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쌍피-2화 (2/261)

02

남자가 재킷 안주머니를 뒤졌다. 사람들이 움찔 어깨를 떨었다. 총이라도 나올까, 겁을 먹은 것이다. 다행히 남자가 꺼낸 건 담배였다.

그가 손바닥으로 담배 밑바닥을 치자 하얀 개비 하나가 빼꼼 고개를 들이밀었다. 남자가 그것을 이로 물었다. 그와 동시에 곁에 서 있던 사내가 얼른 라이터를 대령했다. 귓불 아래부터 턱 가운데까지 턱선을 따라 흉측한 흉터가 있는 사내였다.

새빨간 불씨가 힘차게 튀어 올랐다. 남자의 얼굴이 온통 붉은 빛에 물들었다. 그 순간, 아진은 귀동냥으로 들었던 태회파를 떠올릴 수 있었다.

<태회(汰會)파>

파도 태(汰)에 모일 회(會)로, 파도가 모인다는 뜻의 이름을 쓰는 조직.

십수 년 전 부산에서 시작해 부산항을 먹고, 얼마 전에 서울로 입성했다는 조직. 출처 모를 엄청난 돈과, 힘센 조직원을 이용해 매우 빠른 속도로 몸집을 키우고 있댔다.

무슨 일을 하는지 흔히 깡패들이 눈독을 들이는 노래 주점이나 풍속점, 술집 등의 유흥가에는 관심이 없는 게 신기하다고 손님이 떠들었던 게 떠올랐다.

사람 장사, 그러니까 부모 없는 어린아이나 가족 없는 사람을 낚아다 외국으로 팔아 버리거나, 강제로 돈을 빌려주고 곱절로 갚게 하거나, 약 장사를 하는 것 같다고도 했었다. 병원에서 쓰는 약 말고, 마약. 즉 대마나 아편.

부산항을 접수하면서 일본 놈들이나 중국 놈들과도 흔히 다투었는데, 괴물 같은 힘을 갖고 있어 부산 바다에 중국인과 일본인들의 목이 통발처럼 둥둥 떠다녔다고도 했다.

그 말을 떠올린 아진이 고개를 한껏 늘어트렸다. 눈에 띄고 싶지 않았다. 저런 이들의 눈에 띄어 봐야 좋을 게 하등 없었다.

남자가 담배를 세게 빨았다가 놨다. 하얀 연기가 훅 쏟아졌다. 그가 흉터가 있는 사내에게 눈짓했다. 그러자 흉터가 앞으로 두 걸음 걸어 나왔다. 어깨를 넓게 펼치고, 뱃살일랑 없는 배 아래로 두 손을 깍지 낀 그가 커다란 목소리로 말했다.

“오늘부터 여기 골드 호텔은 우리 태회물산이 사무실 겸 물류 창고로 씁니다.”

말끝이 다에서 아-로 올라갔다. 씁니다-아? 라고 말하는 억양이 독특했다. 그의 통보는 일방적이고 무례했다. 바닥에 넘실거리는 피와 살점도, 망가진 물건도, 노예처럼 줄줄이 세워진 사람들도 처음 듣는 이야기였다.

사람들이 저들끼리 시선을 주고받으며 쑥덕거렸다. 몇 년간 다니던 직장의 간판이 순식간에 바뀌게 생겼으니 당연했다.

‘매일 걷던 거리에서 길을 잃었다’는 말을 흔히 할 정도로 바쁘게 격변하는 서울이라지만, ‘어제 수레 끌던 김 씨가 오늘 자동차 가게 김 사장이 됐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돈과 기회가 흘러넘치는 서울이라지만, 그래도 이런 일은 흔치 않았다.

“저희, 저희 금 사장님은 어떻게 됐습니까?”

직원 하나가 사람들 사이를 헤치고 나오며 물었다. 그의 눈에는 묘한 반항심과 분노가 섞여 있었다. 아마 난데없이 들이닥친 불한당들이 마음에 들지 않는 것이리라.

그도 그럴 것이 여기는 <중호파>가 뒤를 봐주는 곳이었다. 중호파는 서울에서 가장 큰 조직으로 종로를 비롯하여 굵직한 지역을 점령하고 있었다. 이 도박장은 그들에게 일정량의 돈을 상납하고, 그들의 힘을 빌려 긴 시간 안전하게 버텨 왔다.

그러니 낯선 이들의 통보가 쉽게 받아들여질 리 없었다.

그에 흉터 있는 사내가 자신의 턱을 벅벅 긁었다. 그가 직원의 앞으로 다가갔다. 직원이 눈에 힘을 주고 맞섰다. 우매한 짓이었다. 사내가 직원을 빤히 쳐다봤다. 그러더니 돌연 씨익 입을 째며 웃었다. 예상외로 하얗고 가지런한 이가 드러났다.

그 웃음의 의미를 이해하지 못한 직원이 눈살을 찌푸리는데.

서걱.

찰나의 반짝임과 함께 무 써는 소리가 났다. 시뻘건 피가 파도처럼 튀었다.

“커헉, 컥…….”

직원이 두 손으로 자신의 목을 감싸 쥐었다. 그러나 분수처럼 솟구치는 피는 손가락 사이로 바쁘게 흘러내렸다. 사내가 피에 젖은 칼을 허공에다 털었다. 바닥 위로 검붉은 액체가 후두둑 떨어졌다.

사람들이 헛숨을 크게 삼켰다. 그러나 누구 하나 소리를 내지 않았다. 아니, 내지 못했다. 비명이라도 질렀다간 저 칼이 또 누구의 목을 관통할지 알 수 없었다.

풀썩 쓰러진 직원이 퍼드득퍼드득 몸을 떨었다. 그가 피에 전 손을 사내의 구두로 뻗었다. 그러나 닿지 못하고 바닥으로 툭 떨어졌다. 축 늘어진 그의 목 아래에서부터 시뻘건 웅덩이가 느리게 퍼져 나갔다.

사람들의 얼굴이 파랗게 질렸다. 누나들 몇몇은 소리 없이 눈물을 떨구었다.

아진은 도마 위의 목 잘린 생선처럼 늘어진 직원의 뒷모습을 멍하니 쳐다보고 있었다. 속이 메슥거렸다. 사지가 차게 식으며 오한이 들었다. 무릎이 후들후들 떨려서 몸이 자꾸 기우뚱 한쪽으로 넘어가려 했다.

피. 죽음. 피. 죽음. 피. 죽음.

시뻘건 피가 아진의 눈 속으로 뱀처럼 기어들어 왔다. 숨 한 번 잘못 쉬었다간 구역질을 할 것 같았다.

사내가 직원의 등 위로 발을 얹었다. 그리고 겁에 질린 사람들을 보며 히죽 웃었다.

“너거 사장은 일케 됐다. 또 질문 있는 놈 있나?”

사람들은 침묵했다. 침묵밖에 선택지가 없었다. 침묵이 강요된 질문이었다.

모두가 목을 움츠렸다. 사방의 문이 꼭꼭 닫혀 있는데, 어디선가 흘러들어 온 칼바람이 목젖을 긁어 댔다. 등줄기에 소름이 돋아났다.

그때, 느긋하게 담배를 빨던 ‘형님’이 이름 하나를 불렀다.

“명진아.”

나직한 목소리였다. 예상외였다. 곰처럼 우렁차고 걸걸한 음성이 나올 줄 알았는데 부드럽고 감미로웠다.

사내가 얼른 뒤를 돌았다. 그의 이름이 명진인 모양이었다.

“예, 형님.”

“무섭다.”

형님이 후우- 담배 연기를 뿜으며 말했다. 우스운 말이었다. 무섭다면서 표정은 무감하기 그지없으니 더 이질적이었다. 실로 사내들 몇몇이 큭큭거리며 웃었다. 명진이 자신의 목덜미를 벅벅 긁었다.

“……죄송합니다, 형님. 야들아, 뭐 하냐. 치아라. 석주 형님이 불편하시단다.”

석주. 형님의 이름이었다. 도박장 사람들의 시선이 잠깐 석주를 향했다가 다시 바닥으로 고꾸라졌다.

태회파 조직원들은 목이 썰린 직원의 시체를 질질 끌어다 소파 뒤로 옮겼다.

그사이, 석주는 담배 하나를 모두 태웠다. 짧은 꽁초를 검지와 엄지로 분질러 꺾은 그가 툭 바닥으로 던졌다. 명진이 그의 옆으로 다가와 물었다.

“자들은 우째 처리할까요?”

그 말에 석주가 도박장 직원들을 쳐다봤다. 직종으로 분류해 가지런히 세워 둔 이들이 목을 움츠리며 저들끼리 모여들었다. 빛을 피해 도망가는 바퀴벌레들 같았다.

석주의 눈길이 가장 먼저 향한 곳은 덩치 좋은 남자들이 모여 선 줄이었다.

도박장을 지키던 깡패들. 몇몇은 중호파와 연이 있는 자들이기도 했다. 석주가 그들을 가만히 응시하며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깡패 놈들은 죽여.”

미련도 자비도 없이 내려진 사형 선고에 깡패들이 눈을 부릅떴다. 그러나 태회파가 더 빨랐다. 그들의 칼이 단숨에 깡패들의 목과 배를 그었다. 비명도 없는 죽음이었다. 다들 숨을 컥-하고 거꾸로 먹더니 그대로 주르륵 쓰러졌다.

남은 사람들만 헉, 하고 짧은 비명을 질렀을 뿐이었다.

태회파는 쓰러진 사람들의 목과 배를 재차 찌르며 죽음에 마침표를 찍었다. 석주는 굳이 그것을 더 쳐다보지 않고 옆으로 시선을 옮겼다. 짧은 치마를 입고 하이힐을 신은 여자들과 아진이 서 있는 줄이었다.

석주의 눈이 설핏 가늘어졌다.

아진을 본 것이다.

아무래도 여자들 사이에 사내새끼 하나가 다리를 훤히 내놓고 서 있으니 눈길이 아니 갈 수가 없었다. 얼굴 반절을 덮은 머리가 지저분한 게 ‘손님’을 받기엔 꼴이 영 시원찮은데. 엉거주춤하게 서 있는 걸 보아 다리도 온전치 않은 듯했다.

저런 게 팔리나.

석주는 찰나, 그런 생각을 했다.

“여자들은 입단속 해서 보내고 남자들은 팔아.”

생각보다 후한 결정이었다. 모두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남자들은 팔려 가게 생겼지만, 당장은 목숨을 부지했다는 안도감이 더욱 컸다.

그러나 명진이 눈치 없이 껴들었다.

“형님. 새집에 일할 놈들이 필요하지 말입니다. 걸레질 같은 걸 우리 아들 시킬 순 없지 않겠습니까? 밥도 차려야 돼요. 서울 음식은 씨팔, 영 밍밍해서 목구멍으로 안 넘어간다 아입니까.”

“그럼 쓸 만한 놈들만 솎아 내서 데리고 가.”

석주는 가볍게 결정을 바꾸었다. 아랫사람 말에 잘 휘둘리는 건지, 별생각이 없는 건지. 아무튼 생김새와는 딴판이었다.

말을 마친 석주는 다시 담배를 꺼냈다. 그러자 명진이 얼른 의자 하나를 그의 뒤에 대령했다. 석주는 피식 웃더니 “고맙다, 명진아.”라며 명진의 어깨를 툭툭 두드렸다. 명진은 샐쭉 애처럼 웃으며 석주의 담배에 불까지 붙여 주었다.

그사이 태회파 조직원들이 사람들을 향해 다가왔다. 그러고는 대충 눈대중으로 사람을 솎아 내기 시작했다. 가장 먼저 선택된 이들은 나이가 지긋한 여자들이었다. 온갖 험한 일로 손에 굳은살이 박인 게 빨래도 음식도 잘할 것 같은 여자들.

“이야, 아줌마 음식 윽수로 잘할 것 같네요?”

“아줌마 국밥 할 줄 알아예? 서울 장터서 파는 거, 시래기 들어가가 뻘건 거 말고, 와, 있잖아요. 돼지만 졸라게 든 흰 거. 돼지국밥 말이야. 부산에서는 그래 먹는데.”

조직원들은 답지 않게 아줌마들에게 존댓말도 써 주었다. 파리하게 질린 주방 아줌마들이 어색하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 후엔 아저씨들이 선택됐다. 일머리가 좋고, 눈치도 빠르고, 말랐지만 아귀힘이 좋아서 무거운 물건도 잘 들고, 장작도 잘 패고, 집안일도 퍽 잘할 것 같은 이들이었다.

젊은 여자들은, 정확히 창녀들은 눈길 한 번 받지 못했다. 누나들에게는 행운이었다. 사람 목을 회칼로 쑥쑥 잘라 버리는 놈들을 따라갔다가 무슨 짓을 당할 줄 알겠나. 그녀들 사이에 서 있던 아진 역시, 선택받지 못했다.

헌데 아진의 만면이 하얗게 질리기 시작했다.

이곳에서 쫓겨나면 갈 곳이 없었다. 아진은 일을 잘하진 않았지만 열심히는 했다. 불편한 다리로도 궂은일을 마다하지 않았다. 어떻게든 이곳에 붙어 있고 싶었기 때문이다.

나가면, 바깥에 나가면…… 차가 있으니까. 제 다리를 이렇게 만든 차가 쌩쌩 다니니까. 이제 길거리에 사람보다 차가 많은 세상이니까. 그 사이를 나돌며 일자리를 구하고 몸 누일 곳을 찾을 자신이 없었다.

분명 그 야차 같은 차가 저를 치고 갈 것이다. 시커멓고 커다란 바퀴에 몸이 으깨지고 머리가 터질 것이다. 제 무릎을 밟고 지나갔던 때처럼, 제 온몸을 바닥에 짓이길 게 뻔했다. 그럼 제 피가 울룩불룩한 시멘트 바닥 위로 개울처럼 고이겠지.

죽고 싶지 않은데. 피 흘리는 것도 싫은데. 아픈 것도 싫은데.

“으…….”

아진의 몸이 부들부들 떨렸다. 어찌나 맹렬히 떠는지 고개가 좌우로 왔다 갔다 할 정도였다.

그때. 우악스러운 손 하나가 아진의 팔뚝을 잡아채 훅 당겼다.

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