도에 접어들었다. 그리고 마침내. 석주의 방 앞에 다다랐다.
아진이 꼴깍 마른침을 삼키며 다른 방보다 훨씬 크고 두꺼운 문을 바라봤다.
안에 석주가 있나. 있으면 어쩌지. 그냥 그의 방을 구경할 생각만 하고 왔지, 그와 맞닥트릴 거란 생각은 못 했다. 뭐, 제가 나쁜 짓 하러 온 것도 아니고. 심부름하러 온 건데 마주친다 한들 무슨 일이 있겠느냐마는. 그래도 괜히 오금이 저렸다.
“후우…….”
크게 심호흡한 아진이 문고리로 손을 뻗었을 때였다. 문이 벌컥 먼저 열렸다. 놀란 아진이 뒷걸음질을 쳤다.
“넌 뭐야?”
긴 생머리가 가슴까지 오는 여자가 서 있었다. 도박장의 누나들에게서 맡던 화장품 냄새가 훅 밀려왔다. 예쁜 외모를 가진 그녀의 붉은 입술에는 가느다란 담배가 물려 있었다. 오른쪽 눈 아래에는 점도 있었다. 진짜인지 가짜인지는 알 수 없었다. 요즘 서울 여자들 사이에 코나 눈 아래에 점 찍는 게 유행인지라.
아진은 희멀건 가슴 둔덕을 죄 드러낸 원피스를 입은 그녀가 무엇을 하러 이곳에 왔는지 어렵지 않게 알 수 있었다.
“아, 이거…….”
아진이 쭈뼛쭈뼛 콘돔 상자를 내밀었다. 여자가 그것을 건네받았다.
“으응, 여기서 일하는 애구나?”
“네.”
“아기네, 아기.”
여자가 작게 웃으며 아진의 턱을 조몰락거렸다. 아진이 흠칫 놀라며 턱을 당겼다. 그는 기분이 나쁘다는 듯 고개를 흔들어 검은색 매니큐어가 발린 그녀의 손을 털어 냈다.
“저 아기 아니에요. 스무 살이에요.”
“뭐? 근데 왜 그것밖에 못 컸어?”
“…….”
아진이 입술을 삐죽 내밀었다. 덥수룩한 앞머리를 마구 당겨 시야를 더 가리기도 했다. 부끄러움의 표현이었다.
못 먹고 못 자서 이것밖에 안 컸다! 열 살에 다리 병신이 됐는데 키가 컸겠냐! 라고 소리라도 지르고 싶었지만 그걸 실행할 용기는 없었다. 간신히 170이 된 저와 여자의 키가 비슷한 것도 그랬다. 어쩌면 저보다 여자가 힘이 더 셀지도 몰랐다.
언젠가, 꽃님이 아줌마가 그랬다. 제가 이렇게 살 팔자가 아니라고. 하는 짓도 그렇고 성격도 그렇고 생긴 것도 그렇고. 어느 부잣집의 막내아들로 태어나서 평생 사랑받으며 놀고먹을 팔자랬다.
근데 그런 걸 말해 봐야 웃음만 사겠지.
억울함 가득한 아진의 낯에 여자가 꺄르르 웃었다.
“귀엽네. 아가, 가서 담배 좀 가져와.”
“아가 아니라니까…….”
아진이 부루퉁히 대꾸했다. 아무래도 저택이 서울 외곽에 있다 보니 담배를 사러 가기가 힘들었다. 그래서 조직원들이 피우는 담배가 창고 한쪽에 수북이 쌓여 있었다. 그걸 가져다주는 게 어려운 일은 아니었지만 아진은 어쩐지 그러고 싶지 않았다.
“씁. 얼른 갔다 와.”
여자가 혀를 끌었다. 아진이 입술을 씰룩였다. 이거 원. 여기까지 불편한 다리로 열심히 왔는데. 석주도, 석주의 방도 보질 못했다. 짜증이 났다. 그러나 종 주제에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
그가 시무룩하게 뒤를 돌았다. 헌데, 눈앞에 하얀 와이셔츠를 입은 가슴팍이 딱 버티고 서 있었다.
석주였다.
*주석
[1] 四分閤門, 대청마루 앞에 설치하는 길고 큰 네 짝의 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