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성>
“아, 드디어!”
푸릇푸릇한 자연을 눈앞에 둔 지환이 환희에 차 감탄했다. 내 꿈이 이뤄졌어. 내 꿈이 이뤄졌다고! 지환은 소리까지 내어 웃어 젖혔고 그 옆의 용병은 그를 미친놈 보듯 보았다. 아무래도 좀 맛이 간 의뢰인이 걸린 것 같다.
***
“미개발 행성 탐사요?”
“네. 먼저 로봇을 보내 훑어본 결과, 생명체가 거주하기에 적합한 환경이었습니다. 지구와 매우 흡사하며 위협이 될 만한 조건도 발견되지 않았습니다. 안전하게 생물들을 탐사하실 수 있을 겁니다.”
지환은 꿈을 꾸는 것 같았다. 외계 행성 탐사라니. 심지어 미개발 행성이라니!
어렸을 때부터 확고한 장래 희망을 품은 지환은 당연한 수순으로 생물학자가 됐다. 이 세상의 모든 생물체는 다 너무도 귀여웠다. 어떤 종이든 상관없이 생명 활동을 하고 움직이고 호흡하고 욕구에 따르는 모든 생명체들이 다 제 아이 같았다.
그중에서도 지환이 특히 관심을 가지고 있는 건 외계 행성의 생물이었다. 너무도 신기하고 진귀한 외계 생물들이 많았다. 어떤 구조로 이루어진 건지, 어떻게 생을 이어 가는지, 생명 유지에 필요한 조건들은 무엇인지, 어떤 환경에서 번식하는지 등. 넓디넓은 우주에 새로운 생물들은 빈번히 발견됐지만 그에 대한 자료는 부족했다.
그래서 지환은 생물체를 직접 포획해 관찰을 하고 연구를 진행하였지만 환경이 너무 달라서 그런지 아무래도 연구실에서 연구하는 것만으로는 한계가 있었다. 환경을 최대한 맞춰 주어도 열에 여덟은 얼마 안 가 픽픽 죽어 버렸다. 아예 연구실로 데리고 올 수 없는 생물들도 많고.
그래서 그는 되도록 직접 행성에 가 가까이서 생물을 관찰하며 연구에 매진하고 싶었다. 그러나 외계 행성은 인간이 거주할 수 없는 가혹한 환경인 곳이 많을뿐더러, 그런 기회를 구하기도 힘들어 꿈으로만 열망할 뿐 거의 반 정도는 체념 상태에 있었다. 그런데 미개발 행성 탐사라니!
행성 관광 산업으로 인해 행성 개발이 급부상 중인 요즘 미개발 행성은 거의 드물었다. 하지만 기술이 급격하게 발달하면서 행성을 여럿 발견하게 되자, 슬슬 행성을 자연 상태 그대로 보존해 두자는 의견이 나오기 시작했다. 딱히 좋은 의도는 아니고, 그저 몇몇 가진 것 많은 자들에게 사유지로 팔아넘기기 위함이었다.
아무튼 중요한 건 그런 것들이 아니다. 중요한 건 내가 미개발 행성을 탐사할 기회를 얻었다는 거지! 가슴에 흥분이 가득 찼다.
“나중에 사유지 상품으로 나갈 행성이라 카탈로그에 소개할 만한 생물체가 있는지에 초점을 맞춰 조사해 주시면 됩니다. 기한은 1년이고요.”
비즈니스적 미소를 지은 눈앞의 남자가 천사처럼 보였다. 지환은 그 손을 덥석 잡았다.
“계약서부터 씁시다.”
“하하, 네. 열정이 넘치시는 분이시군요. 바로 쓰죠.”
남자가 슬쩍 손을 빼내었다. 지환은 사인을 휘갈기고 지장도 찍었다. 눈앞에 희망찬 미래가 어른거렸다.
“씨발 저게 뭡니까?!”
지환과 용병은 웬 이상한 슬라임 덩어리한테 쫓기고 있었다.
씨바 응고된 액체 같은 게 뭐 저리 빨라. 저거 생물이 맞긴 하나? 투명하게 훤히 비치는 내부엔 내장 같은 것도, 하다못해 뇌도, 뭐든 정말 아무것도 없었다.
처음엔 뭔 덩어리 같은 게 덩그러니 있기에 저게 뭐람, 하고 접근해 보았었다. 눈으로 보기엔 그냥 젤리 그 자체였는데 갑자기 움직이더니 덮쳐들려 해 용병이 무기를 들었다. 하지만 저게 용병이 맞는지, 알고 보니 거짓 신분으로 위장 취업한 사기꾼이었는지 들자마자 슬라임한테 무기를 빼앗기고 지금 이 꼴이었다.
“나도 몰라요!”
“생물학자라며!”
“아니, 생물학자라고 세상 모든 생물을 안답니까! 거, 이상한 사람 아냐! 당신은 용병이면서 무기를 그렇게 쉽게 뺏기면 어쩌자는 겁니까!”
“아니, 눈 깜빡할 새에 갑자기 흡수되던데 내가 뭘 어떻게 합니까! 아무튼 어떻게든 해 봐요. 계속 도망만 다닐 수는 없잖습니까!”
“뭘 어떻게 해요! 저게 뭔 줄 알고! 네가 어떻게 해 보든가!”
“아니, 근데 이게 반말을 찍찍 하네!”
“그럼 지금 존댓말 쓰게 생겼습니까? 무기 뺏겨서 튀는 판국에!”
죽어라 달리던 지환이 돌부리에 걸려 넘어지려 했다. 지환은 반사적으로 용병의 옷자락을 쥐었지만 그는 제 손을 뿌리치고 지 혼자 살겠다고 뒤도 안 돌아보고 뛰어갔다.
“저… 저! 야 이! 너 사기꾼이지, 이 개새끼야악!!”
지환이 엎어진 채 멀어져 가는 용병에게 고래고래 소리쳤다.
“아니, 거참. 생물학자라며! 어르고 달래고 해 보십쇼! 살 사람은 살아야지!”
“넌 내가 죽으면 평생 저주할 거야!!”
바락바락 소리를 지르는데 발목이 꿀렁한 젤리에 푹 들어가는 느낌이 들었다. 이상한 감각에 오싹 소름이 퍼졌다. 그 꿀렁꿀렁한 것에 파묻힌 듯한 감각은 점점 다리를 타고 올라와, 결국 하반신 전체가 그 이상한 슬라임에게 삼켜진 듯한 상태가 되고야 말았다.
개쓰레기 용병 새끼…. 돈은 돈대로 받아 처먹었으면서 의뢰인을 버리고 도망을 가…?
하반신이 완전히 푹 묻혀 버렸다. 상체는 다행히 자유로웠기에 푸른빛을 띠는 슬라임을 꾹 누르며 다리를 빼 보려 했지만 겉면이 딱딱하게 굳은 탓에 허리가 꽉 끼어 나가지 못했다. 벽에라도 박힌 느낌이다. 설마 이대로 소화라도 진행되는 건 아니겠지? 이상한 용액 같은 게 나와서 하체가 녹아 사라지면 어떡해? 게다가 하체 다음엔 상체일 거 아냐? 끔찍하지만 그럴듯한 가정에 오소소 소름이 돋았다. 젠장!
다리를 필사적으로 버둥거렸다. 슬라임에 들어간 하반신은 꿀렁거리는 액체 때문에 느릿하긴 해도 움직일 수는 있었다. 겉면까지 발을 움직였지만 겉은 여전히 딱딱해서 빠져나갈 수 없었다. …이게 뭐야, 진짜.
새 생물의 발견에 대한 애정과 탐구심도 목숨이 간당간당한 상황에선 느껴지지 않았다. 그저 살길을 찾기 위해 머리를 빠르게 굴릴 뿐이었다. 그런데 원 진짜 말 그대로 슬라임일 뿐, 내장은커녕 뭣도 없는데 저게 생물체는 맞을까? 도대체 어떻게 움직이는 거야? 뇌도 없잖아. 없는 게 아니라 안 보이는 건가? 그런데 몸은 완전 투명….
“읏!”
슬라임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 이상한 꿀렁거리는 감촉이 바지 속으로 들어왔다. 살짝 묽은 액체가 속옷과 바지를 내리기 시작했다. 미친. 저게 어떻게 가능하지? 슬라임은 느릿느릿 바지를 벗겨 갔다. 음식을 먹으려고 포장지를 벗겨 내는 것 같은 움직임에 겁을 집어먹어 다리를 바동댔다.
“으아악! 우, 우리 귀염둥이 착하지? 내가 잘해 줄게! 먹지만 마! 아악!!”
내 격한 반항에도 슬라임은 꿋꿋이 하의를 탈의하는 데 성공했다. 무슨 형체가 있는 손길도 아니고, 아니, 형체가 있긴 있다만 묽긴 해도 액체에 가까웠기에 내 반항은 그닥 상관이 없었다. 물속에서 아무리 몸을 휘저어 봤자 물은 내 온몸을 만져 댈 수 있는 것처럼 슬라임도 마찬가지였다. 벗겨 낸 바지와 속옷은 퉤 침을 뱉듯 슬라임의 몸통 밖으로 던져졌다. …저게 뭐야, 진짜.
지환은 울고 싶었다.
살짝 찬 감촉이 다리 전체에, 심지어 다리 사이의 성기에까지 닿았다. 하반신에 오소소 닭살이 돋았다. 슬라임이 다시 꿀렁꿀렁 움직이더니 몸을 꾸욱 압축하듯 눌러 왔다. 다리가 마사지 기계에 파묻힌 듯 꽉 죄어 오기 시작했다. 아냐, 설마 눌러 죽여서 영양분을 흡수한다든가 그런 건 아닐 거야. 제발. 아닐 거라고. 아니어야 된다고! 아니어야 돼!
지환은 완전히 겁에 질려 덜덜덜 떨었다. 심지어 이 와중에 죄여지는 건 다리뿐만 아니라 성기도 마찬가지라 자연스러운 육체적 반응에 등골이 오싹 떨렸다.
“자, 잠깐. 거기는 아니야!”
아니, 생각해 보니 너무 비참하잖아. 성기가 세워진 채 먹힌다고? 진짜 너무하다. 나중에 내 시체를 보면 사람들이 뭐라고 생각할까. 물론 먹히니까 시체도 없을 테지만… 아, 그러네. 상관없구나.
“헉!”
이상하게 물렁거리는 점액질 덩어리가 미끄덩거리며 엉덩이 골에 비벼졌다.
“귀, 귀염둥아? 우리 귀염둥이, 그러는 거 아니야. 다시 생각해 봐. 제발….”
어차피 알아듣지도 못하는 이지 없는 생물체이니 아무 의미 없는 말인 걸 알지만 절로 튀어나왔다. 평소에도 제 연구실 안의 생물들에게 아이들아~ 하며 쓰잘데기 없는 말들을 지껄이는 버릇이 있었기 때문이다.
씨바 이게 도대체 뭐야. 다행히도 몸을 옥죄던 압박감은 적당한 수준에서 멈췄지만 점점 이상한 게 이상한 곳을 비비는데….
“읏…!”
슬라임이 죄고 있던 하체를 주물럭거리기 시작했다. 다리는 그렇다 쳐도 엉덩이와 특히 성기를 주물럭거리니 무슨 자위라도 하는 것 같았다.
“흐!”
태어나서 한 번도 오나홀 같은 자위 도구를 사용해 본 적은 없었지만 만약 그런 걸 쓴다면 이런 느낌일까 싶었다. 한번 꾸욱 눌러질 때마다 몸이 저절로 움찔거렸다. 가뜩이나 최근엔 연구에만 매진하며 살았던 터라 자위도 몇 번 못 해서인지 더 반응이 빨리 왔다.
“하, 잠… 잠깐.”
허리만 이리저리 꼬며 손으로 계속 단단한 슬라임의 겉면을 내리눌렀다. 그러나 아무리 몸을 빼내려 해도 부질없는 노력이었다.
“아!”
부드러운 귀두가 아무렇게나 뭉개졌다. 기둥을 주물럭거리며 귀두 끝부터 음낭까지 쭉 훑어 올랐다. 그러다 음낭 두 쪽을 한 손에 꽉 움켜쥐는 것처럼 조이고 압박감이 약간의 진동과 함께 아래로 쑥 내려갔다.
그렇게 몇 차례, 결국 나는 뭔지도 모르는 슬라임 속에 사정했다. 굳이 보고 싶지 않았지만 절로 숙여진 고개 때문에 슬라임 속에서 기어이 사정액을 뱉어 내고야 마는 내 성기가 보였다.
옅은 푸른빛 몸체에 내 정액이 물속에서 퍼지듯 느릿하게 분출되어 갔다. 푸른색이라 그런지 흰 사정액이 눈에 잘 들어왔다. 물감이라도 퍼지는 듯한 흐물흐물한 움직임에 자괴감이 들었다. 슬라임에게 만져져 가 버렸다는 사실에 격한 현타가 밀려들었다.
“개씨발….”
아직 진정되지 않은 몸을 약하게 떨며 고개를 푹 숙였다.
내 사정액은 슬라임의 아래로 쭈우욱 밀려가다 슬라임의 밑면이 닿은 땅에 흡수되듯 들어갔다.
“……?”
뭐지? 사실 땅 아래에 슬라임과 연결된 본체 같은 게 있었던 건가? 잠시 뭘 하는지 꿀렁거리던 슬라임이 내 옷을 뱉어 낸 것처럼 나를 퉤 뱉어 냈다.
갑작스럽게 툭 땅으로 던져진 나는 뺨을 맞은 것보다 더한 불쾌감에 망연히 쓰러져 팔로 몸을 지탱한 채 슬라임을 봤다. 저 슬라임 새끼는 나를 버려두곤 유유히 멀어져 갔다.
…정액이 무슨 에너지 공급원 같은 거였을까. 아니, 근데 진짜 너무 기분이 나빴다. 영문도 모르고 갑자기 사정하고 뱉어지다니…? 그래도 일단 다행이긴 다행인 건가? 어찌 됐든 목숨은 건졌고 어디가 다친 것도 아니니. …내 마음은 다쳤지만.
원래 이런 외계 행성 탐사는 여러 위험이 뒤따르기에 대다수가 만반의 준비를 갖추고 들어가곤 했다. 하지만 지구와 굉장히 유사한 환경이라고 해서 나는 겨우 용병 한 명만 데리고 유유자적 들어와 버렸다. 미쳤지, 진짜…. 아니, 이거 따지고 보면 사기당한 거 아닌가? 안 위험하다고 했잖아, 이 개새끼들아….
지환은 얼굴을 잔뜩 구기며 주섬주섬 바지를 입었다. 분명 액체 같은 느낌도 살짝 들었는데 옷도 몸도 끈적거리진 않았다.
다시 옷을 챙겨 입자 좀 인간다운 행색에 마음이 안정되어 갔다. 만만하게 봐선 안 되겠다. 주변을 경계하며 안전하게 막사로 돌아간 뒤 통신기로 지원을 더 보내 달라고 해야지. 아니, 그냥 돌아간다고 할까. …아니다. 난 위약금을 물 수 있는 형편이 아니다. 위약금만 없었다면 바로 돌아갔을 텐데.
그리고 따지고 보면 이런 일 따위 아무것도 아니지. 선배들 이야기를 들어 보면 목숨이 간당간당하고 부상의 위협이 따르는 위험천만한 일들이 비일비재했다. 그런데 겨우 이상한 슬라임 안에서 사정하고 빠져나온 정도야 뭐…. 평생 남들에게 말하진 못하겠지만. 어쨌든 막사로 향했다. 그 용병 새끼도 막사에 도착했을까. 진짜 나쁜 새끼.
뛰느라 정신없었던 길을 느긋이 걸어가니 조급함에 보이지도 않았던 주변 풍경이 눈에 들어왔다. 정말 푸릇푸릇하구나. 딱 지구의 여름 같았다. 정말 좋은 곳이다. 나중에 돈 많이 벌어서 나도 이런 곳에서 여생을 보내야지.
푸르른 주위를 둘러보니 괜히 감상에 젖기도 한다. 기억을 조작하듯 있지도 않은 여름날의 추억이 떠오르며 코끝이 찡해졌다. 크… 이런 게 감성이지. 자박자박 풀을 밟는 소리가 귓가를 두드리고 햇빛은 따사로이 피부에 내려앉는다. 크으… 좋다. 그런데, 그런데… 왜 막사가 안 보이지?
“여기가 맞는데….”
분명 여기가 맞다. 저기 흠집이 난 나무가 이 장소가 맞는다는 걸 보여 주고 있었다. 하지만 주위를 둘러보아도 아무것도 없이 휑할 뿐이다. 심지어 막사 옆의 비상 탈출용 우주선도 보이지 않았다.
“뭐야 도대체….”
막사가 없으면 안 되는데…? 나 죽는다고….
그때 돌연 믿고 싶지 않지만 나름 신빙성 있는 가설 하나가 머릿속을 스쳤다. 혹시, 혹시 그럴 리 없겠지만 호옥시 그 용병 새끼가 저 혼자 살겠다고 홀라당 타고 간 건 아니겠지? 아닐 거야. 그건 진짜 사람 새끼가 할 짓이 아닌데. 설마.
바스락.
“응?”
숲 안쪽에서 바스락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귀중한 보금자리가 있었는데 없어져서 예민해진 정신이 작은 소리를 잡아냈다. 몸을 살짝 뒤로 물렸다. 또 그 이상한 슬라임 같은 게 온 건 아니겠지?
바스락, 버석.
버석? 풀잎 베는 소리? 왜 그런 소리가….
의아함에 풀숲을 경계하며 주시하자 그 속에서 무언가가 튀어나왔다.
“미친.”
무슨 사마귀 같은 게 튀어나왔다. 사마귀 같이 생겼는데 무슨… 미친… 크기가 거의 내 몸뚱이만 했다. 평균을 웃도는 키에 운동도 열심히 했던 터라 근육도 있고 말이야. 어? 나름 크다는 자부심이 있었는데 내 몸뚱이만 한 곤충이라니…. 아니, 그보다 더 큰 것 같기도 하고. 뭐야. 뭔 변종 곤충이야 뭐야. 씨바 저게 뭐냐고.
위기감이 도망치라고 비상 버튼을 쿵쿵쿵 눌러 대는 것 같았다. 사이렌 소리가 머릿속에 울려 퍼졌다.
침착하게 튀자. 일단 도망쳐야 돼. 크기가 크다 해도 그래 봤자 곤충이니 나름 비벼 볼 만은 하겠지만, 당장 쓸 수 있는 무기가 하나도 없었다. 살금살금 뒷걸음질 쳤다. 일단 슬라임이 용병 무기를 흡수하고 뱉어 낸 곳으로 가서 그거라도 쥐고 돌아다녀야지. 진짜 별 이상한 것들이 튀어나온다.
조심조심 발걸음을 옮기고 확 몸을 돌려 튈 타이밍을 재고 있는데 사마귀가 갑자기 찌르르 소리를 내며 날개를 훅 펼친 채 달려들었다.
“아악!!”
28년 인생에서 본 곤충 중 가장 큰 곤충이 날개를 펴고 눈앞까지 훅 날아오니 도망이고 뭐고 그냥 놀라 본능적으로 등을 돌리며 주저앉았다. 개무서워! 앞에서 보니까 훨씬 더 징그러워!
그래도 생물학자 짬밥이 있으니 지금까지 별별 괴상하게 생긴 생물들은 많이 봐 왔다. 개중엔 정말 징그럽고 혐오스러운 생김새도 있었지만 만질 수도 있었고 품을 수도 있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징그러운 게 사랑스럽게 보이게 되는 건 아니었다. 그냥 참을 수 있게 된 거지. 그게 내 심미안을 바꾸고 그랬다는 의미는 아니라는 것이다. 그러니까 결론은 징그럽다고.
뒤에서 뻗어 온 가느다란 다리가 내 팔을 잡아 일으켰다.
“으아악!”
소름 끼치는 감촉에 진저리 치며 몸을 뒤틀었다. 생리적인 거부감으로 눈에 눈물도 찔끔 고였다.
그런데 다시 바지가 벗겨지기 시작했다. 아니, 도대체 뭘로 벗기는 거야? 당황스러운 와중에도 진지하게 궁금했지만 돌아볼 용기는 없었다.
속옷과 바지가 무릎까지 내려가고 엉덩이에 촥 하며 이상한 액체가 분무기처럼 뿌려졌다. 뭐야. 뭐야. 뭐냐고. 그러나 역시 돌아볼 용기는 없었다.
몇 번 더 촥촥 정체 모를 액체가 뿌려지고 봉긋 솟아오른 이상한 게 엉덩이 골에 비벼졌다. 씨바, 도대체 뭐 하는 거지? 곤충은 내 분야가 아니었다. 사마귀는 원래 먹잇감을 잡은 뒤 이런 행동을 하는 건지, 이 사마귀를 닮은 이상한 게 이것만의 행동 특성대로 행동하는 건지 모르겠다. 서열 같은 거라도 정하는 건가? 그런 거면 내가 쫄따구 할 테니 좀 냅두고 가 줬으면 좋겠다. 그런데….
“어….”
이상한 게 비벼지는 아래에서 조금씩 열기가 올라왔다. 뭐… 뭐지. 너무 스트레스를 받아 감각 기관이 고장 났나….
“흐읏….”
나도 모르게 튀어나온 달뜬 신음에 흠칫 놀랐다. 반사적으로 입을 막으려 했지만 양팔이 뒤로 잡힌 탓에 막을 수 없었다.
“하….”
입술을 깨물다 기묘한 감각에 한숨 같은 신음을 냈다. 허리가 움찔 떨렸다. 도대체 뭐야. 뭐가 비벼지는 거야. 내 뒤에서 벌어지고 있는 이 미쳐 돌아가는 상황을 눈으로 봐야 했다. 정말 보고 싶지 않지만 더 이상 외면할 수 없었다.
눈 딱 감고 뒤로 고개를 돌렸다. 마음의 준비를 한 후 슬그머니 눈을 떴다. 무시무시한 크기의 사마귀가 내 등 뒤에 착 달라붙어 자기의 몸통을, 꼬리 같은 몸통을 내 엉덩이에 부비작거리고 있었다. 경악에 차 얼굴을 조용히 앞으로 돌렸다. 방금 본 상황을 뇌가 거부했다. 다시 눈을 돌렸다. 마찬가지였다.
“씨… 흣, 씨바….”
잡힌 팔을 거세게 흔들었다. 엉덩이라도 못 비비게 하려고 앞으로 쭉 빼며 도망가려 했지만 내 미약한 도망 시도는 팔을 뒤로 쭉 잡아당기는 사마귀에 의해 제지되었다. 팔이 뒤로 한껏 당겨지자 저절로 허리가 휘어지며 엉덩이가 뒤쪽의 사마귀한테 찰싹 달라붙었기 때문이다.
뭐 하는 건지 모르겠지만 제발 빨리 끝내고 떨어져 주면 좋겠다. 초가 지날수록 멘탈이 가루로 곱게 갈리는 기분이다. 하지만 좆같은 상황에 더 좆같은 일들이 중첩되곤 하는 인생은 내 희망을 무참히 짓밟았다. 그 봉긋하게 솟아오른 기다란 게 내 안으로 들어오기 시작했다.
“안 돼, 안 돼! 씨발 놈아, 안 된다고!!”
살다 살다 곤충이랑, 아, 진짜 언급도 못 하겠다. 미친.
하지만 몸이 이상해졌는지 꾹 닫혀 출입을 거부해야 할 빡빡한 구멍이 부드럽게 풀리며 조금씩 기둥을 받아들였다. 축축한 점막에 달라붙는 몸체의 크기와 모양이 고스란히 느껴졌다.
“하으… 흣!”
심지어 이 와중에 이상한 쾌감까지 피어올랐다. 간신히 버티고 선 다리가 덜덜 떨렸다.
“흐으읏… 으아….”
내벽을 죄다 긁으며 느릿하게 들어온 그게 반쯤 들이찼나 싶었는데, 갑자기 한계까지 푹 쑤셔 왔다.
“헉! 흐억!”
순간 몸이 뒤집힌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전류가 통한 듯 허리가 찌르르 울리며 고개가 홱 젖혀졌다. 푸르디푸른 하늘이 들이차야 하는데 까만 하늘에 폭죽이 팡팡 터지는 것 같은 번쩍거림이 시야를 점령했다.
“흣, 흐….”
그런데 그때 위쪽으로 이상한 기둥 하나가 더 들어오려는 게 느껴졌다. 이건 진짜 찢어진다. 식겁하여 홱 뒤돌아 뭘 넣으려는 건지 보았다. 생존의 위협과 고통에 대한 두려움이 징그러움을 이겼다.
좁은 구멍에 꽉 찬 사마귀의 몸통 위로 몸통보단 가느다란 막대기 같은 게 집어넣어졌다. 저건… 씨발….
사마귀, 사마귀 했지만 그래, 저게 단순히 크기만 큰 대형 사마귀일 거라곤 생각 안 했다. 얼핏 봤을 때 외양만 비슷할 뿐이지, 실제로 다른 점이 있긴 했으니까. 색이랑 모양만 언뜻 봤을 때 사마귀다 하는 거지. 이건 내가 처음 본 미지의 생물체였다.
그런데 그렇다고 해서 저 흉측한 게 이해가 되는 건 아니었다. 저런 게 생물학적으로 어떻게 가능한 건지 도저히 알 수가 없지만, 내게 넣은 그 봉긋한 몸통 위쪽으로 이상한 게 쑥 자라나 있었다. 아니, 어쩌면 처음부터 있었던 건데 내가 지금 발견한 걸 수도 있다. 그런데 저, 저 부위는 아무리 생각해도 성기….
…정말 내 눈으로 이딴 광경을 봐야 된다니.
심지어 저건 군데군데 핏줄이 잔뜩 서 있고 귀두 부근으로 추정되는 곳에 크게 두드러진 돌기가 다닥다닥 붙어 있었다. 저런 걸 넣는다고? 심지어 지금 꼬리 같은 걸 삽입해서 틈도 없이 꽉 찼는데?
내 경악에도 불구하고 사마귀의 성기는 자신이 삽입했던 몸통 부분 위로 슬그머니 들어왔다.
“악! 안 돼! 흑, 찢어진다고!”
익숙하지 않은 통증이 느껴지는 것도 잠시, 그 고통마저 성감을 자극하기 시작했다. 아까 그 액체. 그걸 괜히 뿌린 게 아니었던 것 같다. 최음 효과 같은 거라도 있었나? 그런데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가 안 간다. 아까 그 슬라임도 그렇고, 지금 이것도 그렇고. 왜 자기 동족이랑 안 하고 인간한테….
“흑! 어으으….”
최음 약에 잔뜩 전 구멍이 고무처럼 말랑거리며 늘어났다. 점점 삽입되어 오는 성기에 돋은 핏줄이 얇은 점막을 통해 고스란히 느껴졌다. 압박감에 헛구역질을 하며 고개를 숙였다. 근육이 알맞게 자리 잡은 판판한 배가 볼록 튀어나와 있었다. 아래에서 그린 듯 선명하게 느껴지는 그 모양대로 부풀어 있었다.
“학, 으, 씨이발… 윽.”
마침내 성기가 안쪽 살을 뭉개며 뿌리까지 박아 넣어졌다. 찌르르, 쉬이잇 하는 이상한 소리가 뒤에서 들려왔다. 귀두에 돋은 오돌토돌한 돌기들이 야들한 속살에 닿았다.
“허으으….”
절로 허리가 휘었다. 겨우 선 다리가 금방이라도 쓰러질 것처럼 맥을 못 추고 바르르 떨며 비틀거렸다. 그런데 안에 들어온 것들이 다시 쑤우욱 내벽을 긁으며 빠져나가기 시작했다. 안도의 한숨이 절로 나왔지만.
푸욱!
“으억! 학, 으흑!”
생전 처음 느껴 본 버거운 쾌감이 머리를 강타했다. 온몸이 덜걱거릴 정도로 큰 충격이 퍼지며 눈앞에 빨간 불꽃이 타다닥 튀었다. 직후 암막을 드리운 것처럼 까맣게 변한 시야에 놀랄 새도 없이 비명이 터져 나가고 벌린 입에서 침이 주르륵 흘렀다.
다리에선 완전히 힘이 빠졌다. 순식간에 다시 끝까지 들이박힌 기둥 두 개에 몸이 꿰인 것처럼 힘없이 꽂혀 있었다. 뒤로 잡힌 팔이 아니었으면 진작 쓰러졌을 것이다.
순간 구멍에 박힌 성기가 몸을 관통해 그대로 입 밖으로 쑥 나오는 상상을 해 버렸다. 터무니없는 망상임을 알고는 있지만 정말 그러는 줄 알았다. 생리적인 눈물이 뺨을 타고 뚝뚝 떨어졌다.
깊숙이 박힌 기둥이 다시 예민하게 흐물거리는 속살을 빠짐없이 훑으며 빠져나갔다. 아예 빼낼 것처럼 입구에 아슬아슬 걸쳐졌다. 하지만 방금의 경험으로 빼는 게 아니란 걸 안다.
“하으어, 안, 안 돼… 흑, 안 돼….”
다시 그 감각을 느끼면 정말….
푸우욱!
“헉! 으극, 읍, 허어어으….”
머리까지 지이잉 울리는 것 같다. 속력을 내 달리던 차가 벽에 꽝 부딪힌 것 같았다. 구멍에서 시작된 쾌감이 찌르르 순환하듯 온몸을 돌고 온 신경이 아래로 훅 몰렸다. 겨우 두 번 박혔을 뿐인데도 잔뜩 녹아 크림처럼 쭈우욱 흐르는 느낌이 들었다. 물렁한 속살이 또다시 뒤로 빠지는 성기에 마찰되었다. 보드라운 점막이 두 몸통의 모양대로 달라붙었다.
“허으윽, 안 돼. 절대 안 돼… 나 죽어. 진짜 흑, 죽는다고….”
두 기둥이 빠져나가는 대로, 두 몸통에 달라붙은 구멍은 구멍대로 잔뜩 느껴 정신이 어지러웠다. 풀린 눈이 아른아른 성기의 움직임이 그대로 드러나는 배를 보았다.
그런데 뒤에서 쉬이잇, 쉬이잇 소리가 커지더니 몸이 붕 뜨기 시작했다. 처음엔 너무 느껴서 착각하는 줄 알았다. 콱 들이박힐 때 몸이 붕 뜬 느낌이 들었던 것처럼. 하지만 지금은 정말로 뜨고 있었다. 갑작스러운 상황에 숨을 삼켰다. 소름 끼치는 가느다란 다리가 볼록 튀어나온 배를 꽉 안았다.
몸이 공중에 뜨니까 성기의 압박감이 더 심하게 느껴졌다. 심지어 지금은 조금 빠져나온 상태인데도. 설마 이 위에서….
“하윽!”
이번엔 중간까지만 빼내었다가 푹 박았다. 아, 제발 둘 중 하나라도 빼 줬으면 좋겠다. 미치겠어.
몸을 아무리 뒤채도 내벽이 입구부터 통로, 가장 안쪽의 깊숙한 곳까지 싸그리 훑어졌다. 계속해서 강하게 마찰되는 바람에 녹아 달라붙던 살이 이젠 화끈거리며 통통하게 부어올랐다. 안에 푹 박아 넣었을 때 팍 터졌던 액이 내벽 곳곳에 비벼졌다. 쯔걱거리는 마찰 음이 쉬이익 소리와 섞여 든다.
저 미친 사마귀 새끼는 어디까지 날아가려는 건지 꽤나 높게 붕 떠올랐다. 푹푹 박힐 때마다 위로 쑥 덜걱거리는 몸에 금방이라도 떨어질 것 같아 무서웠다. 내 허리를 감은 이 다리만 떨어져 나가면 바로 추락한다. 그리고 이 정도 높이에서 떨어지면 죽을 수 있다. 죽지 않는다 해도 뼈가 으스러질 건 안 봐도 비디오.
인간의 생존 본능이란 참 대단해서 차마 잡을 수 없었던 사마귀의 다리까지 구명줄마냥 꽉 붙들어 매게 만들었다.
“흑! 허으으, 으윽!”
마른하늘에 폭죽이 팡팡 터져 나갔다. 어느 시점부턴 제정신을 유지 못 하고 스스로 허리를 돌렸다. 터질 듯 부풀어 오른 성기에서 정액이 울컥울컥 솟아 나오며 빗방울처럼 땅으로 떨어져 내렸다.
사정 때문에 더 예민해진 성감에 지환이 울며 허리를 크게 한 바퀴 돌렸다. 어떻게 이보다 더 예민해질 수가 있지? 어떻게….
잠깐 떠오른 생각도 잠시, 제가 알던 모든 언어가 부스러지고 원초적인 본능만이 정신을 가득 채웠다. 너무 좋아. 더 해 줘. 아, 죽을 것 같아. 좋아서 미치겠어. 좋아. 좋아. 좋아.
구멍을 조이고, 허리를 튕기고, 골반을 돌리고, 엉덩이를 비비적거리며 이지 없이 쾌감만을 좇았다. 내가 어떤 거랑 뭘 하고 있는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그저 지금 끝없이 차오르는 이 감각만을 따르고 싶었다.
구멍을 조금 조이기만 해도 허리가 녹아내리게 기분이 좋았다. 박아 오는 성기를 받으며 허리를 돌리면 가뜩이나 민감한 점막이 즈즈즛 비벼지는데, 몸체가 제 살을 꽝꽝 뭉개는 감각이 더 진하게 느껴졌다. 숨이 넘어갈 듯한 흐느낌이 절로 새었다.
거기다 기둥이 박아 오는 타이밍에 맞춰 허리를 튕기기라도 하면 잠깐 정신이 확 날아가는 극상의 쾌감이 바로 뇌리에 꽂혀 들었다. 손과 발이 오그라들고 근육이 수축하며 머리칼마저 쭈뼛 서는 것 같은 그 쾌락을 한 번 느끼니 또 그렇게 자지러지고 싶어서 안달이 났다.
사람이 아닌 것에게 더 해 줘, 아, 좋아, 응, 박아 줘 애원을 하며 자신의 손으로 직접 엉덩이 살을 잡아 구멍을 더욱 벌렸다. 떨어질까 봐 허리에 감긴 다리를 꽉 잡던 손이 직접 구멍을 열고 다가올 쾌감을 기다렸다.
녹진한 구멍을 살짝 들며 부비적거리면 금세 배 속이 따듯해졌다. 모든 게 다 독할 정도로 자극적이었다. 정신을 망가뜨리기 충분한 황홀감에 허덕이다 시야가 까맣게 물들었다. 지환의 마지막 의식에는 땅으로 내려가는 하강감이 희미하게 남았다.
***
곤충과 강간이라는 이질적인 두 단어가 머릿속에서 맴돌았다.
…무슨 미친 일이 벌어진 거지.
쾌락에 풀린 눈이 점점 초점을 맞춰 갔다. 흐느적 벌어진 다리를 오므렸다. 몸을 일으켜 앉아 허벅지 안쪽을 손으로 쓸었다. 손바닥엔 허벅지에 흐르던 액체가 잔뜩 묻어 나왔다. 그 탁한 색의 액체를 보니 착잡함이 들었다. 뭐 닦을 데도 없어서 대충 잔디 위에 문질렀다.
그리고 잠시 망설이다가 결국 개처럼 엎드린 자세로 한 손을 뒤로 가져가 구멍에 손가락을 집어넣었다.
무슨 성분이 들었는지 모를 액체를 계속 머금고 있으면 어떤 병에 걸릴지, 몸이 어떻게 될지 알 수가 없다. 울며 겨자 먹는 심정으로 액체가 엉겨 붙어 난잡한 구멍에 손가락 두 개를 푹 쑤셔 넣었다.
“윽….”
엉덩이 근육이 확 수축하며 손가락을 꽉 물었다. 내 구멍으로 내 손가락을 조이니 기분이 참 묘했다. 조금 깊게 손가락을 넣어 손에 걸리는 추적추적한 묽은 정액을 잔뜩 빼내었다.
뚜-우욱, 툭.
밖으로 끄집어내진 점성 있는 액체가 잔디 위에 떨어졌다. 손가락을 잔디에 비비고 다시 넣었다.
“흐읍….”
아직 열감이 가시지 않았는지 구멍이 많이 예민했다. 개처럼 엎드려 정액을 빼내고 있는 내 처지에 저절로 표정이 구겨졌지만 그만둘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다시 액 뭉텅이를 한가득 묻히고 나온 손가락을 탈탈 털어 액들을 떨쳐 냈다. 그 짓을 몇 번 반복하니 이제 묻어 나오는 액체가 없었다.
아, 진짜 물로 씻고 싶어. 걷다 보면 호수가 나오긴 할 텐데. 그런데 걷다가 저런 미친 것들을 또 만나면 어쩌지. 진귀한 생물들을 찾아 여기에 왔건만 별 괴상한 것들에게 몸만 유린당했다. 씨발… 좆같은 인생 진짜….
생각해 보니 가만히 있는다 해도 그것들을 마주칠 가능성은 얼마든지 있었다. 억울함에 연신 욕을 뱉어 내며 몸을 일으켰다.
타고난 체격 때문인지, 쌓아 둔 체력 때문인지 육체에 큰 타격을 입은 건 아니었지만 정신엔 크나큰 타격을 입었다. 멘탈은 진작 부서져서 입자가 고운 가루로 흩날리고 있었다. 끊길 듯 말 듯 거미줄 한 가닥처럼 아슬아슬한 정신줄을 겨우 붙잡고 있는 중이었다.
이 행성을 나가면 여기에서 있었던 일은 함구하고 술이나 진탕 마셔야겠다. 당분간 휴가를 내야지. 집에서 술 마시고 잠자고 푹 쉴 거다.
지환은 허리를 퉁퉁 두드리며 어깨를 돌렸다. 몸에 큰 타격을 입지 않았다 해도 쾌락에 진탕 절여진 몸이라 조금 나른하고 힘겹긴 했다.
‘어떻게 한담….’
한숨을 푹 쉬며 머리를 굴려 보았다. 그러고 보니 여기가 어디지? 그 미친 사마귀 새끼가 날 어디다가 내려 둔 거야.
“아아악!”
…사람? 이 행성에 사람이 있을 리가 없는데?
의아했지만 느닷없는 비명 소리에 곧장 그리로 향했다.
가까이 다가갈수록 들려오는 목소리가 어쩐지 익숙한 것 같기도 했다. 장막처럼 늘어져 있는 나뭇잎을 걷어 내자 믿을 수 없는 광경이 펼쳐졌다.
“아으악!”
문어처럼 생긴 게, 아니, 저게 다 뭐야 진짜. 몇 개인지 모를 무수히 많은 촉수들이 한 남자를 감싸고 있었다. 바르작거리면서 어떻게든 벗어나 보려는 것 같지만 사지가 결박된 채 고개만 격하게 흔들고 허리만 움찔거릴 뿐 별 성과는 없어 보인다. 꽤나 튼실한 근육이 오르락내리락 움직일 정도로 안간힘을 써 보는 것 같은데도 역부족인가 보다.
그런데 무엇보다 놀라운 건 저 사람이 날 버리고 튀었던 용병이라는 것과 지금 저 사람 상태가….
눈이 마주쳤다.
“윽, 살려 줘!!”
“세상에….”
하반신이 정말 난리도 저런 난리가…. 말 그대로 난잡했다. 정체 모를 액체들이 뚝뚝 계속해서 떨어지고 다리 사이에 박아 넣어진 촉수 하나를 타고도 액이 줄줄 흘렀다.
…저게 뭐야. 내 얼굴까지 달아오를 정도다. 저거… 유두엔 무슨 짓을 한 거지? 진한 색으로 퉁퉁 부어올라 보는 내가 다 아플 정도다.
이 행성 생물들은 도대체 뭐 어떻게 된 거야. 저걸 보니 잊고 싶었던 방금의 기억이 떠올랐다. 여기 애들은 다 미쳤어. 이건 위약금 문제가 아니다. 걍 도망쳐야 돼. 답이 없어.
“이봐! 어떻, 욱! 어떻게 해 보라니까!”
“아니, 뭘 어떻게 해요? 아무튼 그, 잘해 보시고. 그보다 막사는 어떻게 된 겁니까?”
“지금 그딴, 악!”
용병의 다리 사이에 촉수 하나가 더 비집고 들어갔다.
“허윽! 으윽.”
…이거 계속 보면 안 될 것 같은데. 보고 싶지도 않고.
“저… 전 먼저 갈게요.”
어차피 용병도 막사가 어떻게 된 건지는 모르는 것 같다. 내가 진짜 웬만하면 도와주려고 했는데 저 용병 새끼는 날 버리고 튄 주제에 살려 달라는 말을 뻔뻔하게 내뱉었다. 덕분에 그냥 가야겠다는 결심이 굳건해졌다. 그리고 애초에 저걸 뭐 어떻게 해. 나한테 무기가 있다고 해도 저런 걸….
짙은 녹색의 생물체는 여러 촉수들을 거느리며 흐느적거렸다. 저게 다리인가? 아무튼 물기도 엄청 많아 보이고 용병의 몸에 치댈 때마다 점성 가득한 액체가 끈적끈적하게 묻어났다. 으… 기분 나쁘겠다. 절로 눈살이 찌푸려졌다.
“야 이 개쓰레기 샊윽! 으, 아!”
아래 구멍에 넣어진 두 개의 촉수가 나사처럼 돌려지며 푹푹 박혔다. 찔꺽거리는 소리와 살이 푹푹 박힐 때 나는 마찰 음에 정말 미쳐 돌아가는 행성이구나 하는 생각이 다시금 확고히 들었다.
용병은 이제 날 신경 쓰지도 못하는 듯 정신을 잃고 신음했다. 침이 질질 흐르는 입가에 또 다른 촉수가 콱 박혀 들었다. 펠라티오라도 하는 것처럼 앞뒤로 움직이는데 용병은 그걸 또 쭉쭉 빨아먹는지 볼이 오그라들었다가 부풀어 오르고 목울대가 꿀꺽꿀꺽 넘어갔다.
…정신 나갔나 보구나. 그래, 그럴 수 있지…. 저런 모습을 보니 좀 안쓰럽기도 했다. 목도 얼굴도 아주 벌겋게 달아올라서 마음대로 유린당하니. 하지만 안타까운 건 안타까운 거고 난 살아야 된다. 그리고 나도 아까 당했… 음, 이 생각은 하지 말자.
괜히 나까지 휘말리면 큰일이니 조심조심 왔던 길을 되돌아갔다. 다행히도 저 촉수는 용병에게 정신 팔려 나는 안중에도 없는 듯했다. 그래도 주의해서 나쁠 건 없으므로 한 발, 한 발 뒷걸음질을 치는데.
툭.
툭?
미끄덩거리는 무언가에 등이 부딪혔다. 의아하게 뒤를 돌아보자마자 몸이 돌처럼 굳었다. 또 다른 촉수가 있었는지 내게 그 이상한 줄기 같은 걸 뻗어 오고 있었다.
반항할 틈도 없이 순식간에 사지가 결박됐다. 정신 나간 용병의 간드러지는 신음 소리가 들려온다. 몸이 붙잡힌 채로 홱 들리더니 옷 안으로 들어온 촉수에 상의도 하의도 다 트드득 찢겨져 나갔다. 미치겠네. 이젠 도망칠 때도 나체로 도망쳐야 돼?
갑자기 훅 끌려가 어지러웠던 시야에 초점이 맞춰지고 눈앞에 굵은 촉수 하나를 기둥처럼 끌어안은 채 퍽퍽 박히고 있는 용병이 보였다. 아니, 저 사람이라도 안 보이게 해 줘. 저게 뭐야…. 애써 외면해 보려 했지만 장면도 소리도 너무 생생했다.
아무튼 지금 저기에 정신 팔려 있을 때가 아니었다. 다리 사이에 가장 얇은 촉수 하나가 쑥 들어왔다. 두께도 밧줄같이 가늘고 액체 때문에 미끄러워서 쉽게 들어왔다. 다른 촉수들은 내 가슴에 달라붙었다. 방금 본 용병의 유두가 생각났다. 정신이 훅 들었다.
“윽, 하지 마! 이건 아니지, 진짜!”
난 저렇게 되기 싫다고!
“귀염둥이야, 비켜 봐! 읏, 야!!”
촉수는 정말 문어 다리 같은 건지 빨판 같은 게 도독도독 몇 개 모여 있었다. 설마설마하는 불길한 예감은 늘 맞아떨어졌다. 빨판이 양쪽 유두에 착 달라붙었다.
“헉!”
빨판은 유축기처럼 있지도 않은 걸 쥐어짜내듯 쭉쭉 빨아들였다. 예민한 살점이 쭉 잡아당겨졌다.
“아으! 아, 아무것도 흣, 안 나와!”
잡아당기는 힘에 딸려 가듯 허리가 곡선을 그리며 한껏 휘었는데, 그런 허리마저 움직이지 못하게 할 생각인지 촉수 하나가 휘익 감아 뒤로 당겼다. 빨리는 가슴은 앞을 향하는데 허리는 뒤로 쭉 끌려가니 애꿎은 유두만 고무처럼 더욱 늘어났다.
아플 정도로 잡아 당겨지는데 축축한 액체가 몸 전체에 비벼지자 고개가 절로 푹 숙여졌다. 고통이 새로운 감각에 덮여 모습을 감추고 자극적인 감각이 퍼져 나갔다. 아래로 들어간 얇은 촉수도 곳곳을 휘저으며 내벽 전체를 액체 범벅으로 만들고 쑥 빠져나왔다.
점점 어지러운 열기가 더해진다. 촉수가 빠져나온 구멍은 불이라도 인 것처럼 뜨겁게 화끈거렸다. 간지러운 구멍이 움찔거린다. 머리끝까지 훅 달아오르는 열감에 허벅지 근육에 힘이 꽉 들어가 저릿하게 수축했다. 아주 더운 공기 속에 갇힌 듯 숨이 턱턱 막혀 온다.
“악, 씨발! 으흑!”
촉수가 도대체 몇 개야. 온몸을 더듬는 것처럼 만져 온다. 촉수가 지난 자리엔 달팽이 점액 같은 끈적한 액체가 남아 반들거렸다. 저것들은 발가락 사이도, 겨드랑이도, 등도, 귓바퀴도 만지작거리며 성실하게 자국을 남겼다. 자국이 남은 자리에는 잠시 후 열이 피어올랐다. 그런 것들이 온몸을 만져 댔으니 이젠 열이 안 나는 곳이 없었다. 뜨거운 물에 푹 담가져 삶아지고 있는 기분이다.
가슴에 달라붙은 촉수가 떨어져 나가자 시선이 반사적으로 그곳에 향했다. 빳빳하게 세운 가슴 돌기가 불어 터진 것처럼 빵빵했다. 한계까지 부풀면 저 정도 되지 않을까. 혹사당한 유두를 보자 울적해졌다. 도대체 왜 인간한테 그러냐고. 동족한테 하면 되잖아!
아래는 여전히 간질거려서 애가 탔다. 다리라도 붙여 비비고 싶었지만 양쪽으로 활짝 벌려 잡혀 있었기 때문에 불가능했다.
“아으, 어떻게 좀….”
지환의 말에 대답이라도 하듯 두꺼운 촉수가 푹 구멍에 처박혔다. 반질한 겉면이 미끄러지듯 쑥 들어오자 움찔움찔 떨던 점막이 환영하듯 꾹 조이며 잡아끌었다. 허리가 물렁거리며 살살 녹아드는 것 같다.
그런데 씨발 촉수에 붙어 있었던 빨판이 갑자기.
“아으윽!”
허리가 퉁 크게 튀어 오르자 허리를 감은 촉수가 달래듯 배를 동그랗게 쓸었다.
지환의 내벽 살점이 아래에 처박힌 촉수의 빨판에 쑤욱 빨려 들어갔다. 약한 점막에 거머리처럼 붙어 쪽쪽 빨아 당겼다. 진탕 녹은 살점이 우물거리는 빨판에 연거푸 쭈우욱 빨려 들어갔다. 꺼덕거리던 성기에서 픽 정액이 방출되고 지환은 그만 이성을 잃었다.
“하, 흐…!”
교성도 터져 나가지 못하고 새는 숨소리만 끊겨 나갔다. 감당 못 할 쾌감이 거대한 파도처럼 지환을 덮쳤다. 감전이라도 된 것처럼 온몸이 떨렸다. 내 몸이 내 몸 같지 않았다. 몸의 주도권을 뺏긴 채 아득한 쾌감만이 팍팍 터져 나갔다.
고통을 기분 좋게 바꾼 쾌락이었지만 선을 넘은 과한 쾌락은 오히려 고통스러웠다. 육지에서 처절하게 아가미를 뻐끔거리는 물고기처럼 연신 헉헉거렸지만 숨이 안 쉬어졌다. 산소가 통하지 않는 뇌가 멍하게 감각을 전달했다. 숨을 쉬기 위해 크게 벌린 입에선 침만 줄줄 샜다.
그런데 돌연 그 입으로 촉수 하나가 들어와 말캉한 혀에 액체를 묻히더니 입 안에서 뭔가를 터뜨렸다. 갑자기 꿀렁거리며 방출되는 액체에 나도 모르게 꼴깍 삼켜 버렸다. 채 삼키지 못한 액체는 입에서 턱으로 주르륵 떨어져 흘렀다.
몽롱하게 흐려지던 정신이 각성제라도 맞은 것처럼 선명해졌다. 하지만 그건 오히려 독이었다. 너무 지나쳐 둔하게 느껴지던 쾌락이 신경 하나하나를 바늘로 콕콕 찌르는 것처럼 선명해졌다. 막힌 숨이 확 트이며 울음이 터졌다.
“으아엉, 흐! 아아악! 아으, 응!”
구멍 안의 촉수가 뒤로 몸을 물렸다. 그러나 여전히 빨판을 떼지 않아 흡착된 내벽이 쭈욱 늘어나며 딸려 갔다. 살점이 본드를 붙인 양 쭈우욱 따라갔다.
“아으악! 허어으… 허윽, 윽!”
퓨즈가 딱 끊길 만한 자극이었지만, 목구멍에 들어간 액체로 인해 또렷한 정신으로 그 모든 감각을 오롯하게 느껴야 했다. 사람이 왜 미치는지 알 것 같다. 목에선 울음 섞인 절규가 튀어나왔다.
“아아악! 허으윽, 하윽, 아!”
바락바락 비명을 지르는데도 내 귀에는 아주 먼 곳에서 울리는 소리마냥 들렸다. 아래에서 느껴지는 감각이 너무 지나쳐 다른 감각마저 흐리게 만들기라도 하는 것처럼.
촉수가 어느 정도 빠지자 빨판도 힘을 잃고 오물오물 물고 있던 살을 놓아주었다. 안에서 픽 물이 터지고 주르륵 흘러내렸다.
“으어, 아….”
초점도 제대로 맞춰지지 않는 눈을 연신 깜빡거렸지만 눈앞은 밤처럼 깜깜했다. 까마득한 막막함 속에서 입만 뻥긋거렸다.
“허으… 으….”
의미 없는 소리만 망연자실 퍼져 나갔다.
딸려 나가던 살점이 그대로 축 처져 늘어져 있으면 어쩌지. 말도 안 되는 걱정이지만 진지했다.
다행히 지환의 내벽은 부어올랐을 뿐 꾸물거리며 제자리로 잘 돌아가 있었다. 하지만 여운에 정신 못 차리는 지환은 제 구멍이 어찌 되었는지 알 수 없었다. 입구에서 밍기적거리던 촉수가 결국 빠져나가고 여전히 벌어진 다리 사이로 내가 싼 건지 촉수가 싼 건지 모를 액체들이 뒤섞여 투두둑 떨어졌다. 너무 강한 자극을 겪은 구멍이 뻐끔거리며 액들을 밖으로 밀어냈다.
지환은 기절도 못 하고 눈을 감은 채 몸을 늘어뜨렸다.
***
“흑! 읏!”
벌써 얼마만큼의 시간이 지났는지 모르겠다. 벌써 며칠이 지나 있을지도 모른다. 눈을 뜨나 감으나 구멍은 늘 뭔가를 오물오물 물고 있었다. 머릿속에 안개가 뿌옇게 낀 듯 몽롱했다. 이게 제정신인가. 뭐든 생각을 하고는 있으니 제정신 맞는 것 같은데. 미친 사람들은 자기가 미친 줄 모르잖아. 근데 나는 스스로 물어보고 있기까지 하니 제정신이겠지?
짧은 생각마저 오래 이어지지 못하고 파고들어 온 쾌락에 뚝뚝 끊겼다. 그리고 그 이상한 약 같은 거. 이따금 촉수가 입 안에 처박으며 팍 터뜨리는 그것 때문에 더더욱 정신을 차릴 수 없었다.
“아! 아! 흑!”
아 젠장, 피 쏠려.
지환은 다리가 넓게 벌려진 채로 거꾸로 들려 푹푹 박혔다. 피가 몰린 얼굴이 새빨개졌다. 흐릿한 시야에 저와 같은 처지인 용병이 보였다. 그는 엎드려 엉덩이만 볼록 든 채로 박히는 중이었다. 언제쯤 이거로부터 벗어날 수 있을까.
계약 기간은 1년. 사람들이 온다 해도 1년은 지나고서야 온다는 말이었다. 절망감이 깊게 스며들었다. 도대체 이것들의 목적을 모르겠다. 슬라임은 그래, 정액이 에너지 공급원이라도 됐나 보지. 사마귀는… 뭐, 발정기였나 보지.
그런데 이건 진짜 뭐야. 왜 이러는데. 이것들은 그냥 계속해서 끝없이 박고 비비고 쌀 뿐이었다. 이 촉수들이 다 성기는 아닐 거 아니야. 아무리 생각해도 다리일 것 같은데 왜 다리로 이러는 거냐고. 무슨 이유가 있긴 있을 거 아냐.
가끔씩 제정신이 들 때마다 어떻게 빠져나갈지 생각했지만 이건 온전히 미지의 생물체였다. 그러니 당연히 해결 방안도 생각나는 건 없었다. 힘으로 이길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잠깐 놓아주지도 않고, 목적이 뭔지도 모른 채 그냥 박힐 뿐이었으니. 심지어 이런 이성적인 생각을 할 수 있는 시간조차 짧았다. 곧 쾌감에 허덕이며 발정 난 것마냥 헉헉댈 것이다. 지금 내 흔들리는 시야에 어른거리는 저 용병처럼. …씨발…….
“학! 으응! 아, 진흣, 짜! 그만 좀, 응!”
지환이 지친 목소리로 애원했지만 촉수들이 말을 알아들을 리 없었다. 더욱 빠르고 깊게 드나든다.
저것들은 도대체 어떻게 생겨 먹은 건지 각 촉수마다 모양이 약간씩 달랐다. 크기가 다른 거야 눈에 확 보여서 알고 있었지만, 기능에도 조금씩 차이가 있는 것 같았다. 어떤 것은 그 자체로 생물인 양 입을 벌려 오물거리는 것들도 있었고, 돌기가 촉수 전체에 오돌토돌 덮여 있는 것도, 문어 같은 빨판이 붙어 있는 것도, 액을 방출하는 것도. 아무튼 다양한 종류가 있었다. 굳이 이런 것들을 알고 싶진 않았는데 몸으로 겪으며 저절로 배워 갔다.
이젠 정상적인 몸 상태가 뭔지도 모르겠다. 쉬지도 않고 계속 느끼기만 해서, 구멍에 뭐가 박혀 있지 않을 땐 어땠더라… 같은 별 미친 생각까지 들기 시작했다.
촉수들은 제 구멍을 우유라도 휘젓는 양 잘도 드나들었다. 계속해서 구멍 안을 휘저으며 살들을 뭉개면 내벽이 크림처럼 촉수의 몸체에 엉겨 붙었다. 안에 잔뜩 싸고 나간 직후 다시 촉수가 들어와 질척하게 젖어 있는 구멍 안을 참방참방 물장구치듯 철벅거리기도 하고.
어쩌다가 촉수가 구멍 밖으로라도 나가면 액체가 허벅지까지 쭈욱 난잡하게 흘러내렸다. 그러면 촉수가 구멍에 매질을 하듯 철썩거리기도 했다. 이걸 맞았다고 표현해야 될지 모르겠지만, 처음으로 촉수 하나가 쑥 빠져나오더니 탄력 있게 촤악 구멍을 내리쳤을 땐 잔뜩 흔든 탄산음료에서 순식간에 부글부글 넘쳐 나오는 거품처럼 쾌락이 뻥 뚫린 듯 확 터지며 전신에 퍼져 갔다.
직접적으로 박은 것도 아니고 겨우 구멍을 때린 것뿐인데 상상 못 할 쾌감이 온몸을 에워쌌다. 몸이 고장 난 게 틀림없었다. 온갖 액체가 엉킨 듯 진흙탕처럼 참방거리는 구멍을 촥 치면 물웅덩이에 뛰어든 것처럼 물들이 튀었다. 난 뒤집어지기 직전의 눈으로 사방팔방 퍼지는 물방울들을 망연하게 쳐다보며 극상의 쾌감에 덜덜 떠는 것 외엔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선배!”
쾌락에 취해 자진해서 허리를 돌리던 중 사람 목소리가 들려왔다. 움직임을 멈추자 곧장 푹 박아 올리는 촉수에 정신이 날아갈 뻔했지만 가느다란 실 같은 이성을 겨우 잡았다.
고개를 돌려 소리의 근원지를 바라봤다.
용병들이었다. 지금은 나체 상태로 앙앙거리는 중이지만 분명 나와 함께 온 용병도 저런 제복을 입고 있었다. 무기로 무장한 총 다섯 명의 용병들이었는데 그들은 자신이 보는 충격적인 장면을 믿지 못하며 하나같이 입을 떡 벌리며 굳었다.
그러나 그건 찰나였다. 상황 파악을 빠르게 마친 그들은 바로 몸을 움직였다. 용병들은 우리를 감싸는 촉수들의 몸체에게 총을 탕탕 쏘아 댔다. 그러나 놀랍게도 그 몸체는 총알들을 퉁퉁 튕겨 냈다. 무슨 비비탄 총알이라도 맞은 것처럼 저딴….
그와 동시에 구멍에 박히던 촉수도 돌처럼 단단해져 갔다. 딱딱하게 굳은 촉수가 구멍 안을 가득 채우자 촉수를 감싸고 있던 내벽도 덩달아 놀라 움찔움찔 떨었다. 이 상태로 박으면 진짜 다칠 텐데. 불안감에 몸이 절로 굳었다.
하지만 다행히도 촉수는 스르륵 구멍을 빠져나갔다. 용병들의 당황스러운 표정이 보인다. 나 역시 표정이 어둑어둑해졌다. 총도 안 통하는데 저걸 어떻게 이겨 도대체…. 여러 걱정들이 뭉텅이로 굴러왔다.
그런데 놀랍게도 저 이상한 것은 그 육중한 몸체를 이끌며 꾸물꾸물 기어 숲으로 향했다. 몸체 주위에 널브러진 여러 촉수들이 땅에 질질 끌렸다. 저건 마치 도망치는 듯한 모양새였다. 용병을 감싸던 촉수도 마찬가지로 반대편 숲속으로 꾸물꾸물 기어갔다.
…뭐야. 아무렇지도 않게 총알을 튕겨 내길래 타격이 전혀 없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위협이라도 느꼈나 보지? 저것들의 심리 상태 같은 거야 알 수 없지만 어찌 됐든 다행이었다. 다행… 다행인데….
바늘 같은 시선들이 꽂혀 들었다. 발가벗은 채로 방금 전까지만 해도 허리를 흔들며 촉수들에게 박히고 있던 꼴을 보였다. 심지어 지금도 다리 사이로 이상한 액체들이 꾸무럭거리며 나오고 있었다. 최대한 막아 보기 위해 아래에 힘을 꽉 주려 했지만 이미 진탕 박혀 녹진녹진한 구멍은 탁 풀린 채 줄줄줄 이물감을 주는 액들을 뱉어 냈다.
나는 도저히 저 눈들을 마주칠 수가 없었다. 허벅지 안쪽으로 질질 새어 나가는 액의 감촉만이 느껴졌다. 용병들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방금까지만 해도 두 사람의 신음으로 시끌거리던 공간에 무거운 정적이 내려앉았다.
아니, 충격받은 거 알겠는데 제발 무슨 말이라도 해 달라고…. 나 피해자잖아. 빨리 안심시켜 주고 담요라도 둘러 주고 데리고 가 줘….
“선배! 괜찮으십니까?”
어색한 정적을 깨는 건 걱정이 듬뿍 담긴 목소리였다. 흘낏 시선을 던지니 제복을 갖춰 입은 남자가 나체로 쓰러진 용병을 껴안는 모습이 보였다.
“허흐, 흐….”
용병은 온몸이 뭔지 모를 액들로 범벅이 된 상태였다. 구멍도 입 안도 축축했고 눈이 풀린 채 상황 파악도 못 하고 신음만을 겨우겨우 내뱉었다. 아직도 정신을 못 차린 용병이 자신을 껴안은 남자의 허리에 다리를 감고 비비적거렸다.
“흐으, 으….”
가슴팍을 꾹 쥐고 입으로 남자의 목을 핥으며 보채듯 칭얼거렸다.
“으응, 흐….”
난 저 어리숙한 후배가 이상한 생물 때문에 정신이 온전치 못한 제 선배를 걱정하리라 생각했다. 어쩌면 경멸할지도 모르지. 하지만 저 후배는 용병의 등을 토닥거리며 다정하게 어를 뿐이었다.
“몸부터 씻기고 해 드리겠습니다.”
저 덤덤한 말투에 환청을 들었나 싶었다. 당황스러운 모습에 내 처지도 잊은 채 용병들을 쳐다봤다. 그들은 놀라지도 않고 자기들끼리 이야기를 나누며 우주선, 사유지 어쩌구 하는 말들을 해 댔다. 굉장히 부자연스러운 대화였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입 다물고 있었으면서 후배의 경악스러운 말이 기폭제라도 된 양 갑자기 말이 터진다고?
“구멍이 아주 벌렁거리는데. 여기에 박아 달라고….”
저 소리에 용병들의 어색한 대화 소리가 더 커졌다. 한 용병이 얼른 내게 다가왔다.
“이리로 오세요. 우주선에 탑승하면 바로 입을 옷을 드리겠습니다.”
“누구는 잠도 못 자고 걱정했는데 선배는 혼자 아주 좋으셨나 봅니다. 그래서 이렇게 눈도 풀리고 줄줄 흘리고 계신 거겠지.”
“수건도 드리겠습니다. 몸부터 닦으시고, 계약에 대해서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만 그 이야기는 탑승 후 천천히 말씀드리겠습니다.”
“제대로 물지도 못할 텐데 무슨 낯으로 박아 달라고 합니까? 값싸게 유혹이나 해 대고.”
아니, 저거 안 들려? 필사적으로 안 들리는 척하는 노력은 가상하다만…. 저기엔 위아래도 없나. 왜 아무도 안 말리고 모르는 척만 하냐. 아니, 그것보다 저거 사이코야? 그렇게 걱정하며 달려왔으면서 저런 말을 한다고?
지환은 어느새 저 대화에 몰입해 있었다.
“아, 이런. 속상해하진 마십시오. 기분이 지나치게 좋아 보이셔서 심술이 났나 봅니다. 평소엔 딱딱하시잖습니까. 열심히 박아 줘도 뻣뻣하게 굴었으면서.”
으아악! 말하는 상황 좀 고려해 줘! 지금 어디서 말하고 누가 듣고 있는지 생각해 달라고! 저런 대화 듣기 싫어!
그건 내 옆의 용병도 마찬가지였는지 그의 회색빛 낯이 더욱 짙게 흐려졌다. 먹구름이 어둑어둑 껴 있는 것 같은 표정이다.
“얼른 가시죠.”
“네.”
진짜 저런 음담패설 듣기도 싫고 보기도 싫은데 호기심은 고개를 절로 돌리게 만들었다. 막장 드라마를 계속 보게 하는 심리가 이런 걸까. 이거랑은 다른가? 아무튼.
후배가 용병을 안고 일어섰다. 용병은 여전히 후배의 허리에 다리를 감고 허리를 올렸다 내리며 부비적거렸다. 저 용병은 키도 크고 꽤 우락부락한 체형이던데 후배 역시 그에 꿀리지 않을 정도로 만만찮았다. 심지어 저 거구의 몸을 가뿐히 안아 들고 있으니 체격 차까지 있어 보였다.
후배가 계속해서 치대는 엉덩이를 경고하듯 꽉 쥐어 잡고 입술을 짓씹다가 귀에 뭐라고 속삭였다. 용병은 흐느적거리던 다리를 허리에 고정시켜 꾹 감으며 어깨에 고개를 묻었다.
아쉽게도 저 귓속말은 내겐 들리지 않았다. 헉, 아니야. 안 아쉬워. 그나저나 저 용병은 정신이 아예 나간 걸까? 아무리 봐도 정상은 아닌 것 같다. …내가 멀쩡한 게 이상한 건가?
물론 당연히도 육체는 전혀 멀쩡하다고 말할 수 없는 꼴이었다. 몇 시간인지 며칠인지는 몰라도 꽤 오랜 시간 동안 쉬지 않고 쾌락에 담금질한 몸은 저릿저릿했다. 구멍도 쉬이 다물어지지 않은 채 액만 줄줄 흘려 대며 뻐끔거렸고 다리도 걷기 힘들게 덜덜 떨리는 상태였다. 배 속이 이상하기도 하고 허리도 지끈거렸다.
그런데 의외로 정신은 꽤나 정상적이지 않나 싶다. 황홀감에 취해 정신없이 허리를 돌리고 난 뒤에는 인간으로서의 이성이 와르르 무너지는 것 같기도 하고, 진짜 미칠 것 같았는데 지금은 무사히 돌아갈 거라는 안도감 때문인지, 멘탈 회복이 빨라서 그런 건지 나름 괜찮았다.
용병들이 타고 온 우주선 내부에 들어가자 완전히 긴장이 탁 풀렸다. 아무 데나 누워서 푹 자고 싶었지만 계약에 대한 내용을 들어야 하기에 저절로 감기려는 눈을 부릅떴다.
샤워하고 옷도 깨끗한 걸로 갈아입어서 그런가 더 노곤하네. 돌아가자마자 몸 상태부터 점검해 봐야지.
그나저나 아까부터 계속 기분 나쁘게 배가 불렀다. 먹은 거라곤 그 이상한 액체들밖에 없는데. 구멍에야 뭘 많이 머금긴 했다지만 그건 당연히 싹 다 빼냈다. 아, 그런데 정말 더부룩하게 속이 안 좋았다. 울렁거리기도 하고. 하긴 그 짓을 당했는데 이런 후유증이 나타날 만하긴 하지. 꺼림칙했지만 여상하게 넘기며 간이 회의실로 향했다.
“아, 오셨습니까. 몸은 좀 어떠신지….”
“괜찮습니다. 그보다 계약에 대한 이야기는….”
“아, 네. 피곤하실 테니 바로 본론부터 말씀드리자면 우선 성지환 씨께서 계약하신 이민혁이라는 사람은 사유지 등록 허가가 나지 않은 불법 행성을 팔아넘겼기 때문에 구속되었습니다.”
“…예?”
이게 무슨.
“심지어 안전성도 파악되지 않은 행성에 다짜고짜 전문가들부터 보내는 악독한 수법에, 살아 돌아온 전문가들에게서 정보란 정보는 다 빼내고 온갖 치사한 방법으로 계약 위반을 운운하며 계약금도 지불하지 않았다더군요. 오히려 위약금을 물게 하기도 했답니다.”
“그게 가능해요?”
“예. 계약서를 아주 교묘하게 작성했더군요. 작은 글씨지만 명시되어 있는 부분이 있긴 했고. 그래서 솔직히 이 죄목은 재판에 회부되지도 못하지만 일단 불공정 계약이니 그쪽으로 넘겨지긴 할 겁니다.”
문득 계약서를 대강 넘긴 채 사인을 휘갈겼던 지난날이 떠올랐다.
“저, 저도 물어 줘야 되나요?”
“예? 아니, 당연히 아니죠. 지금 성지환 씨는 일방적으로 계약을 해지당한 상태십니다. 오히려 사기죄로 배상금을 청구할 수 있는 상황이시죠. 실제로 그, 다치시기도 하셨고요.”
촉수들한테 범해진 걸 다쳤다고 하는 우회적인 표현에 괜히 뻘쭘해져 손끝을 만지작거렸다.
“네….”
“제가 전해 드리려는 말은 이게 끝입니다. 혹시 궁금한 점이 있으신가요?”
“아니요. 감사합니다.”
“예. 그럼 도착할 때까지 푹 쉬십시오.”
“네에….”
***
“으윽….”
몸이 계속 이상했다. 나는 바로 2주 휴가를 받았다. 원래는 일주일만 쉴 수 있었는데 정신적 충격 때문에 우리 귀염둥이들도 눈에 안 들어온다고 바락바락 우겨 겨우겨우 2주로 연장할 수 있었다.
소장실에서 나오자마자 소식을 들었다고 사기를 당했냐며 동정심 어린 눈으로 쳐다보는 동료들에게서 위로를 받고 집으로 향했다. 집에 도착하고 나서야 건강 검진을 받으러 가야 한다는 게 불쑥 생각났지만 너어어무 귀찮아서 그냥 내일 가기로 했었다. 지금은 그 결정을 막 후회하는 참이고.
아, 진짜 내장이 다 꼬이는 것처럼 배가 아파 왔다. 오자마자 잠부터 보충할 생각에 바로 누웠는데 배에서 찌릿하게 퍼지는 통증에 얼마 안 지나 눈이 떠졌다. 배는 여전히 살짝 부른 상태였다. 꼭 뭐가 든 것처럼 더부룩하고 토할 것 같았다. 이마엔 식은땀이 송골송골 맺혔다.
“아. 미친, 진짜….”
배를 부여잡으며 몸을 일으켰다. 일단 전화라도….
그런데 계속해서 퍼지는 고통과 동시에 야릇한 열기가 아래에서 피어올랐다. 이게 무슨.
서둘러 바지를 벗었다. 속옷을 잡아 내리자 축축하게 젖은 속옷이 드러났다. 엉덩이 골에서 이상한 액이 줄줄 흐르고 있었다.
“무, 뭐야….”
태연하게 잠이나 잘 때가 아니었다. 지금이라도 당장 병원에 가야겠다. 휴대폰, 휴대폰이 어디….
“욱!”
배 안쪽에서 뭐가 누르는 듯한 움직임이 느껴졌다. 충격과 공포에 휩싸여 주저앉은 채 배를 감싸 쥐었다.
“아! 흐, 뭐야….”
그 소름 끼치는 이물감이 점점 아래로 끌려 내려오고 있었다.
“이게, 이게 뭐야….”
창백하게 질린 지환이 손으로 더듬더듬 제 배를 만져 보았다. 이상한 둥그런 게 아래로 아래로 내려가는 중이었다. 기겁을 하며 홱 손을 뗐다.
그런데 갑자기 아랫배와 구멍 사이에서 엄청난 통증이 느껴졌다.
“아악!”
지환이 배를 움켜쥐고 엎드렸다. 구멍이 살살 열리는 게 느껴졌다. 슬금슬금 열리는 구멍에선 액체가 흘러나와 쉴 새 없이 후드득 떨어졌다.
“흐으윽, 윽, 이게 무슨… 아으! 이게… 이게….”
바닥에 무릎을 꿇고 엎드려 침대 위에 얼굴을 묻었다. 손을 허우적거리다가 시트를 한 움큼 쥐어 잡고 아래에서 느껴지는 생소한 감각에 엉엉 울었다.
“아아악!”
쯔즈즉 구멍이 벌어지며 둥근 알 같은 게 아랫부분부터 천천히 모습을 드러냈다. 한없이 쏟아지는 액체에 듬뿍 젖은 알이 힘겹게 찬찬히 나오다가, 절반가량 튀어나온 후에는 액체를 윤활제 삼아 매끄럽게 쏙 구멍을 빠져나왔다.
타원형의 알이 제 구멍에서 나와 툭 떨어지는 모습을 지켜볼 새도 없이 지환은 서럽게 울며 침대에 얼굴을 묻었다. 지금 무슨 일이 일어난 건지 알 수 없었다. 너무도 혼란스러웠다. 좆같다는 말로도 이루 말할 수 없는 현실의 참담함에 눈물만 주르륵 흘러내릴 뿐이다. 너무 무서워서 자신이 낳은 알을 쳐다볼 수도 없었다. 이게 뭔, 진짜 씨발….
뚝뚝 떨어지는 눈물에 젖어 드는 시트만을 멍하니 보고 있는데 알 쪽에서 쩌적 하는 소리가 들렸다. 알이 갈라지는 듯한 불길한 소리였다. 정말이지 뒤돌아보고 싶지 않았다. 지금 당장 잠에 빠져들고 싶었다. 실제로 그러려고 하기도 했다. 하지만 흐느적거리는 무언가가 자신의 종아리를 타고 오르는 감촉을 느끼니 그럴 수 없었다.
오싹 소름이 돋는 끈적거림에 몸이 굳었다. 지환이 가만히 멈춰 있자 그것은 허벅지로 꿈틀꿈틀 기어갔다. 그리고 작은 입을 벌려 귀두를 앙 물었다. 축축한 점액질이 귀두를 감싸고 오물거리자 그제야 정신이 든 지환이 소리를 지르며 제 성기에 달라붙은 것을 떼어 벽에 내던졌다.
힘없이 날아가 벽에 부딪혀 바닥에 떨어진 작은 것이 미약하게 울음소리를 냈다. 작은 덩어리 같은 것에 다리 같은 가느다란 촉수 몇 개만 달려 있었다. 덩어리가 오들오들 떨었다. 꾸웅꾸웅 소리가 애처롭게 퍼졌다.
지환은 한순간 자신이 쓰레기가 된 듯한 기분을 느꼈다. 지환이 저 작은 것에 주춤주춤 다가갔다. 도망쳐도 모자랄 판에 이래도 되나 하는 생각이 잠시 떠올랐지만 저 애처로운 모습에 휙 물거품처럼 사라졌다.
“…아이야?”
[꿍, 꾸웅.]
오물이 뭉쳐지는 듯한 소리를 내며 미약하게 떨던 그게 고개를 들었다. 지환의 눈엔 그렇게 보였다. 작은 것이 다시 저에게로 꿈틀꿈틀 다가왔다.
“아, 이걸 어쩌지….”
다시 제 귀두를 물기 위해 다가오는 게 뻔한 움직임에 지환은 제지하듯 덩어리의 몸통 한가운데를 잡아 들어 올렸다.
“귀염둥이야, 잠깐만. 먹을 수 있는 걸 찾아 줄게.”
[꾸우우웅.]
배고프다고 보채는 듯한 울음소리가 길게 퍼져 갔다. 아니, 왜 다 안 먹어? 그럴 거라고 예상은 했지만 막상 먹을 수 있는 음식이 없는 걸 눈으로 직접 보자 착잡해져 갔다. 이거… 그거겠지? 촉수 여러 개 달려 있는 이상한 생물체의 새끼.
그 촉수들이 정말 성기 같은 거였던 거야? 근데 입이 달린 것도 있었잖아…. 뭐야 진짜. 몸 구조가 어떻게 생겨 먹은 거야. 입인 것도 있고, 팔인 것도 있고, 다리인 것도 있고, 성기인 것도 있는 걸까. 어떻게 된 구조인지 진짜 연구해 보고 싶다.
그럼 이거는 설마 정액이나 뭐 그런 거로 영양 보충하는 거야? 누가 아니라고 해 줬으면 좋겠다. 아니, 애초에 인간도 없는 행성에서 인간의 분비물로 영양 보충을 한다는 게 말이 안 되잖아. 다른 게 분명 있을 텐데. 없어도 있어야 돼. 내 정액을 먹이면서 키울 순 없잖아.
그보다 애초에 나랑 그 용병이 촉수 생물의 식량으로서 잡혀 있었던 건지, 다른 이유가 따로 있었던 건지도 모르겠다. 그냥 다시 그 행성에 풀어 주는 게 가장 나을까.
그런데 솔직히 조금 욕심이 났다. 한 번도 본 적 없는 미지의 생물. 그리고 어찌 생각하면, 정말 이런 표현을 쓰고 싶진 않았는데 내가 낳은 아이이기도 했다. 어디까지나 그런 식으로 생각하자면! 이지만. 게다가 지구와 비슷한 환경에서 서식하는 생물이라 그런지 여기서도 잘 살아갈 것 같기도 하고. 그냥 돌려보내 주기엔 조금 욕심이 나는 구석이 있었다.
그리고 사실 아까 전부터… 계속 몸이 화끈거렸다. 그 미칠 듯한 쾌락을 기억하는 몸이 저절로 달아올랐다. 입이 조금 닿았던 성기는 쿠퍼액까지 찔끔 흘리는 상태였고 액들을 줄줄 쏟아 낸 구멍도 고통은 말끔히 사라진 채로 뭐라도 넣고 싶어 안달을 부렸다. 정말 부정하고 싶지만 몸이 발정이라도 난 듯 자극을 원했다.
내게 남아 있는 인간성과 욕구가 부딪히다 결국 욕구가 승리했다. 꾸물거리는 아이를 바닥에 내려 두고 그 앞에 털썩 앉았다. 진짜 어이없는 상황이다, 이거.
작은 몸을 이끌며 조물조물 기어 온 그것이 다리 사이에 파고들었다. 자그마한 입을 벌려 귀두를 앙 물었다. 쭈웁, 춥 빨아들이는 소리와 함께 강한 자극이 확 퍼졌다.
“아!”
나는 아예 드러누워 다리를 벌렸다.
“흐으읏….”
작은 몸집과 다르게 쭙쭙 빨아들이는 힘은 그 행성에서 만났던 성체에 뒤지지 않았다.
“흐, 학!”
움찔움찔 떨며 허리가 훅 올라감과 동시에 다리가 한계까지 벌어지며 사정했다. 사정이 끝나니 허리가 다시 툭 떨어지고 가쁜 숨이 터져 나왔다. 겨우 사정 한 번인데 지나치게 체력 소모가 심했다. 뭔 정기라도 빨아 먹는 건지. 꼬물거리는 작은 아이는 바닥 곳곳에 얼룩을 남긴 흰 정액을 쪽쪽 핥아 먹었다. …진짜 저게 먹이인가 봐. 어떻게 하지.
***
아이는 하루가 다르게 쑥쑥 자랐다. 손바닥만큼 조그마했던 아이가 겨우 일주일 만에 벌써 내 종아리까지 왔다. 이거 너무 비정상적으로 빨리 자라는 거 아닌가 걱정이 들 정도였다.
이제 아이의 몸체에선 슬슬 그 이상한 점액질 같은 게 분비되기 시작했다. 기어 다니는 곳곳에 끈적한 자국을 남기며 끌고 다녔기에 연구소에 자리를 마련하기로 결심했다.
애초에 연구실에 데려가려고 키울 결심을 한 거기도 하고. 소장님한테는 연락을 미리 해 둔 상태였다. 물론 내가 낳았다고는 말 못 하고 주머니에 들어가 있었던 것 같다고 얼버무렸다. 똑똑하긴 하지만 이상한 데서 순진한 구석이 있는 소장님은 바로 수긍을 하며 새로운 외계 생물을 들이게 되었다고 좋아하셨다.
원래는 집에서 키우다 2주 후에 들이겠다 했는데 온 집안을 끈적이게 만드는 아이를 계속 둘 순 없었다. 마침 엊그제 준비를 끝마쳤다고 하니 연락하고 데려다 두어야겠다.
그런데 그러면 먹이는 어떻게 주지? 내가 같이 우리에 들어가 몸을 대 줄 순 없잖아. 그리고 사실 아이가 우리에만 있으면 나도 좀 곤란했다. 그 행성에 다녀온 이후부터 몸이 이상해져서 시시때때로 발정이 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뜬금없이 몸이 달아오르고 아무 자극이 없어도 저절로 서질 않나, 구멍이 간지럽기도 하고. 심지어 어쩔 땐 저절로 구멍 쪽으로 손이 갔다. 허리도 괜스레 묵직하게 느껴지면서 확 열이 몰리면 이성이 금방이라도 끊길 것 같은 가느다란 실로 변해 갔다.
이게 차라리 규칙적인 반응이기라도 하면 상관없는데 불규칙적으로 갑자기 상태가 변하니까 밖에 나가는 것도 걱정이 됐다. 밖에 나갔다가 갑자기 그렇게 되면 어떡해. 길거리에서 발정이 나 얼굴을 벌겋게 물들이고 다리를 부비적거리며 비틀비틀 집에 돌아오는 모습은 상상만 해도 몸서리치게 끔찍했다.
연구소에선 또 어쩌지. 물론 이건 일시적인 후유증일 테니까 곧 사라질 거라 생각하긴 했다. 그래서 별 신경을 안 쓰고 있었지만 요즘 들어 어쩐지 그 주기가 짧아지고 몸이 점점 더 민감해지는 것 같아서 걱정이 들었다.
건강 검진에선 아무 이상 없다고 했는데. 저 아이를 낳고 그다음 날 바로 병원에 갔지만 어떤 이상도 없이 건강하다는 답변을 듣고 나왔다. 그렇다고 내가 요즘 난데없이 발정이 나는데 몸에 이상이 있는 거 아닌가요? 하고 물어볼 수도 없잖아. 그걸 어떻게 물어봐. 아무튼 곧 사라지긴 하겠지? 일단 그렇게 믿을 수밖에 없다.
아이는 오후쯤 되자 연구소에 데려갔다. 내게 떨어지지 않으려 하듯 꿍꿍거렸지만 잘 달래 넣어 두고 왔다. 아직 2주가 되진 않았지만 소장님은 흔쾌히 허락하셨다. 아직 일주일이 남은 내 휴가는 자연스레 반납할 수밖에 없었다. 어차피 몸도 이상하고 아이가 성장할 때까지는 하루에 한 번씩은 들러 줘야만 했다. 그러니 그냥 내일부터 나오기로 했지.
그렇다고 안이 훤히 보이는 저 투명한 우리에서 뭘 할 수는 없었다. 대신 산책시켜 줘야 한다는 핑계로 하루에 한 번씩 빠져나왔다. 그렇게 아이를 데리고 가 먹이를 주고 욕구를 채운 다음 다시 돌아왔다. 집이랑 연구소가 가까워서 천만다행이지.
급할 땐 공중 화장실에서 한 적도 있었지만 흔적을 치우는 게 너무 고생스러웠던지라 다음부턴 절대 밖에서 하지 않았다. 신음을 참는 것도 고역이었고. 그땐 정말 갑자기 몸이 달아올라서 어쩔 수 없었었다.
아이는 놀랄 정도로 쑥쑥 자라더니 어느 순간부턴 성장이 좀 느려졌다. 한 달이 지난 지금, 이제 아이는 내 가슴께까지 왔다. 몸체가 거느리는 촉수들의 수도 많아지고 크기도 다양해졌다. 우리가 주로 연구하는 건 몸에 붙은 촉수들과 끊임없이 분비되는 점액질이었는데 그 점액에 최음 성분이 있다는 게 막 밝혀진 참이었다.
역시 그럴 줄 알았지. 또한 종종 팍 터뜨리는 것처럼 분출하는 액체엔 역시나 각성제 성분이 함유되어 있었고. 나는 다른 아이들보단 이 아이에 초점을 맞춰 돌보고 연구했다.
이 생물은 그 특이한 몸의 구조와 분비하는 점액질의 성분으로 반짝 관심을 끌었다. 그리고 그래서인지 나에게 새로운 제안 하나가 들어왔다.
“…그 행성에 다시 가라고요?”
“이번엔 사기가 아니고, 아주 좋은 기회야! 그냥 편하게 생각하면 돼. 평범하게 지내는 모습 좀 찍고 인터뷰도 좀 하고 그러는 거지.”
그거 찍으면 다큐멘터리가 아니라 포르노 될걸요.
“일단 전 안 갑니다. 절대 안 찍을 거예요.”
“허 참, 이런 기회를 또 어디서 얻으려고.”
“안 가요. 제가 가면 우리 귀염둥이는 누가 돌봐요.”
“당연히 같이 가는 거지. 그럼 거기 왜 가겠어? 응? 부모도 찾아 주고 그러려고 가는 거지.”
“아무튼 안 가요.”
갑작스러웠던 그 제안은 그렇게 마무리된 줄 알았다.
“성지환 씨, 이건 정말 안 잡으면 땅을 치고 후회할 그런 엄청난 기회야!”
“…이번엔 또 뭔데요.”
“1년 동안 진행하는 프로젝트인데 자네가 그 행성에 가서 외계 생물들이랑 같이 생활하며 부대끼고 어? 그렇게 지내면서 사진도 찍고, 글도 쓰고, 보고서도 째깍째깍 올리고 그러는 거지. 이건 뭐 찍는 것도 아니다? 그냥 자유롭게 편하게 지내다가 가끔 근황만 좀 올려 주고, 돌아와서 인터뷰 좀 해 주면 돼!”
나는 다신 그 행성에 갈 생각이 없었다.
귀염둥이야 아직 행성의 그것들보다는 작은 데다 내 말을 잘 따라서 괜찮은 거지. 딱 버틸 수 있을 정도의 쾌락만 충족시키니. 하지만 행성의 그것들은 그 정도가 아니다. 한 번도 가 보지 못한 한계를 넘어서 무작정 더 더 높게 끌고 갔다. 지나친 쾌감에 고통마저 느꼈을 정도니 말 다했지.
심지어 그때 그 용병들이 없었으면 정말 죽을 때까지 박혔을지도 모르잖아. 정신이 다 망가졌을지도 모른다. 아직도 그때 생각을 하면 소름이 끼치는데.
게다가 안 그래도 귀염둥이가 성장함에 따라 통제하는 게 버거워지던 참이다. 딱 그만해야겠다, 싶은 정도까지 박히고 멈추려 해도 집요하게 문질러 댔다. 이젠 덩치도 커져서 몸을 떼 내는 것도 일이었다. 겨우 몸을 떼어 내도 다시 붙여 오고. 결국 발작 난 것처럼 파르르 떨며 가고 나서야 끝낼 수 있었다. 이 귀염둥이도 슬슬 감당하기 힘들어지는데 그 행성에 가면…. 역시 거긴 아니야.
“아무튼 안 가요. 절대 안 갈 거니까 뭐라 하지 마세요.”
“어휴. 그래, 네가 안 간다는데 내가 어떻게 부추기겠냐. 그래도 조건은 한 번 들어 보지 그래?”
“어차피 안 갈 건데 무슨 조건이요?”
“연봉이 진짜 장난 아니던데. 싫다고 하니 어쩔 수 없지.”
손끝이 움찔거렸다.
“그… 그렇게 많아요?”
아무리 생각해도 거기 가는 건 미친 짓이다. 심지어 이번엔 정식으로 가는 거니 중간에 날 구해 줄 사람도 없을 게 뻔한데.
“내가 정말 듣고 깜짝 놀랐다니까! 참, 나라도 가고 싶을 정도였는데 그쪽에선 성지환 씨를 원하니까. 그런데 그렇게까지 거부한다면야 아깝지만 어쩔 수 없지.”
“…얼만데요?”
이건 그냥 단순한 궁금증이다. 안 갈 거긴 한데 그래도 한 번 들어 보기야 하는 거지. 저렇게 말씀하시니 궁금하잖아.
소장님이 내 귓가로 가까이 다가와 속삭였다. 상상도 못 한 액수에 눈이 동그랗게 떠졌다.
“그, 그거 진짜예요? 그렇게 많이 준다고요?”
“거참, 그렇다니까! 자네가 사기당한 지 얼마 안 돼서 의심하는 것도 알겠는데 여기는 믿을 만한 곳이잖어. 게다가 자네 꿈이 새로운 행성을 탐사해 보는 거라고 그렇게 떠벌떠벌 말하고 다녔잖아. 그래서 저번에도 1년이나 떠나는 프로젝트를 허락해 준 거였고. 그건 사기였지만.”
“아, 그거야 정말 감사했죠.”
“그래, 그래서 이번에도 허가해 주는 거야. 자네가 계속 바라 왔던 꿈을 이룰 기회니까. 이참에 원 없이 연구도 해 보고, 잘 지내도 보고 그러고 돌아와.”
소장님의 눈이 인자하게 접혔다. 가끔 욕을 하긴 해도 정말 가족 같은 상사분이셨다. 다잡았던 마음이 스르륵 허물어졌다. 한없이 약해져 물렁이는 마음에 방금 들었던 액수도 어른거렸다.
…다시 생각해 보니 괜찮은 기회인 것 같기도 해. 물론 그곳은 진짜 위험하지만 그래도 목숨의 위협까진 아니니 괜찮지 않나? 죽이진 않잖아. 험한 꼴 당하긴 해도….
솔직히 기분도 꽤 좋았고. 물론 그것도 적당히 해야 좋은 거로 끝나는 거지만. 게다가 이번엔 경호 인원도 많이 데려가고, 여러 장비들도 잘 챙겨서 가면 되는 거 아닌가? 그럼 강제적으로 뭔 일을 당할 린 없겠지.
아, 어쩐담. 생각할수록 너무 좋은 것 같아. 무엇보다 돈이 참…. 물 들어올 때 노 저으라고 하잖아. 지금이야 반짝 관심이 집중됐다지만 언제 사그라들지 모른다. 내가 살면서 언제 그런 돈을 만져 보겠냐고. 그 행성도 생명이 왔다 갔다 하는 곳도 아니고. 이상한 생물들만 빼면 조용하고 평화로운 곳이었다.
아, 젠장. 갑자기 진짜 좋아 보여. 그리고 소장님도 저렇게 강력히 추천하시니 이건 진짜 해야 되겠다 싶고. 오죽하면 저러시겠냐고.
“거기에서 저 보호해 줄 인력은 당연히 있겠죠?”
“아이고, 그거야 당연하지! 아직 탐사가 안 끝난 행성이 맞긴 하니까. 그래도 진작 탐지기 한 번 돌리긴 했는데 환경은 지구랑 거의 똑같다더라. 보호 인력으로는 용병 한 팀은 보내 준다는데. 7명 구성으로.”
“으으으으음….”
진짜 괜찮은데. 저 정도면 충분히 안전하지 않을까.
“내가 너한테 이상한 거 권유 안 한다는 거 알잖아.”
정말 그렇긴 했다. 무엇보다 내 의견을 많이 존중해 주셨고. 어느 직장에서 직원이 꿈을 이룬다고 1년 동안 다른 행성에 가 있겠다는 걸 보내 주겠냐.
으으으음, 침음을 내며 눈을 감았다. 정말이지 생각할수록 너무 괜찮은 것 같았다.
“알겠어요. 할게요.”
“어? 정말? 그럼 일단 여기 사인하고 아, 거기도!”
소장은 신이 나서 어깨를 들썩거렸다. 얼굴엔 만연한 웃음이 번졌다. 지환은 그런 소장을 보며 한 번 픽 웃고는 사인을 하고 지장을 찍었다. 머릿속에서는 괜찮을 거라는 행복 회로가 활기차게 돌아갔다.
…용병이 이 사람들이었어?
익숙한 얼굴들이 비쳤다. 날 버리고 튄 그 새끼와 공공연히 이상한 음담패설을 지껄였던 그 후배. 그리고 둘의 미쳐 돌아가는 애정 행각을 모른 척하던 용병들. 지환은 입을 떡 벌리며 그들을 보았다.
“안녕하십니까.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저는 팀장 이해율입니다.”
정상인은 아닌 것 같던 후배가 정상인 같은 비즈니스 미소로 손을 내밀었다. 예에… 하며 떨떠름하게 악수를 하고 우주선에 탑승했다.
뭐야…. 그나저나 팀장이면 저 사람 직급이 더 높지 않나? 그런데 왜 선배라고 그랬지. 힐끔 옆을 보자 마지막 모습까지 정신이 온전치 않았던 그 용병도 제정신을 차린 듯 무표정으로 앞을 응시하고 있었다. 근데 저 사람도 대단하다. 나였으면 절대 저 후배 얼굴 못 봤을 텐데.
진짜 둘이 무슨 사이인 걸까. 궁금하네. 대화하는 거 들으면 얼핏 애인 같기도 했는데. 크기를 부풀려 가고 있는 오지랖이 꿈틀거렸다. 아니야, 남 사정 알아서 뭐 할 건데. 궁금해하지 말자.
침묵 속에 잠긴 공간이 무겁게 가라앉았다. 살갗을 찔러 대는 어색한 공기가 너무 불편했다. 체할 것 같아. 나는 결국 몇 번 망설이다 가벼운 투로 운을 뗐다.
“저, 근데 여긴 분위기가 자유로운 편인가 봐요. 보통 용병들끼리 후배, 선배라고 부르는 건 처음 들었는데.”
“…….”
“…….”
적막이 흘렀다. 아무나 말 좀 해 줘…. 엄청 뻘쭘하잖아….
“아…. 하하, 여기가 사설이라 그런가 봐요. 사실 저희도 그런 호칭으로 부르진 않는데 저 두 분은 워낙 사적으로 친밀한 사이시라….”
“뭐? 허, 누가 누구랑 친밀하다는 거야.”
지금은 정신을 되찾았지만 한때 정신이 나갔었던 용병이 어이없다는 듯 헛웃음을 지으며 말을 끊었다.
“그리고 당신은 남 일에 뭐 그리 관심이 많아. 생물학자라 그런가, 원….”
아니, 생물학자가 뭔 상관인데. 저 사람은 도대체 생물학자를 뭐라고 생각하길래 저번부터 자꾸 저딴 소리를 하는지 모르겠다.
“그나저나 몸은 좀 회복되셨나 봐요. 걱정했는데 괜찮아 보이셔서 다행이에요.”
“뭐? 지금 누구 엿 먹여? 씨붉.”
옆의 용병이 입을 급하게 막으며 내게 눈짓을 했다.
“죄송합니다. 하하, 좀 다혈질이셔서….”
“아, 아뇨. 괜찮아요.”
그래도 다행히 대화에 물꼬가 좀 트여 그 후론 행성에서의 계획을 주고받으며 나름 도란도란 이야기하면서 갈 수 있었다. 그 팀장이란 사람은 쭉 무미건조한 표정으로 자료나 읽고 있었고, 그 용병은 심기가 불편하다는 티를 팍팍 내며 험상궂게 앉아 있었지만 그래도 나름 평화로운 비행이었다.
이야… 진짜 다시 왔네.
여전히 푸릇푸릇한 그대로다. 새삼스레 주위를 둘러보는 것도 잠시 우선 다른 칸에 탑승 중이었던 우리 귀염둥이부터 풀어 주었다. 비대해진 몸체가 꾸물꾸물 나왔다.
“고향에 오니까 좋아?”
끈적한 몸체를 쓱 쓸어 주니 좋다고 촉수들을 휘적거렸다. 일단 지환의 눈엔 그래 보였다.
용병은 꺼림칙한 눈으로 귀염둥이를 바라봤다. 그러게 왜 온 거지. 저 사람도 돈 많이 준다고 해서 왔나. 그런 것 같은데.
쭉 건조한 표정이었던 후배는 웃음을 띠며 용병의 귀에 뭐라 속닥거렸다. 용병의 얼굴이 붉으락푸르락 변하며 구겨져 갔다. 지환은 또 피어오르려는 호기심을 누르며 남의 일에 관심 끄자고 되뇌었다.
***
“하, 그, 그만하자, 이제 배부르, 읏!”
여럿이서 뭉쳐 다녀서 그런지 이 행성의 이상한 생물들은 우리에게 쉬이 접근해 오지 않았다. 중간에 그 미친 사마귀도 만났지만 횅횅 공중에서 원을 그리며 비행하다가 훅 날아갈 뿐이었다. 육중한 몸집을 가진 촉수는 단연 눈에 띌 거라 예상했지만 그도 역시 모습을 드러내진 않았다.
위험이 도사리고 있는 행성이 아닌, 사람이 살지 않는 평온한 산골짜기에라도 온 것 같았다.
“하으, 앗!”
귀염둥이는 행성에 도착하자 어느 순간 느려졌던 성장 속도가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이젠 다시 연구소로 데려가지도 못할 만큼 커져 성체가 되었다. 용병들도 하루가 다르게 커 간다고 신기해했지만 오직 한 명, 나와 같이 촉수들에게 박혔던 그 용병만은 그런 귀염둥이를 더더욱 꺼렸다. 이젠 곁에 오기도 싫은지 본인이 자리를 피했다. 후배란 자는 그럴 때마다 실실 웃고 말이야. 이상한 사람들이야.
나야 귀염둥이가 꺼려지진 않았다. 내가 직접 키워서 그런가. 다만 이젠 통제가 불가능해지고 있어서 곤란할 뿐이지. 한계를 넘어서까지 몰아붙여지진 않았지만 거의 엉엉 울며 진이 빠질 때까지 계속 박히긴 했다. 그래도 내가 잘 키워서인지 귀염둥이도 그만두어야 할 때를 인지하고 있는 것 같긴 했다. …아마도?
“흐으으, 아! 안 돼, 이제, 이! 흑!”
울퉁불퉁한 돌기들이 부드러운 살을 몽땅 헤집었다. 구멍 안에서 촉수를 뒤틀고 돌리고 현란할 정도로 움직여 댔다. 엎드린 지환은 허리가 붕 떠서 없어지는 것만 같았다. 깊은 내벽에 퍽퍽 촉수들이 박힐 때마다 화려한 색채가 번쩍거리고 어둠이 내려앉았다. 그러다 다시 번쩍, 다시 정전. 이게 끊임없이 반복됐다.
“흐, 웁! 우웁!”
눈이 홱 풀리자 입에 촉수가 푹 쑤셔 들어와 액체를 한가득 싸지르며 입 안을 유린했다. 목구멍까지 푹푹 박혀 오는 촉수를 입에 물고 쭉쭉 빨아들였다. 뭉근히 느껴지던 쾌감이 더 선명해져 갔다. 내가 왜 이걸 빠는지 모르겠는데 그냥 너무 좋았다. 더, 더 싸 줬으면 좋겠어. 좀 더.
“아! 아!”
촉수가 주륵 빠져나가고 채 삼키지 못한 액체가 턱 아래로 후드득 떨어졌다.
“흑! 조, 좋아, 아! 흐앙!”
풀릴 대로 풀린 구멍이었지만 약효 때문인지 미끌미끌한 촉수를 콱콱 물었다. 격하게 흔들리는 몸이 매가리 없이 홀랑 앞뒤로 젖혀지자 촉수 여러 개를 붙여 기둥같이 굵게 만들어 앞에 놓아 주었다.
나는 그 기둥을 양팔로 끌어안았다. 이젠 퍽퍽 부딪히는 몸이 기둥에 쓸렸다. 붉게 부어오른 유두가 마찰될 때마다 쓰라렸지만 결이 다른 열기가 피어올라 나쁘지 않았다. 매끄러운 촉수에 온몸이 비벼지는 건 희락 그 자체였다.
촉수가 박혀 부풀어 오른 배가 안고 있던 기둥에 툭 부딪혔다. 배 속의 촉수까지 눌러지는 느낌에 눈이 탁 뒤집혔다. 이지 없이 달달 떨리는 몸은 여전히 기둥에 비비적거리며 퍽퍽 박혔다.
“허으윽, 으아….”
지환은 기둥을 안은 그대로 미끄러져 툭 쓰러졌다. 몸은 여전히 파들파들 떨며 끝나지 않은 쾌락을 더듬고 있었다.
하루에 한 번씩 귀염둥이와 산책 가는 걸 정말 산책이라고 여기는 이는 없을 것이다.
호위도 없이 귀염둥이만 대동해서 숲 깊은 곳으로 들어가니 날 따라오는 사람들은 없었다. 오히려 피하려 하지 않을까. 이미 내가 박히는 모습을 본 사람들이니까 대충 알겠지.
또한 나 역시 수치심이 있는 인간이라 박히는 모습을 굳이 누군가에게 보이고 싶지 않아서 꼭 어디로 산책을 간다고 말을 해 두었다. 누가 쾌락에 취해 허리를 흔드는 꼴을 보이고 싶어 하겠냐고.
이제 여기에서 산책이라는 말은 약간 그렇고 그런 의미로 통하게 되었다. 내가 지금부터 어디에서 조금 그렇고 그런 걸 할 거니까 여기로는 오지 마세요~ 같은 의미로. 그런데 왜 하필 저 사람이….
그 특유의 무덤덤한 표정이 나를 빤히 응시하고 있었다. 양쪽 다 민망해할 만한 상황이었지만 저 후배는 아무렇지도 않은 듯 그저 빤하게 쳐다보고만 있을 뿐이었다. 언제부터 봤던 거지?
“안녕하십니까.”
후배 용병이 금세 비즈니스 미소를 입가에 걸치며 말을 걸어왔다. 난 아직 땀도 식지 않은 채 구멍에서 왈칵 흐르는 액들을 여실히 느끼며 헉헉거리고 있었다.
“…….”
“저것 좀 빌려 갈 수 있겠습니까?”
“…네?”
“어차피 알고 계실 테니 바로 말씀드리자면, 사실 선배가 그렇게 박히는 모습을 한 번 더 보고 싶습니다. 그때야 당황해서 정신이 없었지만 계속 눈앞에 어른거립니다. 흐물흐물 풀려서 줄줄 흘려 대는 구멍이나, 좋다고 개처럼 헥헥거리는 얼굴이나. 뭐 그런 것들 말입니다.”
“…….”
저 사람 미친 것 같은데….
“그래서 기껏 싫다고 꽥꽥대는 선배를 겨우 설득해서 왔건만 아무리 뒤져도 안 나타나는 겁니다. 그나마 나왔던 게 구멍엔 박지도 않는 시시한 슬라임 같은 것뿐이고.”
슬라임이라면…. 아니, 그럼 그 용병한테 슬라임으로 뭐라도 한 거야? 저 미친놈과 슬라임한테 시달렸을 용병이 갑자기 안쓰러워졌다. 거기서 싸면 현타 장난 아니던데. 심지어 그걸 후배한테 보이다니. 저 후배는 정신이 이상한 것도 이상한 건데 뒤틀린 괴팍함까지 지니고 있었다. 무서운 사람이야….
“그… 일단 본인 의사부터 물어야 하지 않을까요?”
“걱정 마십시오. 좋다고 헤벌레 하니까.”
…그거 아닐걸?
“어, 그… 솔직히 좀 곤란해서요….”
“이유가 뭡니까. 당연히 저것에겐 해를 끼치진 않겠습니다. 그냥 영상 하나만 찍으려는 것뿐입니다.”
아니, 미친놈아….
“그런데 두 분은 혹시 무슨 사이신 거죠?”
“연인입니다.”
아, 역시. 그런데 조금 꺼림칙한 점이 있었다.
“그… 상호 동의한 사이인 거죠? 그러니까 망상이나 협박 같은 거 아니고 진짜 애인인….”
조심스럽게 물었지만 날 쳐다봐 오는 표정이 살벌해서 더 말을 잇진 못했다. 완전 무섭잖아….
“아니, 아닙니다. 그, 잘 어울리세요….”
급하게 말을 마무리했다.
“그래도 그분한테 제가 직접 물어봐야 할 것 같아요. 당사자 동의 없이는 안 되겠습니다. 그리고 우리 귀염둥이도… 엄….”
그러고 보니 얘한텐 어떻게 허락을 맡지. 그냥 앞에 두면 되려나. 마음 내키면 하고, 아니면 그냥 가만히 있겠지.
“당사자 동의라… 알겠습니다. 잠시만 기다려 주십시오.”
“네? 지금 여기서요? 아니, 잠깐….”
후배 용병은 말릴 새도 없이 떠나 버렸다. 난 여전히 액을 줄줄 뱉으며 귀염둥이에게 기대앉아 있었다. 어이없었던 대화를 곱씹으며 어기적어기적 걸어가 미리 챙겨 온 수건으로 몸을 닦고 새 옷을 주섬주섬 입었다. 나 여기서 기다려야 돼…?
시간이 조금 흐르자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들리고 두 명이 나타났다. 용병은 씩씩거리며 억울함이 가득한 표정이었다. 봐 봐…. 저게 어떻게 좋다고 헤벌레 하는 표정이냐.
“선배, 말씀하세요.”
“그… 익….”
와, 진짜 딱 봐도 엄청 싫어하는 표정이다.
“선배.”
얼핏 봐선 그냥 예쁜 눈웃음이었지만 표정에 서려 있는 무언의 강요가 용병을 채근하고 있었다.
“그, 그것 좀… 씨이발, 빌려… 빌려주….”
“당사자 동의는 됐군요.”
웃는 낯이 참 산뜻했다.
“아… 그, 우리 귀염둥이 의견도 보죠. 하하, 귀, 귀염둥이야? 저 사람 어때?”
이딴 말을 지껄이는 나도 참 나다. 하지만 쉽게 거절할 수 없는 그런 게 있다고. 자다가 갑자기 칼 맞아 죽을 것 같은 분위기가 도사리고 있는데 어떻게 거절해? 난 평범한 소시민일 뿐이라고.
저 죽을상을 한 용병에겐 좀 미안하기야 했지만 뭐 어떡하냐. 그래도 같은 용병이니까 뭐, 잘 해결해 보세요.
후배가 툭 미는 손길에 용병이 촉수의 몸체 앞에 섰다. 촉수가 꾸물꾸물 움직여 용병의 몸을 더듬어 갔다. 뭐라 형용할 수 없는 표정이 용병의 얼굴에 떠올랐다. 처절해 보일 정도의 표정이다.
아이고… 힘내세요…. 그래도 그때처럼 온종일 그러진 않을 거예요. 조금만 버티시길.
나는 주춤주춤 숲 밖으로 걸음을 옮겼다. 그런데 억센 손이 내 팔을 꽉 잡아 돌렸다.
“왜, 왜요?”
“돌발 상황이라도 발생하면 어쩝니까. 여기서 대기하고 계십시오.”
…이게 무슨 개소리야?
“아니, 뭔….”
“저기에 앉아 계시면 되겠습니다. 자위해도 모른 척해 드릴 테니 걱정 마십시오.”
저게 미쳤나. 진짜.
“전, 전 갈 건데요?”
“앉으라고.”
“넵.”
갑작스러운 반말에 기가 죽은 나는 조용히 걸어가 털썩 앉았다.
“아, 흣, 으으윽!”
왜 이렇게 된 걸까. 여기서 용병의 촉수 쇼를 생생한 라이브로 직관해야 하는 내 처지를 믿을 수 없었다.
“아! 아악! 흐, 제발, 좀! 야! 이해율 이, 개 씨, 윽! 개씨발 새끼!”
벌겋게 달아오른 얼굴로 푹푹 박히며 목에 핏대가 서도록 소리치는 모습이 너무 처절해 보여 애써 외면했다.
“네, 선배. 여기 보세요.”
이 모든 모습을 저 후배는 카메라에 면밀히 담아 내고 있었다. 한 손엔 카메라를 들고 한 손으로는 자위를 하며 말갛게 웃고 있는 게 돌아도 단단히 돈 것 같다. 범죄 현장에 가담했다는 죄악감에 고개를 푹 숙였다.
죄송합니다…. 그래도 기분은 좋으실 거예요. 그건 제가 보장합니다.
“흑! 흐! 어으윽!”
탄탄히 자리 잡은 근육들 위로 꿈틀거리는 촉수들이 쯔윽 지나갔다. 끈적한 점액이 몸에 흩뿌려질 때마다 엉덩이 근육이 촉수를 끊어 먹을 듯이 꽈아악 수축했다. 그럼에도 촉수의 피스톤질을 멈출 순 없었지만.
“하으악!”
“읏.”
한 손에 카메라를 든 후배가 사정을 했다. 확 고개를 내렸다. 눈을 씻고 싶었다. 내가, 내가 무슨 죄를 지었는데. 미친놈들아…. 그래도 저 용병만큼 억울하진 않을 것 같기에 마음을 추슬렀다. 앞으로 잘 대해 주자.
용병의 몸이 허물어짐과 동시에 귀염둥이가 몸을 빼고 나에게 꿀렁거리며 다가왔다. 한 번 몸체를 쓰다듬어 주곤 쓰러진 용병을 봤다. 용병에게는 바로 후배가 다가갔다. 쓰러진 몸을 안으며 끈이 툭 떨어진 듯 푹 숙여진 얼굴을 들어 올려 쪽쪽 입을 맞췄다.
“저… 저는 이만 가겠습니다아….”
아주 작은 소리로 들릴 듯 말 듯 말하고 얼른 뒤돌아 숲을 빠져나갔다.
꽤 시간이 걸린 내 산책에 용병들이 몸은 괜찮으시냐고 물어 왔다. 대수롭지 않게 대답하며 내 막사로 가 간이침대에 누웠다. 진짜 힘겨운 하루였다.
***
“네? 관리직이요?”
[그래. 허이구, 이거 진짜 좋은 기회다, 지환아!]
이제 지구로 돌아갈 때가 얼마 남지 않은 시기였다. 일주일에 한 번씩 보고서를 올리고 이 주에 한 번씩 화상 통신으로 보고를 했다. 솔직히 이 시간은 말이 보고지. 서로 근황이나 물으며 안부를 전하는 시간에 가까웠다.
그런데 평소처럼 근황을 묻던 소장님의 어조가 갑자기 진지해졌다. 무슨 일인가 싶었더니 갑자기 나에게 새로운 제안을 하나 더 해 왔다.
지금 내가 지내고 있는 이 행성을 정부 슬하의 행성으로 삼아 새 관리직을 모집하려 하는데, 마침 나에게 프로젝트를 제안한 JK 측이 나를 총괄 관리자로 추천했다는 것이다.
모든 행성에 관리직이 있는 건 아니었지만 보통 사유지로 팔아넘기지 못하거나, 관광 장소로 활용되지는 않으나 인간이 거주할 수는 있는 환경의 행성일 경우 관리직을 두어 관리하게 했다.
관리자들은 돌아가며 행성에 거주하거나 각 행성에 거주하지 않더라도 해당 행성과 관련된 업무 처리를 맡아 했다. 담당 행성이 어디냐에 따라 꿀 빠는 직업일 수도, 까다로운 직업일 수도 있는 것이다. 그런데 이 행성의 관리자를? 그것도 총괄 관리자?
“그… 저 잘린 건 아니죠?”
총괄 관리자는 4개월에 한 번씩 2주 이상 담당 행성에 머물러야 하는 의무가 있다.
[허허, 우리 연구소 식구를 어떻게 자르나. 항상 문은 열려 있다. 요새 주가도 뛰고 있어.]
소장님이 뿌듯한 목소리로 말씀하셨다.
“그럼 제가 어떻게 총괄 관리자를 해요?”
[투잡 뛰는 거지. 투잡! 아예 거기서 살 건 아니잖어. 4개월에 한 번씩만 가는 거니까 괜찮지 않아? 물론 피곤할 수야 있겠지만 연봉을 생각해야지.]
헉. 맞아. 총괄 관리자라면 분명 돈도….
아니, 내가 이렇게 속물이었나. 근데 속세에 사는데 어떻게 속물이 안 될 수가 있어. 어? 세속에 얽매여 있는데 속물이 안 되고 배기냐고.
총괄 관리자라…. 어쩐지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너는 기분이었지만 수락할 수밖에 없었다. 사실 지금도 걱정 많이 했는데 평화롭게 잘 살고 있잖아. 별거 아니겠지. 업무량이야 늘어나겠지만 손에 들어올 돈을 생각하면 그 정도쯤이야.
“할게요. 그럼 프로젝트 끝내고 지구 돌아가면 바로 그쪽 업무 넘어오는 거예요?”
[응, 그렇지. 들어가면 거기서 연락 줄 거여. 우리 성지환 씨 요새 아주 잘나가? 허허.]
“아, 저야 뭐. 우리 귀염둥이랑 소장님 덕분이죠.”
[그래그래. 그럼 들어가고. 얼마 안 남았으니 편히 놀다 와.]
“네네.”
그래… 까짓것. 문제없다. 지금까지 잘 지내 왔고.
프로젝트가 끝난 후 무사히 지구에 돌아갔으나 여러 인터뷰 참여, 보고서 작성, 관리직 업무 등으로 정말 눈코 뜰 새 없이 바빴다. 그리고 문제 하나가 생겼다.
“아니, 안전 행성으로 등록됐다고요?”
[네. 1년 무사고 거주 이력으로 안전 등급으로 고정되었습니다.]
“그거야 용병들이랑 몰려다녀서 그랬던 거지. 거기가 안전한 행성은 아닌데요.”
[서류상으론 안전 행성으로 등록되어서요. 안전이 걱정되시면 개인적으로 용병을 고용하셔야 돼요.]
이게 무슨 말이야. 돈 벌자고 하는 짓인데 용병 고용비가 얼마인 줄 알아? 한 명이면 가능하다. 하지만 한 명과 가면 또 사이좋게 박히기나 하겠지. 최소 다섯 명 정도는 몰려다녀야 지난 1년처럼 평화로울 텐데. 하지만 다섯 명이면 나가는 돈이….
“일단 알겠습니다.”
[네.]
한숨이 푸욱 나왔다. 당장 다음 주부터 첫 이주 거주가 시작되는데 이걸 어쩌냐…. 안 갈 수도 없고. 우리 귀염둥이도 거기에 있고.
급속한 성장으로 이제 성체가 된 귀염둥이는 같이 오지 않았다. 애초에 우주선에 탈 자리가 없었고 어차피 곧 또 갈 거니까.
아, 모르겠다. 그냥 가? 귀염둥이가 있으니 안전하지 않을까? 자기들끼리는 의사소통이 될 거 아냐. 그럼 뭐, 소개시켜 주거나 어떻게 해서 지켜 주지 않을까. 최소한 그때처럼 온종일 박히진 않겠지.
그리고 솔직히 나도 이젠 몸이 아예 길들여져 버렸다. 그 행성에 가지 않고는 내가 버틸 수 없는 몸이 돼 버렸다.
하루에 한 번씩 몇 번을 가며 박히다가 갑자기 뚝 끊기니 저절로 뒤가 간지러워 왔다. 지금까진 그나마 너무 바빠서 잠깐 잊을 수야 있었지만 여유가 조금이라도 생기니 또….
사실 지금 당장이라도 손가락을 넣고 싶어 움찔움찔 떨렸다. 연구소에서 보고서를 확인하면서 문득 귀염둥이 생각을 했다가 뒤가 푹 젖는 느낌에 기겁을 하며 화장실에서 속옷 안에 휴지를 덧대기도 했다. 미치겠어. 아주.
그냥 아예 거기서 살까….
미친 생각 같지만 행성 관리직은, 특히나 총괄 관리자는 담당 행성에서 거주하는 경우가 많았다. 차라리 몇 년 쭉 살면서 원 없이 하다 보면 언젠가 질릴 때가 오겠지. 그럼 그때부터 다시 지구에 돌아오는 거지. 그동안 축적해 둔 데이터로 연구도 하고 새로운 생물을 관찰하기도 하고. 너무 좋은 생각 같다.
신중하게 고민해 봐야 할 문제이니 나름 심각하게 저울질해 보았지만 이미 기운 마음은 거주를 택했다. 휴대폰을 들었다. 인자한 그 목소리가 들려왔다.
***
“아, 흣! 으흑!”
첫날처럼 온갖 생물체들을 만나진 않았다. 우주선에서 내리자마자 날 반겨 준 건 귀염둥이 하나뿐이었다. 내가 오는 건 또 어떻게 알았는지 촉수를 팔랑거리며 껴안아 왔다. 그러고선 바로 옷이 벗겨졌지.
오랜만에 하는 거라서 그런지 귀염둥이는 평소보다 더 오래 박아 왔고 더욱 집요했다. 그래도 거기까진 괜찮았어. 나도 욕구 불만 상태라 지치긴 했어도 괜찮았다고. 그런데 도대체 왜 또.
“흐으윽! 아아악!”
고통과 쾌락이 뒤범벅되어 뭐가 뭔지도 모르겠다. 잔뜩 벌어진 구멍에선 또 알이 즈즉 살을 벌리며 힘겹게 나오고 있었다. 후드득 액체가 떨어지고 쯔즈즉 벌어져 간다.
“아! 아악!”
귀염둥이는 촉수로 날 감싸 배를 꾹꾹 눌러 왔다. 배를 누르니 숨이 턱 막히며 죽을 것 같아서 허우적거렸지만 개의치 않고 꾸우욱 눌러 댔다.
그래도 이번엔 입 안에 액체를 슬슬 흘려보내 주니 좀 살 것 같았다. 그 각성제같이 온몸의 감각이 선명해지는 느낌이 아니라 근육이 이완되듯 몸이 스르륵 풀리는 감각이었다. 좀 편안해진 몸이 늘어지며 구멍에서 알이 쑥 빠져나왔다. 잔뜩 박히고 난 뒤 알까지 내보내자 온몸에 진이 빠져 기절하듯 까무룩 잠에 빠졌다.
[꿍꿍.]
“흣! 아! 안 돼! 나 주, 죽어, 죽! 흐아앙!”
미끌거리는 촉수가 구멍에 쉬이 파고들었다. 흔들리는 몸을 따라 꺼덕거리는 성기이건만 작은 것은 잘도 달라붙어 쪼오옥 귀두를 빨았다. 앞뒤로 몰려드는 희락에 황홀감이 머리끝까지 치달았다.
이것들을 정말 내가 낳은 아이들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지만 초반엔 약간의 거부감이 들었었다.
내가 낳은 귀염둥이가 뒤를 박고 있고, 그 귀염둥이가 내 배 속에 넣은 알이 새로운 귀염둥이를 만들었고, 그 애는 지금 내 앞을 빨고 있었다. 뭔가… 엄청 이상하고 이건 좀 아닌 것 같았다. 귀염둥이 하나일 때는 별생각이 없었는데 말이야. 둘이 되니까 이게 좀….
물론 내가 이 아이들을 잉태한 것도 아니고 단순히 배 속에 넣었던 알에서 아이가 태어난 거긴 하지만…. 근데 일단 내 몸에서 나왔고 나올 때 아프기도 했던 터라 이건 진짜 좀 얼떨떨….
“흑! 아, 하응! 으으!”
하지만 몰려드는 쾌감에 더 생각할 순 없었다.
“허으윽, 아! 으앙!”
찰박 물 튀는 소리가 들릴 때마다 눈앞에서 별 하나가 폭발해 갔다. 환한 빛이 번쩍 터지며 세상을 감싸고 몸이 붕 떠오르듯 위로, 위로 부유해 갔다.
“헉, 으, 으윽! 허으응!”
푸르름이 가득한 이곳에서 지환은 또 몇 번째인지 모를 절정을 맞이했다. 팍 뿜어지듯 나온 정액은 바닥에 닿을 새도 없이 귀두에 붙은 아이가 몽땅 쪽쪽 빨아들였다. 구멍에선 물처럼 팍 터지며 투둑 떨어지는 액이 촉수의 점액과 섞여 끊임없이 나올 뿐이었다.
지환은 멍한 정신으로 생각했다.
이게 내가 원하는 삶이었던가.
정액을 다 빨아 먹었는지 꾸물꾸물 가슴 쪽으로 기어 오는 작은 생물을 쓰다듬었다. 묘한 기분은 제쳐 두고 하나의 생물로서의 아이를 보았다. 귀여웠다. 저를 몸체에 기대게 두는 촉수들도 어쩔 수 없이 귀여웠다.
지환은 스스로 미쳤다고 생각하면서도 이 아이들이 사랑스럽다는 것을 인정했다. 이건 행복이었다. 남들이 보기엔 비정상으로 보일지라도 이 쾌락과 사랑스러움이 저의 것이라는 사실이 짜릿하리만치 기분 좋게 퍼져 나갔다. 그래, 이건 만족감이다. 지환은 눈을 감았다. 처음엔 불쾌할 뿐이었던 미끈거리는 촉수의 감촉이 이젠 안락하게 느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