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쌍피-1화 (1/261)
  • 1부

    01

    새로운 집

    우당탕!

    무언가가 작살나는 소리가 아진의 귓가를 할퀴었다. 흠칫 놀란 그가 어깨를 움츠리기도 전에.

    “크아아악!”

    굵직한 비명이 이어졌다. 귀에 익은 음성이었으나 그 주인이 누구인지는 분간할 수 없었다. 입구를 지키던 만광이거나, 누나들을 감시하던 필욱이거나. 어쩌면 또 다른 누구일 수도 있었다.

    “으…….”

    아진이 가느다란 신음을 흘렸다. 그가 천장까지 쌓여 있는 상자 사이로 더욱 비집고 들었다. 나무판자로 만들어진 상자는 온갖 것을 넣었다 빼서 꿉꿉하면서도 시큼한 냄새가 났다. 구석에는 누가 토도 해 놨다.

    몸을 비비기엔 영 역겨운 장소였거늘, 아진은 집을 찾는 생쥐처럼 그 틈을 계속해서 파고들었다. 바지는 얻다 버리고 왔는지, 하얀 속옷만 입은 그의 엉덩이가 어둠 속에서 들썩거렸다.

    소음은 계속해서 이어졌다. 무언가가 깨지고 넘어지고, 누군가가 소리를 지르고 악을 쓰고, 쿵쿵 바닥이 울렸다. 그럴 때마다 겁 많은 아진의 등줄기가 파드득파드득 경련했다. 동그란 엉덩이도 움찔움찔 떨렸다.

    그런 아진의 발치에 붉은 화투패들이 난잡하게 나뒹굴고 있었다.

    이곳 [도박장]은 아진이 일하는 곳이었다.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이다 9살이라는 어린 나이에 여기로 굴러왔다. 그 후 스물이 된 지금까지 한시도 떠나 본 적이 없었다.

    종로 중심에 있는 이 3층짜리 건물은 [골드 호텔]이라는 간판을 달고 있었으나 사실 온갖 불법적인 일을 다 하는 곳이었다. 반지하에는 도박장이 운영됐고, 1층은 로비, 2층은 풍속점이었으며 3층엔 닭장 같은 방이 다닥다닥 붙어 있었다.

    온갖 유흥과 쾌락이 가득한 곳이다 보니 항상 손님이 많았다. 누구든 들어오면 나가질 않았다. 지하에서 도박을 하다가, 2층에서 여자들을 끼고 술을 마시다가, 또 3층에서 여자와 떡을 치고, 한숨 자고, 다시 도박을 하러 지하로 내려왔다.

    그런 곳에서 일하는 만큼, 아진은 난동에 익숙했다. 사내들은 모여 있으면 으레 주먹질을 해 댔으니까. 그렇게 싸우다가도 이내 히죽거리며 여자의 가슴을 만지거나, 화투패를 날리기 일쑤였다. 코피가 터지거나 앞니가 숭숭 빠진 채로 말이다.

    그럼 아진은 그들이 깨트린 잔을 바쁘게 치우고, 정돈하는 역할이었다.

    근데 오늘 난동은 남달랐다. 손님들끼리 싸우는 게 아니라서 그랬다.

    한창 도박장 영업을 준비하던 오후 5시. 건장한 사내 수십이 못을 사납게 박은 각목과 두툼한 회칼, 손도끼 등의 흉기를 들고 떼로 들이닥쳤다.

    그들은 검은 정장 위에 두루마기를 걸치고 있었으며 하나같이 덩치가 좋았다. 각목을 휘두르는 힘 역시 어찌나 좋은지, 붕붕 하고 바람을 가르는 소리가 났다. 아무 기척도, 언질도 없던 방문에 도박장 직원들은 추풍낙엽처럼 쓰러졌다. 피와 비명이 천장까지 솟구쳤다.

    화장실에서 볼일을 보던 아진은 무심코 밖으로 나왔다가, 기겁하고는 엉금엉금 기어서 여기 창고까지 도망쳐 왔다. 혼비백산한 탓에 화장실에서 못다 추스른 바지도 어디로 사라지고 없었다.

    그리고 그렇게 창고에 숨어 있은 지가 어언 한 시간. 소음이 줄기 시작했다. 고함 같은 비명도 줄었고, 망가지는 소리도 사라졌다.

    허나 어째서인지, 아진은 더욱 두려워졌다.

    소리를 지르던 사람들은 죽었을까. 몰려온 사내들이 원하는 게 무엇일까. 저는 언제까지 여기 숨어 있어야 하나. 혹 사내들이 여기로 들이닥치지 않을까. 저도 잡혀가서 회칼에 난도질당하는 건 아닌가.

    아진이 이미 잔뜩 물어뜯어서 퉁퉁하게 분 아랫입술을 다시 잘근거렸다. 그러다 돌연 벌떡 일어나서는 잡다한 것이 든 상자를 옆으로 치우기 시작했다. 숨을 곳을 만들어야 했다. 멍청한 다람쥐처럼 고개만 처박고 있다고 두루마기를 입은 사내들이 절 못 찾을 리가 없었다.

    상자는 무거웠다. 바로 옆으로 옮기는 데에도 끙 소리가 절로 났다. 절름발이인 아진의 몸이 맥없이 휘청거렸다.

    그래도 이를 아득 물고 상자를 옮겼다. 살기 위해서였다. 고작 몇 개 옮겼을 뿐인데 손가락이 저릿했다. 종국엔 들 수가 없어서 상자를 질질 끌어냈다. 덥수룩하게 콧잔등을 스치는 앞머리가 짜증이 나 마구 쓸어 넘기기도 했다.

    그렇게 아진의 몸이 간신히 들어갈 만한 벙커가 만들어졌을 때였다.

    뚜벅뚜벅 발소리가 들려왔다. 까무러칠 만큼 놀란 아진이 얼른 문으로 다가갔다. 힘으로나마 막아 보려는 수작이었다. 기껏 만들어 놓은 벙커는 눈에 들어오지도 않았다.

    그러나 아진의 손이 닿기도 전에, 문이 벌컥 열렸다. 복도 조명을 등진 사내의 그림자가 한입에 아진을 집어삼켰다.

    “여기 하나 더 있습니다!”

    아진은 우악스러운 손아귀에 팔뚝이 잡혀 밖으로 끌려 나왔다. 그리고 비로소 도박장 전경을 볼 수 있었다.

    “히익…….”

    도박장은 엉망진창이었다. 도박대는 반 이상이 넘어져 있었고, 여기저기 짐승이 할퀸 것처럼 칼자국이 나 있었다.

    돈을 꾸어 주는, 그러니까 꽁지를 주는 매대 위에는 이곳의 행동대장인 만광이 목이 반쯤 썰린 채로 엎어져 있었는데, 그 아래로 피가 뚝뚝 떨어졌다. 그 밖에도 얼굴이 익숙한 이들이 구석 여기저기에 알맹이 없는 포대 자루처럼 버려져 있었다.

    두루마기를 입은 사내들이 살아남은 직원들을 줄 세웠다. 줄은 총 세 줄이었다.

    한 줄은 부엌에서 일하는 아줌마들과 청소 따위의 잡다한 일을 하던 직원들이 서 있었고, 또 한 줄은 짧은 치마를 입고 화장을 곱게 한 누나들이 서 있었으며, 또 한 줄은 도박장을 관리하던 깡패들이 서 있었다. 만광의 부하들이었다.

    두루마기를 입은 사내들이 그들을 둘러쌌다. 손에는 피에 전 각목과 회칼이 들려 있었다. 허튼수작을 부렸다간 냅다 머리를 으깨 버리거나 목을 썰어 버릴 기세였다.

    “사, 살려 주세요…….”

    아진이 자신의 팔뚝을 쥔 사내에게 빌었다. 그러나 사내는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 그저 아진을 아래위로 한 번 훑어보고 훤히 드러난 마른 다리에 눈썹을 들썩이더니, 누나들이 서 있는 줄로 아진을 내던졌을 뿐이었다.

    아진이 맥없이 바닥에 철퍼덕 엎어졌다. 무릎과 손바닥에 누구의 것인지 모를 피가 흠뻑 묻어났다.

    동그랗게 뼈가 도드라진 아진의 어깨가 파르르 떨렸다. 뒷줄에 서 있던 도은이 아진을 추슬렀다. 그녀의 긴 머리칼이 아진의 뺨을 가볍게 스쳤다.

    “아진아. 괜찮아?”

    “어, 어어……. 응. 누나는?”

    “괜찮아.”

    아진이 그녀의 손을 잡고 비척비척 일어났다. 은근히 짧은 왼쪽 다리가 어색하게 바닥을 디뎠다. 쌍꺼풀이 깊게 진 아진의 눈가가 금세 축축해졌다. 아는 사람을 만났다고 가슴이 울렁울렁했다.

    도은이 아진의 등을 슥슥 쓰다듬어 주었다. 그런 그녀의 녹색 하이힐에도 피가 잔뜩 묻어 있었다. 다행히 본인의 피는 아닌 것 같았다.

    아진이 손바닥에 묻은 피를 윗도리에 벅벅 문질러 닦으며 눈알을 굴렸다.

    “누구래? 우리한테 왜 이런대?”

    “태회파래.”

    “……태회파?”

    어디서 들어 본 것 같은데. 아진이 입술을 모으며 기억을 헤집었다. 그러나 혼란과 공포에 물든 머리는 쉽게 답을 내놓지 않았다. 아진이 도은의 가녀린 손목을 꾸욱 거머쥐었다.

    “우리 죽어? 죽는 거야?”

    “아닐 거야. 그러면 이렇게 모아 놓지 않았겠지.”

    아진은 그 말에 안심했다. 도은의 말은 거의 틀린 적이 없기 때문이다. 가장 밑바닥에서 평생을 굴러온 도은은 눈치가 좋았다. 그녀뿐만 아니라 그녀와 함께 일하는 다른 여자들 역시 그랬다.

    아진이 소리 없이 한숨을 내쉬는데, 누군가가 우렁찬 목소리로 소리쳤다.

    “야들아, 형님 오신다.”

    그 말에 두루마기 사내들의 몸이 일제히 한쪽으로 돌아갔다. 사람들의 시선 역시 자연히 그쪽으로 흘러갔다.

    검은 그림자가 입구를 통해 들어오고 있었다. 언뜻 보기에도 몸집이 보통 큰 게 아닌 사내였다. 도박장에서 키가 가장 컸던 필욱보다도 컸다. 190은 될 것 같았다.

    그는 여타 사내들과 다름없이 검은색 정장에 두루마기를 어깨에 걸치고 있었는데, 그 질이 달랐다. 정장은 주름 하나 없었고, 코트처럼 풀어 헤친 두루마기는 윤기가 철철 흘렀다. 탁한 도박장의 조명과 옷감이 맞닿을 때마다 은근히 새겨진 무늬가 드러났는데, 파도 무늬였다. 바다 위를 달리는 파도.

    남자가 커다란 보폭으로 성큼성큼 다가왔다. 파도 무늬가 그 움직임을 따라 묵직하게 흔들렸다.

    이내 남자의 얼굴이 드러났다. 남자는 흰 피부를 가지고 있었다. 까무잡잡하고 피부 결이 고르지 못한 다른 사내들과 달리 백자처럼 하얗고 멀끔한 피부였다.

    그 위로 짙은 눈썹이 오르막을 그리며 올라가 있었다. 쌍꺼풀이 가늘게 진 눈매가 깊었다. 코는 직선으로 딱 떨어졌고, 코끝은 화살표처럼 도드라져 있었다. 광대는 보기 좋게 솟아 있었으며, 굳게 다물린 입술과 각진 턱은 더할 나위 없이 사내다웠다.

    새까만 머리칼은 짧았는데 이마 반절을 가볍게 덮을 정도로만 내려와 있었다. 삼십 대 중반으로 보이는 나이대도 그 얼굴과 참 잘 어울렸다.

    손님으로 왔으면 누나들이 뒤꿈치를 들썩이며 오두방정을 떨었을 미남이었다.

    그런데도 잘생겼다는 감탄사가 쉽사리 나오지 않았다. 그의 주위로 뭉게뭉게 풍기는 분위기가 연탄처럼 새까맸기 때문이다. 눈동자는 또 어찌나 검은지. 사위가 다 빨려 들어가는 것 같았다.

    그 눈동자를 본 아진이 두 다리를 딱 붙였다. 맨살을 스치는 찬바람이 피부를 할퀴는 듯한 환촉을 느꼈기 때문이다.

    무서운 사람이다. 그것을 본능적으로 알 수 있었다.

    아진은 그러잖아도 말린 어깨를 더욱 웅크리며 도은의 뒤로 숨었다. 영 사내답지 못한 행동이었으나, 그를 아홉 살 때부터 봐 온 도은은 너그럽게 아진을 숨겨 주었다.

    남자가 가운데에 섰다. 가까워진 거리에 그의 덩치가 새삼 더 크게 느껴졌다. 손도 커다랬고, 팔뚝과 가슴도 두툼했다. 저런 사람에게 뺨이라도 맞았다간 얼굴이 물컹한 홍시처럼 뻥-하고 터져 버릴 것 같았다.

    “…….”

    남자는 아무런 말 없이 도박장의 사람들을 둘러보았다. 그가 이끈 정적에 모두가 동참했다. 입술을 딱 붙이고, 숨소리 하나라도 그의 심기를 거스를까 조심하고 또 조심했다.

    그의 시선은 매끄러우나 묵직하게 이동했다. 누구 하나 빼놓지 않고 봤다. 아진 역시 찰나, 그의 눈동자에 맺혔다가 사라졌다.

    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