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석?"
"...?"
"...너...우시환...아냐? 세상에..."
"...태...형...?"
빵빵 - 하는 경적소리와 함께 고급 승용차의 뒷좌석을 박차고 뛰어나온 말쑥한 녀석 하나가 횡단보도에서 신호를 기다리던 시환의 팔목을 다짜고짜 잡아채며 다급히 물어왔다.
시환은 평소 성질대로 '뭐야 이건' 하는 짜증섞인 시선을 그에게 던지다가 멋적게 다른 한 팔로 제 머리를 긁적이며 웃어보이는 그의 얼굴을 찬찬히 뜯어보고는. 그제야 '아아' 하는 끄덕임과 함께 역시 믿을 수 없다는 듯 그의 이름을 내뱉는 것이었다.
우연찮게. 정말로 우연찮게 시환을 발견하고는 벌어진 입가를 어쩔 줄 모른 채 해실거리는 그는 틀림없이 김태형. 일본에서 알고 있던 그가 맞았다.
“…?±?±?A會?¤?E?n?A??????\?N? 韓國?E歸?A?A?≪?½?I? ?²兩親?I?“
(...여긴 웬일이야 시환아? 한국으로 들어온거야? 부모님은?)
“…?U?¾見?A?ⓒ?A?A?E?¢。”
(...아직 못 찾았어.)
그럴 수 밖에.
찾을 수가 없는걸.
찾을 사람들이...
없어.
그래서...
“????、?≫?¤?ⓒ。本當?E嬉?μ?¢?E。”
(아아. 그렇구나. 정말 반가운걸?)
“…?¤?n。僕?a。?¨前?I變?i?A?A?E?¢?E。“
(...응. 나도. 넌 그대로구나.)
정말로 그대로였다. 사람 좋은 웃음도 그랬고 서글서글한 눈매. 따듯한 손길. 태형은 어느 하나 변한 것이 없었다. 분명히 도쿄에 있었던 듯한 그가 이곳. 생각지도 못한 한국. 그 중에서도 이태원 거리에서 마주쳤다는 사실이 못내 신기한지 시환은 믿기지 않는다는 듯 두 눈을 꿈벅거렸고, 태형은 그런 시환을 보더니 '와아 역시 똑같아 이녀석 여전히 귀엽쟎아' 하며 와락 껴안아 버리고는 놓아줄 줄을 몰랐다.
단단한 가슴에 묻힌 채 버둥거리던 시환이 빼꼼히 그리 높지 않은 그의 넓은 어깨에 턱을 괸 채 어쩔 수 없다는 듯 난감히 웃으며 눈을 감자. 내내 기억하고 있던 그의 채취가 그대로 후각을 파고들었다.
똑같이 입양된 태형은 따지자면 홀트 아동 복지회 동기인 셈이라. 그런데 지금 이렇게 대조되는 모습이라니...
“?C?±?E?¢?e?I? 泊?U?A?A?e?Æ?±?e?I?C?¤? ?¤?n? 時間???e?I?¢?U僕?Æ…”
(어디서 지내? 지내는 곳은 편해? 응? 시간 있으면 지금 나랑...)
잘 지내. 너무 잘 지내서 죽을 지경이지.
행복해서 죽겠어 정말.
“…??。?¢?¢?æ。?A?a,時間?I???e???C…“
(...아. 잘 지내. 근데 시간은 있지만...)
말끝을 흐리는 시환을 물끄러미 바라보는 태형의 모습은 예나 지금이나 전혀 변함이 없었다.
차라리 그때 이녀석을...
“…??…僕?a一人?E?n?¾???C、僕?Æ?¢?A?μ?a?E?C?¤…?“
(...어...나도 혼자 지내는데 나랑 같이 있지...)
못내 서운한 것을 숨기지 못한 채 말끝을 흐리는 태형이 더 세게 안아오자 '널 어떻게 믿고' 하며 키득거리며 속삭이는 시환이었다.
그러자 짐짓 화가 난 듯이 '나를 왜 못 믿어. 내가 얼마나 젠틀한데' 하는 태형은 예나 지금이나 시환을 무척이나 좋아하고 있는 것이 틀림없었다.
그때는 남자를 좋아한다는 것에 거부감이 너무 크게 일어서인지 매몰차게 태형의 수줍은 고백을 거절해 상처를 주었었지 하는 되새김에 가슴 한 켠이 뜨끔해져 오는 것 같았다.
유난히 성격도 둥글지 않고 워낙 따지는 것이 확실했던 시환 - 말 그대로 싸가지는 눈꼽만치도 없던 - 이었는지라. 그때 그렇게 모질게 비난하고 등돌리는 것이 아니었는데 싶지만. 그런 후인데도 이렇게 살갑게 자신을 대하는 태형에게 고맙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조금 불안한 느낌을 지울 수 없는 시환이었다.
그때였다. 자꾸만 시간을 내 달라며 조르는 태형을 달래 겨우 떼어놓으며 고개를 든 시환의 시야에 저만치 바로 앞 횡단보도 신호등에 기대 선 채 굳은 표정으로 자신을 응시하는 재운의 차가운 눈동자가 들어온 것은.
“…??…”
(...아...)
“?E?n?A?”
(왜그래?)
이유없이 확 붉어진 얼굴로 고개를 돌려 버리는 시환이 이상해서인지 슬쩍 고개를 들어 앞을 바라본 태형이 왜 그러냐고 재차 물으며 얼굴을 가린 시환의 긴 머리카락을 다정하게 쓸어 넘겨 주자, 한층 더 굳어가는 재운의 얼굴이 조금씩 희게 질려가기 시작했다. 지은 죄도 없이 고개를 들지 못하는 시환의 어깨를 감싸쥔 채 시선이 마주친 태형에게 척 보기에도 뚜렷한 적의를 드러내는 재운은. 신호가 바뀌어 주변의 모든 사람들이 다 건너간 후에도 그 자리에 멈춰 선 채 움직일 줄을 몰랐다.
직감으로 시환이 누굴 보고 당황하는지 확인한 태형의 입가에 알 수 없는 미소가 걸리고, 보란 듯이 시환을 뒤에서부터 끌어안아 귓가에 대고 '아는 녀석이야?' 라고 속삭이는 태형을 몸을 틀어 조금씩 피하며 그래도 설마 재운이 이런 모습에 신경을 쓸까 하고 쓸데없이 예민했던 자신에게 작은 한숨을 쉬어 보이고는 다시 침착을 되찾고 고개를 들어 태형을 향해 머쓱하게 웃어 보이는 시환이었다.
아는 녀석이지.
너무 잘 아는 녀석이지.
하나도 몰라서 더 잘 알고 싶은.
결국 아무것도 모르는 녀석이지.
내가...
사랑하는...
애써 태연한 척 했지만.
'무슨 관계?' 하며 어느새 굳어 버린 태형의 얼굴을 마주하자 더 말을 잇지 못한 채 미미하게 경련이 이는 입꼬리를 어색하게 말아올리는 시환의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던 태형이 여직도 이곳을 주시하고 있는 재운을 흘끔 바라보더니,
“…?¤?A…?E?n?A?±?Æ…!…”
(...으읏...무슨 짓...!...)
채 말을 다 잇지 못하는 시환의 얇은 입술에 짧게 입맞추고 떨어져 나간 태형은 지금이 백주대낮이며 멀쩡한 거리 한가운데라는 사실을 전혀 인식하지 않는 듯 했다. 게다가 아직도 저만치에 멈춰 있는 승용차 속에서는 운전기사가 두 눈 멀쩡히 뜨고 보고 있을 텐데도.
“?U?³?ⓒ氣?ª?ⓒ?i?A?½?n?¶?a?E?¢?¾?e?¤??????\?N?”
(혹시 생각이 바뀐 건 아니지 시환아?)
“?¤…?¤?n?”
(으...응?)
그러고 보니 태형과는 내내 일어로 대화하고 있었다.
덕택에...
그래. 그 차이점이다.
“?¨前?ª僕?ð拒?n?¾?i???ª?≫?e?¾?A?½???C,?a?¤關係?E?¢?Æ?¢?A?½?c?”
(니가 날 거절했던 이유가 그거였는데 이제 별 상관 없다 라고 한다면.)
“何言?A?A?e?”
(무슨 소리야.)
우리는 말이 통하는구나.
언어라는 장벽은 너무 무섭고 막막했어.
“?E?c僕?I?¨前?ð諦?ß?c?e?E?¢。?C?n?E?a?A?A???e?¤?Æ?a、”?a?A”?E?I?º?A?½?¢???°?E?¢。“
(그럼 포기 못한다 나 널. 어떤 놈이 돼든 '놈'한테도 절대 못 뺏기고.)
“?¿?a?A?Æ、?¨前…”
(잠깐만 너...)
내가 틀렸는지도 몰라.
아니. 이런 생각 하게 만들지 말아.
혼란스러워. 혼란스러워...
“罰?·?e?æ。?≫?I時僕?ð泣?ⓒ?¹?½?±?Æ。?a?¤行??ⓒ?c。”
(벌 줄 거야. 그때 날 울린것. 그만 가볼게.)
‘??…?¿?a?A?Æ…”
(아...잠까...)
나는 그가 왜 화를 내는지조차 묻지 못해.
알아들을 수 없을 것이 뻔 할 테니까.
“名刺?¾?ⓒ?c。?½?U?E連絡?μ?e。僕、成功?μ?½?ⓒ?c。”
(명함이니까. 자주 연락해. 나 성공했쟎냐.)
그것도 다 너 때문에 독해져서야 하고 히죽 웃어보이는 태형은 여전히 따듯했지만 말을 마치며 재운을 흘끔 노려보는 그 눈 만큼은 얼음처럼 싸늘하기만 했다. 그에 버금가는 잡아먹을 듯한 재운의 눈 역시.
아직도 상황 파악을 제대로 하지 못한 시환은 얼떨떨히 그가 쥐어 준 명함을 들여다 보았고. 그 안을 장식한 직함에 깜작 놀라 두 눈을 동그라니 뜨고 말았다.
그리고 태형이 남긴 말과 시선을 곰곰히 곱씹고 섰던 어깨가 누군가에게 거칠게 부딛혀 휘청 하자 그제야 정신을 차린 채 이맛살을 찌푸리며 그 상대를 공격할 준비를 하고 홱 돌아보았는데.
심장이 철렁 멈추는 것만 같았다.
붉은 입술을 꼭 다문 채 시환을 노려보고 있는 재운은 너무도 두렵고 낯선 것이라 심장까지 얼어붙는 듯한 기분.
왜? 라고 묻는 시환의 시선에 대답이 없던 재운이 그대로 홱 몸을 돌리더니 성큼성큼. 채 잡을 새도 없이 인파 속으로 사라져 버렸다.
내가 뭘 잘못했을까 하는 마음보다는 엄습하는 불안감에 거칠게 뛰는 심장을 가만 건드려 보는 시환은. 풀리지 않는 혼란함에 휙 휙 고개를 흔들고는 태형이 사라진 방향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이미 그가 재운을 따라 움직이고 있다는 사실은 깨닫지 못한 채.
시환의 불안은 괜한 것이 아니었다.
그간 시환을 완전히 잊지 못했던 태형은 뜻하지 않게 그를 발견한 것에 행복해 미칠 지경이었는데, 난데없는 이름모를 녀석에게서 묘한 위화감을 느끼자 본능적으로 그의 뒤를 쫓기 시작했다.
차에 올라타자 흠흠거리며 황급히 시선을 돌리는 현곤이 '검사님 참 인사법이 독특하시네요' 하며 넉살좋게 물어오자 '오냐 키스하려다 말았다 임마' 하며 씨익 웃어보인 태형이 흘끔. 재운을 쫓자는 뜻을 밝혔고 바쁜데 무슨 미행이냐고 툴툴대는 현곤에게 미행이 아니라 그냥 조사라고 얼버무리고는 이내 그의 행선지가 그동안 미심쩍어했던 문제의 장소들 중 하나란 사실에 굳어진 얼굴로 고개를 끄덕이더니 이제 됐다며 고개를 돌린다.
싱겁다며 투덜대는 현곤에게 한 마디를 더 던지는 것을 잊지 않은 채.
"저녀석 조사해봐."
재운은 기분이 무척이나 더러웠다.
어제부터 제대로 먹을 것도 넣지 않은 시환의 식도를 위해 오늘은 밥이라도 한끼 같이 해 볼까 하는 마음으로 그를 찾아나선 길에 목격한 의외의 장면 때문이었을까? 그렇다면 왜?
녀석이 다른 놈과 죽이 맞아 웃어주는 모습에 배가 아파서?
나만 바라봐 줄 줄 알았던 녀석이 다른 놈의 품에서 수줍어하는 졸라 더러운 꼴을 목격해서?
병신같이 뭘 생각하는 거냐. 자자면 다리라도 벌려 줄 것 처럼 굴던 새끼가 다른 놈에게도 고분하다는 사실이 그렇게 좇같이 더러운거냐? 그런거야 오재운 이 병신아?
'씨발' 을 연발하며 술병을 까대는 재운을 향해 호연의 날 선 비웃음이 와 박혔고, 새삼 제 더러운 직업 - 과연 직업이라 해도 좋을까만은 - 을 되새긴 재운이 다시 나직히 그놈의 '씨발' 을 또 연거푸 읊조리며 근처 물건들을 발로 몇 대 까대더니 그곳을 막 나서는데, 별안간 들이닥친 오싹한 시선에 휙. 고개를 틀어서는 어둑해진 골목을 향했다.
잘못 봤을까 의심하며 눈가를 비비고 고개를 돌리려는데. 다시 느껴진 더러운 느낌에 뚫어져라 어둠 속 한 곳을 주시하자, 아니나 다를까 시꺼먼 사람의 형체 하나가 튀어나와 비스듬히 벽에 기대 선 채 담배를 꼴아물었다.
치익- 하고 불 붙는 소리와 함께 드러난 녀석의 얼굴은 정말 기분 더럽게도.
"이봐. 한대 피우겠어?"
"뭐야."
"뭐. 아까 봤쟎아? 그럼 구면이군."
"..."
조금 전 시환과 신나게 부대끼던 그 놈이 맞았다. 라는 사실을 확인하자마자 띠꺼운 대꾸와 함께 나직히 욕설을 읊조리며 몸을 돌리려는데. 녀석의 기분나쁜 한 마디가 덜컥 재운의 발목을 잡아챘다.
"...우시환..."
"..."
"우리 시환이랑 무슨 관계야?"
"...씨발..."
반동력도 뛰어나게 돌아선 몸은 도대체 언제부터 그 쪼그만 새끼에게 이렇게 예민했던가 하는 실소가 터져나올 정도로 익숙한 것이었다. 돌아서 노려보자 녀석이 유들하게 웃어 보이며 말을 이었다.
"오재운 맞지? 난 김태형이다."
"...우리...시환이?"
"아하. 거슬리셨나? 그럼 정정하지. 너와 함께 사는 우시환군. 말도 안 통할 것 같은 그녀석과 넌 무슨 관계지? 이정도면 꽤나 장황하지?"
"무슨 상관이신데?"
"굉장히 밀접한 관계."
픽 웃어버리며 다시 몸을 돌리려는데. 녀석의 날 서린 말 한 마디가 또다시 등가를 쑤셨다.
"조심해라. 난 봐주는 것 없으니."
처음 보는 녀석과 왈과왈부할 만큼 시환에게 신경이 쏠리지도 않았을 뿐더러. 기분도 더러운데 멀쩡한 놈 하나 잡을까 봐 라는 기특한 마음으로 저벅거리며 걸음을 옮겨대는 재운의 가슴속은.
그러나 생각과는 달리 멀쩡할 리 없는 것이었다.
자꾸만 놈과 엉켜있던 시환이 눈 앞에 아른거렸고.
시환의 흰 얼굴과 작은 어깨. 깡마른 모습만이 환각처럼 떠올랐다 사라지는 바람에.
애써 피워 문 담배조차 장초인데도 채 다 피우지 못한 채 억지로 비벼 끈 후 서둘러 집으로 향하는 재운의 발걸음이 다급했다.
뭔가 있는 녀석 같다 라는 불안감도 어느 정도 작용했는지도 몰랐다.
요즘 단속이 심해졌다며 툴툴대고는 마작패만 섞어대는 호연의 역겨운 몰골도 떠오르고.
멀쩡하니 잘 굴러가던 이름도 잘 모를 외제차에 탄 아까 그 녀석이 눈에 자꾸 밟히고.
참으로 미치겠는 것은 그 옆에 샐쭉거리며 올라탄 시환의 환영이 자꾸만. 자꾸만 그래.
"...우연...!!!..."
덜컥 멈춰버렸다.
한참을 시야에 박힌 눈앞의 상황을 곰곰이 하나하나 필름을 되감듯 재생해 보이던 두 눈을 아찔함에 휘청.
부서질 듯 세게 움켜잡은 문고리를 놓을 줄 모른 채 잠시 감았다 떴을 땐.
참으로 빌어먹게도 경악스러웠던 그 광경이 그대로 눈 앞에 펼쳐져 있는 것이었다.
가지가지 한다 우시환.
콰앙! 뭐라뭐라 소리치는 시환의 당황한 음성. 울음 섞인 애원을 뒤로 한 채 거칠게 문을 닫아 버리며 뛰쳐나와 아무렇게나 달려버리는 재운의 뺨으로 또 몸으로 엄습해 오는 밤 공기가 차디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