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756 1 / 288 42
kuroyume
http://lil.to/line
[단편] 사랑해도...되겠습니까? 上. for eaude.
request fiction.
line 6000hit. 수시합격 축하와 수능기원.
사랑해도...되겠습니까?
2001.11.01.
written by kuroyume
for eaude
- 어미새와 아기새.
일작 : shu님.
"아...씨발 졸라 추워."
오들오들. 얇디얇은 낡은 잠바의 팔을 쑥 쑥 당겨서는 그 안으로 손가락을 쏙 집어넣어 고대로 주머니에 집어넣었다. 점퍼도 아닌 잠바다. 잠바. 80년대 기계공이 입었던 뭐 같이 웃긴 스타일. 그 놈의 돈이 뭔지 손난로 하나 사지 못해 얼어버린 손가락이 얼얼하다.
제 2의 IMF 지나간지가 또 언젠데 이제는 빌어먹을 제 3의 IMF 행차시란다.
더더군다나 미국폭격 덕에 쌍둥이빌딩이 뎅겅. 날아간 건물덕에 전쟁나려 한단다.
3차 대전이라.
헹. 까짓거 확 나 버리라지. 다 뒤지게.
"아우 씹...불받는 날이네. 씨발 다 어디 처박힌거야?"
나직히 중얼거리는 귓가가 시리다. 오늘따라 엄청나게 추운 날씨는 현재 멀쩡한 10월의 문턱. 아직은 가을이란 말따위는 했다가는 죽여 버린다며 중얼중얼 도톰한 입술을 움직거리며 욕설을 내뱉었다.
하지만 욕한다고 바람이 멎지는 않는다.
'에이 씹...' 이라는 말을 마지막으로 재운은 오늘도 허탕임을 서운해하며 꼬깃꼬깃한 주머니 속의 담배 한 개피를 꺼내들었다. 그래도 꽤나 오래 서 얼어준 덕인지 이제는 고만고만한 추위라 버틸 만 했다.
하지만 사실상 어느 제 정신 아닌 여자가 자신의 이런 몰골에 살랑살랑. 꼬신다고 제대로 넘어와 줄까 말이다.
재운이 하는 일은 골때리는 세상이 그렇듯. 그렇게 대놓고 나불댈 만한 일은 절대로 아니었다.
꿈이 있어서도 아니요, 흥미가 쏠려서도 아니요. 다만 먹고살려다 보니 이렇게 더러운 일을 하게 된 것 뿐이지.
또, 이런 일을 자기가 안 하더라도 다른 연놈들이 또 할 테니 별 상관은 없다 라고 편하게 생각하는 재운이었다.
나름대로 재미도 보고 말이다.
들어갈까 말까를 생각하던 재운은 주머니 안에 4천원 정도가 집히는 것을 확인하고는. 이내 결심했다는 듯이 골목옆의 간판도 제대로 안 걸린 커피숖으로 들어섰다.
알다시피 이태원의 거리라는 게 다 그렇고 그래서. 눈에 띄는 대로변의 삐까뻔쩍한 모습과는 별개로, 골목 하나만 틀어지면 또 이렇게 왜소한 모양새도 있는 법인 것이다. 들어가면 또 멀쩡하다 이런곳이.
매직 밀러로 된 눈 앞의 유리창을 툭 툭. 두어 번 두드려 봤다.
흡족한 웃음이 살짝 입꼬리에 걸린다.
심심한지 불붙지 않은 담배를 휙 세워 물고 오물거리는 재운의 표정이 나른하다.
롹커같은 긴 머리카락에 작고 하얀 얼굴.
속쌍커풀이 짙게 진 크다면 클 두 눈.
동글한 콧날. 도톰하고 붉은 입술.
반질하게 잘 닦인 탁자유리에 비쳐보이는 자신의 얼굴을 감상하고는 슬몃. '그러니 얼굴마담이지' 하고 웃어 버리고 만다.
그렇다. 이 드러운 짓거리에 절대절명으로 필요한 것이 바로 재운의 간판.
면상 팔아 해먹자는 짓인데 이정도는 보통이지 하며 또 건성으로 고개를 까닥인다.
커피숖 바깥의 모습은 훤히 보였다.
조금씩 어둑해진 거리의 전경이 그대로 관찰되는 이 자리를 재운은 꽤나 좋아하는 편이었다.
쌍쌍이 돌아 다니는 연놈들이라든지, 역겹게 붙어 다니는 새끼들이라든지. 또는 양키들. 그리고 동양인들.
한 마디로, 이태원의 거리는 다른 곳처럼 몇가지로 국한된 사람들이 밟는 곳이 아니라서, 잘 보다 보면 같쟎지도 않은 호모들이나 게이들, 트랜스젠더, 레즈들까지. 아, 원조교제도 귀신같이 잡아낸다 재운은.
하여간 별의별 인간군상들이 다 보이는 것이었다.
여기서가 중요했다. 이쁘고 돈 좀 붙을 것 같다 싶어 잘못 건드리면 레즈라 학 떼기 일쑤다.
조심해야 한다. 그나마 이반이 아닌 일반을 건드려야지.
오늘은 들고 나오지 않았지만, 가끔 가지고 나오는 카메라도 일에 큰 도움이 된다.
불륜이나 원조교제를 잘 찍어 들이대면 십중 팔구는 두둑한 돈더미가 얹힌다. 또 한동안은 놀아도 된다.
그랬다.
인간 오재운이 잘났다는 이태원 바닥에서 뒹굴며 한다는 짓은 바로.
"...어...?"
흘깃. 저만치를 바라보던 재운의 눈이 조금 크게 띄어졌다.
옷이 사람을 입었는지 사람이 옷을 입었는지. 작은 체구의 사람 하나가 노란 파카를 입고는 걸어오고 있었다.
이미 사람들이 뜸해진 지 오래기 때문에, 재운은 눈요기라도 할 겸 그를 찬찬히 훑어보기 시작했다.
커트머리 하며, 대충 보기에는 남자 같은데...사실 남자라도 잘만 건들면 뜯어낼 구석이 많은지라 나쁘지는 않다.
다만 사내새끼들은 좀 힘을 써야 돼놔서... 게다가 취미도 없다. 역시 편하게 거들먹거리기엔 약한 여자들이 제격이다.
하여간.
우연인지 필연인지 때맞춰 이쪽으로 걸어와 주는 그 사람인 덕에, 이제 웬만큼은 모양이 확인된다.
푹 숙인 고개 사이로 조금 드러난 얼굴은 재운 몾지 않게 작고 또 희었다.
깎아 놓은 것 같은 턱선은 빛에 반사라도 된 듯이 하얗게 빛났고.
"씨발...저거 완전히 순정만화네 순정만화. 졸라 뾰족해."
솔직히 잘난 면상 들고 다니는 놈들은 보기가 조금 띠꺼운 것도 사실이었다.
얼굴로 벌어먹는 셈이니 오죽 하겠는가.
그저 좀 잘나보이는 놈들 보면 이제는, 너도 그렇지 하는 옹졸한 마음 잠깐과, 그래도 내가 낮지 하는 자화자찬으로 그럭저럭 시간을 죽이는 재운이었다.
이번 녀석 역시 꽤나 생긴 모양인 게, 얼핏 드러난 옆얼굴만으로도 충분히 짐작이 갔다.
"저런 새끼들이 있으니 기집애들이 돈들여 칼대지. 지랄. 그래봤자...어...어?"
조금 갸웃 하니 움직이는 고개가 그래도 인형은 아니구만 하고 픽 웃게 만들었고, 정말 인형처럼 우스꽝스럽게 걷는 작은 몸이 조용히 자신의 앞쪽으로 다가오 - 정확히 말하자면 커피솦 앞 - 는 모습을 확인하고 화들짝. 평소 재운답지 않게 끔쩍 놀라 거의 눕다시피 기댔던 몸을 번쩍 일으켰다.
"...어어..."
생각만큼 작은 하얀 얼굴은 아이같이 보드라워 보이는 뽀송한 살결로 덮여 있었다.
솜털 하나하나까지 보일 것 같이 가까이 불쑥 다가온 얼굴은 꿈같이 몽롱한 것이어서 잠시 할 말을 잊게 만들었다.
가까이 본 그의 모습은 정말 어 하고 놀란 자신이 이상하지 않을 만큼 독특하고 신비로운 것이라서 재운은 머쓱히 벌어진 입을 겨우 다물었다.
짙게 쌍커풀진 두 눈은 조금 풀어졌다고 해야 하나. 아니, 그 정도는 아니었지만 다소 몽롱하게 띄인 채 꿈꾸듯 재운의 두 눈을 조금 빗겨가 옆을 향하고 있었고, 동그란 콧날을 따라 내려선 시선에는 약간 벌어진 채 하얀 입김을 쏟아내는 신기하리만치 새빨간 입술이 있었다.
무얼 그렇게 열심히 보는지 멍 한 시선을 거두지 않은 채 까실해 보이는 입술을 적시며 분홍빛 혀가 살짝 나와 입술을 핥고 들어가던 순간.
재운은 자신도 모르게 아랫배가 묵직해지는 기분에 휙. 재발리 고개를 돌리고 평소답지 않은 고르지 않은 숨을 내뱉어야만 했다.
"씨, 씨발 저, 저새낀 저거..."
도대체 뭘 저렇게 보는 걸까 하는 궁금증에 다시 고개를 돌리자, 여전히 자리에 붙어선 채 무언가를 애타게 찾던 그가 유리벽을 짚은 채 기대듯 움직여 옆으로 사라져가는 모습이 보여 재운은 저도 모르게 벌떡 자리에서 일어서고 말았다.
그리고는 멈칫.
그제야 그가 제대로 멈춰 선 채 손을 들어 만지작거리는 유리 앞에 무엇이 있는가를 확인하고는 피식. 그만 허탈하게 웃어 버린 재운이었다.
유리창 앞에는 곱게 진열된 색색의 케이크 조각들이 있었다.
아마도 그는 배가 고팠지 않았나 싶어 고개를 설레설레 흔들어 버렸다.
뭐야 천하의 오재운이 사내새끼 보고 땡기기나 하고 하며 털썩. 다시 자리에 축 늘어져 앉는 재운의 얼굴은 아직도 후끈. 좀전의 그 알 수 없는 긴장이 가시지 않은 채였다.
묘하게 색기가 도는 녀석이었다. 이 바닥에서 숱한 놈들을 보고 또 건드려 봤지만 저런 놈은 처음이었다.
솔직히...몸 좀 굴린다 싶은 놈들을 몇 안아 본 적은 있었다.
아니, 세상 물정 모름직한 예쁘장한 녀석 하나도 일전에 꼬여서 일을 치른 적이 있기는 했다. 뭐, 별로 흥미없는 일이긴 했지만 답쟎게 졸부집 도련님인 덕에 두둑히 뜯어내긴 했었지 하고 고개를 또 끄덕거리며 입맛을 다시는 재운은 문득 아직 그 녀석이 그대로 있을까 하며 다시 고개를 돌려 보았다.
아니나 다를까, 녀석은 아직도 진열대 앞에서 떠나질 못하고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근처에는 밥집은 물론이고 사탕 쪼가리 하나 파는 곳이 없는 좨 옷가게 천지인데다, 오늘은 날도 그렇고 해서 다니는 사람들도 적었고. 뭐니뭐니 해도 지금 시간은 밤 10시가 다 되어 가는 때가 아니냔 말이다.
아무리 밤장사라지만 휘청이는 환락의 거리는 조금 더 가야 나오는 것이기에. 이 시간에 녀석이 음식 구경할 곳은 적어도 이 거리에서는 달랑 여기 뿐이기는 했다.
유리는 안에서만 밖이 보이는 매직 밀러이긴 했지만. 솔직히 시꺼멓기만 하면 누가 알고 오겠는가.
출입문 근처 진열대만은 훤히 들여다 보이는 덕에, 아마도 녀석은 뱃거죽이 등판에 들러붙도록 배를 곯다가 발견한 이곳 벽에 척 붙어 힘없는 발걸음을 겨우 옮긴 것이리라. 사실상 곧 픽 쓰러지기라도 할 듯이 비실대기는 했다.
부우 한 옷 덕택에 제대로 가다가 비친 것은 아니지만, 여자만도 수십, 아니 수백번은 상대해 봤다 할 정도의 오재운에게 그정도 캐치는 어려운 것이 아니었다.
기껏 해야 50키로도 겨우 나가겠지. 사내새끼가 휘청해서는. 키는 한 168 정도? 작기도 작구만. 헐렁하니 몇 개 말고는 별로 입은 것 같지도 않더니만.
어깨를 으쓱 하며 다시 시선을 돌렸을 때.
이미 그 자리에는 아무도 없었다.
재운은 내 알 바 아니다 하며 푹 몸을 기대고는 아예 눈을 감아 버렸지만. 그 반쯤 취한 듯하던 야릇한 눈동자만은 쉬이 뇌리에서 사라지지 않았다.
- 티잉 ! 때구르르르...
- 씨발! 너 이새끼 어디야! 엉? 개새꺄. 오늘도 허탕이야? 졸라 쌔끈한걸로 하나 해준다며 각잡고 댐볐어야지. 넌 그 면상으로 고깟 대물 하날 못 무냐? 하여간 씹. 저번달에 그렇게 카드를 비벼 쌓더니. 씹새. 아, 그리고 이번엔 좀 반반한 년으로 골라. 졸라 호박은 팔아도 재미없어. 졸라 웃긴게 왜 사내새끼들보다 기집애들이 더 많이 사가냐? 낄낄...너 볼라고 그러는 거 아니냐? 야 이번엔 더 화끈하게 해봐. 아예 보내버리게. 야! 아 씨발 남은 빡새게 떠드는데. 야! 씹새꺄! 야!!!
밧데리도 떨어져 깜박거리는 플립을 홱 닫다가, 아예 꺼 버리고는 주머니 속에 아무렇게나 쑤셔박았다. 이 바닥이 다 이렇지 뭐 하면서 자조적으로 웃으며 죄 없는 깡통이나 깡 깡 까대는 자신이 초라해져, 재운은 남은 돈으로 깡소주나 사서 퍼마실걸 하는 후회를 이제야 하는 것이었다. 물론. 사람은 역시 지난 후에야 후회를 한다. 사실...아까도...
' 퍽 ! '
응?
' 퍽! 퍼퍽!!! 퍼억!!! '
어디서 애새끼를 잡나.
이 동네 골목길이란 무척이나 험한 바닥이라서, 언제 어떻게 잘못 끌려들어가면 돈 뜯기고 몸 뜯기기 십상인지 몰랐다.
화려한 네온사인에 날아들어온 불나방들이 날개 뜯겨 비틀대다 비명횡사하는 일이 어디 한둘이었을까?
모든 것은 화려한 만큼 대가가 있게 마련이다.
하여간 별로 참견하고 넘어가 주지 않던 재운이었지만 어디서 또 누가 저 같은 짓을 하고 있나 하는 평소답지 않은 호기심에 슬쩍. 어두컴컴한 골목 안으로 고개를 디밀었고, 생각지도 못한 광경에 쩌억. 그만 놀라 벌어진 입을 다물지도 못하고 또 답지않게 허둥대며 뛰어들어가 요란하게 참견해 주는 지경에까지 이르고 말았다.
정말 생각지도 못한 일이었다.
정말. 정말로.
"그. 그만해. 그러다 죽겠어!"
"...하아...하..."
하얗게 부서지는 숨결이 가랑가랑하니 골목을 울렸다.
몇 번을 내리쳤는지 벌겋게 핏물이 배어난 낡은 가방을 꼭 끌어안은 채.
생각지도 못한 가해자는 아이러니하게도 좀전의 그 배고픈 소년이었다.
부어오른 입술 하며, 어깨가 찢기다 시피 늘어난 티셔츠 하며, 반쯤 풀린 허리띠 사이로 흘러내린 바지 위로는 하얀 허리가 드러나 있었다. 사내자식 치고는 정말 가늘구나 싶어 꿀꺽. 저도 모르게 마른침을 집어삼키던 재운의 시선이 다시 그의 손에 들린 가방으로 향했다.
종전에 입고있던 크기만 한 파카는 어느새 저만치 던져져 구겨져 있었고, 한참을 그 꼴로 있었을 텐데도 휘청이는 그의 모습에서는 나른함과 몽롱함 외에는 다른 어떤 감정도 느껴지지 않았다. 춥지도 않은가보다.
털썩. 아직도 꼭 쥐고 있는 가방을 슬쩍 뺏어내자 이내 휘청 하고 무릎이 풀리더니 주저앉아 버린다.
부들부들 그제서야 떨기 시작하는 몸이 어림짐작보다도 더 왜소하게 말라있었다. 재운은 널부러진 대머리 사내의 몰골을 슥 한 번 쳐다보고는 툭 툭. 발끝으로 중년사내의 축 늘어진 아랫도리를 몇 번 차대며 혀를 끌끌거렸다.
다 늙어가지고 어떤 수작을 걸려 했는지 뻔 하다. 뭐로 꼬셨을까. 그렇게 호락호락한 녀석은 아닌 것도 같고. 아니, 사실은 별로 생각하고 싶지도 않지만.
머리 옆에는 각이 잘 선 돌맹이 하나가 데구르르. 굴러가다 멈춰 있었다.
군데군데 점점이 박힌 불그죽한 얼룩을 보니 뻔하다.
그래도 모질지는 않은 녀석이다 싶다가도, 살인나지 않으려면 당연한게 아닌가. 아까 보니 맛이 가서 죽자사자 패대던데. 하긴. 사내새끼로 태어나 뒷대주며 깔리기엔 억울하기도 하겠지. 더더군다나 이렇게 축 늘어진 영감탱이가 박아대려 덤비는 판에야.
씹. 나라면 죽였다.
어쨌든 자신답지 않게 국가에 도움도 줬군 하는 생각으로 - 범죄자 하나 느는 걸 막았으니 오죽 잘한 짓이랴. 살인도 범죄고, 목격한 이상 방조죄도 적용될 텐데 - 몸을 돌렸을 때였다.
갑자기 훅 불어온 싸늘한 바람 한 줄기에 목을 움츠리고 걸음을 옮기려는데, 아직도 미동도 없이 늘어져 있을 그 녀석 때문에.
됐다.
죽든 말든.
애라 모르겠다.
이제 한 개피 달랑 남은 담배를 또 물고 터덜거리며 걷는 재운의 발걸음이 시원섭섭했다.
알아서 가겠지.
알아서.
"어이. 그러다 얼어죽는다 너?"
"..."
덜컹. 심장이 멈추는 줄 알았다.
자식. 야리기는.
속으로 툴툴대며 눈앞의 녀석을 뚫어져라 바라보았다.
여전히 드러난 하얀 어깨가 얼어버렸을 것 같아 조금 안쓰러웠고, 희게 갈라진 채 말라붙은 입술은 꼭 닫겨 있었다.
스르륵. 덜 띄였던 눈동자가 내려온 눈꺼풀에 닫겨 버린 채 모습을 감추는가 싶더니, 풀썩. '어' 하고 놀랄 새도 없이 재운의 품으로 쓰러져 버리고 만다. 갈수록 태산이라더니 역시 옛 어른 말씀 틀린 것 하나 없다더라.
한숨을 푹 쉬고는 번쩍. 별로 나가지도 않는 마른 몸을 어깨에 들쳐메고 걸음을 옮기는 재운의 뒤로 덕지덕지 어둠이 달라붙는다.
조금은...따듯해진 것도 같다.