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4화 (4/11)

  5756  1 / 288  41     

   

   kuroyume 

   http://lil.to/line 

   [단편] 사랑해도...되겠습니까? 中. 

request fiction. 

line 6000hit. 수시합격 축하와 수능기원. 

사랑해도...되겠습니까?   

2001.11.01. 

written by kuroyume 

for eaude 

깨닫는다는 것은 갈구하는 것보다 어려운 법이다. 

그는 그걸 알았다. 

하지만 어리석은 나는. 

- 쓰레기통에 핀 꽃. 

일작 : shu님. 

“?²飯?I食?×?A行???æ…” 

(밥 먹고 나가...) 

"김쌍.  이새끼 나 올때까지 내다버려라.  간다." 

"시환형이 알면 어쩌려고 그래.  응?  그짓 우리 그만하자 응?" 

"?W?????q???N ?²飯..." 

(재운아 밥...) 

"시끄러 김쌍.  호연이형이 알면 퍽이나 살려두겠다.  엉?  나도 다 생각이 있어.  나라고  허구헌날 이렇게 썩는 인생 즐기겠냐?" 

"아, 시환형은 또 왜 건들어!  안 놔?  야!!!" 

역시나 세명이 각자 떠들어대는 소리들은 꽤나 정신 산만한 풍경이었다.  재운은 상혁을 향해 툴툴거리는 입가에 슬쩍 웃음을 메단 채 또 제 나라 말로 오물오물 늘어놓는 시환의 마른 볼을 쭉 잡아 늘어뜨려도 모고 콕 콕 찔러도 보고.  둥근 콧날을 쿡 찔러도 보고.  마침내 시뻘개진 얼굴로 시환이 얌전히 눈을 내리깔 때까지도 그를 가지고 장난치는 것을 멈추지 못하더니, 아연실색한 상혁이 뒤로 넘어가려는 것을 확인하며 시환의 빨간 입술에 쪽- 하고 입을 맞추고는 흐흐흐 하고 변태처럼 웃어 보이는 것이었다. 

금방이라도 달려들려는 상혁을 무시하고 귀를 후비적거리며 저만지 문 밖으로 나서자.  여전히 벌개진 얼굴이지만 끝까지 시선을 접지 못한채 자신을 바라보며 수없이 눈을 깜박이는 시환이 귀여워 해죽.  또 웃어보이고 고개를 돌렸다. 

시환은 난처하거나 뭔가 할 말이 있거나.  한 마디로 지 꼴릴 때면 숨 넘어가는 형광등처럼 정신없이 눈을 깜박이는 버릇이 있었다.  생기기는 표독하니 제멋대로 생겨 가지고 그렇게 까무러치게 귀여운 모습을 보일 때면 누구든 앞에서 웃어 주고 싶은 충동을 느끼게 해 주는. 

그런 묘한 매력까지 가지고 있는 것이었다. 

사실 시환의 얇은 입술은 또 가끔 엄한 생각을 하게 해 주는 게.  어디서 들었더라... 

변태새끼들은 얇고 반들하니 조그만 예쁜 입술을 보면 누가 변태 아니랄까봐 거기에 지 것을 물려 보는 상상을 하곤 한다고 했다.  허공에 붕 뜬 빨간 입술을 머리속에 가득 그리며.  뭐 그렇다나 어쩐다나. 

하여간 도톰하고 탄력있는 입술이 맛있어 보인다는 말은 들어 봤지만, 때론 저렇게 얇고 매끄러워 보이는 입술이 더 먹음직 하다는 사실은.  재운으로서도 처음 안 사실이었다. 

물론 재운이 시환을 보며 그런 마음을 가진다는 것은 아니었다. 

매일 돌아가면 마른 몸을 하고는 - 거기에 키도 계집애처럼 작다 - 다짜고짜 웃으며 달려와 폭 안겨드는 녀석을 접할 때면 가끔.  아주 가끔은 움찔.  아랫도리가 뻐근해져 와 화들짝 그를 떼어내며 험악하게 '이새끼 갔다 버리랬지' 를 연발하는 재운은 여러 모로 그에게 미안하긴 한 것이었다. 

세상에는 제 죄가 아닌 것까지 달고 살아가야 하는 인생이 있다. 

성공. 

오늘은 꽤 돈을 바르고 다니는 듯한 여대생 하나를 드디어 꼬셨다. 

어느새 유들하게 싱긋 웃으며 슬쩍 그녀의 어깨에 팔을 두르고 걷는 재운은 피식.  또 다른 의미로 허탈하게 웃고 말았다. 

170이 채 안 되는 키에 빼빼 마른 몸.  그리고 하얀 피부.  짙게 쌍커풀이 진 눈에 동그라한 콧날과 얇고 붉은 입술.  그러나 파우더를 바르지 않은 그보다 덜 뽀송하고, 립스틱을 문대지 않은 그 입술보다 덜 유혹적인. 

미친놈 오재운 무슨 짓이냐. 

터덜하니 걸음마다 웃음이 겹친다. 

재운은 꽤나 운동신경이 빠릿한 편이었다.  덩치도 그리 큰 편은 아니었지만 타고난 힘과 개깡이 있어서.  재운은 보육원에 있을 때부터 대장 자리를 고수한 채 지보다 큰 놈들을 부리며 편하게 지내왔던 것이었다. 

사회는 힘과 돈으로 나뉜다. 

지배자와 피 지배자.  어떻게든 약한 녀석은 밟히고 먹히고 만다. 

조금 더 자라 앵벌이며 이것저것에 손을 대면서 부터 재운은 사회의 쓴맛을 더욱 확실히 깨닫고 말았다. 

가령 빡세게 구두를 닦아 시커매진 손으로 몇 푼을 벌어 주머니에 넣고 걸을 때.  한 골목만 들어서면 덩치들이 달겨들어 구역이고 나발이고를 운운하며 머리통만한 주먹을 꽂아주고 밟아주며 한 푼 남김없이 뜯어가는 그 뒤로. 

재운은 다시 밟혀 울지 않기로 다짐했던 것이었다. 

많았다.  세상의 더러움이란. 

비틀.  몸을 가누지 못해 쓰러지는 여자의 하얀 어깨를 잡아 부축해 걸음을 옮겼다. 

스튜디오 세트까지 완벽히 준비된 - 모델 에이전시라고 그럴듯이 속이는 작업장 - 집 안에는 일을 위해 필요한 모든 장비가 갖춰져 있었다. 

이번에도 일은 수월했고, 저만치 또륵 하고 뒹구는 수면제 든 유리잔에 아직 남은 내용물이 쪼륵 하고 흘러내렸다.  준비된 침대 위에 여자를 눕히자.  상혁은 툴툴거리며 비디오의 버튼들을 만지작거린다. 

'이 짓 그만 하자니까' 하며 입술을 오물거리는 녀석에게 핀잔 대신 눈을 흘겨 주며.  막 두둑 하고 고개를 몇 번 꺾어 주고 드디어 일을 치려는데. 

“…?W????…?q???­…? 

(...종...혁...?) 

아...잊고 있었다. 

언제 나왔는지 도르륵.  아직도 미세히 구르고 있던 말간 유리잔을 멍하니 바라보던 시환이 천천히 그것을 집어올리며 고개를 갸웃 하더니 그 동그란 눈 가득 이 아연실색할 상황을 담아내 버린. 

"여...시환이형...!!!" 

평소와 같이 아무렇지도 않은 무표정으로 그것을 들어올린 시환의 시선이 줄끝에 메달린 인형처럼 기계적으로 움직였다. 

옷이 반쯤 벗겨진 채 재운의 아래에 누워있는 여자에게 덜컥. 

엉거주춤 그 위에 올라탄 채 역시 흰 상체를 드러내고 자신을 물끄러미 응시하는 재운에게 덜컥. 

카메라 초점을 맞추다 만 채 황망한 얼굴로 자신을 바라보는 굳어버린 상혁과 상혁의 그 카메라에 또 한 번 멎더니 이제.  마지막으로 자신의 손에 들린 투명한 유리잔을 멀거니 들여다본다. 

"저...형...아...그, 그게 아니...뭐...뭐라고 좀 해 봐 오재운!  아이고오..." 

마침내는 손짓 발짓을 해 가며 어쩔 줄을 모르는 상혁이 발을 동동 구르며 시환에게 다가서려 하자. 

스륵- 

'쨍그랑 -! ' 

"으아아...혀...형...!!!..." 

타타타탁. 

마침내는 뒤도 안 돌아보고 뛰쳐나가 버린 시환의 빈 자리를 안타까이 바라보는 상혁의 큰 눈에 한 가득 그령히 눈물이 고여 있었다. 

그러니까 내가 그만 두쟀쟎아.  어떻할 거야.  - 울상을 한 채 멍하게 중얼거리는 상혁을 가만 바라보던 재운이 피식.  조소하듯 입술끝을 말아올리며 근처에 던져 둔 담배 한 대를 주워들었다. 

"...나가봐." 

"응?" 

"나가 봐.  춥다." 

그제야 상혁은 쿵쾅거리며 방으로 들어가 두툼한 파카 하나를 꿰어 든 채 정신없이 문가를 나서다 멈칫. 

재운을 돌아본 채 씹어뱉듯 말했다. 

"잘못되면..." 

"..." 

"죽여버린다." 

썰렁하니 남은 자리가 스산했다. 

멀거니 앉아 담배를 피워 문 재운은 천천히 천정을 향해 고개를 들어올렸다. 

그래 봐야 재운의 허락이 떨어질때까지 기다리고 섰던 상혁이었다.  아마도.  아마도 시환이라는 저 녀석은...어미새 찾은 새끼새새끼처럼 재운을 줄기차게 쫓아다니는 것 안에 다른. 

혹여라도... 

치이 - 다시 붙여 문 담배가 쓰디쓰다. 

끼익- 끼익- 

둥 하고 몸이 떠오르면. 

다시 둥 하고 몸이 내려선다. 

둥 하고 몸이 떠오르면. 

다시 둥 하고... 

그네는 그래서 언제나 제자리일 뿐이다. 

재운은 언제나 웃고 있었다. 

험한 말을 뱉어내는 듯한 - 상혁이 들을 때마다 얼굴을 찌푸리고 달려드는 것을 보면 빙글빙글 과히 좋은 말 만을 하는 것은 아닌 게 틀림없었다. 

알아들을 수 없는 언어로 알아들을 수 없는 대화를 하는 재운을 시환은 그저 바라보는 수 밖에 없었다. 

한걸음 둥 하고 날아 다가서면. 

한걸음 다시 주륵 하고 내려와 버린다. 

야속하게도 그는 또 언제나 그렇게 한자리라서.  시환은 또 제자리. 

우리들은 그네놀이에 시간을 허비하는 것인지도 몰랐다. 

생각해 보면 재운은 시환에게 살갑게 대한 적이 한 번도 없었다. 

말이 통하지 않는다는 가장 커다란 단점을 들고 일어선다 하더라도, 시환은 굳이 언어만이 아닌 다른 것에서는 재운의 행동을 곧 파악하고 앞서가기 일쑤였다.  그만큼. 

그만큼 그를 주시하고 있어서이기도 하겠다지만. 

재운에 한해서는. 

그의 덮인 속눈썹 수가 몇 개인지.  말려 올라간 것은 몇 개며 창살처럼 쑤욱 내려선 것은 또 몇 개인지. 

그가 잠잘때 몇 초만에 숨을 내쉬는지.  한 마디를 끝낼 때 까지 몇 번이나 콧잔등을 건드리는지.  매일같이 화장실에 갔다 오는 시간은 몇분씩인지.  커피에는 몇 수저의 프림과 설탕을 넣어 마시는지.  몇 분간 끓인 물을 가장 좋아하는지.  덜렁이며 여기저기 빼어놓고 다니는 물건들이 제일 많이 발견되는 곳은 어디인지. 

그래도 모르고 있었다. 

다만 성인영화나 그런 비디오들을 좋아하는가 보다 하고 단순히 생각했었다. 

재운의 집이 조금 특이한 구조로 만들어진 것도 그저 그렇게 넘겼고, 가끔 어디선가 여자의 늘어난 스타킹 한 짝씩이 튀어나올 때도 그저 그렇게 넘겼었다. 

그냥 그러려니 했었더랬다. 

싫었다. 

오재운이 무슨 놈인지는 이제 확실히 알아버렸고.  사실은...사실은... 

끼익 끼익 하고 올라섰다 내러오는 그네는 처음에만 재미있을 뿐이다. 

다 지난 이 나이에 어린 꼬맹이들의 전유물일 그것이나 타고 움직거린다는데에 한심해서인지 웃음이 나왔다. 

우시환은 도대체 왜 오재운에게 남아 이러고 있는 것일까. 

시환이 한국으로 들어온 것은 1주일 전이었다.  물론 재운을 만난 것을 기준으로 말이다. 

전단지가 가득 든 가방을 안고 귀국한 것은.  분명 그들을 찾기 위함이 맞았다. 

시환은 일본으로 입양되어 그나마 잘 지낸 축에 속했다.  물론.  그것도 양친의 사업이 흔들리기 전의 이야기였지만.  지금 양친은 어렵게 일으켰던 사업을 정리한 채 일선으로 물러나 작은 집에서 살아가고 있었다. 

그런 그분들이 보내준 지금.  나는 이곳에서 무얼 하고 있는가. 

부모를 찾겟다는 기대? 

나를 버린 사람들을 찾아 무얼 하겠다는 걸까. 

하얀 얼굴에 신경질적으로 길게 흘러내린 머리카락을 잡아넘기며 투덜대는 도톰한 입술. 

뭐든 금새 먹어 치우고는 '배고파' 톡 톡 배를 두드리는 아이같은 행동. 

잠이 덜 깬 얼굴로 진하게 진 쌍커풀을 풀어내겠다고 비벼대고 도 비벼대다가 에라 모르겠다 하고 다시 잠들어 버리곤 하던. 

걸핏하면 시환에게 툴툴대다가 - 물론 알아들을만한 말은 별로 없었다 - 제풀에 '으이구' 하며 시환의 머리카락을 마구 헝클어 놓고는 해죽 웃어버리던. 

투툭. 

억울해서 눈물이 나왔다. 

그 녀석은 생각지도 못하게 너무 예뻐버려서.  생각지도 못했던 그런 감정에 눈뜨게 만들어 버려서. 

그래서...그래서... 

상혁과 툭탁대는 그가 언제나 빙글빙글 사람좋게 웃고 있다는 사실은 가슴아픈 일이었다. 

오재운은 적어도 우시환 에게 만큼은 방심할 때 외에는 늘 불만이 가득한 표정을 고수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무엇이 그렇게도 불만이냐 묻는다면 좔좔좔.  청산유수처럼 무수할 그것에 대해 알기에 시환은 더욱 더 가슴 한 켠이 쓰려왔다.   

우선은 되도 않는 녀석이 빌붙어 밥을 축내니 꼴 보기 싫을 것이었고.  말이나 통하면 모를까 말도 하나 통하지 않는 녀석이 종알종알.  이상하게 떠들어 대는 꼴이 또 보기 싫을 것이었고.  그래... 

이유를 대자면 수도 없는 것에. 

가장 중요한 점은... 

"...뭐하냐?" 

끼익 끼익.  언젠가부터 발을 떼지 않은 채 흔들흔들 조금씩만 움직이던 그네가 덜컥.  세상이라도 정지한 것처럼 그렇게 멈춰버렸다. 

한참을 숨조차 쉬지 않는 것처럼 고요히 가라앉아있던 공기가 다시 조금씩 움직이기 시작하자. 

그제야 조심스레 웅크린 고개를 들어 그를 올려다 보았다. 

"알아들을 진 모르겠는데..." 

언제부터인가 가만히 시소 위에 올라앉아 움직이지 않는 그의 모습이 시야에 아프게도 박혔다. 

도대체 언제부터 저 자리에 있었던 걸까.  그런데 나는 왜 몰랐던 걸까.  고개를 갸웃하며 애써 뛰는 가슴을 진정시키는 시환의 돌린 고개 너머로.  보지 않는데도 아프게 각인되는 재운의 모습은 참으로 곤란한 것이었다.   

긴 머리카락이 하늘거리는 겨울바람에 흔들리는 것이 느껴졌고.  그리 따듯이 입지 않은 옷매무새에 또 가슴 한 켠이 시려 왔었고.  조금.  아주 조금... 

조금쯤은 슬퍼 보이는 모호한 눈으로 자신을 응시하고 있다는 사실은 시환에게는 도저히 그 눈을 그대로 맞춰 바라볼 수 없을 만큼 부담스러운 일이었다.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하며 그러고 있는 것일까조차 알 수 없는 재운은 아까부터 같은 모습으로 시환을 뚫어져라 바라보고 있어 눈앞까지 멍 해 지는 기분이었다. 

"나는 세상에 더도 없을 그러니까...졸라 파렴치한 놈이거든?  너랑은." 

오물거리며 움직이는 그 입술을 바라보아 봤자 알아들을 수 없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한 번도 시환을 향해 부드럽게 움직여주지 않았던 그것이 좋은 말을 내뱉고 있을 리가 없었다. 

시환은 알아서 고개를 휘 휘 저어 버리고는 푸욱.  답지않게 얼굴을 숙인 채 발끝에 걸리는 모래만 차대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선은 거둬지지 않는다.  달콤하면서도 벗어나고 싶은 그 목소리도. 

"너랑은 안어울려.  좋게 말할때 가라.  난 니가..." 

긴 머리카락도.  마른 긴 몸도.  투덜대는 목소리도.  귀찮다는 동작들도.  그리고 그 감정 없는 네 눈 까지도. 

"혹시 말인데...이건 진짜 혹시거든?  너...나 좋아하냐?" 

니가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르겠어.  하나도 모르겠어.  모르겠어.  하지만. 

난 괜히 있는 성질 다 죽여 가면서 너한테 들러붙는 게 아니란 말이야. 

네 구박에 견디는 것도.  네 무관심에 익숙해지는 것도.  그 모든게 다 너이기 때문에 가능하다라는것. 

넌 정말 모르는 거니? 

"어...야...!...아이고...찰거머리 같은 새끼..." 

좋아.  너무 좋아.  모두 좋아.  좋아서 죽어버릴 것 같아. 

너무 좋단 말이다.  네가 너무 좋아.  좋아서...좋아서... 

"아 진짜...어떻게 널 떼야 잘 뗐단 소릴 듣냐.  응?  정말..." 

니가 아무리 가라고 해도.  니가 아무리 싫다고 해도.  니가 아무리.  그래도 난 가지 않아. 

니가 그런 짓을 해서 벌어먹고 사는 녀석이라 해도.  내가 네 곁에서 아무런 미래도 얻지 못할 거라 해도. 

나는 상관없어.  네가 좋아.  좋은 것 뿐이야.  오재운.  오재운 니가 좋아. 

...그러니까 놓지마. 

고집스런 시환의 눈이 반짝이자 재운은 이마를 짚으며 고개를 설레설레 저어 버렸다. 

우시환이란 녀석은 말했듯이 성질머리도 그리 좋지 않으면서 도대체가 무슨 생각으로 이렇게 재운의 홀대에 그대로 버티고 늘어지는지 알 수가 없는 일이었다.  거기다 다른 녀석도 아닌 오재운 같은 놈에게 말이다. 

녀석이 고아며 버려졌으며 일본에서 잘 먹고 잘 살다 건너왔든 어쨌든 자신을 버린 부모를 애타게 찾는 등의 말도 안되는 짓을 하고 다닌다는 것은 잘 알고 있었다.  그 외에는 아무 것도 몰랐다.  가령 녀석이... 

시환이 뭘 좋아하더라? 

아침에 일어나면 뭘 하고.  또 뭘...싫어하는 건 뭐더라? 

"아...진짜...이게 문제였어." 

미간을 좁힌 채 가만히 생각에 잠겨 있던 재운을 와락 끌어안아 버린 시환이 떨어질 줄을 몰랐다. 

평소에는 이렇게 닿는 것조차 움찔거리며 피하던 녀석인데 - 거기다 재운이 닿게 놔둔 적도 없었다.  말 그대로 존재 자체를 무시하다시피 해 놔서 - 이렇게 거세게 들러붙어 부비적거리는 데에.  재운은 그만 픽 하고 웃고 말았다.   

재운의 목을 끌어안은 팔이 제법 세게 감겨 있었다.  어쩌면 목 뒤로 손깍지를 꼈을 지도 모를 일이었다. 

목덜미로 닿아오는 결 좋은 머리카락에서는 재운이 즐겨 쓰는 샴푸 냄새가 났다. 

생각해 보면 잘 때도 이렇게 달라붙어 있었구나 싶어 다시 웃어 버렸다. 

원체 무심했던 덕택에 기억이 나지 않았었는데.  시환이 가장 좋아하는 것은 이렇게 방심한 재운에게 메달려 늘어질 때였다 라는 사실이 그렇게 우스울 수가 없었다.  아마도 녀석은 두 눈을 고집스레 꼭 감고는 그 속눈썹을 바르르 떨고 있겠지.  빨간 입술이 바짝 말라 가끔씩 혀로 축이면서.  또는 잘근잘근 깨물면서. 

재운이 돈까스에 된장찌개를 먹으면 캑캑대면서도 된장찌개로 수저를 보내고, 놀려볼까 싶어 굶어도 보면 녀석은 영락없이 주인 잃은 새끼고양이처럼 처량맞게 쫑알대며 저 구석에서 또 물끄러미 재운을 바라보는 것이었다. 

내내 그런 시간의 반복이었다. 

상혁아 미안하다. 

슬 슬.  시환의 부드러운 머리카락을 쓰다듬던 재운이 싱긋 웃으며 그의 허리를 꼭 끌어안아 버리고 말았다. 

움찔.  역시나 놀라는 시환이 느껴졌지만 그런 것 따위 의식할 리 없는 재운이었다. 

결국 몇 번 버둥대더니 얌전히 그 자세 그대로 끌어안겨 살짝 눈을 감는다. 

조금 떨리던 속눈썹이 잠잠해지고.  터질 것 같은 심장박동이 쿵 쿵 쿵 쿵. 

재운이 천천히 눈을 감으며 중얼거렸고.  물론 시환은 알아들을 수 없어 귀를 닫았다. 

"어떻하냐...후..." 

과장된 한숨에 움찔.  시환의 어깨가 움츠려드는 것을 느꼈다. 

재운의 입가에 기분좋은 미소가 여전히 걸린다. 

"...나 니가 싫지가 않은데." 

부드럽게 닿는 촉감이 흐뭇하고. 

되려 자꾸만 빠져나가려 하는 작은 몸이 따듯해 기분좋고. 

재미있고.  즐겁고.  놀리고 싶은 익숙하지 않은 이 느낌. 

어떻하냐. 

싫지가 않다 우시환.  너란 골때리는 녀석이 말이야. 

난 어쩌면 손이 많이 가는 병아리 새끼를 주워 온 건지도 모르겠다만. 

조심해라. 

난 의처증 걸릴 팔자라더라. 

하하호호랑 여보여보 클럽 근처에 자리 펴고 앉은 냄새나는 이태원 미친놈이.  촛불 네 개 꽂아 놓고 염불 닦고 있더니 대뜸 나 보고 그러더라. 

"...???I..." 

(...저...) 

"...살 좀 쪄라." 

"...?W?????q???N..." 

(...재운아...) 

"...안아도 맛 없겠다 너." 

"??...僕?I..." 

(저...난...) 

"...쳇...욕나오게 이쁜 새끼." 

안되겠다. 

김쌍.  너 가져라.  큰일나겠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