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쌍피-3화 (3/261)

03

“이놈도 데리고 가면 안 되나요?”

꽃님이 아줌마였다. 부엌에서 가장 목소리가 큰 아줌마였다. 중의적인 뜻으로. 실제로 목소리가 크기도 했고, 윗사람들이나 사내들도 그녀의 말이면 들어주곤 했다.

“비쩍 꼴았는데? 일케 마른 놈은 쓸모가 읍서요, 아줌마.”

두루마기를 입은 조직원이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러나 꽃님은 물러나지 않았다.

“얘가 잡일을 제일 잘해요. 채소 다듬는 것도 잘하고 설거지도 잘해. 손도 꼼꼼하고. 다른 놈 데려다 가르치려면 몇 달은 걸려. 데리고 가게 해 줘요.”

그 말에 조직원이 아진을 아래위로 훑어보았다. 그가 훤히 드러난 아진의 사타구니를 보며 눈썹을 올렸다가 내렸다.

“닌 창놈인디 부엌일도 했나?”

“아…… 그게…….”

아진이 더듬더듬 대답했다. 창놈은 아니었지만 꽃님과 함께 갈 수 있으면, 길거리를 배회하지 않아도 된다면, 뭐든 환영이었다. 설사 가서 몸을 팔라고 해도 할 수 있었다. 꽃님이 반대하겠지만 못 할 것도 없었다.

“그래, 뭐…….”

조직원은 못마땅한 듯했지만 거절하진 않았다. 그는 미련 없이 뒤를 돌았다. 꽃님이 얼른 아진을 옆구리에 꼈다. 그리고 작은 목소리로 아진을 혼냈다.

“이놈아. 바지는 어쩌고 천둥벌거숭이처럼 이러고 있어?”

“화, 화장실에서 오줌 싸다가 나왔어…….”

“으이구, 등신 같은 게……. 머리나 덮어.”

“응? 응.”

아진이 흐트러진 앞머리를 끌어 모아다 얼굴을 가렸다. 꽃님과 약속한 거였다. 머리를 자르지 말 것. 얼굴을 가리고 다닐 것. 고개를 숙일 것. 인생 편히 살고 싶으면 그리하라고 했다.

그 이유는 모르지만, 아진은 다른 걸 알았다. 나이 많은 여성의 말을 들어서 나쁠 게 없다는 걸 말이다.

조직원들은 선택된 이들을 모아 밖으로 이끌었다. 꽃님이 두르고 있던 앞치마를 벗어 아진의 사타구니를 숨겨 주었다. 아진은 앞치마를 여미며 석주가 있던 쪽을 쳐다봤다. 그러나 석주는 그새 자취를 감춘 상태였다. 남은 거라곤 그가 앉아 있던 의자와, 의자 아래에 나동그라진 꽁초뿐이었다.

“자, 빨리 갑시다, 빨리.”

조직원이 짝짝 손뼉을 치며 사람들을 재촉했다. 사람들은 피난 가는 가족들처럼 서로 다닥다닥 붙어 도박장 밖으로 나왔다.

초봄의 상냥한 바람이 이마를 쓸고 지나갔다. 아진이 멍하니 하늘을 올려다봤다. 노을에 얼룩진 하늘이 불그스름했다. 구름이 낯설었다. 코끝을 스치는 자동차 연기와 흙냄새가 신비롭기까지 했다.

도박장 밖으로 나오는 게 10년 만이라 그랬다. 더군다나 하필 그날이 봄이라니. 세상의 생명이 움트고 하늘마저 따스한 봄이라니.

아진은 일평생 감옥에서 썩다가 나온 출소자처럼 한참 동안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 * *

댕, 댕, 댕!

커다란 종소리가 온 집 안을 쩌렁쩌렁하게 울렸다. 귀가 어두운 꽃님이 아줌마도 집 창호지가 다 찢어지겠다며 혀를 쯧쯧 찰 정도로 큰 소리였다.

그 종소리에 집 여기저기서 일하던 종들이 일사불란하게 마당으로 튀어나왔다. 운동장만큼 커다란 부엌에서 양파를 썰던 아진 역시 헐레벌떡 뛰어나갔다. 그러나 절뚝이는 걸음 탓에 항상 시간을 맞출 수가 없었다. 부엌과 대문이 까마득하게 먼 것도 한몫했다.

“사장님 들어오신다고. 씨발아, 빨리빨리 서!”

종들의 관리 감독을 자처하는 뚱뚱한 남자, 돼지가 꿈지럭꿈지럭 움직이는 이들의 뒤통수를 후려치며 재촉했다. 아진은 그의 눈에 띄지 않게 허리를 숙인 채 일렬종대로 선 종들의 가장 끄트머리에 섰다.

그와 동시에 대문이 열리고, 미끈한 검은색 차들이 줄줄이 들어왔다. 묵직하게 울리는 엔진 소리와 뚱뚱한 앞코가 뿜어내는 쨍한 빛에 아진이 더욱 허리를 깊숙이 숙였다. 매일 보는 자동차인데 여전히 무서웠다.

목을 자라처럼 오그리자 손에 배어 있던 양파 냄새가 코를 찔렀다.

훌쩍, 훌쩍.

아진이 방정맞게 콧물을 삼켰다. 몇 시간 동안 양파만 만졌더니 눈물 콧물을 한 바가지나 쏟았다. 아진은 무심코 손등으로 코를 문댔다가 또 찡하게 올라오는 매움에 눈물을 흘려야 했다. 고르게 정리된 흙 마당 위로 아진의 눈물이 투둑 떨어졌다.

“조용히 좀 있어.”

옆에 서 있던 꽃님이 아진을 꾸짖었다. 아진이 아랫입술을 부루퉁히 내밀었다. 그러면서도 매움과 눈물을 꿀떡꿀떡 안으로 삼켰다.

이내 차 열 대가 모두 들어왔다. 그리고 세 번째로 들어온 차 문이 가장 먼저 열렸다.

석주였다. 오늘도 어김없이 정장을 입은 석주는 팔에 두루마기를 대충 접어 들고 있었다. 종 하나가 얼른 다가가서 그것을 받아 들었다.

그리고 석주가 집을 향해 얼굴을 돌리는 순간, 종들이 우르르 허리를 굽히며 인사했다. 석주는 그 인사를 받는 둥 마는 둥 하며 곧장 집으로 들어섰다.

석주의 집은 한옥이었다. 아주 큰 한옥. 그렇다고 뿌리 깊은 양반집 같지는 않았다. 여기저기 주차된 차도 그렇고, 대청마루 위에 큼지막하게 달린 샹들리에도 그렇고, 방마다 있는 푹신한 침대와 다실에 있는 보들보들한 소파도 그렇고, 정원에 있는 서양식 티 테이블이 그랬다.

물론, 깡패가 숙소로 쓰는 집 같지도 않았다. 너무 멋지고 깨끗했다. ‘사장님’이 사는 집이라고 해야 이해가 되는 모습이었다.

아진이 멀어지는 석주를 곁눈질로 바라봤다. 무표정한 석주의 얼굴이 보였다가 금세 사라졌다. 아진이 아쉬움의 입맛을 다셨다.

석주는 멋지다.

미남이라서 그런 것도 있고, 사장님이라고 불려서 그런 것도 있고, 키가 커서 그런 것도 있고, 강해 보이는 사내들이 그를 우러러봐서 그런 것도 있고, 담배를 자주 태우는 게 어른 같아서 그런 것도 있고, 이 거대한 저택의 주인이라 그런 것도 있고, 착해서 그런 것도 있다.

‘착하다니! 도박장에서만 사람을 몇이나 죽였는데!’라는 생각을 할 수도 있을 것이다. 아진도 그랬다. 그가 멋진 사람 가죽을 뒤집어쓴 악귀인 줄 알았다.

근데 이 저택에서 종으로 있은 지 어언 한 달. 아진이 평가하는 석주는 착한 사람이 맞았다.

일단 종들을 학대하지 않았다. 이유 없이 불러다 뺨을 후려치지도 않았고, 무언가를 잘못해도 멍석에 말아 두들겨 패지 않았으며, 아랫목이 뜨끈한 방도 내주었고, 남은 음식을 먹었다고 꾸짖지도 않았으며, 돈도 줬다.

돈. 이게 가장 중요했다.

도박장에서 끌려온 이들은 막연히 자신들이 갇혀서 일만 하게 될 거라 생각했다. 근데 석주는, 태회파는 그들에게 노동에 대한 값을 치러 주었다. 도박장에서 받던 것에 두 배에 달하는 돈이었다.

처음 삯을 받았을 때. 사람들은 곧장 석주에게 복종하기로 마음먹었다. 요즘 세상에 돈만큼 중요하고 효과적인 게 없었으니까. 그가 도박장에 있던 깡패들을 어떻게 죽였고, 그 시체를 어떻게 처리했는지 하등 중요치 않았다. 아니, 돈을 받는 순간 홀라당 까먹었다.

도박장에서 넘어온 사람들은 매일같이 석주를 칭찬했다. 깡패답지 않게 점잖다. 남자다운 게 장군감이다. 사람이 됐다. 나중에 대통령을 해도 찍어 줄 것이다. 돈을 이렇게 모은 걸 보니 사업 수완도 좋은 것 같다. 분명 우리나라를 더 크게 만들 것이다. 아주 별별 말을 쏟아 냈다.

아진은 그 대화에 동참하진 않았지만 속해 있긴 했다. 종들끼리 둘러앉아 밥을 먹으면서 석주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면 귀를 쫑긋 세웠다.

“사장님도 부산 사람이라던데.”

“근데 서울말을 어째 그리 잘해?”

“모르지. 다른 깡패들은 뭐라는지 하나도 못 알아듣겠는데. 사장님은 잘해. 나긋-한 게 신사 같지?”

“응. 배우는 게 빠른가 봐.”

“그런가 보네. 하긴 똑똑하니까 깡패였다가 사장님까지 된 거겠지.”

라든가.

“산홍이가 봤대. 사장님 서재서.”

“뭘?”

“장부 말이야, 장부.”

“무슨 장부?”

“뭐긴 약 사고판 장부지.”

“약?”

“마약 말이야.”

“응?”

“아우, 뽕 같은 거.”

“뽕이면 뽕이지 뽕 같은 건 뭐야?”

“아편이랑 대마가 아니라 마약이라고.”

“뭔 소리야?”

“필로폰. 일본 말로는 히로뽕. 보석 같기도 하고 밀가루 같기도 한 마약인데 태회파가 그걸 기깔나게 만든다는 거야. 그래서 중국이랑 일본에서 아주 사족을 못 쓴다잖어. 저 멀리 서양 애들도 사러 온대.”

“아니, 새로운 뽕을 만들었다고? 그것도 보석 같은? 우리 민족이 암만 손재주가 좋다지만 뽕까지 잘 만든다니…….”

“도박장도 좋은 위치에 있으니까 사람들한테 그 피로폰, 아니 필-로폰 팔려고 샀다던데. 금 사장이 안 팔려고 했다가 그 사달이 난 거 아니야. 저기 저택 뒤쪽에, 산 쪽에 있는 건물들 있잖아?”

“어어, 우리 못 들어가게 하는 곳. 덩치들이 지키고 있는 곳 말하는 거지?”

“그래, 거기서도 마약을 만든대. 이 집도 서울 끄트머리 산기슭에 있잖아. 그것도 눈에 안 띄려고 그런 거래.”

“그 보석 같은 마약을 팔아서 이 큰 집이랑, 그 많은 자동차를 샀단 말이야?”

“그렇겠지. 장부에 무게랑 돈만 적혀 있고 물건 이름은 없더래. 보나 마나 약이지, 뭐.”

라든가.

“두루마기는 왜 입는대?”

“애국자인 모양이지.”

“깡패가?”

“깡패도 한국인이잖어. 원래 그런 놈들이 나라 더 따지는 법이야.”

“……그런가?”

“그리고 뭘 팔든 외화 벌어 오면 애국자지. 안 그래?”

라든가.

그 밖에도 여러 가지 소문이 돌았다. 알고 보면 대단한 집안의 아들이라느니, 20 대 1로 싸워서 이겼다느니, 힘이 어찌나 좋은지 팔 힘으로 나무를 뽑는다느니, 장롱에 금은보화가 산더미처럼 쌓여 있다느니 등등이었다.

허무맹랑한 것도 있었으나, 아진은 그것의 대부분을 믿었다. 석주를 실제로 본 이라면 그 말들을 믿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

아진은 자연히 그를 동경하게 됐다. 어린 소년이라면 누구든 그럴 것이다. 사내 중에서도 사내. 힘도 세고 돈도 많은 사내. 덩치 좋은 남자들도 쩔쩔매는 사내. 어찌 동경하지 않을 수 있겠나.

제가 다리도 절고 겁도 많은 비루한 소년이라 더했다. 아진의 동경은 매일같이 몸집을 키우고 있었다.

태회파의 조직원들이 석주를 따라 집으로 들어섰다. 마당이 조용해지자 종들 역시 흩어져서 본인의 자리로 돌아갔다. 아진도 절뚝이며 부엌으로 돌아가는데.

종 하나가 그의 옆을 스쳐 갔다. 조금 전 석주의 두루마기를 받았던 종이었다. 그는 뭐 그리 대단한 일을 한다고 고개를 빳빳이 들고 코끝을 하늘을 향해 곧추세웠다.

맨들맨들한 두루마기가 양파 냄새가 풀풀 나는 아진의 손등을 스쳤다. 흠칫 놀란 아진이 얼른 손을 접었다. 그러다 팔랑거리며 멀어지는 두루마기를 보고 훌쩍 콧물을 삼켰다.

그냥, 무심코. 제가 그의 옷을 받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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